posted by nameless7777 2017. 5. 18. 21:55
클라우드는 묵묵히 사내를 따라 걷고 있었다.

클라우드는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휘몰아치는 마황. 구석구석 느껴지는 제노바 세포. 그는 솔져다. 그것도 클래스 퍼스트. 지금 루퍼스 컴퍼니에 남아있는 어중이 떠중이와는 다르다. 베테랑. 진짜배기 병사다.

"이 쯤이면 되겠지."

사내가 참으로 느긋했다. 해는 이미 떨어졌다. 천천히 걷던 그가 멈춘 것은 가게를 나선 이후 시간이 꽤 지난 뒤였다. 클라우드가 주위를 돌아보았다. 엣지의 외곽. 사람이 살지 않는 곳이다. 앞으로 한 발짝만 더 나서면 미드갈 에리어에서 벗어날테지.

"자세를 잡아라."

슬슬 티파가 행동하기 시작했을 것이다. 더 이상 조심할 필요는 없다. 클라우드가 조금 도발적으로 입을 열었다.

"이런 곳까지 끌고 와서, 무슨 짓을 할 셈이지?"

"말했을 것이다. 이것은 단죄다."

"단죄라."

"이게 마지막이다. 자세를 잡아. 주먹질은 할 수 있겠지."

"당신 참 정정당당하군. 내 정보를 열람했다면 내 적성이 검이라는 걸 알텐데."

"테러리스트 주제에 바라는 것도 많군."

클라우드가 코웃음을 쳤다.

"당신도 그리 깨끗해 보이지는 않아."

그 말이 끝나는 순간 사내가 소리도 없이 움직였다. 초인적인 가속. 그 거구가 땅을 스치듯 이동. 클라우드가 자세를 잡기도 전에 그 복부에 둔중한 타격이 전해졌다. 무릎 차기다. 무시무시한 충격량에 갈비뼈가 부서지기 전에 클라우드의 몸이 앞으로 꺾여 떠올랐다.

완전히 무방비 상태인 클라우드의 턱에 라이트 스트레이트가 작렬.

클라우드는 날아가고, 땅에 튕겨 올라가고, 몇 바퀴나 바닥을 구른 후 폐허에 쳐박혔다. 마른 먼지가 자욱하게 솟아 올랐다. 사내는 천천히 클라우드가 파묻혀 있는 돌무더기에 다가갔다.

"일어서라."

사내가 뇌까렸다. 그 말에 부응하듯, 돌무더기가 살짝 움직였다.

이윽고 클라우드가 상체를 일으켰다. 그는 뽀얗게 먼지를 뒤집어 쓴 라이더 수트를 털면서 모래 섞인 침을 뱉어냈다. 사내의 눈에 흥미가 솟아났다. 타액에는 피 한 방울 섞여 있지 않다. 뼈도 내장도 무사한 모양이다.

"단단해. 과연 솔져를 사칭할 정도는 되는군."

클라우드는 그대로 앉아 있었다. 일어설 수는 없으리라. 내구력과는 상관이 없다. 턱을 그런 식으로 가격당했으니 뇌가 흔들리고 있을 터. 사내는 팔짱을 끼고 클라우드가 일어설 때까지 기다렸다.

그러나 클라우드는 굳이 일어날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클라우드가 앉은 자세 그대로 물었다.

"왜 굳이 이곳까지 온 거지? 당신 말대로, 테러리스트를 단죄하겠다면 그 가게와 함께 나를 날려버리면 끝날 일이다. 그럴 수 있었을 텐데. 저 인형 병기들을 사용한다면 말이지."

클라우드의 어조는 평온했다. 사내는 어깨를 으쓱였다. 뇌진탕이라니 당치도 않다. 전혀 충격을 받지 않았다. 저 아발란치의 돌격대장은 과연 만만치 않은 전사인 것이다.

"네가 소문대로의 상대라면 그 정도로 끝날리가 없으니까. 그렇다면 그곳에서 싸우면 주위에 피해가 갔을테지. 그리고 뒤에 있는 것들은 신경쓰지 마라. 단순히 참관인이라고 생각하도록."

클라우드가 어이없는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다짜고짜 주먹질이나 하는 주제에, 의외로 멀쩡한 이야길 하는데. 내가 아니었다면 죽었을거다."

"죽지 않을 줄 알고 한거다. 게다가 설사 그렇다 해도 달리 남길 말은 없을 터."

"남길 말 정도는 있어. 가족이 있거든."

"알고 있다. 하지만 네가 죽인 사람들에게도 가족이 있었다. 부정하지는 못하겠지."

클라우드가 고개를 숙였다.

아발란치에 고용된 이후 첫 번째 미션에서, 그가 직접 조작한 폭탄은 계산 이상의 대폭발을 일으켰다. 결과적으로 죄없는 수십 명의 사상자가 나왔다. 하지만 이를 의도한 것도, 실수한 것도 실은 클라우드가 아니다. 그는 권총의 트리거 였을 뿐이다. 리더의 감시 아래 폭파 버튼을 눌렀을 뿐이다. 게다가, 죄값이라 하기에는 부족하고 어폐가 있겠지만, 폭파 미션을 함께 했던 아발란치의 멤버들은 바렛트와 티파를 제외하고 전부 죽었다.

알고 있다.

죄는 사라지지 않는다.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바렛트에게는- 절대로 그에게 책임을 전가할 수는 없다. 바렛트는 폭탄 테러를 결정하기까지 너무나 많은 상처를 받았기 때문이다. 아무도 그를 비난할 수 없다. 내가 그렇게 놔두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티파는.

티파는-

클라우드는 이미 결심했다.

절망의 무저갱에서 자신을 꺼내준 그녀를 위해. 가장 무력할 때 아무런 조건도 없이 자신과 함께 해줬던 그녀를 위해. 기약없이 자신을 기다려준 그녀를 위해. 클라우드는 스스로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

그녀는 자신보다 강하다. 하지만 약하다. 그녀가 죄책감 때문에 불이 꺼진 어두운 복도를 두려워 하는 것을 클라우드는 잘 알고 있다. 전보다는 나아졌지만 그녀는 아직도 악몽에 시달리고 있다. 그럴 때 이젠 괜찮다는 위로를 듣기 싫어하는 것도 아플 정도로 알고 있다. 괜찮지 않으니까. 괜찮을 리 없으니까. 속죄할 수 있을 리 없으니까.

그런 그녀에게 조금이라도 힘이 되어주고 싶다.

클라우드는 그저, 티파 곁에서 함께 살아갈 뿐이다. 그걸 위해 클라우드는 어떤 일이든 감수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오히려 바라던 바다. 그녀의 몫까지, 얼마든지 속죄할 것이다. 설사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별의 적을 상대로 언제까지고 싸워나갈 것이다. 죽어간 사람들의 천만배라도, 가령 일억배라도 구해낼 것이다. 그 누구도 티파의 마음 한 귀퉁이조차 상처주지 못하게 만들 것이다.

그렇다. 그렇고 말고.

하지만, 그저 바보처럼 당하며 살 생각은 없다.

지금 이 상황.

미심쩍은 부분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무엇보다, 오늘날 아발란치가 단순한 테러 조직으로 평가받는 일은 없다. 아발란치의 역사에는 우여곡절이라는 단어로도 설명할 수 없는 파란만장한 영웅담이 있기 때문이다.

가족을, 동료를 지킨다. 결정사항이다. 하지만 그 전에 다시 한 번 이 사내의 동기에 대한 탐색이 필요하다.

클라우드가 고개를 들었다.

"다시 한 번 묻지. 내 이야기. 어디까지 알고 있지?"

사내는 클라우드의 질문을 질문으로 답했다.

"네 죄를 네가 모른다고 말할텐가?"

클라우드는 사내가 자신의 질문을 받아주었다는 사실에 만족하기로 했다. 클라우드는 순순히 인정했다.

"알아. 나와 내 동료들의 실수로 1번 마황로가 계산 이상의 폭발을 일으켰고, 무고한 사람들이 죽었다. 변명하지 않아."

"묘한 말을 하는군. 날 속일 생각은 하지 마라. 네 놈들의 폭발 테러는 그것 뿐만이 아닐텐데."

역시 이 자는 사실을 전부 알고 있는 것은 아니다. 혹시 이를 바로 잡을 수만 있다면, 이 사태는 생각보다 쉽게 진정될 수 있다.

"다른 것은 우리가 한 게 아니야. 5번 마황로와 7번 슬럼가의 폭탄 테러를 저지른 것은 프레지던트 신라다. 우릴 사냥하기 위해서 였지. 1번 마황로 사건을 앞세워 모든 것을 테러리스트에게 덮어씌울 수 있었으니 일석이조였던 셈이다. 머리가 잘 돌아가는 남자였지."

클라우드는 조용조용히 답했다. 그 단호한 어조에 사내는 자신도 모르게 신음을 흘렸다. 그는 쉬이 반박할 말을 찾을 수 없었다. 그 눈은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쉽게 인정할 수도 없는 이야기다. 게다가 방심해서는 안된다. 놈은 잔학무도한 테러리스트니까.

사내가 짧게 물었다.

"증거는?"

"증거라면 차고도 넘치지. 교양서적에도 슬슬 인용되고 있으니까. 뭣하면 프레지던트 신라의 아들에게라도 직접 물어보면 어떤가."

"아들?"

"당신은 정말 아무 것도 모르는군."

클라우드의 목소리에 피로가 묻어났다. 이 사내는 현대사에 전혀 관심이 없는 것 같다. 예측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니다. 저 근육질의 육체. 책을 읽을 것 같은 타입은 아니다.

거기꺼지 생각이 미친 클라우드의 뇌리에 문득 시드가 떠올랐다. 담배를 피우고 싶어진 것이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다. 차마 클라우드에게 손을 들 수 없는 티파가 결국 시드를 대신 두들겨 팰 테니까. 시드는 튼튼하므로 죽지는 않더라도 수명이 대폭 깎일 것이다.

"오늘 일은 잊겠다. 오늘은 돌아가라. 난 도망치지도 숨지도 않을테니까, 제대로 조사하고 오도록. 다만 표적은 나로 끝내줬으면 좋겠군. 다른 사람들은 괴롭히지 말고."

이 사내는 어쨌든 가게의 손님들에게 아무런 위해를 가하지 않았다. 마스터 오브 스위츠도 그대로 놔뒀다. 루퍼스 신라를 소개시켜주면 오해도 풀릴 것이다.

그렇다. 클라우드가 조금 참으면 끝날 일이다.

한가지, 계속해서 마음에 남는 일만 확인할 수 있다면. 클라우드는 정말로 모든 것을 내려놓을 작정이었다.

"다만."

"뭐지?"

"당신에게 그 정보를 준 사람은 누구지? 저 인형 병기는 누구에게 받았지?"

루퍼스 신라는 현실적인 사람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결론은 똑같았다. 그는 결코 클라우드를 배신하지 않는다. 이 쪽에는 그 어떤 철통같은 경비도 무력화시킬 수 있는 닌자 마스터가 있으니까. 루퍼스 신라는 목도 심장도 하나 뿐이다.

이 사내 또한 루퍼스 신라에 대해 전혀 모르는 눈치다. 다른 흑막이 있다고 보는 편이 합리적이다. 그것도 루퍼스 컴퍼니의 최신예 병기를 유용할 수 있을 정도의 흑막이다.

클라우드가 판단하기에, 눈 앞의 거대한 사내는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지만 지능이 높아 보이지도 않는다. 이용하려면 얼마든지 이용할 수 있겠지.

실로 그랬다.

이 사내는 정말로 어리석었다.

"의뢰주의 정보를 팔라는 말인가. 어림없는 이야기다."

클라우드도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심지어 이 사내는 생각보다 훨씬 우직하기까지 했던 것이다.

"그리고 네가 인정했던 것처럼, 네가 1번 마황로를 폭파했다는 사실도 변하지 않는다. 장차 무슨 일이 있을지 아무도 장담하지 못하지. 나는 의뢰주를 지켜야만 한다. 그러니 너에게 대답할 수 없다."

클라우드가 고개를 숙였다. 급성 편두통이 시작된 것 같았다.

"감히 죄를 씻었다고 생각하지 마라. 네 말처럼 내가 아직 모르는 부분이 있는 것 같군. 그러니 철저하게 조사하겠다. 다시 돌아오겠다. 그 땐 너도 네 말에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이어서 클라우드는 관자놀이를 짚었다. 올곧은 사내다. 두통이 느껴질 정도로.

"가겠다. 기다리도록."

클라우드가 손사래를 쳤다.

"알았다. 얼른 가라. 피곤하군."

상황은 아무 것도 바뀌지 않은 채 정리되는 것처럼 보였다. 클라우드의 턱 근처에 남아있는 희미한 주먹 자국만이 오늘의 사태를 증명하는 듯 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렇게, 클라우드가 전부 내려놓기로 마음 먹은 그 때였다.

"누구 마음대로."

그녀가 하늘에서 떨어져 내려왔다.

"누구 마음대로 어딜 가겠다는 거야."

검은 생머리에 타오르는 것 같은 붉은 눈동자. 급히 달려왔는지 볼은 발그레 붉힌 채 살짝 숨을 헐떡이고 있는 그녀는 그저 아름다웠다.

티파는 거짓말처럼 클라우드의 피로를 앗아갔고 생기를 북돋웠다.

"티파."

클라우드의 그 목소리에, 짜증이나 분노는 한조각도 실려 있지 않았다. 티파가 클라우드를 돌아봤다. 흔들리는 눈동자는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을 것만 같았다. 이럴 때까지 괜히 아름다운 그녀가 사랑을 속삭이는 듯한 목소리로 물었다.

"저 사람이 클라우드를 괴롭혔어?"

클라우드는 조금 망설였다. 이제 거의 다 끝난 일이다. 티파에게 괜한 일을 시키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가슴속에 울컥이는 무엇인가가 꿈틀거렸다. 무엇보다 이렇게 된 티파에게는 아무것도 숨길 수 없다.

"응. 혼내줘."

사내의 입이 부지불식간에 조금 벌어졌다. 지금 이 대화는 대체 뭐지? 이 오한은 어디서 온거지? 사내는 근엄한 표정을 간신히 유지할 수 있었다. 거쳐온 수라장이 하나만 부족했더라도 평정을 유지할 수 없었으리라.

사내가 간신히 티파를 알아봤다.

"붉은 눈. 티파 록하트. 아발란치의 잔당인가."

티파의 눈썹이 조금 꿈틀거렸다.

방금 저 자가 아발란치라고 했다. 티파는 그것 만으로 상황을 민감하게 눈치챘다. 어차피 아발란치의 마황로 폭파 활동을 빌미로 클라우드를 압박했겠지. 민간인 사상자가 나왔었으니까.

티파는 분해서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웃기지 마.

"웃기지 마!"

티파를 중심으로 바람이 휘몰아치는 느낌이 들었다. 그 기세는 사내를 긴장시키기에 충분했다.

"클라우드는 그 미션에서 중요한 일은 무엇 하나 하지 않았어. 아발란치 일이라면 나나 바렛트를 찾아 왔어야지. 그리고."

클라우드가 티파의 등을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봤다. 하지만 그는 잠자코 있을 수 밖에 없었다. 그녀의 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너희들이 시작했잖아."

그렇다.

클라우드가 주먹을 꽉 쥐었다.

사내의 태도가 너무도 당당했기에 차마 말하지 못한 말이다. 하지만 적반하장에도 정도가 있는 것이다.

티파가 천천히 한 발 내딪었다. 그리고 사내는 자신이 무심코 한 발 뒤로 물러섰다는 사실을 깨닫고 경악했다. 이 내가, 겁을 먹었다고?

"너희들이, 신라 컴퍼니가. 나의, 클라우드의 마을을 짓밟았잖아. 전부 죽였잖아."

그 붉은 눈동자에 분노가 가득찼다. 사내는 그 순수한 감정을 알아보고 숨을 삼켰다. 티파는 신라 컴퍼니의 만행을 짚어 나가면서 분노가 점점 커지는 것을 느꼈다.

"네가 그렇게 경멸하는 아발란치의 리더. 그의 마을도 너희들이 전멸시켰어. 그래. 아발란치는 그렇게 생겨났지."

신라 컴퍼니의 좋지 않은 소문들을, 사내는 잘 알고 있었다. 그 소문들의 많은 부분이 사실이라는 것도.

"한 눈에 알 수 있어. 당신은 솔져. 하늘에서 내려온 재앙. 제노바의 숙주. 그런 주제에 아발란치를 욕해? 감히, 신라 컴퍼니의 찌꺼기 주제에? 너희들의 오물을 치워준 우리들을?"

그렇게 입장은 완전히 역전되었다. 사내의 얼굴에 고통과 회한이 담겼다.

티파의 투기가 폭발했다.

사내는 할 말을 잃고 티파를 바라보았다. 발밑이, 미드갈이, 지구 그 자체가 흔들리는 느낌이 든다. 이 힘. 바늘로 찌르는 것 같은 위압감. 사내는 체내의 제노바 세포가 요동치는 것을 느꼈다.

사내의 등이 식은 땀으로 축축해졌다. 티파의 분노와 그녀의 폭로를 경청한 그는 그제야 자
신이 뭔가 크게 착각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클라우드가 보여준 인내를 이해했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저 투기를 뚫고 사과하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혹 여기서 살아돌아간다면- 의뢰주의 미간에 딱밤이라도 먹여주리라.

할 말을 마친 티파는 호흡을 아랫배에 묶어두었다. 숨이 가라앉고 컨디션이 돌아온다. 이럴 때 일수록 그녀는 머리를 식혀둔다. 상대를 효과적으로 두들겨 패려면 흥분해서는 안된다. 존경하는 사부님의 가르침이다.

"잔간류 114대 계승자. 티파 S. 록하트. 당신도 이름을 대."

그녀가 일방적으로 승부를 가로챘다. 하지만 사내에게는 거부권이 없었다. 그 정도의 자각은 있다. 게다가 이것은 격투가의 정중한 일기토 요청이다. 사내는 이를 무시할 정도로 예의를 모르지는 않았다.

"솔져, 클래스 퍼스트. 안질 휴레이. 한 수 부탁한다."

.

"들었지? 티파가 사장 목은 아직 따지 말래."

"응? 그런 걸 신경쓰고 있었어? 알아 알아. 사장님은 약삭 빠르니까. 우릴 적으로 돌릴 리 없잖아. 난 우연히 근처에 있다가 그냥 확인차 온거야."

"칭찬 고맙군. 그럼 그 날붙이는 넣어주지 않겠나."

"얼래? 이게 무서웠어? 사장님 솔직한 구석이 다 있네?"

"허세가 통할 상대라면 얼마든지 그렇게 하겠네만."

"역시 사장님. 잘 알고 있잖아?"

"...사장. 목격 정보가 있었어. 해결사야. 사장이 우려한 대로 기어이 사고를 쳤어."

"흠. 티파에게 이 정보를 정리해서 전달하게."

"해결사? 클라우드? 클라우드가 사고 쳤어? 뭐가 어떻게 된거야?"

"잠깐 조용히 해주게, 닌자 마스터"

"나도 알아듣게 설명 좀 해 달라고. 왜 난 차별하는데?"

"사안이 긴급하다네. 이해해주게, 미즈 발렌타인."

"아이참. 아직 식도 안올렸는데!"

"루퍼스!"

"...시즈. 고마워. 덕분에 살았어."

"저기요. 그 쪽으로 안던졌거든요. 갑자기 껴안고. 애칭으로 부르고. 어조도 바뀌고! 뜨겁기도 하셔라."

"너 정말!"

"옛날 같았으면 진즉에 마음이 꺾였겠지만. 이미 난 예전의 귀여운 유피가 아니거든. 나도 다 겪었거든."

"유피!"

"...시즈네. 이제 됐네. 서둘러 현장에 가도록 하지."

"후우. 괜찮겠어?"

"해결사에게 누가 프라우드 솔러스를 제공했는지 알아내야해. 짐작은 간다만... 어쨌든 내가 직접 가야 하네."

"프라우드 솔러스는 몇 기나 가져갈까?"

"필요없네. 닌자 마스터가 동행할테니."

"후훙."

"턱스 오브 턱스가 함께 할테지."

"난 덤이냐!"
posted by nameless7777 2017. 5. 18. 18:58
'클라우드가 늦네. 연락도 안되고.'

티파는 정신없이 몰려드는 손님들을 맞이하며 남편의 조력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오늘은 세븐스 헤븐에 손님이 몰리는 화요일이다. 매주 화요일 클라우드는 티파를 위해 일찍 장사를 접고 가게 일을 도우러 온다.

뭐, 별 일이야 있겠어.

그러다 티파는 클라우드의 얼굴을 떠올리며 헤벌쭉 웃었다. 그리고 그 얼빠진 모습을 손님들께 들킬까 화들짝 놀랐다. 주책이다. 아무도 못 봤어야 할텐데. 티파는 부끄러움에 볼을 물들였다. 사실 남편의 얼굴은 적응하기 어려운 면이 있었다. 살을 맞대고 살아도 완전히 익숙해지지 않는다.

우연히 티파의 얼빠진 얼굴을 본 몇몇 손님들은 속으로 환호성을 질렀다. 그것은 손님들의 주술적 오락이었다. 미드갈에는 티파가 남편을 생각하는 모습을 보면 행운이 온다는 도시 전설이 있기 때문이다. 티파가 가진 수많은 이야기 중 가장 훈훈하고 신빙성 있는 부류다. 물론 그렇지 않은 부류도 많이 있었지만.

티파는 마음을 다잡고 접객을 재개했다. 칵테일을 섞고, 안주를 대량 생산하고, 손님들의 계산서를 일일히 확인하고 정산한다. 스위츠를 만드는 것 외에는 완전 자동화되어 있는 마스터 오브 스위츠와는 달리, 티파가 운영하는 세븐스 헤븐은 예전과 마찬가지로 완전히 옛스러운 감성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영업장에서 부지런히 움직이는 편이 티파의 천성에도 맞는 모양이었다.

티파가 이변을 알아챈 것은 오후 8시가 넘어서였다. 눈치채지 못할 수가 없었다. 클라우드에게 세 번째 전화를 걸었을 때 티파의 휴대폰이 진동하며 산더미같은 문자를 쏟아냈기 때문이다. 메시지가 워낙 많고 너무 빨리 지나가서 티파는 그 내용을 다 읽을 수도 없었다. 그러므로 티파가 제대로 읽을 수 있었던 메시지는 마지막 것 뿐이었다.

메시지를 읽은 티파의 눈에 벼락이 내려쳤다. 격분한 그녀가 무심코 발을 굴렀다. 그녀를 중심으로 퍼져나간 충격파에 세븐스 헤븐은 아비규환에 빠졌다. 술잔이 바닥에 떨어져 깨졌고 손님들은 성대하게 음식물을 뒤집어 썼다. 티파가 만들어낸 미증유의 재난에 손님들은 숨소리 한번 내뱉지 못했다. 도시 전설 6. 지진 안정대인 미드갈에서 땅울림을 느꼈다면 그것은 어디선가 티파가 크게 화를 냈다는 뜻이다.

티파가 화를 냈다. 필시 그 가족에 연관된 일이며, 십중팔구 클라우드가 사고를 쳤으리라. 손님들은 진심으로 클라우드를 비난했다. 저 천사같은 사람에게 매번 무슨 짓을 하는 거야. 결혼을 했으면 사람이 달라지는 게 있어야지.

한편 분노로 가득찬 티파는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자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녀는 지나가버린 메시지도 하나하나 다시 읽어보았다. 전에 클라우드와 함께 상의해서 설정해둔, 루퍼스 컴퍼니의 자경 조직에 의한 방어 프로토콜임을 확인한다. 하지만 그 마지막 메시지에 의해 이 모든 프로토콜은 무용지물이 되었다.

투박한 문체로 보건데 이것은 클라우드가 직접 보낸 것이 아니다. 자동 발송된 방식이라면, 이미 이상 사태가 발생한 지 1시간 이상 흘렀다는 이야기다.

티파는 세븐스 헤븐을 박차고 뛰어나갔다.

최악의 상황이다. 더없이 급박했다. 티파는 이리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리나의 목소리 역시 다급했다. 예상대로 그녀는 모든 상황을 알고 있었다.

- 아니에요. 티파. 루퍼스 컴퍼니는 결코 세븐스 헤븐과 마스터 오브 스위츠를 적대하지 않습니다.

티파가 마지막으로 받은 메시지는 세번째 방어 프로토콜을 나타내는 패턴 C. 마린과 덴젤을 사수하는 패턴 A와 다른 점은 단 한가지 뿐이다.

루퍼스 컴퍼니의 배신 의혹. 확인 요망.

티파는 그들과 동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이제와서 그들이 배신을 한다니 믿고 싶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턱스에게 말로 밀리는 순간 끝이다. 티파는 부러 표독한 말투를 사용하기로 마음 먹었다. 어렵지 않았다. 어쨌든 티파는 지금 엄청나게 화가 나 있었으니까.

"어떻게 패턴 C에 대해 알고 있는 거야? 내가 수상하게 느낄 수 밖에 없잖아?"

- 티파. 우리는 턱스입니다. 턱스에게는 누구도 비밀을 가질 수 없습니다. 제가 드릴 수 있는 말은 그것 뿐이에요.

티파의 뒤로 건물이 엄청난 속도로 후퇴하고 있었다. 그녀는 지금 간판을 딛고 한 상가 건물의 옥상으로 도약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 티파가 협박을 이어갔다. 그녀는 달인이다. 전력으로 달리고 있음에도 호흡 한 점 흐트러지지 않는다.

"뒤가 구린 일이 있으면 지금 말해. 전부 철회해. 그러면 아무도 죽지 않고 끝나."

그 착하고 인자한 티파가 죽음이라는 단어를 입에 담았다. 보통 때라면 결코 사용하지 않는 어휘다. 이리나는 상황의 심각성을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 아니에요, 티파! 그렇지, 덴젤과 마린은 이미 저희가 보호하고 있습니다!

"혹시 협박하는 거야? 인질로 잡았다고? 그럼 죽어. 농담하는 거 아냐. 전부 죽일 거야."

- 티파, 제발!

이리나가 알고 있는 그녀는- 티파는 자신보다 자신의 주위에 있는 사람들의 안위에 대해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러므로 이는 단순한 협박이 아니다. 필요하다면 티파는 언제든 그렇게 할 수 있다. 지금 루퍼스 컴퍼니의 간부들은 전원 노후 보험을 파기하고 해외로 도주해야 할 판이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겠지?"

- 물론이에요. 티파. 상황을 파악하고 10분 단위로 메시지를 보내겠어요. 마린과 덴젤은, 정말로 걱정할 필요 없어요. 그리고,

"길어. 끊어."

- 자자자자잠깐! 티파, 잠깐!

"뭐야. 혹시 고백할 생각이 든거야?"

- ...지금 사장실에 유피가 와 있거든요. 말씀 좀 해주시겠어요?

그러고보니 그랬다. 패턴 C는 상황이 상황인 만큼 닌자 마스터와 공유하고 있는 정보다. 이것으로 루퍼스 신라의 배신에 의한 추가적인 위협은 완전히 잊어버려도 될 것이다. 루퍼스 컴퍼니가 프레지던트 루퍼스의 목을 걸고 진행해야 할 일은 아무 것도 없다.

고마워 유피. 덕분에 골칫거리 하나 없앴어.

티파는 고개를 돌려 한 숨을 내쉬었다. 안도하고 있다는 사실을 들켜서는 안되니까. 그렇게 되면 애써 유리하게 이끌어 나가고 있던 이야기가 진흙탕 싸움이 될 것이다.

티파는 강한 어조를 유지한 채 말했다. 슬슬 목구멍이 간질간질해서 앞으로도 계속 잘해나갈 자신이 없다. 그러므로 이용할 수 있는 것은 전부 사용해야만 한다.

"어차피 녹음하고 있겠지? 내 말 유피에게 전해. 아직 목을 따진 말라고."

- ...감사해요 티파.

티파는 대꾸없이 전화를 끊었다. 으름장 놓은 사실에 대해 사과는 하지 않는다. 아직 그럴 이유가 없다.

그대신 티파는 계속 달렸다. 차량, 간판, 건물을 뛰어넘어 마스터 오브 스위츠를 향해 일직선으로 쏘아져 나갔다.

그녀에 대한 도시 전설이 늘었다. 그녀는 발을 굴러 지진을 일으킬 수 있을 뿐 아니라, 바람처럼 빨리 달릴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사실이었다.
posted by nameless7777 2017. 5. 18. 18:07
케익 전문점 마스터 오브 스위츠에서는 오늘도 평소와 다름없이 평화로운 나날이 이어지고 있었다.

이 가게에서 다루는 스위츠.

그것은 그야말로 절품 중의 절품.

클라우드가 개업한지 1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는, 미드갈 전역에 그의 스위츠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점주 클라우드 L. 스트라이프의 비할 바 없는 단 맛에 대한 재능. 그에 따른 전설적인 일화는 손으로 꼽을 수조차 없다.

심지어 소문은 결코 과장되는 일 없이, 클라우드는 손님들에게 금단의 무화과를 제공했다. 그리고 손님들은 공평하게 천국의 다리를-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기꺼이 건너갔다.

지금도 가끔 생각한다.

분명 기분전환으로 시작한 일이었을 텐데,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스스로도 납득하기 힘들 정도로, 클라우드는 제빵에 매진하고 있었다. 어느새 빵을 굽는 일은 클라우드에게 있어서 숨을 쉬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일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오늘도 그렇게, 여느 때 처럼 평범한 하루가 끝나려 하고 있었다.

클라우드는 라스트 오더를 처리한 후 식기를 정리하면서 집에 가져갈 브라우니를 굽고 있었다. 이 날을 위해 사둔 최고급 초코보젖을 곁들여 모두와 함께 먹을 예정이다. 오늘은 바렛트가 돌아오는 날이니까.

클라우드는 아내가 사준 새하얀 장갑을 끼고 브라우니를 오븐에서 꺼냈다. 손님들은 따끈따근한 김이 올라오는 브라우니를 그저 바라보기만 해도 행복하다고 생각했다.

클라우드는 이어서 팬 케이크나 겨우 썰 수 있을까 싶은 페이퍼 나이프로 브라우니를 대담하게 자르는 묘기를 선보였다. 대충 눈대중으로 잘랐을 텐데도 접시에 담아낸 브라우니는 완벽한 정육면체. 손님의 입에서 탄성이 터져 나온다. 감히 있을 수 없는 신위를 연달아 보여주면서도 클라우드의 얼굴은 여전히 표표했다. 이 세상 사람 같지 않은 아름다움. 신비감. 자각이 없다는 점이 특히 고약하다.

문득 클라우드가 고개를 들었다. 그를 훔쳐 보고 있던 손님들은 화들짝 놀라 자신의 접시를 바라봤고, 얼마 남지 않은 스위츠를 바라보며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하다가, 마스터의 시선을 따라 출입문 쪽을 바라보았다.

어떤 남성이 천천히 가게에 들어서고 있었다. 인상적이라고 밖에는 표현할 길이 없다. 손님들은 저마다 확신했다. 사내가 입고 있는 검은색 의복들은 틀림없이 오더 메이드일 것이다. 어쨌든 키가 2미터를 훌쩍 넘는 사람을 위한 기성품은 없을 테니까.

하지만 그는 신기할 정도로 평안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클라우드는 사내의 조심스러운 움직임에서 그 이유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의 몸이 주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잘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느릿느릿한 걸음걸이로 출입문을 통과한 사내가 클라우드를 향해 목례했다. 이제 30세 중반 정도 되었을까. 표정을 드러낸 그는 아까보다 훨씬 친근한 느낌이 들었다. 평생 얼굴을 찌푸리지 않고 살아온 것 같은 인상이다.

하지만 문제가 하나 있었다. 클라우드는 이 사내의 예약을 받은 바 없었다. 즉 그는 마스터 오브 스위츠에 오늘 처음 발걸음한 손님이었다.

클라우드가 조심스럽게 고개를 숙였다.

"손님, 죄송합니다만, 화요일 라스트 오더는 17시 30분입니다. 10분 후에는 가게를 마감해야 해서...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6시 20분이었다. 새삼스럽게 시간을 확인한 사내의 얼굴에 실망이 서렸다.

"오늘이 아니면 올 수 없는 사정이 있습니다만, 방법이 없을까요."

고객의 딱한 사정에 클라우드가 턱을 괴고 생각에 잠겼다. 그 그림같은 동작에 테이블에서 무심코 탄성이 흘러나왔다. 거구의 사내는 답지 않에도 손님들의 반응에 조금 움찔거렸지만 클라우드는 한조각 미동도 하지 않고 생각을 마쳤다. 신경쓸만한 일도 아니거니와 익숙한 일이다. 일상인 것이다.

숙고를 마친 클라우드가 사내에게 제안했다.

"손님께 내놓기에 부끄럽습니다만, 방금 구운 브라우니로 괜찮을까요? 다만 빈자리가 없으니 포장해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마스터는 언제나처럼 겸손했지만 부끄럽다니 당치도 않다. 먹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저 간단한 브라우니조차 사람을 승천시키기에 충분할 것이다. 저 일품을 마스터 오브 스위츠에서 온전히 시식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평생 후회로 남을 것이다.

마스터 오브 스위츠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모두 동료다.

그리고 동료는 언제나 환영받아야만 한다.

그러므로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손님들이 빈 접시를 들고 자발적으로 일어섰다. 곧 접시를 퇴식구에 반납한 그들은 출입구에 마련되어 있는 테이블로 이동. 준비되어 있는 모금함에 금액을 지불하고, 그 옆에 준비되어 있는 각종 지폐와 동전을 이용해 정산. 거스름을 챙겼다. 저마다 마스터에게 진심어린 인사를 잊지 않고, 새로운 손님에게 의미심장한 눈빛을 전한 뒤에 가게를 나섰다.

이제 가게에는 클라우드와 곰같은 사내 말고는 아무도 남지 않았다. 클라우드는 손님들의 배려에 감사하며 사내를 중앙의 테이블로 안내했다. 정리할 필요는 없었다. 테이블에는 빵 부스러기 하나 남아있지 않았다.

이 손님들의 예절. 새로운 손님에 대한 배려. 그야말로 무시무시할 정도였다. 이 상황 자체가 이 가게에 대한 손님들의 충성도를 나타내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터.

사내는 경탄의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소문은 들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상상하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클라우드는 어디까지나 평온한 얼굴로 새로운 손님을 테이블로 인도했다.

"앉으시지요. 곧 브라우니를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사내는 손님들이 빠져나간 출입문에서 아직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계산도 손님들이 스스로 하는 건가요?"

이 가게에 처음 오신 손님께는 익숙하지 않은 방식이리라. 클라우드는 친절히 대답했다.

"네. 드신 가격대로 저마다 계산하십니다. 제가 손이 바쁜 편이라, 이 방법이 저도 손님도 편하더군요."

클라우드가 잘라둔 브라우니 중 두 개를 접시에 올리며 답했다. 하지만 이곳은 엣지다. 눈을 잘못 감으면 바지를 입은 채로 속옷이 없어지는 곳이다. 미드갈 에리어에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는 사실이다.

"손님들을 믿으시는군요."

그 말에는 사람을 쉬이 믿어서는 안된다는 뜻이 담겨 있었다. 소중한 손님들을 폄훼하는 발언에 화가 날 법도 하건만 클라우드는 태연했다. 사정을 잘 모르는 사람의 발언에 흥분할 이유가 없다. 그저 담담하게 사내의 우려를 정정할 뿐이다.

"만족하지 못하셨다면 값을 적게 치르시더라도 괜찮다고 말씀드립니다. 하지만 감사하게도 매일 셈이 남습니다."

정말 친절하신 분들입니다, 라고 클라우드가 덧붙였다. 손님들에 대한 순수한 신뢰가 묻어나는 대답에 사내는 그대로 입을 다물 수 밖에 없었다. 그 사이에 클라우드는 묵묵히 우유잔을 채웠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쟁반을 들고 테이블 앞에 나타난 클라우드는 브라우니를 전달하기 앞서 조그마한 휴대용 단말기를 사내에게 건냈다. 간단한 메시지를 보낼 수 있는 터치 패드 뒷면에는 '마스터 오브 스위츠 전용'이라고 쓰여 있다.

"이건 뭐죠?"

"저희 가게 전용 주문 입력기입니다. 저희 가게는 손님이 원할 때 오실 수 있도록 완전 예약제로 운영됩니다. 드시고 싶으신 메뉴를 적어 보내시면 제가 손님께 예상 대기 시간을 전송해 드립니다. 마지막으로 손님께서 이를 승인하시면 예약이 종료됩니다."

"허어."

"첫 방문하시는 모든 손님께 무상으로 제공하고 있습니다. 더 이상 찾아올 예정이 없으실 때 반납해 주시면 됩니다."

"무상제공."

"손님께서 줄을 늘어 서시면 저도 마음이 불편하기에. 지인과 상담해 만든 시스템입니다."

이리저리 단말기를 감상한 사내는 그 완성도를 확인하고 괜히 뒷 목을 잡고 싶어졌다. 손님들에 대한 배려를 넘어 방만하기 짝이 없는 경영이다. 사내는 아무런 계획도 없이 제멋대로 살아가던 나르시스트 친구를 떠올렸다. 그런 사람이 또 있다니 착잡한 이야기다.

심지어 퇴식구가 자동 식기 세척기에 연결되어 있는 것을 확인한 사내는 차라리 포기하는 편이 낫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이 남자는 얼마나 아무렇게나 살아가고 있는 걸까.

사내의 생각을 알아챌 턱이 없는 클라우드가 사내에게 스위츠가 전달했다.

우유 한 컵과 브라우니 두조각이 전부인, 여느 가정집에서도 볼 수 있을 법한 평범하고 소박한 쟁반. 그랬다. 가장 중요한 작업이 남아있었다. 마음을 가라앉힌 사내는 조심스럽게 브라우니를 입으로 옮겼다.

그리고 그 순간 사내는 깨달았다.

예절바르고, 얼마든지 그럴 수 있음에도 계산을 속이지 않는 손님. 친구가 만들어 주었다던, 오직 주인이 스위츠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보조하는 자동화 시스템과 셀프 서비스. 손님들에 대한 지나칠 정도로 완벽한 선행 투자.이 모든 것에 대한 해답이 이 검고 소박한 브라우니에 담겨 있었다. 맛의 세계에 밝지 않은 사내조차 그 정도는 충분히 알 수 있다.

어떻게.

도대체 어떻게 이 흉악무도한 자가 이런 것을 만들 수 있다는 말인가.

사내는 겨우 입을 열었다.

"이... 브라우니는 얼마지요?"

클라우드가 살짝 웃으며 답했다.

"손님께 드릴 만큼 대단한 게 아니라 무료로 드리고 싶습니다만, 저에게도 입장이 있어서요. 299길 받겠습니다."

299길. 중학생의 점심식비도 안되는 가격이다. 무심코 웃음이 새어나올 것만 같다. 이 남자는 지금 자선사업이라도 할 셈인가.

그런 짓을 하고도.

어떻게 이리도 태연자약하게 살아갈 수 있다는 말인가.

사내의 얼굴이 고통스럽게 일그러졌다. 끝이다. 무리다. 더 이상 참고 있을 수가 없다.

본색을 드러낸 사내의 입이 무겁게 열렸다.

"믿을 수가 없군. 아발란치."

아발란치.

신라의 마황 정책에 반대하는 자들이 결성했던 과격파 무력 조직. 그 이름이 가지는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그리고 그 이름은 아직도 많은 사람들을 끔찍한 공포에 젖어들게 만든다.

그것이야말로 사내가 이곳에 온 이유였다.

클라우드의 표정이 굳어지는 것을 확인하면서, 사내는 건조하게 말했다.

"클라우드 스트라이프. 아발란치의 용병. 자칭 전 솔져. 주요 활동 내역은 1번 마황로 테러. 그외 극렬 무력 활동 다수. 틀림없나."

1번 마황로 테러.

클라우드의 심장이 요동쳤다.

누구에게도 알리고 싶지 않은 진실. 청산할 수 없는 아발란치의 어두운 과거. 가까스로 평정을 가장한 클라우드의 음성이 차갑게 내려 앉았다.

"당신은 누구지?"

"하지만 실제로 솔져가 된 일은 없었지. 마황 적성 F. 의지가 박약하고 육체도 미성숙한 신라병. 사기꾼에 불과하다."

클라우드는 자신조차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사실을 듣고 아연실색했다. 이 자는 대체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걸까.

"원하는 게 뭐야?"

그 순간, 가게 밖에서 굉음. 다섯 기의 거대한 인간형 병기가 하늘에서 떨어져 내려와 착지했다. 저마다 등에 지고 있는 백병전용 해머나 로켓 런쳐를 양손에 쥐고 마스터 오브 스위츠를 겨냥한다.

"밖으로 나와. 테러리스트."

틀림없다. 저것은 루퍼스 컴퍼니가 자랑하는 다목적 인형 전략 병기다. 패턴 C. 최악의 상황이 의심된다.

"무고한 시민들이 흘린 피. 그 죄 값을 치를 때다."

클라우드가 입술을 깨물었다.
posted by nameless7777 2016. 7. 30. 09:05
레니는 평범한 미드갈의 시민이었다.

그녀는 초자연 현상은 믿지 않는 상식인이지만, 너무도 뜻밖인, 그러나 바라마지 않는 것을 목격하고 자신이 환상을 보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즉시 휴대폰을 꺼내들고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바로 사진을 확인했다.

마스터 스위츠.

영업 중.

틀림없다. 분명히 개점했다. 기계는 결코 거짓을 고하지 않으니까. 아무런 예고도 없이 문을 닫은 지 꼭 한달 째 되는 날이었다.

안에 그 분이 계시다. 그녀는 두근거리는 심장을 가라앉히며, 이끌리는 것 처럼 가게 문을 열었다.

계셨다.

한 달 만에 배알한 그 분은, 전혀 변하지 않은 목소리로, 안타까움에서 증오로 바뀌려 하던 레니의 응어리진 감정을 전부 풀어주었다.

"어서 오십시오. 마스터 스위츠입니다."

불경하게도 그녀는 마스터가 거의 사랑의 밀어를 속삭이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레니의 뇌리에서 만감이 교차했다.

테이블을 안내받은 레니의 눈에 사명감이 불타 올랐다. 그녀는 즉각 스위츠를 주문했다. 종류 별로 무려 일곱 개. 이 정도면 충분히 테이블을 독차지한 값은 하리라. 그 심상치 않은 수량에 마스터의 눈에 이채가 떠올랐으나, 손님의 여유로운 표정에는 기품까지 느껴졌다. 마스터는 의구심을 지우지 못했지만, 그래도 프로답게 더 묻지 않았다.

곧 마스터 스위츠가 쟁반을 들고 돌아왔다.

"생크림 케익 외 6종, 나왔습니다."

하지만 다시금 마스터 스위츠의 눈에 떠오른 것은 숨길 수 없는 경외감. 저 작은 손님의 어디에 이것들이 다 들어간단 말인가. 그는 조심스럽게 가게의 정책을 설명했다.

"손님, 포장이 필요하시면 언제든 말씀해 주세요."

하지만 레니는 전혀 흔들림없는 눈동자로 마스터를 마주 봄으로써 그를 경탄케 했다. 진심이다. 손님께서는 혼자 전부 해치울 생각이다. 마스터는 깊이 고개를 숙이고 자리로 되돌아갔다.

그제야 레니는 마스터 스위츠의 재개장 사실을 지인들에게 전파했다. 반짝이는 스위츠의 사진들과 함께. 효과는 즉각 나타났다. 레니가 첫 번째 스위츠를 다 먹기도 전에, 테이블은 만석. 일곱 개를 완식할 무렵에는 가게 앞에도 긴 행렬이 생겨났다.

클라우드는 먼지가 뽀얗게 쌓여 있는 번호표 생성기를 서둘러 꺼냈다. 오늘도 만만치 않은 하루가 될 것 같았다.

.

틀렸다.

만만치 않은 정도가 아니었다.

폭풍 같은 하루였다.

한 달 동안이나 스위츠다운 스위츠를 입에 넣지 못한 손님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가게를 찾았다. 그들은 눈에는 핓 발을 세우고 거친 숨을 몰아쉬며 자그마한 마스터 스위츠를 다섯겹으로 포위했다. 클라우드는 그들 앞에 나서 연신 머리를 조아리며 다음 날 찾아오는 것을 종용했으나 손님들은 막무가내였다. 흥분을 이기지 못하고 카운터에 지갑을 투척하려 하는 과격파 테러리스트가 나타나고 나서야 클라우드는 현 상황이 중과부적임을 깨달았다.

결국 그는 티파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전부터 마스터 스위츠의 보조를 해보고 싶었던 티파가 기세 좋게 등장한 것 까지는 좋았지만, 그녀조차 이 정도의 인파는 상상하지 못했다. 그대로 뒷걸음치려는 티파를 그녀의 체향을 맡고 나타난 클라우드가 강제로 포획. "와줘서 고마워 티파. 사랑해." 그대로 마스터 스위츠에 질질 끌고 갔다. "엄마아아아아아아!" 클라우드는 화사하게 웃으며 제빵과 상관없는 모든 잡일을 티파에게 일임했다.

그리고 티파는 귀여운 엄살과는 달리 유능한 전사였다. 살갑고 능숙한 접객은 물론 테이블 메이킹이나 서빙하는 움직임에도 전혀 군더더기가 없었고, 클라우드가 스위츠 제작에 집중할 수 있도록 손쉽게 보조했다. 덕분에 클라우드는 여유를 되찾고 마지막 남은 단골 손님에게까지 스위츠를 대접할 수 있었다. 전부 티파의 덕분이었다.

폐점이 조금 늦긴 했지만 세븐스 헤븐의 영업 시작 시간까지는 아직 여유가 있었다. 클라우드는 가게를 정리하는 티파를 바라보며 소소한 행복감을 만끽했다.

그렇게 마스터 스위츠를 정리하고 집에 돌아갈 준비를 하는 무렵 그 날의 마지막 손님이 찾아왔다.

테이블을 닦던 티파가 고개를 돌렸다. 반가운 얼굴이었다.

"칸셀. 아니,"

티파가 정정했다.

"시즈네. 어서 와. 여기 앉아."

.

택틱컬 바이저와 솔져용 전투복 대신 딱 맞는 핏의 새까만 정장을 입고 고급스러운 넥타이를 멘 칸셀- 시즈네는 느낌이 완전히 달라 보았다. 붉은 빛을 띄고 있는 몽글몽글한 머리칼이 여성스러우면서도, 자세는 늠름하고 움직임에는 절도가 있었다. 이것이 시즈네의 원래 모습이겠지.

시즈네는 티파가 권한 테이블에 앉으며 말했다.

"영업 끝났는데 들어와서 미안해. 사실 오긴 꽤 오래 전에 왔는데, 엄두가 안나서 들어가질 못했어. 엄청난 인기네."

"시즈네라면 언제든 환영이야."

티파는 클라우드를 살짝 돌아봤다. 어느새 그는 정리해 뒀던 프라이팬을 꺼내 팬케익을 굽고 있었다. 티파는 클라우드에게 눈 웃음을 보내고 시즈네를 돌아봤다.

"그 복장은 혹시 턱스의?"

시즈네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복귀했어. 시즈네는 원래 턱스로써의 코드 네임이었거든."

라이프 스트림의 하얀 공간에서 되돌아 온 후 티파는 잭스의 마지막 인삿말을 기억해 냈다.

<시즈네에게도 안부 전해줘>

티파는 이것이 칸셀이라고 직감. 그녀에게 잭스의 말을 전달하고, 혹시 본명이 시즈네가 아니냐고 물었던 것이다. 칸셀은 조용히 이를 인정하고 대답했다.

"맞아. 내 본명은 시즈네야. ...그렇게 하기로 지금 정했어."

티파는 그녀의 말이 완전히 이해되지는 않았지만, 굳이 캐묻지는 않았다. 그럴 필요가 없었다. 그녀는 왠지 개운해진 얼굴을 하고 있었으니까.

그 때를 떠올리며, 시즈네가 늦은 설명을 해주었다.

"내 본명은 따로 있었어. 알고 있는 사람은 극소수야. 잭스도 몰라. 턱스로써의 코드 네임인 시즈네라고만 알고 있었지. 그를 보기 좋게 구해내고, 나는 그에게 내 진짜 이름을 알려주려고 했어. 하지만 실패했어."

그녀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그리고 나는 턱스를 그만 뒀어. 턱스로써의 나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으니까. 그대로 마황을 받고 솔져가 되었지. 칸셀은 내 솔져로써의 코드 네임. 잭스의 친구였던, 실존하는 솔져의 이름이야. 그 사람은 잭스가 죽고 나서 신라에 염증을 느끼고 은퇴하면서, 잭스가 예전에 사용하던 검과 함께 그의 이름을 넘겨 주었어."

클라우드가 팬케익 시럽을 졸이는 막간을 이용하여 티파는 간단한 조각빵과 포크, 나이프를 시즈네에게 건냈다.

시즈네는 조각빵을 만지작거리면서 이야기를 계속했다. 아직 약간 불안해 보였지만, 이전처럼 조마조마한 분위기는 아니었다. 이제 상당히 떨쳐낸 것이겠지.

"계속 그 사람의 이름을 쓰면서 살아갈 생각이었는데. 결국 잭스가 마지막까지 기억하고 있었던 내 이름이 시즈네였다는 걸 되새기게 됐으니까. 그렇다면 아예 이참에 이것저것 다 청산하고 가장 의미있는 이름 하나만 남겨도 괜찮겠다, 그렇게 생각했다는 말씀. 그리고 시즈네라면, 역시 턱스니까."

잭스에게 마지막으로 보인 자신의 모습도 턱스였으니까. 시즈네는 이제 그만 스스로를 용서하기로 한 것인지도 모른다.

시즈네의 이야기가 끝났다. 분위기가 조금 가라앉을 무렵, 클라우드가 팬케익을 준비해 왔다. 달큰한 냄새가 코끝을 자극했고, 시즈네에게 기분좋은 공복감을 느끼게 했다.

그 옆에 함께 내놓은 것은 마스터 스위츠 비장의 '굉장한 초코보의 허니밀크'. 엄선된 초코보에게서 짜낸 젖의 농밀한 단백질과 달콤한 지방이 어우러진 세계 최고의 유제품이다. 한 모금 마신 시즈네의 얼굴이 만족감에 활짝 펴졌다.

그리고 클라우드가 조금 과장스럽게 마스터 스위츠의 어조로 팬케익을 권했다.

"식기 전에 드십시오, 손님."

시즈네가 마스터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고 팬케익을 한 조각 조심스럽게 잘라 입으로 옮겼다. 평범한 팬케익처럼 보였지만 그 맛은 전혀 평범하지 않았다. 따끈따끈하고 폭신폭신한 식감. 그 위에 뿌려진 시나몬 슈가 시럽의 단맛이 혀끝을 간지럽힌다 싶을 때 맛이 변화. 깊이 있는 풍미가 입 안 전체로 퍼지며, 식도를 온통 장악했다. 기분이 붕 들뜨고, 한 순간 성층권에 앉아 있는 것 같은 착각까지 불러왔다. 그야말로 절품. 이 간단한 팬케익이, 방금 마셨던 초 고급 허니밀크에 앞서지도 뒤지지도 않고 절묘런 조화를 이루고 있다. 시즈네는 순수하게 감탄했다. 내가 지금까지 먹어왔던 팬케익은 대체 무엇이었단 말인가.

"아, 이거, 이리나에게 미안해지네."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시즈네의 손은 이미 휴대폰을 꺼내 들고 있었다. 한 입 먹은 팬케익을 촬영. 간단한 문자와 함께 사진을 동봉. '이게 뭔지 알아?' 이내 진동하기 시작하는 휴대폰을 내팽겨쳐 놓고, 팬케익을 흡입. 멀뚱한 눈으로 쳐다보는 클라우드와 티파에게 감상을 말하는 시간도 아깝다는 듯이, 시즈네는 팬케익을 황급하게 살해했다. 접시에는 무참한 혈흔. 그러나 시즈네는 턱스의 긍지 만큼은 잃지 않았다. 남아있는 시럽을 핥지 않고 놔둔 것이다. 실로 턱스. 초인적인 자제력.

시즈네가 넵킨으로 입을 우아하게 닦으며 아직 떨림을 멈추지 않는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발신인의 이름은 굳이 확인할 필요도 없었다.

"미안해, 이리나. 식기 전에 먹어야 한다더라고."

수화기에서는 원통한 목소리.

<선배님!>

이리나는 거의 고함을 지르는 것 같았다. 클라우드도 티파도 그녀의 목소리를 여과없이 들을 수 있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외근나가신다면서요!>

"외근 맞는데? 행선지가 여기였을 뿐이지."

<마스터 스위츠에 간다고는 말씀 안하셨잖아요?!>

"안 물어 봤잖아."

<내가 마스터 스위츠 사랑하는 거 뻔히 알면서!>

시즈네가 말을 끊고 살짝 티파의 눈치를 살피고는 비장하게 대답했다.

"이리나. 어떡하냐. 티파가 너 묻어버리겠대."

<큿...>

티파가 난처하게 웃었다. "들켰네." 그리고 클라우드의 등에 약간의 식은땀. 극히 가끔이지만 티파의 농담과 진담은 구분되지 않을 때가 있다. 아무튼 서둘러 전화를 끊게 만들어야 한다. 클라우드가 평온한 어조로 다급하게 말했다. 묘기였다.

"시즈네. 돌아갈 때 생크림 케익 한 박스 들고 간다고 전해."

대답은 시즈네에게서 나오지 않았다.

<우와! 진짜죠! 마스터 스위츠, 진짜죠! 선배님, 들었죠! 꼭 갖고 오세요!>

"귀청 떨어지겠네. 너 죽을지도 모른다는 말 못들었어?"

<까짓거 죽겠습니다! 그걸 먹고!>

"난 사실 내가 케익 한 상자를 전부 먹을 수 있을지 없을지 늘 궁금하다고 생각했어."

<선배님!!!!!!!>

시즈네가 전화를 일방적으로 끊고 배터리를 분리했다. 자신을 뚫어지게 바라보는 부부를 응시하며 시즈네가 약간 멋적게 말했다.

"놀리는 재미가 있는 아이라서."

티파가 미소를 지우지 않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동요했을 때에는 참 읽기 쉬운데, 이럴 땐 표정이 미묘하다. 시즈네가 티파의 눈치를 살피며 조금 진지하게 말했다.

"제발 죽이지 말아줘?"

티파가 난처하게 웃으며 답했다.

"아하하. 내가 그렇게 무서워?"

아무렇지도 않게 답하는 티파를 보며 시즈네는 약간 억울함을 느꼈다. 클라우드는 너무 속을 졸였던 것 같았다. 그는 나머지 빈 접시를 챙기고 자리를 황급히 피했다. 목소리가 살짝 뒤집혔지만 "처, 천천히들 이야기 나누라고." 시즈네는 모르는 척 넘어가주기로 했다. 대신 그녀는 티파에게 살짝 항의했다.

"나 그 날 엄청 무서웠거든. 잭스의 마지막 유품도 부러지는 줄 알았거든."

티파의 얼굴에 조금 미안한 감정이 스쳤다.

"그야... 그 땐 어쩔 수 없었다구. 게다가 이리나는 쳉씨에게 일편단심이잖아? 얼마 전까지 우린 동지였으니까 잘 알아. 이리나가 다른 사람에게 마음을 품을 여유가 없다는 것쯤은."

시즈네는 한 때 대립각을 세웠던 티파와 이리나를 서로 살갑게 대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동병상련이라는 거겠지. 그리고 '동지였다'고 굳이 과거형으로 표현한 것은 지금은 티파가 클라우드와 결혼해서, 이젠 격이 달라졌다는 뜻이겠지. 티파도 은근히 심한 소리를 한다. 이 대화를 전해주면, 틀림없이 이리나는 울겠지. 쳉을 원망하면서.

"흥. 행복에 절어서는."

시즈네가 샐쭉한 표정을 짓자 티파의 얼굴이 약간 어두워졌다. 시즈네는 티파의 표정이 언제 읽기 쉬워지는지 알 것 같았다. 주로 다른 사람의 감정을 생각해 침울해질 때. 아마 틀림 없겠지.

시즈네가 티파를 안심시키려는 듯 웃으며 말했다. 그 미소에 더이상 그늘은 없었다.

"티파. 설마 날 이리나 같은 초짜랑 같은 취급을 하는 건 아니겠지. 물론 나는 잭스를 좋아했어. 하지만 그렇게까지 외골수는 아니야. 그 때는 왠지 감정이 흔들려서 꼴 사나운 모습을 보여 버렸지만. 일단."

티파의 표정이 어두움을 거두고 호기심을 나타냈다.

"응? 일단?"

"만나는 사람도 있고."

티파가 홍조를 띄우며 입을 가렸다. 사실 시즈네는 거기까지 말할 생각은 없었지만, 어쩐지 티파 앞에서는 뭐든 술술 불어버리게 된다. 그 때 공포에 질려 티파에게 취조 당했을 때가 생각났다. 아마 그 탓이겠지. 그나마 트라우마가 되지 않아 다행이다.

티파는 시즈네를 재촉하지는 않았으나, 시즈네는 기대에 찬 티파의 눈 빛을 배신할 수 없었다.

"솔직히 말하면 내 취향은 아니지만 노력이 가상해서 만나고는 있어. 그게 전부 헛돌고 있다는 게 문제지만."

"헛돌아?"

"응. 사람이 약간 사차원이야. 사는 세계가 좀 다르거든. 늘 이해할 수 없는 이벤트 같은 걸 준비해."

티파의 눈에 흥미가 깊어졌다. 이래서는 안된다고 생각하면서도 눈을 반짝이며 시즈네 쪽으로 몸을 기울인다.

"그래서 그래서? 누구야? 혹시 내가 아는 사람이야?"

그 말에 시즈네가 조금 주저했다.

"그게... 그러네. 아는 사람이긴 한데..."

시원시원한 시즈네 답지 않았다. 그 순간 마스터 스위츠의 문이 벌컥 열렸다. 티파가 영업 끝났다고 말하기도 전에, 붉은 머리의 사내가 마스터 스위츠에 뛰어 들어왔다.

"찾았다! 시즈네! 너 대체 뭘 하고 있는 거냐고!"

레노였다. 그 옆을 지키고 있는 것은 당연하게도 루드. 둘 다 표정을 험상궂게 일그러뜨리고 있었다.

"사장님이 언제 찾으실지 모른다고! 전화 잘 받으라고! 내가 그랬어 안 그랬어?"

그러나 시즈네는 태연했다. 그녀가 어깨를 으쓱거리며 짧게 물었다.

"도련님이 왜?"

"10분 단위로 찾으신다고! 얼른 못 가?"

"내가 왜? 업무 시간도 끝났는데."

"왜냐니... 으하..."

레노가 이마를 짚었다. 잠깐 굳어있다가, 폭발.

"다 알면서 그래! 네가 없으면 사장님 기분이 안좋다고! 만만한 게 나랑 루드라고! 우리만 깨진다고!"

"그러게 도련님 성대 모사는 그만 좀 하지 그래? 결국 본전도 못 찾잖아?"

"안그래도 오늘 감봉 당했다고! 감, 봉! 됐고! 얼른 가자!"

어쩔 수 없다는 듯 시즈네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상황이 이래서 말야. 이젠 가봐야 겠어."

티파의 눈이 커졌다. 설마? 그 상대라는 것은?

"루퍼스였어?"

시즈네가 피식 웃었다.

티파는 지금 상황을 믿을 수가 없었다. 그 루퍼스를, 이렇게까지 안달나게 만드는 사람이 있다고? 그녀는 유피의 표현을 빌릴 수 밖에 없었다.

"헐. 대박."

옆에서는 레노와 루드가 발정난 강아지 마냥 눈을 까뒤집고 안절부절하지 못하고 있었다.

"갑자기 시끄럽다 했더니. 뭘 하는 건지."

클라우드는 늦춰졌던 가게 정리를 마치고, 시즈네에게 줄 생크림 케익을 손에 든 채 먼 발치에서 레노와 루드의 촌극을 지켜보고 있었다. 아마도 사장 명령으로 행방이 묘연해진 시즈네를 찾아다니고 있던 것이겠지. 아무리 그래도 저 녀석들, 솜씨 좋은 일급 정보원일 텐데, 이런 막일에 동원되다니. 클라우드는 그만 레노와 루드를 동정하고 말았다.

클라우드가 레노와 루드에게 다가와 말했다.

"레노, 루드. 그 뭐냐, 힘내라."

그러자 입을 꾹 다물고 있던 루드가 당치도 않다는 듯 말했다.

"이런저런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

마지막 말은 레노가 받았다.

"턱스, 라고."

왜 잘난 척하는 거야. 하나도 폼나지 않는구만. 그러나 클라우드는 굳이 그런 말을 입 밖에 내지 않았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 아무래도 마스터 스위츠의 복장을 하고 있을 때에는 성격이 조금 좋아지는 것 같았다.

"그래 그래."

클라우드가 케익 상자를 레노에게 내밀었다.

"뭐냐, 고? 이게."

"생크림 케익이다. 이리나와 먹어. 쳉도 부르고."

레노가 눈을 부릅 떴고, 루드는 코를 한 차례 벌름거렸다.

"자신작이다."

"~~~~~~~"

레노의 얼굴에 형용할 수 없는 환희, 분노, 격정이 내달렸다.

"그래! 우리 넷이서 먹는 거야! 시즈네와 사장은 둘이서 어디론가 사라지라고! 나누는 것도 넷인 편이 쉽다고!"

루드도 지당하다는 듯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턱스의 긍지 같은 것은 사실 상 없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시즈네는 다음번에는 접시를 핥아도 큰 무리는 없을 것 같다고 생각하며, 작별인사를 건냈다.

"그럼 티파, 마스터. 또 봐."

티파가 아직 충격이 가시지 않은 채로 시즈네를 붙잡았다.

"시즈네."

"응?"

"다음 번에는 루퍼스와 함께 와."

그러자 시즈네가 산들바람처럼 은은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티파는 루퍼스가 그녀에게 반한 것도 무리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마음이 내키면. 나중에 연락할게."

시원하게 답한 시즈네는 레노와 루드에게  이끌려 가게 밖으로 퇴장했다. 마스터 스위츠는 겨우 조용한 공간으로 돌아왔다. 그제야 클라우드가 조금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티파에게 물었다.

"루퍼스라니. 그 녀석을 굳이 왜 마스터 스위츠에 초대하는 거야?"

"응, 그런 게 있어."

클라우드의 목소리가 내키지 않는 음색을 자아냈다.

"루퍼스는 껄끄럽단 말이야. 남 약점이나 잡고."

"괜찮아 괜찮아. 게다가 우리도 어쩌면 잡을 수 있을 것 같거든."

티파의 그 말에는 클라우드도 크게 놀랐다.

"그 녀석에게 약점 같은 게 있어?"

"곧 알게 될거야."

클라우드는 아직도 반신반의 하는 얼굴이었다. 티파는 굳이 그런 그의 궁금증을 풀어주지 않았다. 그 대신 티파는 세븐스 헤븐으로의 출발을 재촉했다. 이번에는 클라우드가 티파를 도울 차례였다. 클라우드도 루퍼스에 대한 의문은 마음 한켠에 접어둘 수 밖에 없었다. 아마도 바쁜 밤이 될 것 같으니까.

.

클라우드의 궁금증이 해소된 것은 그로부터 한달 뒤의 일이었다. 믿을 수 없게도 루퍼스 신라가 시즈네를 수행하는 형태로 마스터 스위츠를 찾아온 것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클라우드는 이 때 처음으로 온 몸이 굳어 마네킹처럼 행동하는 루퍼스를 목도하게 되었다. 얼이 빠진 클라우드 대신 티파가 완벽한 영업 미소로 그들을 맞이했고, 그들을 위해 갓 만들어진 영롱한 스위츠가 테이블에 장식되었다. 그리고 이후 이루어진 사건들을 통해, 루퍼스 신라는 절대로 인정하지 않겠지만- 클라우드는 그의 약점을 잡았다고 확신했다.

물론 클라우드가 이 약점을 이용해 루퍼스에게 한 방 먹이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루퍼스는 티파를 교묘히 선동하여 폭소를 유도함으로써 클라우드의 등짝을 후려치게 만들었다. 설마 티파의 버릇조차 이용할 줄이야. 엄청난 놈이다. 클라우드는 루퍼스의 힘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클라우드가 루퍼스와 턱스에게 사용할 수 있었던 유일한 무기는, 이후로도 독설이나 전투력이 아니라 마스터 스위츠로써 제공하는 공전절후의 스위츠 뿐이었다고 한다. 클라우드는 이 사실을 지극히 유감스럽다고 생각했으나, 티파는 오히려 이 상황을 내심 환영했다. 주변 사람들의 신뢰할 수 있는 증언에 따르자면, 검을 쥐고 무시무시한 투기를 뿜어내는 클라우드보다, 진지하게 스위츠를 만드는 클라우드가 그녀를 더 두근거리게 했다는 것 같다.

그렇게 클라우드는 쉬지 않고 매일 산더미같은 스위츠를 만들게 되었다. 그리고 마스터 스위츠는 손님이라면 그 누구도 차별하지 않고 절정의 스위츠를 대접했으므로, 그 앞에서는 누구나 평등했고 또 행복했다.

여담이지만, 놀랍게도, 마스터 스위츠는 자신이 만든 스위츠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던 것 같다. 일설에 따르면 그는 평생 아내가 만들어 주는 스위츠 만을 기꺼워하며 즐겼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티파가 직접 스위츠를 만드는 모습은 그 누구도 본 일이 없었다고 한다.

진실은 아마도 그들 부부만이 알고 있으리라.

posted by nameless7777 2016. 7. 20. 10:57
티파는 클라우드의 모든 것을 보고 듣고 있었다.

저 강대한 웨폰을 상대로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는 용맹함도, 기어이 승리를 쟁취해 내는 의지도.

그리고 전신에서 새어나가는 생명도, 마지막 순간 숨이 끊어질 듯 뱉어낸 자신의 이름도.

곧 무너져 내리는 그를 중심으로 마황이 흔들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희미한 빛이 새어나오는 것도 같았다. 웨폰이 쓰러진 후 굳어 움직이지 않던 몬스터들도 슬금슬금 클라우드를 향해 접근하기 시작했다.

너무 늦었나.

아니, 늦지 않았어.

늦지 않게 하겠어!

티파가 도약했다. 클라우드의 수직 위, 하늘 높이 날아오른 티파가 허공을 박차고 지면에 떨어져 내린다.

그리고 클라우드가 무너져 있는 바로 옆 땅에 맨틀을 뚫고 들어갈 것 같은 강렬한 스탬프. 내려 꽂힌 티파의 발을 중심으로 지맥이 뒤틀리고, 균열이 파도처럼 지면을 타고 격렬한 기세로 내달렸다.

.

새하얀 공간.

넓고, 무한하고, 아무 것도 없는 그 공간에 클라우드가 있었다. 꿈이라도 꾸고 있는 걸까. 하지만 이상한 느낌이 든다. 이 데자뷰. 아무래도 이곳에 몇 번 왔던 일이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들려오는 친숙한 목소리.

"클라우드. 내 목소리 들려?"

클라우드는 정신이 몽롱한 상태에서 그 목소리를 들었다. 뇌리에, 존재에 각인되어 있을 목소리. 잊을 수 있을 리가 없다.

<...잭스?>

나는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걸까. 클라우드는 반사적으로 가장 궁금한 것을 물었다. 꿈이라면 왠지 자신이 원하는 답을 내주지 않을까, 내심 그렇게 기대하면서.

<티파는?>

곧 잭스로부터 힘빠진 반응이 돌아왔다.

"이봐, 아무리 그래도 바로 티파를 찾냐? 날 알아보고서?"

알 바 아니었다. 클라우드가 질문을 반복했다.

<티파는 무사해?>

잭스가 미소를 짓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건강해. 그보다 네 몸을 걱정하지 그래? 이번에야말로 위험했다고."

<티파가 무사하면 나도 무사해>

"무슨 결론이 그래?"

<티파는 언제나 날 구해주니까>

이번엔 잭스가 쓴 웃음을 지은 것 같았다.

"어련하시겠습니까. 네 말대로야. 그 사람이 널 치료하고 있어. 목숨 건졌다고. 하지만 그걸론 부족해. 넌 이곳에 서둘러 와서 별의 축복을 받아야 해. 그렇지 않으면 너는 평생 그녀의 간호를 받으며 살아야 할거야."

<음... 그건 조금 곤란하군>

"그렇지? 그러면 얼른 그녀를 설득해봐."

<뭘?>

"잔뜩 경계하고 있거든. 널 여기로 보낼 생각이 없어. 차라리 네가 회복하는 동안 함께 여기에 와 있으면 어떨까 하는 거지. 어차피 그녀에게도 그럴 자격이 충분하니까."

클라우드는 지금 사고 능력이 완전하지 않았다. 그러나 티파와 함께라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무심결에 그런 결론에 도달했다.

<해보지>

"그래주라. 그냥 조금 빛날 때 잠깐 가만히 있어주기만 하면 돼. 부수지 말고. 아니 뭐, 아까는 덕분에 살았어. 그런데 이 번엔 좀 참아달라는 거야. 너 치료해야 하니까. 알았지? 이거 은근히 라이프 스트림이 많이 들어가거든."

말이 많아, 잭스. 클라우드가 짧게 대답했다.

<그래>

그렇게 대답하고 나서, 머리가 몽롱한 상태에서도 중요한 의문이 들었다.

<나갈 때. 나갈 때에도 문제는 없는 거겠지>

"응? 나갈 때? 아아. 그건 걱정마. 이 형님께서 다 알아서 해줄 테니까."

<왠지 못 미더운데>

"나만 믿으라니까. 아, 그렇지. 참고 삼아 말하자면, 바깥에 상황이 좀 이상하거든. 절대 놀라지 말고."

<?>

클라우드는 고개를 갸웃거리는 동작을 취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뭐, 아무렴 어때.

<알았다>

.

클라우드가 천천히 눈을 떴다. 잭스? 아까 그건 정말 잭스였나? 그는 약간 현기증을 느꼈지만, 입안을 맴도는 보드라운 느낌과 코로 전달되는 달착지근한 향기가 오히려 기분 좋을 정도였다. 의외로 몸 상태는 나쁘지 않은 것 같았다.

상처가 조금씩이지만 회복되고 있다. 몸이 받아들이고 있는 것은 내가 만든 유사 엑스 포션인가. 클라우드는 약간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이번에 티파가 잔뜩 챙겨온 포션은 빨간 녀석이다. 그건 이렇게 달콤하지 않을텐데.

게다가 이 보드라운 감촉. 이건 굉장히 익숙하다.

정신을 놓고 있던 클라우드는 스스로 액체를 삼킬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그래서 티파는 입으로 직접 클라우드에게 유사 엑스 포션을 전달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혀에 전달되는 약한 감각과 숨결을 느꼈다. 틀림없다. 클라우드가 깨어났다.

"클라우드?"

"...티파. 네가"

"클라우드!"

또 날 구해줬구나.

티파가 클라우드의 머리를 와락 껴안았다. 얼굴 가득히 전달되는 티파의 부드러운 감촉. 달콤한 향기. 클라우드는 자신이 살아났다는 것을 실감했다. 아, 그러고보면 예전에도 한 번 이랬던 일이 있었던 것 같은데.

티파의 감촉을 만끽하던 클라우드에게 곧 주위를 둘러볼 여유가 생겨났다. 그리고 클라우드는 헛숨을 들이켰다.

몬스터의 군집. 엄청난 숫자. 클라우드의 민감한 마황감지능력이 무의식 중에 이를 헤아려 보기 시작했다. 하나, 둘, 삼백, 오천 육백, 이만 사천 칠백 오십 육. 몬스터들이 마치 돌진 명령을 기다리는 병사들처럼, 클라우드와 티파를 포위하는 형태로 정갈한 원형 포메이션을 짜고 잔뜩 긴장한 채 이곳을 노려보고 있었다.

"뭐야, 저건?"

클라우드의 뺨에서 식은 땀이 흘러내렸다. 그러나 티파는 완전히 태연했다.

"아, 신경쓰지마. 방금 이 자세로 몇 마리 죽여놨더니 더는 안오더라고."

"뭐?"

상황을 잘 이해하지 못 하는 클라우드에게 마치 증거를 보여주겠다는 듯, 티파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몬스터들이 움찔 거리더니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대단히 희극적인 장면이었다. 방금 웨폰과 벌인 사투가 거짓말 같을 정도로.

그렇군. 저것은 원형 포메이션 따위가 아니다. 티파를 중심으로 반경 100 미터. 놈들이 감히 다가오지 못하고 있는 것 뿐이다.

그 반경 안에 있는 지면에는 온통 거미줄 같은 균열. 그리고 클라우드는 겨우 모든 상황을 이해했다. 잭스의 기억은 꿈이 아니었다. 여기에서 티파가 국소 지진을 일으킨 것이다. 단 일격으로 클라우드가 라이프 스트림으로 떨어지는 것을 막아내고, 덤으로 몬스터들에게 넘어오면 죽는 경계를 설정했다. 그리고 아마도 몇몇 발이 미끄러져 경계를 넘어서버린 몬스터들을 권풍으로 뭉게버렸겠지. 클라우드의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 소름의 원천이 살아남았다는 기쁨인지 심연을 목도한 공포인지 선뜻 판별하기 어려웠다.

잠시 후 그렇게 완전히 굳어버린 몬스터들의 머리 위로 익숙한 얼굴들이 튀어 나오기 시작했다. 일부는 몬스터들을 밟고 도약해서, 일부는 놈들의 머리 위를 저공 비행해서. 빈센트와 유피를 앞세운, 클라우드와 티파의 동료들이었다.

"우와, 빌어처먹을. 살아 있는 느낌이 안드는데."

시드가 거친 숨을 내쉬었다. 아무리 몬스터들이 저항하고 있지 않다고는 하지만, 그 두터운 포위망을 일직선으로 뚫고 지나온 것이다. 오금이 저리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그 옆에 기계 인형 2기가 차례로 굉음을 내며 착지했다.

"하지만 그 덕분에 최단거리로 합류할 수 있었습니다만."

기계음. 저건 리브의 새로운 전투 기체인 것 같았다. 그 옆의 기계 인형에게서는 바렛트의 기운이 느껴졌다. 이어서 칸셀이 그녀의 기계 인형과 함께, 그리고 마지막에는 나나키가 합류했다. 말 그대로 동물적인 감각을 가진 그가 몬스터 횡단이라는 초 고난이도 미션 중 파티의 후미를 지켰던 것이겠지.

빈센트가 클라우드의 신체를 죽 훑어봤다. 몸이 많이 상했지만, 생명에는 이상 없음. 그가 보일 듯 말듯 하게 미소지었다.

"살아있어서 다행이다, 클라우드. 혼자서 웨폰 융합체를 제압하다니. 이제는 정말로 세피로스의 경지에 이르렀는지도 모르겠군."

"아직 멀었어. 녀석이라면 좀 더 스마트하게 정리했겠지."

"이긴 것도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것도 너다. 좀 더 자랑스럽게 여겨도 좋아."

빈센트는 몬스터들을 돌아보지도 않았다. 이미 녀석들이 섯불리 접근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아챘으리라.

"그 무섭게 달려들던 놈들이 마치 겁먹은 강아지같네. 어떻게 된거야?"

이건 칸셀이다. 아마도 다치지는 않은 것 같다. 티파가 다시 포션을 입으로 흘려 넣어주기 시작한 참이라, 클라우드는 칸셀을 돌아볼 수도 없었다.

빈센트가 조용히 상황을 분석했다.

"지령을 내리던 웨폰이 사라져서 본능만이 남은 거다. 티파의 기백을 느끼고 가까이 다가가면 죽는다는 걸 알게 된거지."

"숫자가 이렇게 많은데도?"

"이성이 없으니까. 선발대가 죽는 걸 보고 느꼈겠지. 저기 그렇게 죽은 녀석들이 몇 있군."

척추가 비틀려 있는 키마이라, 등껍질이 산산히 부서져 있는 아다만타이마이, 그 외 다수.

빈센트가 주변의 상흔을 보고 그 자리에 있었던 것 처럼 설명한다.

"타격점을 보니 몇 놈들은 앉아있는 상태에서 그대로 공격해 죽인 것 같군. 본능밖에 없는 놈들이 굳어서 움직이지 못하는 것도 당연하다."

유피는 몸서리 치며 티파를 바라봤다. 그리고 그녀가 아직도 클라우드에게 입으로 포션을 옮겨주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아연실색했다.

"우와, 이젠 대놓고, 끝도 없이! 그만 좀 하지 그래? 사람들 앞에서 부끄럽지도 않아?"

티파가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계속 작업을 계속했다.

"유피, 이건 의료 행위야. 인공호흡 같은 거라고. 부끄러울 일이 뭐가 있어? 그렇지, 클라우드?"

지금껏 티파의 입술을 탐닉하는데 정신이 팔려 있던 클라우드는 이제와서 목으로 넘길 수 있으니 그냥 병을 기울여 포션을 흘려넣어도 괜찮다고 고백할 수는 없었다. 게다가 그는 충분히 합리적인 이유도 댈 수도 있었다.

"이 포션 그냥 마시면 써서 두 병 이상은 못 마셔."

그리고 티파가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게다가 오늘 클라우드는 출혈이 심했으니까, 포션을 많이 마셔서 혈액을 보충해야 돼."

결혼한지 얼마나 됐다고 죽이 아주 잘 맞는구만 그래! 유피는 바닥에 널부러진 빈 포션 병을 바라봤다. 벌써 열 개 이상은 되어 보였는데, 티파는 포션을 하나 더 열었다. 유피는 신경질 적으로 빈센트를 바라봤다. 저거, 보이냐고 저거. 뭔가 느껴지는 게 없어? 그러나 빈센트는 무표정하게 흐뭇한 얼굴로 티파와 클라우드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눈이 너무 환하고 기뻐 보여서, 유피는 그만 허탈하게 웃어버리고 말았다.

"허허허어. 내가 말을 말지."

유피가 모든 것을 내려놓고 소박한 질문을 입에 담았다.

"클라우드. 그렇게나 포션을 마셨는데 아직 일어나지 못하는 거야?"

티파의 입술이 떨어질 때까지 기다린 클라우드가 겨우 대답했다.

"그렇군. 힘이 잘 들어가지 않아."

그 어조가 너무나도 평온해서, 유피는 신경이 끊어지는 것 같았다. 착하게 살고 싶었지만, 이죽거리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냥 티파에게 안겨있고 싶은 건 아니고?"

클라우드는 의식하지도 않고 반격했다.

"그럴 바에야 빨리 집에 돌아가서 둘 만 남아있게 되는 편이 더 좋아."

또, 또 지뢰를 밟고 말았다. 유피는 눈물이 흐를 것만 같았다. 유피가 자폭하는 무렵 티파가 흘끔 클라우드의 사타구니를 흘겨봤다. 용솟음치는 마황, 확인 완료. 티파가 자신감 넘치는 미소를 보이며 선언했다.

"응. 괜찮네. 내가 잘 돌보면서 살면 돼."

잠깐, 그건, 그 시선은 대체 뭐야. 언니는 티파의 말이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어.

"음, 맞아. 분명히 내가 그것만큼은 확실히 보호해두긴 했지."

왠지 클라우드가 의기양양하게 응답했다. 그만둬. 더 이상 듣고 있을 수 없어. 난 꽃 같은 유피라고!

유피의 좌절을 심드렁하게 쳐다보던 바렛트는 그런 클라우드의 반응에 솔러스의 가슴팍을 열고 고개를 내밀며 물었다.

"그런데 정말 괜찮은거야 대주주님?"

클라우드가 바렛트를 비스듬하게 올려다 보려다 포기했다. 원래 커다란 친구가 더 커다란 물건에 올라타 있으니 바라보려 해도 고개가 아팠다.

"괜찮아 공장장님. 그리고 완전히 회복할 수단도 있는 모양이고."

그 말에 바렛트 대신 빈센트가 반응했다.

"설마... 라이프 스트림인가."

"그래. 잘 알고 있군."

"위험한 곳이다. 의식의 융합체에 휘말리면 되돌릴 수 없어."

"초대한 것은 잭스다. 믿을 만한 녀석이야."

그 말에 칸셀이 깜짝 놀라 클라우드를 바라봤지만 클라우드는 눈치 채지 못했다.

"게다가 티파도 같이 초대받았어. 티파가 함께라면 안심이다."

팔불출 같은 발언은 근엄한 얼굴로 재쳐두고, 빈센트가 잠시 생각했다. 객관적인 사유는 빈센트의 특기였다.

"괜찮겠지. 웨폰에 필적하는 두 사람이 함께. 게다가 서로의 인연도 강해. 흐름에 자신을 잊어버릴 가능성은 낮아."

빈센트의 판단이 떨어지자 마자 클라우드는 티파를 올려다 봤다.

"그래서 말인데, 같이 가주겠어? 티파."

티파의 얼굴이 활짝 피어났다.

"어디든지!"

티파는 클라우드의 얼굴을 볼을 맞대고 문질렀다. 라이프 스트림이라는 말에 가슴이 철렁했지만, 클라우드가 함께 가자고 말해주었다. 티파는 클라우드와 함께라면 어디든 갈 수 있다. 산이든 바다는 멘틀이든 핵이든, 심지어 라이프 스트림의 소용돌이까지도.

티파가 소박한 의문을 담았다.

"그런데, 어떻게 가면 되는 거야?"

클라우드가 조금 생각하는 얼굴이 되었다.

"그러니까, 잭스 말로는 빛이 날 때 잠깐 기다리면 된다고"

말을 마치기도 전에 맑은 녹색의 마황의 빛이 클라우드와 티파를 감쌌다. 클리우드는 곧바로 이해했다. 이것이야말로 두 사람이 라이프 스트림으로 이동하는 징조. 잭스의 인도였다.

"...했어. 시작했군. 이번에는 부수지 말아달라고 하더라."

곧 라이프 스트림으로 이동하기 시작하는 클라우드와 티파의 존재감이 조금씩 옅어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이변.

몬스터들이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동료들이 즉각 반응. 무기를 들고 몬스터들과 대치했다. 빈센트가 담담하게 클라우드와 티파를 안심시켰다.

"티파의 기세에 억눌려 있던 본능이 풀려났군. 걱정하지 마라. 놈들의 뒤를 받쳐주고 있던 웨폰도 없고. 시간을 들여 천천히 정리하면 된다."

빈센트가 탄환을 재장전했다. 시드가 혀를 내둘렀다.

"오늘 수천발은 쏜 것 같은데, 아직도 잔탄이 있는 거냐?"

솔러스의 자가 수복을 마친 리브가 잔간류의 자세를 잡으며 대신 답했다.

"예로부터 턱스 오브 턱스에게는 숨겨진 주머니가 있다고 하더군요."

바렛트는 비공정 시에라호로부터 미리 받아둔 예비 플라즈마 미니건에 매거진을 채워 넣으며 호기롭게 말했다.

"준비 완료. 3000필 정도는 나에게 맡겨."

나나키는 몬스터의 대군이 꿈틀거리고 있는데도 늘어지게 하품을 했다.

"후방에 루퍼스 일행도 도착했군. 협공해서 빨리 끝내자."

칸셀은 고개를 숙인 채 말이 없었다. 잭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 말하고 싶다. 부탁하고 싶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다. 그녀는 끝내 클라우드를 돌아보지 않았다. 그녀는 어느 새 전사의 얼굴을 한 채 몬스터의 대군을 쏘아 보고 있었다.

곧 클라우드와 티파는 빛에 휘말려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몬스터가 돌진하기 시작한 것은 그 직후였다.

.

클라우드와 티파가 라이프 스트림에 소환되었다. 소환되기 전과 동일한 상태였다. 클라우드는 아직 전신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 상태로, 티파의 무릎을 베고 누워 있다. 티파는 어디까지나 끝없이 펼쳐진 새하얀 방에 조금 놀란 눈치였으나, 특유의 대범함으로 평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어서와. 목이 빠질 뻔 했다고."

잭스가 클라우드와 티파를 맞이 했다. 클라우드는 아까와는 달리 잭스의 모습을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정신도 또렷했다. 그 탓일까. 클라우드는 더이상 그를 아까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대할 수 없었다.

"잭스."

클라우드의 목소리가 조금 떨렸다.

클라우드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 그에게 가까이 가고 싶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하나도 떠올릴 수 없었다.

그런 클라우드를 보며, 잭스가 웃는 얼굴로 성큼성큼 다가왔다.

"웨폰과 싸우는 모습, 전부 봤어."

잭스가 무릎을 꿇고 클라우드의 손을 굳게 잡았다.

"훌륭했다. 과연, 내가 살았던 증거다."

그리고 클라우드에게는 그 말로 충분했다.

"잭스. 고마웠다. 그리고 미안했어."

잭스는 고개를 숙였다. 그 표정에 드러난 것은, 고뇌. 그리고 자책.

"사과해야할 것은 내 쪽이야. 라이프 스트림의 폭주를 막지 못했어. 게다가, 클라우드. 너에게- 너희들에게 지금부터 괴로운 결단을 요구하지 않으면 안 돼."

티파가 잭스를 바라보며 말했다. 클라우드의 어깨를 감싸고 있는 손에, 조금 힘이 들어간다.

"자세한 설명이 필요할 것 같네."

잭스가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그가 무겁게 입을 열려고 할 때, 라이프 스트림이 준비한 새하얀 공간에 다른 존재가 방문했다.

"아, 정말. 왜 그렇게 겁을 주고 그래? 의외로 당사자들에게는 심각한 이야기가 아닐지도 모른다고."

청량감이 느껴지는 목소리였다. 그 목소리를 듣고 있자니 클라우드와 티파는 세상 모든 고민을 다 잊어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지금 하게 될 결단도 점심 메뉴 선택 정도로 가볍지 않을까.

그 존재의 등장에, 티파가 가장 먼저 반응했다.

"에어리스!"

에어리스가 화사하게 웃었다.

"티파. 오래간만이야."

그녀의 밝은 목소리를 듣고서, 티파는 고여 들어오는 눈물을 손가락으로 훔쳐 냈다.

같은 남자를 사랑했다. 하지만 분명히, 그것 뿐만이 아니었다. 신파극에서 자극적으로 다루는 감정 소모가 있을 법도 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티파는 에어리스를, 에어리스는 티파를, 서로 신뢰하고 의지했다. 죽음이 두 사람을 떨어뜨려 놓았을 때 티파는 눈이 눈물로 녹아내리는 것만 같았다. 부모님을 잃었던 때 이후로 처음으로 울었다. 그녀는 연적이었고, 언니였고, 친구였고, 존경할만한 여성이었고, 바꿀 수 없는 동료였으며, 별을 구하는 모험의 이정표였다.

티파의 감정이 얽혀 복받쳐 올랐다.

"에어리스. 그 때 우리가, 너무 늦어서..."

"괜찮아, 티파. 난 정말 괜찮아. 별을 지켜줘서 고마워."

"에어리스..."

"결혼 축하해 티파. 더 예뻐졌어. 진짜야."

"고마워. 고마워, 에어리스. 나 기뻐."

티파는 이제 눈물을 방울져 떨어뜨렸다. 너무도 행복했다. 그녀는, 에어리스는- 티파가 가장 축하받고 싶어했던 사람이었는지도 모른다.

클라우드는 약간 머쓱해졌다. 서투르게 그녀들 사이에 끼어들었다.

"역시 에어리스였구나. 날 치료해 주려는 거지? 그 때도 그렇고, 번번히 신세를 지게 되는군."

클라우드는 1년 반 전의 성흔증후군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 때 그녀의 치료가 아니었다면 이 별은 세피로스에게 넘어갔을 것이다.

클라우드는 에어리스에게 의연하고 어른스럽게 대응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에어리스는 그런 클라우드의 말을 장난스럽게 받았다.

"네, 그렇답니다. 어느샌가 오라버니가 되셨지요. 이제 홀몸도 아니실진데, 더이상 이런 곳에 실려 오시면 아니되지요."

클라우드는 뒷 머리가 간질간질한 느낌이 들었다.

"하하... 면목이 없어."

클라우드는 곧 자신이 마황을 순환시키는 것은 물론 스스로 머리를 긁적일 수 있게 되었음을 알았다. 치료는 시작되었다. 이게 저 환상의 절대 회복 주문, 그레이트 가스펠인가. 하지만 에어리스는 약간 심각한 얼굴이 되었다.

"생각보다 회복이 느려. 대체 얼마나 몸을 혹사시킨 거야? 순순히 티파를 기다릴 생각은 안 들었어?"

"할 말이 없네. 생각할 여유가 없긴 했지만, 설마 티파가 그 장벽을 날려버릴 줄은 상상도 못했어."

티파가 아직 눈물이 그렁그렁한 상태로 클라우드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내가 속으로 그렇게 서두르지 말라고, 기다리라고 신호를 보냈는데 말야. 앞으론 잘 알아 들으었으면 좋겠어."

클라우드가 손을 뻗어 티파의 얼굴을 쓰다듬고, 눈물을 닦아주었다.

"참회하겠습니다. 제가 아직 믿음이 부족하였나이다."

"그대의 죄를 사하노라."

티파가 장난스럽게 웃으며 받아주었다.

생각해보면 알아챌 계기는 늘 있었다. 티파에게 청혼한 그곳에서 다 꺼져가는 마황의 핵을 찾아낸 것도 그녀였다. 정말 둔하구나, 나는. 조금만 더 생각이 치밀했다면, 그녀가 가진 힘의 본질을 똑바로 인지했다면, 일이 이렇게까지 복잡해지지는 않았으리라.

하지만, 결국 티파는 스스로 자신의 힘을 깨닫고 마황의 장벽을 부쉈다. 그리고 숨이 끊어져 가는 클라우드에게 포션을 전달했다. 조금만 늦었더라면. 클라우드는 이제 평생을 사용하더라도 티파의 은혜를 보답할 수 없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래. 생각해보면 당연한 건지도 몰라. 카오스에게는 반려가, 오메가가 있는 법이니까. 그런 의미에서, 두 사람에게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 말이야."

에어리스가 목을 가다듬었다. 방금 잭스가 말하려던 것인가. 티파가 부지불식간에 허리를 꼿꼿하게 세웠다.

"클라우드, 티파. 두 사람은 카오스와 오메가의 인자를 이어받고, 그들을 대신하여 별의 전사가 되어주실 의사가 있으십니까."

.

"쳉. 그들은 정말 강하군."

"네, 사장님. 소름이 끼칠 정도입니다."

몬스터의 시체가 하나 둘 사라지기 시작했다. 고 위험군 몬스터, 웨폰 발생 시 함께 등장한 첫 개체부터 총 삼만 팔천 육백 십오 필, 전부 제거 완료. 그 중 절반을 저 여섯 명이 해치웠다. 공격력이 가장 강한 둘을 빼고서도 이 정도다. 게다가 그 둘 중 하나는 혼자서 지상 최강의 웨폰 융합체를 별로 돌려 보냈고, 다른 하나는 반경 1 킬로미터에 달하는 마황의 벽을 일격에 분쇄했다.

예전의 루퍼스였다면 세계 평화를 위해 그들을 격리시켜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리고 죽었을 테지. 힘으로 그들을 어떻게 할 수는 없다. 그걸 확인한 것만으로 수확이었다.

"피해 상황은?"

"프라우드 솔러스 28기 대파. 2기 개수 가능. 솔져 16병 부상. 사망자는 없습니다. 턱스 오브 턱스, 더 레드 서틴이 그들의 퇴로를 확보하며 몬스터를 섬멸해준 것이 주효했다고 판단됩니다."

"감사의 말을 전해주게. 아니, 내가 직접 가는 게 낫겠군."

루퍼스는 길고 아름다운 손가락으로 턱을 쓰다듬었다.

"그들은? 뭔가 알아낸 것이 있나?"

"턱스 오브 턱스에 따르면, 그들은 라이프 스트림에 있는 모양입니다."

"라이프 스트림."

"예. 다른 동료들에게는 이야기 해두지 않았지만, 뒷 처리를 하러 간 것으로 생각된다고."

"뒷 처리라."

루퍼스 신라가 조금 조용해지더니 이내 명령을 쏟아냈다. 좋겠지. 이 쪽의 뒷 처리는 내가 해주겠네.

"이곳에 루퍼스 컴퍼니의 캠프를 세운다. 최신예 마황 계측기와 프라우드 솔러스 100기, 솔져 50명을 배치. 기한은 클라우드와 티파가 발견될 때까지. 현장 책임자는 칸셀. 이상. 그들에게도 전해주도록."

"알겠습니다, 사장님."

쳉이 허리를 깊이 숙여 인사하고 자리를 떠났다.

.

"별의 전사?"

클라우드가 상반신을 일으키며 손가락을 움직여 본다. 조금만 더. 힘은 거의 돌아왔다.

"설명을 해주겠어?"

"말 그대로의 의미야. 별의 위기에 나타나 원흉을 제거하는 거지. 예전에 클라우드가 하던 일과 거의 같아. 이른바 해결사라는 거야."

"역시 웨폰은 날 시험하기 위해 보냈던 거였나?"

"맞아. 클라우드는 훌륭하게 통과했어. 티파는 사실 상정 외 였지만 강한 전사는 얼마나 있어도 부족해. 마침 웨폰의 인자도 둘이니까. 기쁜 오산이었지."

살갑던 그녀는 어디로 갔는지, 에어리스의 표정은 아다만타이트 처럼 단단히 굳어있었다. 그에 맞춰 티파의 표정이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클라우드는 현 상황이 여러가지 면에서 마음에 들지 않았다. 조금만 긴장을 풀면 표정이 무너질 것 같았다.

어려운 결정은 아니다. 답은 나와있다. 그러나 에어리스는- 별은 어떤 반응을 보여줄까.

이윽고 클라우드가 일어섰다. 몸은 무척 가벼웠다. 전능감. 힘이 돌아왔다. 대답할 준비는 끝났다.

클라우드는 티파와 눈을 맞추었다. 언제나와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은 마음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그러므로 이런 중요한 일은 말로 확인할 필요가 없다.

클라우드는 분명하게 대답했다.

"거절하겠어."

에어리스가 조용히 말했다.

"별을 지키는 명예로운 일이야."

"흥미 없어."

"카오스와 오메가의 인자를 이어받으면 너희들은 더 강해질 거야."

"필요 없어."

"티파와 함께 영원히 살 수도 있어."

"그런 것 없이도 티파와는 늘 함께야."

에어리스가 클라우드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내가, 잭스가 부탁하더라도?"

그 말에 클라우드는, 약간 슬픈 표정이 되었다.

"미안하다."

답은 그 한마디 뿐이었다. 클라우드가 입을 조개처럼 다물었다. 티파가 그의 말을 이었다.

"에어리스. 클라우드는 열심히 했어. 별을 두 번이나 지켰고, 오늘도 정체를 알 수 없는 적을 상대로 만신창이가 될 때까지 싸웠어. 아무런 보상도 바라지 않고."

티파가 계속 주장했다.

"나는 요구하겠어. 하늘과 땅과 바다에, 라이프 스트림에도. 우리는 우리의 삶을 살아갈 거야. 다른 어떤 존재의 영향도 받지 않겠어."

에어리스가 한 숨을 내쉬었다.

"별 그 자체가 위험하다 해도?"

클라우드가 결연한 표정으로 답했다.

"별은 지켜. 우리의 의지로. 여기는 나와 티파의 집이니까."

에어리스가 고개를 숙였다. 그녀의 어깨를 토닥이면서, 잭스가 앞으로 나섰다.

"마지막으로 확인하겠어. 별의 전사가 될 의사는 없는 거야? 번복의 여지 없이?"

클라우드는 티파와 맞잡은 손에 강하게 힘을 넣었다.

"몇 번 물어도 대답은 같아. 별의 전사는 되지 않아."

에어리스가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입가에는 언제나와 같은 상냥한 미소가 돌아와 있었다.

"에어리스."

"클라우드. 이제 정말 괜찮은 거지? "

"그래."

"앞으로는 티파를 울리지 않는 거지?"

"물론이야."

겨우 티파의 얼굴에도 미소가 되돌아왔다. 언제나의 에어리스였다.

"그럼 좋아. 별에게 반드시 그렇게 전하겠어."

"고마워, 에어리스. 알아줘서."

"티파. 너무 짓궂게 물어봐서 미안했어. 답은 이미 알고 있었는데도. 반드시 필요한 일이었거든. 별을 납득시키기 위해서."

잭스가 참았던 숨을 내쉬면서 고백했다.

"이제와서 이야기하는 거지만 사실 난 조금 걱정했어. 이 녀석 성실하니까. 책임감을 느껴버리면 어쩌나 하고 말이야."

티파와 결혼하지 못했더라면, 그랬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의 클라우드는 그 말을 장난스럽게 받아칠 수 있었다. 목소리에서 긴장은 완전히 풀려 있었다.

"음. 사실 난 알아채고 있었어. 잭스가 계속 오줌이 마려워 미칠 것 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으니까."

티파가 입을 가렸다. 그리곤 필사적으로 새어나오는 웃음을 참았다.

"그래서 나는 속으로 이미 결론을 내려놨지. '알았어 잭스. 그러니까 우리가 이거 받아 들이면 안된다는 것 맞지? 내 생각도 그래. 싫어. 안 할 거야. 딴 사람 찾아봐. 난 마스터 스위츠에 돌아가서 빵이나 굽고 살거야. 아 참, 우리 동료들은 안돼. 불쌍한 빈센트는 더 안 돼'. 이제 우리 의견은 확실히 알았지?"

클라우드가 아무런 표정 변화도 억양도 없이 속사포처럼 말을 쏟아냈다. 그 매끄러운 언변. 마치 한참 동안 준비해 놓은 것 같았다. 티파는 더는 참을 수 없었다.

"프아하하하하하하하!"

티파가 웃음보가 폭발했다. 결혼하고 나서 티파는 폭발하기 쉬워졌다. 클라우드가 실없는 소리라도 하면 여지없이 폭발했다. 이를 두고 클라우드가 굳이 폭발한다고 표현하는 이유는 그녀가 폭소하면서 옆에 있는 사람의 등을 후려치기 때문이다. 그냥도 아픈데 지금은 마황까지 실려 있었다. 수틀리면 이 공간 자체를 파괴할 심산으로 모아뒀겠지. 클라우드는 티파가 즐겁게 웃는 모습이 흐뭇해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티파의 공격을 묵묵히 받아냈다. 티파의 폭소는 클라우드가 거의 존재가 세상에서 지워질 것 같다고 느낄 때 쯤 겨우 잦아들었다.

잭스가 숙연해졌다.

"클라우드, 너, 맞고 사는구나..."

"이 정도는 혈액순환에 도움을 주는 잔간류 마사지 같은 거야."

강한 척. 허세. 덧 없는 이야기였다. 잭스가 혀를 찼다.

"두 번 도움 받았다가는 니가 라이프 스트림에 순환될 것 같은데."

"부정하진 못하겠군."

티파가 제 2차 폭소를 터뜨리려는 것 같았다. 농담이 아니다. 이대로 라이프 스트림에 파묻힐 수는 없었다.

"이제 티파의 힘을 알았겠지. 다들 조심해."

클라우드가 서둘러 말을 돌렸다. 게다가 슬슬 확인해야 할 일도 있었다.

"그럼 설명해 줘. 전부."

잭스가 표정에서 약간 웃음기를 지우며 고개를 끄덕였다.

"몇 년인가 전에, 라이프 스트림에 이물질이 섞여들어왔어."

"이물질이라고?"

"그래. 외계의 기억이야."

"점입가경이군."

"게다가 잘 인지하지 못한 사이에 완전히 융합해 버렸어. 성흔증후군과는 달리 이건 생명 그 자체를 직접 좀먹지는 않았으니까.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건지도 모르겠어."

잭스의 설명이 이어졌다.

"참고로 클라우드가 상대한 웨폰 융합체의 전투 패턴은 그 외계의 기억이 가지고 있던 전사의 기술을 가져온 거야."

클라우드가 전투 내용을 회상했다. 웨폰의 기량- 특히 창술은 의심할 바 없는 초일류 전사의 그것이었다. 그 기술을 닦은 당사자와 직접 겨뤄보고 싶을 정도로.

"그래. 그런 힘이 갑자기 섞여 들어온거야. 당장은 문제가 없을 지 모르겠지만, 불안의 씨앗이 된 것 만큼은 틀림없었지. 그러던 차에 문제가 생겼어."

"내가 반년 전에 제거했던 마황의 핵인가."

"맞아. 그게 마을 하나를 날려 버렸지. 그런데 우리는 그게 어떤 경위로 발생했는지도 파악하지 못했어."

"너희들조차 원인을 모른다고?"

"그래. 몰라.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나게 될지, 아니면 그저 그렇게 끝나버린 건지 전혀 예상이 안돼. 외계의 기억과 관련이 있는 건지 조차."

클라우드가 복잡한 얼굴을 했다. 잭스의 설명이 이어졌다.

"거기에 별의 라이프 스트림에 대한 마지막 안전 장치는 빈센트 발렌타인과 관련되어 있는 매드 사이언티스트에 의해 허점이 발견됐지. 그 결과 별은 단순한 병기가 아닌, 스스로 유연하게 판단하고 자율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전사가 필요하다고 느꼈던 거야. 그게 바로 너였던 셈이지."

이야기의 끝이 보였다. 클라우드가 예상가능한 최악의 결말을 이야기했다.

"티파가 없었다면, 웨폰을 상대하고 무력해진 나는 그대로 이곳에 불려와 웨폰의 인자를 받게 되었겠군. 승패와는 상관없이."

"그래. 티파가 널 지켜준 덕분에, 우리는 동요한 라이프 스트림의 틈을 찔러서 활동할 수 있게 됐어. 그리고 본인의 의사를 확인해야 한다는 절차를 밀어넣은 거지. 덤으로 그 사이에 널 치료할 수 있었고. 별이 무방비해진 너를 다시 건드릴 수 없도록 말이야."

잭스가 티파를 돌아봤다.

"고마워 티파. 최악의 결과를 막아낸 건 너야. 친구로써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어."

티파는 라이프 스트림의 일부에 불과한 에어리스나 잭스가 표면에 나오기 위해 어떤 희생을 치렀는지 상상도 가지 않았다. 만약 그들이 별의 편에 섰다면, 클라우드의 회복을 빌미로 선택을 강요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그러지 않았다. 그들이 클라우드와 티파를 생각하는 마음에는 아무런 거짓도 없는 것이다. 감사라니, 당치도 않았다. 티파는 오히려 잭스에게 고개를 숙일 수 밖에 없었다.

"나야말로 감사해. 어떻게 보답해야 할 지 모르겠어."

클라우드는 그런 티파의 머리칼에 가볍게 입을 맞추고, 남아 있는 문제를 지적했다.

"하지만 라이프 스트림의 입장에서는 계획이 파탄난 것과 마찬가지야. 앞으로 정말 괜찮은 거야?"

"이제와서 라이프 스트림이 너희들의 결정을 반대할 수는 없지. 우리들은 이미 너희들에게는 최강의 웨폰조차 통하지 않는다는 걸 알았어. 이제는 순수하게 너희들의 도움을 구할 수 밖에 없는 거야. 약속한다. 오늘 같은 일은 앞으로는 일어나지 않을 거다. 라이프 스트림이 몬스터들을 선동해 방해하는 사람까지 해치려 하다니, 있어서는 안될 일이었어."

클라우드가 굳게 고개를 끄덕였다.

"다름아닌 네가 한 말이야. 믿겠다."

그러나 어차피 걱정할 일은 없다. 티파가 곁에 있으니까. 언제고, 몇 번이고 그녀가 날 구해줄 것이다. 클라우드가 무심코 그녀를 바라보자 티파가 마주 보고 활짝 웃어주었다. 클라우드는 마음에 남은 앙금이 전부 씻겨 내려가는 것 같았다.

그러자 초조하게 지루한 표정으로 잭스의 설명이 끝나기만을 기다리던 에어리스가 손뼉을 쳤다.

"자, 그런 사소한 일은 됐고."

"사소한 일이라니. 나 거의 죽을 뻔 했는데."

클라우드가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굳이 반론했다. 그리고 에어리스는 클라우드를 완전히 무시했다.

"그럼 식을 진행하겠습니다."

"식? 무슨 식?"

"별의 축복."

"별의 축복?"

"결혼식. 클라우드가 새까맣게 까먹고 넘어간 그 결혼식 말이야."

클라우드와 에어리스가 매우 동어반복적으로 문답했다. 그리고 에어리스가 보내는 비난의 눈초리에 클라우드가 당당하게 선언했다.

"후. 우리는 사랑으로 연결되어 있어. 인간의 허례허식이 닿지 못할 정도로."

"이래서 클라우드는 안된다니까. 티파, 고생 많았어."

티파는 그저 난처하게 웃을 수 밖에 없었다. 그런 티파를 바라보며 에어리스는 장난스러운 분위기를 감추고 따뜻한 미소를 돌려 보냈다.

"우리가, 별의 대표로써 축복해주겠다는 거야. 그래주고 싶어. 괜찮을까?"

티파가 에어리스에게 답했다.

"고마워, 에어리스. 나 정말 상상도 못했어."

허락이 떨어졌다. 엣헴. 에어리스가 목을 가다듬고 낭랑하게 말했다.

"클라우드. 앞으로 티파를 아내로 맞아 행복한 삶을 살아갈 것을 맹세합니까?"

"맹세합니다."

"항상 티파의 의견을 구하며, 그녀의 음성을 듣고, 사랑으로 답할 것을 맹새합니까?"

"맹세합니다."

"항상 그녀의 눈 안에 머물고, 마지막 한 순간까지 그녀의 곁을 지킬 것을 맹세합니까?"

"맹세합니다."

"티파. 클라우드가 속썩이거나 잠적하면 마음속으로 날 불러. 바로 티파 전용 맞춤형 계시를 내려줄게."

"응. 알았어."

뭐야 이 편애는. 이 온도차는. 맹세는 왜 나만 하는 거야? 그리고 계시라고? 라이프 스트림을 그런 곳에 낭비하지 말라고.

게다가, 나는 말이지.

"나는 티파의 단 맛에 중독 됐거든."

클라우드가 티파를 돌아 봤다. 그녀가 입으로 넘겨준 달콤한 포션을 삼키며 새삼스럽게 생각했던 것이다.

"나는 이미 티파를 떠나서는 조금도 살 수 없게 됐어."

클라우드의 낯간지러운 고백에 티파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이제와서 부끄러워할 일도 없을 텐데. 티파는 되새겨 확인했다. 그 사이 티파는 클라우드와 또 한 번 사랑에 빠졌던 것이다. 그야말로 아무런 의심도 저항도 없이, 별조차 적대할 수 있을 정도로.

에어리스의 미소가 거룩함으로 가득찼다.

"두 사람이 별의 축복 속에서 온전히 맺어졌음을, 엄숙히 선언합니다."

그리고 다음 순간 그것은 장난기로 돌변했다.

"그럼 두 사람, 맹세의 키스를."

"뭐-"

"왜 그래 티파? 맹세하지 못하겠다는 거야?"

"아니"

"아니면 증인이 둘 뿐인게 불만이야?"

"그게 아니라"

"클라우드는 욕정, 아니 맹세할 마음으로 가득차 있는데?"

"으..."

욕정이라니. 아니거든. 클라우드는 쓴 웃음을 흘렸다. 하지만 구미가 당기는 이야기인 것은 확실하다. 별의 축복 속에서 이루어지는 맹세의 키스라니. 절대로 놓칠 수 없는 이야기다.

하지만 이럴 때 티파는 묘하단 말이지. 그럴 마음이 들 땐 주위의 시선을 전혀 신경쓰지 않으면서, 일단 부끄러움에 스위치가 들어가면 미스릴 광석이 무색한 철벽을 세워 버린다. 지금이 바로 그랬다. 매우 곤란하다.

결국 클라우드는 전가의 보도를 꺼내 들기로 마음 먹었다. 아니, 합체검은 밖에 놓고 왔지만, 진짜 무기는 늘 마음 속에 간직하는 것이다. 이런 게 이른 바 심검이라는 것이겠지.

"티파."

"으응?"

티파가 제대로 반응하지 못 하고 있다. 바로 지금이다.

"사랑해 티파."

이전의 티파는 허용 농도 이상의 부끄러움에 빠지면 클라우드의 관자놀이나 명치 같은 급소를 용서없이 타격했곤 했다. 자랑은 아니지만 클라우드는 그 공격을 받고 코피를 흘리거나 혼절한 경험도 있었다.

하지만 요즘의 티파는 높은 확률로 이렇게 굳어 버린다. 클라우드는 그런 그녀가 귀여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클라우드가 단번에 그녀의 입술을 빼앗고 혀를 구속했다. 티파의 타액이 감미로운 천상의 음료가 되어 클라우드의 목을 축였다. 클라우드는 철저하게 티파를 탐닉했다. 티파도 클라우드의 공세를 정신없이 받아들이면서도 유연하게 반격했고, 클라우드는 그 부드러운 감촉에 거의 정신을 잃어버릴 것 같았다. 그야말로 별의 축복. 세상 그 어떤 것보다도 완벽한, 궁극의 스위츠. 그렇게 클라우드는 깨달았다. 그녀야 말로 나만의, 나를 위한 마스터 오브 스위츠. 클라우드는 이제 다른 어떤 스위츠도 필요 없다고 생각했다.

늘 행복하길 빌어, 클라우드, 티파.

시즈네에게도 안부 전해줘.

멀어지는 감각 속에서 그런 마지막 인사를 들은 것 같았다. 하지만 곧 그것은 뇌리에서 사라져 갔다. 지금 클라우드의 세계에는 품에 안고 있는 티파만이 확실하게 존재하고 있었다.

.

그 빛의 기둥은 돌연 나타났다.

성층권까지 뻗어 있는 그 기둥은 발생 이후 지금까지 48시간 동안이나 유지되고 있었다. 마치 무엇인가를 예고하는 것처럼.

세계 각국은 그 빛의 기둥에 의미를 찾고자 모든 수단을 아끼지 않았다. 결론적으로 그들은 아무런 의미도 찾을 수 없었다. 심지어 이 빛은 완전히 무해하기까지 했다. 밝게 빛나면서도 눈부시지 않아 시력에조차 영향을 주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미드갈의 -지금은 여섯 밖에 남지 않은- 여덟 영웅들과 루퍼스 컴퍼니의 중진들은 이 빛이 라이프 스트림에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빛의 기둥이 관측된 상황이 클라우드와 티파가 사라질 때의 현상과 완전히 역순이었기 때문이다.

클라우드와 티파의 동료들은 지체없이 빛의 기둥 앞에 집결했다. 때를 같이 하여 루퍼스 신라 또한 기둥 앞에 전 병력을 배치했다. 그 물량은 웨폰 전쟁 때의 두 배. 솔러스 100기에 달했다. 그 어떤 일도 속단할 수 없기에, 루퍼스 신라의 대응은 지극히 타당했다.

루퍼스 컴퍼니가 예상한 시기가 다가왔고, 빛이 점점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전사들이 잔뜩 긴장한 가운데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 일어났다. 빛의 기둥을 중심으로 각양 각색의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뜻 밖의 상황에 전사들이 당황하고 있는 사이에 빛의 기둥은 급속도로 사라졌다. 그리고 그들은 그 빛 속에 낯익은 두 사람이 서 있는 것을 확인했다.

빛나는 금발을 하고 있는 선이 가늘고 단정한 미청년은 슬림핏의 흰색 턱시도를 입고 있었다. 그의 반대편에 서 있는 꽃이 피어난 것 처럼 아름다운 여성은 땅에 끌릴 정도로 길면서도, 늘씬하고 긴 다리를 그대로 드러내는 화려하고 새하얀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이것은 결혼식이었다. 그리고 신랑과 신부는 맹세의 키스를 나누고 있었다. 그 몽환적이고 성스럽기까지한 장면에 아무도 감히 입을 열 수 없었다.

지상으로 돌아온 클라우드와 티파는 공기가 바뀐 것을 눈치채고 입맞춤을 멈췄다. 서로의 타액이 짧게 늘어졌다가 끊어졌다. 이윽고 그들은 자신들의 복장이 바뀌어 있는 것에 놀라고, 주변에 잔뜩 피어있는 꽃들에 놀라고, 본의 아니게 하객으로 참석한 동료들과, 루퍼스 컴퍼니의 사장 이하 턱스 5인방과, 칸셀을 필두로 한 솔져 부대와, 100기에 달하는 솔러스를 보고 다시 놀랐다. 우리는 분명히 그 새하얀 공간에서, 에어리스가 주선한 결혼식을 올리고 있었을 텐데.

그리고 클라우드의 뇌리에, 문득 정신이 몽롱할 때 들었던 잭스의 경박한 목소리가 떠올랐다.

응? 나갈 때? 아아. 그건 걱정마. 이 형님께서 다 알아서 해줄 테니까.

그 때부터 이미 에어리스와 한통속이었나. 거기까지 간파해낸 클라우드가 주변을 다시 차분하게 주위를 돌아보며 잭스를 평가했다.

미친 놈아.

그러나 클라우드의 상념은 오래 가지 않았다. 티파가 그의 나비 넥타이를 잡아 끌어 두 번째 맹세의 키스를 시작한 것이다. 방금전까지 간직했던 부끄러움은 새하얀 웨딩 드레스 뒷편의 풍성한 치마폭에 전부 숨겨둔 것 같았다.

다시금 티파의 달콤한 숨결을 느끼며 클라우드는 잭스에 대한 평가를 조금 철회했다. 잘했어, 친구. 그야 뭐, 대부분 에어리스의 생각이었을테지만.

곧 그 모습을 보고 어이를 완전히 상실한 유피의 평가와 "헐. 대박." 루퍼스 신라의 박수를 시작으로- 억눌려 있던 흥분이 한순간에 풀려났다. 우뢰와 같은 함성, 귀청을 찢는 박수, 터져나가는 카메라 플래시가 끝도 없이 이어졌다.

클라우드의 티파는 그 환성 속에서 언제까지고 서로만을 생각하고, 또 사랑했다. 입맞춤이 이어질 수록 환호는 더욱 커져만 갔다. 이후 티파는 동료들 사이에서 이 때의 대담한 행동이 화제에 올랐을 때 실로 변화무쌍한, 문자 그대로 모든 종류의 반응을 보이게 된다. 이 때의 기억은 그녀를 울거나 웃게 했으며, 분노하게 하고 또 행복하게 했다. 또한 이 화제가 마치 무용담처럼 그녀의 평생에 걸쳐 회자되었음은 굳이 두 번 언급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렇게 클라우드와 티파는 3년을 돌고 돌아 이루어진 청혼 끝에, 그리고 순서를 완전히 무시한 신혼 여행과 피로연 끝에- 비로소 별과 동료의 축복 속에서 때늦은 결혼식을 올리게 된 것이었다. 그 이후에도, 이 커플에게는 여러가지 크고 작은 일이 일어나게 되지만, 그것은 또 다른 이야기이다.

fin.
posted by nameless7777 2016. 7. 15. 23:33
루퍼스는 평온한 얼굴로 브릿지에 앉아 있었다.

하지만 턱을 만지작 거리고 있는 손가락에 드러나 있는 감정은, 분명한 초조함. 그것은 쳉 밖에는 알아보지 못하는 루퍼스의 자그마한 버릇이었다.

"준비 상황은 어떤가."

"양산형 아머드 모듈 '프라우드 솔러스' 턱스 사양, 솔져 사양, 비공정 적재 한계치까지 수용 완료. 택틱컬 바이저 동조 종료. 이건 사장님 몫입니다."

루퍼스가 택티컬 바이저를 받아 착용했다.

"택티컬 바이저와 프라우드 솔러스 3기. 확실히 받았다."

프라우드 솔러스, 통칭 솔러스는 대 웨폰 결전 병기 프라우드 크라트를 마이너 체인지한 무인 자동 인형 병기다. 루퍼스가 당시 담당자의 무능으로 쓸데없이 거대하기만 했던 프라우드 크라트를 보다 작고 효율적으로 재설계. 생산 단가는 13% 미만으로 억제하면서 출력과 전투 성능 평가면에서는 64% 까지 끌어올린, 루퍼스 필생의 역작이자 루퍼스 컴퍼니 최대의 전력이었다.

솔러스는 택틱컬 바이저로 전달되는 뇌파를 통해 조종자의 지령을 받고 동료기와 연계를 펼칠 수 있는 고성능 AI가 탑제되어 있었다. 숙련된 솔져는 2기의 솔러스를 동시 운영하며, 루퍼스 신라를 위시한 턱스 에이젼트는 특수 훈련를 통해 3기까지 운영할 수 있었다.

"수고 했네."

여전히 쳉은 루퍼스가 직접 필드에 내려가 지휘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지만, 굳이 입밖에 내지는 않았다. 루퍼스는 한 번 결정하면 번복하지 않으니까. 어짜피 필드에서 자신이 루퍼스를 충실히 보좌해내기만 한다면 문제없이 끝날 이야기다.

그건 그렇고, 엄청난 물량이다. 이 숫자의 솔러스라면 국가를 상대로 전쟁이라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정도의 준비가 필요한 상대가 이 앞에 있다는 것일까.

심지어 이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루퍼스가 마침 그 추가 전력에 대해 물었다.

"그들은 어떤가."

"전부 모인 것 같습니다. 저 비공정은 하이윈드보다도 빠르군요. 아까부터 이 쪽에 출발을 재촉하고 있습니다."

"흠. 성격이 급한 자들이니까."

루피스가 바이저의 세팅을 세부 조정하며 말했다.

"하지만 결코 선행하지 말라고 전하게. 각개 격파만큼은 절대로 피해야 하네."

그들의 강함을 충분히 알고 있는 쳉은 고개를 갸웃 거렸다.

"각개 격파라니.. 그들이 당할 수도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자네도 알고 있지 않은가? 그들도 사람일세. 칼에 심장을 찔리면 죽는다네."

누군가를 떠올리고 있었던 것일까. 쳉의 표정이 조금 괴로워 졌다. 하지만 그는 내색하지 않고 어디까지나 사무적으로 답했다.

"그들은 단 여덟 명의 인원으로 대공동을 돌파했습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있었던 세피로스까지."

"그들을 매우 높게 평가하고 있군. 하긴. 자네들 만큼 그들과 많이 접촉한 집단은 없었으니 그 평가가 타당한 것인지도 몰라."

하지만 루퍼스는 생각을 굽히지 않았다. 그 답지 않은, 매우 비논리적인 이유에서였다.

"예감이 좋지 않네.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군."

루퍼스의 표정은 불안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러나 쳉은 그의 말이 진심이라는 것을 금새 알아챘다. 그리고 나쁜 예감일수록 루퍼스의 예상은 잘 들어맞는다는 것도, 쳉은 경험적으로 알고 있었다.

"출발 예정 시간은 30분 후 입니다."

"늦어. 서두르게. 10분 이내로 마치도록."

"알겠습니다."

쳉이 깊이 고개를 숙였다.

.

"믿기 힘든 이야기다. 그러나 있을 수 없는 일이라 단정짓기는 어렵다. 아무튼 내 감각은 그것이 카오스 웨폰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빈센트가 상황을 담담하게 설명했다. 그의 어조를 두고 상황의 긴박함을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은 유피뿐이었다. 그리고 지금 그녀의 얼굴은 매우 심각했다.

실제로 긴박한 이야기일 수 밖에 없다.

지금 그는 나타나면 반드시 행성에 죽음을 가져온다고 전해지는 최악의 웨폰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 감각만을 날카롭게 닦아 싸움에 대비했다. 마지막에는 알고 있는대로다."

클라우드가 빈센트를 바라보며 그의 말을 반복했다.

"그 감각만을 닦았다."

"그래. 마황의 핵이 가진 에너지에 집중하고 오감을 차단하는 거다. 마황의 덩어리나 마찬가지인 웨폰의 움직임을 읽기에 최적의 방식이라고 판단했다."

빈센트의 표정에 씁쓸함이 섞였다.

"그리고 웨폰과 동급의 마황 탱크인 클라우드를 마황의 원흉으로 오인한거지. 웨폰급 존재를 상대하기 위해 효율이 높아진다는 것은  확실하지만. 흠. 보다시피 도저히 추천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는 할 수 없겠군. 게다가 클라우드가 아니었다면 나는 그 감각 속에 파묻혀 돌아오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클라우드는 조금 생각하는 얼굴이 되었다. 티파는 그런 클라우드를 걱정스럽게 바라 보았다. 티파는 갑자기 두려워져서 자신의 걱정을 차마 입밖에 낼 수 없었다. 제발 쓸데없는 생각은 하지 않으면 좋으련만.

"몇 번을 생각해도 답은 똑같다. 역시 그것은 카오스 웨폰이었다. 게다가 이미 각성을 마쳤다. 놈이 언제 모습을 드러내도 이상하지 않아."

무거운 선언. 마치 죽음의 선고.

일행의 분위기가 참담하게 가라앉았다. 클라우드는 눈에 의지를 담고 무겁게 입을 열었다.

"하지만 싸울 수 밖에 없다. 그렇지?"

빈센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어짜피 선택지는 없다."

"승산은?"

"높지 않아. 하지만 없지도 않다. 클라우드. 아마 너는 카오스 웨폰에게도 지지 않을테니까. 하지만 진정한 문제는, 카오스 웨폰에게는 반려가 있다는 사실이다."

카오스 웨폰과 쌍으로 존재하는, 웨폰 중의 웨폰.

"카오스 웨폰은 오메가 웨폰의 첨병에 지나지 않아. 놈이 등장하기 전에 카오스 웨폰을 쓰러뜨려야 한다. 그러지 못한다면 우선 승산이 없다고 생각해라. 변수가 없다고 가정하고 가장 낙관적으로 생각하더라도 승률은 2할 미만."

빈센트의 분석에 티파가 눈을 빛냈다.

"뭐야. 별의 수호자와 싸우는 건데, 그 정도면 쉬운 거 아냐?"

티파가 호쾌하게 정리했다. 그리고 칸셀은 그런 티파를 질린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티파가 루퍼스 컴퍼니의 사원이었다면 방금 욕을 쏟아줬을 거야. 뒤통수도 한 방 갈기고."

유피가 칸셀의 말을 받았다.

"그만 둬. 죽어."

"나도 알아. 난 사실 티파가 더 무섭다고."

둘의 농담에 분위기가 조금 부드러워졌다. 하지만 일은 그렇게 쉽게 흘러가지 않았다.

클라우드가 뒤를 돌아보며 일어섰다.

"음."

거의 동시에 티파도 이변을 감지.

마황이- 흔들렸다.

"시작된 것 같다."

빈센트도 조용히 일어섰다.

"하지만 설마 처음부터 변수가 생길 줄이야."

느껴지는 것은 수천, 수만에 달하는 마황의 군집. 클라우드가 땅에 꽂아둔 검을 뽑아들고 등에 결쳤다.

"대장이 나오기 전에 병사부터. 상식이지."

클라우드의 가벼운 농담에 모두 웃을 준비를 하려는 무렵, 그들은 밝은 녹색 빛에 휩쌓였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카오스 웨폰의, 말하자면 별 그 자체의 선제 공격이었다.

그 녹색 빛의 중심에-

클라우드가 있었다.

.

빈센트가 영롱하게 녹색으로 빛나는 벽을 가볍게 건드렸다. 접촉한 손 뿐만이 아니라 빈센트의 전신이 그대로 튕겨져 나왔다. 견고한 마황의 척력장. 발포해볼 필요는 없었다. 어짜피 튕겨 나올테고, 그 유탄에 오히려 아군이 당할 수 있다. 위험하다.

마황의 벽은 크고 완만한 곡선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짐작컨데 구체. 지하를 뚫고 들어가는 것도 의미가 없음. 반경 약 1 킬로 미터.

목표는 명확했다.

클라우드의 격리.

그는 마황의 벽 안쪽에 홀로 남겨져 있었다. 그 거대한 검을 들어올린 채 꿈쩍도 하지 않고 전방을 주시하고 있었다. 원 밖에서 그를 안타깝게 바라보고 있는 동료들을 향해 돌아보거나 말을 걸지도 않은 채. 티파에게 다가오거나 자신은 괜찮다고 안심시키지도 않은 채.

마황이나 라이프 스트림을 느끼지 못하는 일행들도, 충분히 그런 클라우드의 반응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이 심상치 못한 땅울림. 이질적이고도 압도적인 존재감. 클라우드 정도되는 강자가 조금도 여유를 가질 수 조차 없을 정도의, 절망적이기까지한 마황 에너지.

그 존재가 땅에 거대한 균열을 남기면서 존재감을 증폭시켰다. 흘러 넘치는 마황의 영향으로 지반 곳곳이 융기. 마치 바위 기둥으로 만들어진 숲이 생겨나는 것 같았다. 균열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웨폰의 상반신은 인간형. 눈이 네 개나 달린 무기질적인 얼굴에 몸통에는 통나무 같은 팔이 무심코 한숨이 나올 정도로 장대한 창을 쥐고, 등에는 배틀 액스와 츠바이핸더를 교차시켜 메고 있다. 이윽고 드러난 탄탄하면서도 날렵한 하체는 네 발달린 짐승의 그것과 같았다. 근육을 연상케하는 굳건한 금속질의 울퉁불퉁한 강화 외골격은 웨폰의 강대한 방어력을 짐작케 했다. 전고 약 7 미터. 역대 웨폰에 비하면 작은 정도였지만, 어쨌든 질량은 가볍게 클라우드의 백 배 이상은 되리라. 게다가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웨폰의 공격은 실로 예측불허. 어떤 공격을 펼칠 지 경험하기 전에는 알 수 없다. 다만 놈이 자신의 대적자를 말살하기 위한 모든 종류의 폭력을 내제하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였다.

클라우드는 웨폰 체내 마황의 움직임을 통해 직감했다. 놈의 몸에 흐르고 있는 두 개의 흐름. 그런가. 이것이 본래의 모습이다. 카오스와 오메가는, 궁극적으로는 한 몸체를 공유하는 것이다.

그 존재를 확인한 빈센트 역시 클라우드와 동일한 결론에 도달했다. 빈센트가 봤던 오메가는 완전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 때 카오스는 오메가가 아닌 빈센트와 융합해 있었기에, 빈센트는 오메가와 겨룰 수 있었다.

그에 반해 놈은 지금 완전체. 그러므로 그 힘은 미지수. 심지어 클라우드는 동료도 없이 이 괴물과 격리되어 있다. 승산은 계산할 수 조차 없다.

"별이 마치 여흥으로 자신의 최종 병기와 그 대적자가 겨룰 무대를 준비한 것 같군."

그리고 마황의 벽 반대편에서는 수만필에 달하는 고 위험군 몬스터들. 필시 이 대결을 무산시킬 수 있는 방해물을 처리하기 위한 별의 안배.

빈센트가 험악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홀로 오롯하게 시험하겠다는 건가. 클라우드를. 어째서냐. 어째서 라이프 스트림이 이런 식으로 현세에 관여하는 거냐."

빈센트가 이렇 듯 격하게 감정을 드러내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었다. 유피는 그런 그에게 아무 말도 건네지 못했다. 칸셀 또한 숨을 죽이고 상황을 지켜보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너무도 무력했다.

그런 상황에서, 티파가 조용히 질문했다.

"빈센트. 내가 이 장벽을 뚫고 들어갈 수 있다면 어떨까?"

예상치 못한 발언에 빈센트가 즉각 티파를 바라봤다.

"뭐라고?"

"나 왠지 부술 수 있을 것 같아. 빈센트가 보기에는 어때?"

빈센트가 눈을 부릅 떴다. 그녀의 오른 손에서 정제되고 있는 힘은, 저 농밀한 마황은 대체 어디서 온 것인가.

"티파, 너, 언제부터-"

빈센트의 뇌리에 어떤 가능성이 번뜩였다.

있었다.

그녀가 저 강대한 마황을 손에 넣고, 클라우드나 자신에 버금가는 존재가 될 수 있을 법한 사건이. 클라우드를 매개로 별의 기억에 접촉하여, 클리우드를 구해내고- 기적처럼 생환했던 그 때. 설마.

결론에 도달한 빈센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부술 수 있다. 네 힘이라면. 그 마황이라면. 게다가, 힘을 정제하는 방법까지 먼 발치에서 한 번 보는 것만으로 이해했나. 훌륭하다고 밖에는 할 말이 없군."

빈센트의 확인이 떨어졌다. 그리고 티파의 감정이 의지로 가득찼다.

"칸셀. 난 당분간 집중해야할 것 같아. 날 지켜줄 수 있겠어?"

칸셀이 검을 뽑아 들며 답했다.

"내 전부를 걸고."

칸셀이 택틱컬 바이저에 동조되어 있는 2기의 솔러스에게 지령을 내리자, 기계 인형이 티파를 감싸 듯 자리잡았다.

희망이 싹트는 것 같았다.

그런 그녀를 보면서 빈센트가 잠시 고민했다. 결국 그는 티파에게 다가갔다. 이제와서 물을 끼얹는 이야기를 하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확인하지 않을 수 없는 이야기다.

"티파. 힘을 정제하면서 들어라."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티파가 빈센트를 마주 보았다.

"네가 벽을 부숴도 상황은 타개되지 않을 지도 모른다."

그 말은 단번에 희망에 구멍을 냈다.

"아무리 마황을 정제할 힘이 있다해도, 이 벽은 네 생각보다 훨씬 견고하다. 파괴하려면 꽤 많은 시간을 두고 힘을 비축해야 할 거다."

티파는 묵묵하게 빈센트의 말을 들었다.

"그 때까지 클라우드가 버틸 수 있을지 미지수다. 클라우드가 저 웨폰을 상대로 단 10분이라도 버틸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렵다."

빈센트의 경고는 계속 됐다.

"그리고 벽을 부순다 하더라도, 우리는 네 곁에 없을지도 모른다. 몬스터가 생각보다 훨씬 많으니까."

표정이 험악해지는 티파를 똑바로 마주 보면서, 빈센트가 결론을 내렸다.

"이대로 물러나 태세를 정비하는 게 정답일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다. 오메가 웨폰이 라이프 스트림을 절멸시킬 때까지 아직 시간은 있다. 그래도."

빈센트가 티파에게 할 말은 이제 하나 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는 이미 그녀의 대답을 들은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그래. 역시 그런 얼굴을 하는 구나.

"그래도, 할건가."

티파는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그녀는 끓어오르는 분노로 치환된 의지를 다시 투지로 바꿔 대답했다.

"응."

그녀는 이유를 설명할 필요성조차 느끼지 못했다. 빈센트 또한 그 이상 아무 것도 묻지 않고, 품안에서 작은 이어폰을 꺼냈다.

"이걸 오른 쪽 귀에."

"이건?"

"내 것과 직접 연결되어 있는 통신기다. 내가 됐다고 할 때까지 마황의 정제를 멈추지 마라."

"응."

"앞으로의 상황을 상상하는 것은 지극히 어렵다. 클라우드와 네 생명을 가장 우선하도록 해."

"응."

"다른 것은 생각하지 않아도 좋다. 우리에게 맡겨라."

"미안해 빈센트."

티파가 이어폰을 착용하면서 말했다.

"방금 나 당신을 한 방 때려주려고 했어."

"이해한다. 하지만 잘 아껴둬라."

빈센트가 엷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한가지만 물어도 될까?"

"뭐든지."

"내가 빈센트의 의견을 따르겠다고 답하면 어쩔 셈이었어?"

티파의 물음에 빈센트는 지체없이 대답했다. 그 또한 이미 결정되어 있는 대답을 준비하고 있다는 듯이.

"내 조언에 따른 동료의 결정이다.  존중할 밖에. 다만 내가 대신 마황의 벽을 부수고 클라우드를 구해낼 뿐이다."

빈센트는 그 말만을 남기고 몬스터가 몰려오는 방향으로 휘적휘적 걸어갔다.

아무말도 되돌려 주지 못한 티파에게 유피가 슬쩍 다가왔다. "신경쓰지마. 부끄러워서 저러는 거야. 힘내." 그리고 빈센트를 쫓아 타박타박 멀어져 갔다.

티파가 살짝 웃었다. 나는 운이 좋다. 내 주위에는 좋은 친구 밖에 없으니까. 그녀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힘내, 모두들."

그리고 티파는 다시 클라우드를 바라보며 조용히 말했다.

"기다려, 클라우드. 기다리고 있어."

곧 등 뒤에서 몬스터의 기척이 느껴졌다. 절망적일 정도의 숫자였다. 칸셀이 스스로를 다독이며 그녀의 인형 병기와 함께 전투에 돌입했다. 티파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

티파는 미동도 하지 않고 서 있었다. 그녀를 노리고 달려드는 몬스터는 꽤 있었지만 하나같이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다.

칸셀은 잘 싸우고 있었다. 쓰러뜨린 괴물은 이미 백 단위를 훌쩍 넘겼으나 몬스터의 파도는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자릿 수가 다른 것이다.

칸셀이 잠깐 숨을 고른 사이에 킹 베히모스가 솔러스의 포위망을 뚫고 티파에게 돌진했다. 칸셀이 다급하게 내린 지령에 솔러스가 반응. 솔러스의 일격에 척추가 끊어진 킹 베히모스가 피분수를 흩뿌리며 마황의 벽에 쳐 박히고는 그대로 척력장에 튕겨져 날아갔다. 녀석의 피가 한 방울, 티파의 얼굴에 튀었다. 그러나 티파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엄청난 배짱. 존경스럽고 대단한 사람이다.

나는 저 정도의 전사를 지켜내고 있는 것이다. 저 정도의 전사가 칸셀에게 몸을 맡기고 있는 것이다. 자부심이 칸셀의 가슴을 가득 채웠다. 그것이 칸셀이 한계를 넘어 싸울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었다.

그런 칸셀에게 티파가 조용하게 고했다.

"칸셀. 이제 됐어. 퇴각해."

칸셀은 피로감에 눕고 싶은 심정이었다. 솔러스의 배터리도 이제 거의 바닥을 드러냈다. 하지만 칸셀은 허세를 부렸다. 허세가 필요한 시점이다.

"난 괜찮아, 티파. 이제 실수하지 않아."

등을 돌리고 서 있는 그녀의 얼굴은 이 쪽에서는 확인할 수 없다. 그러나 칸셀은 어째서인지 알 수 있었다. 티파가 칸셀에게 미소를 지었다.

"고마워. 그래도 이젠 정말 괜찮은 것 같아. 조금 쉬도록 해."

"응?"

티파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칸셀이 의문 부호를 떠올렸다. 그런 그녀의 머리 위에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워 진다. 하늘에 비공정. 두 정.

그 중 특히 큰 비공정에서, 검은 점이 쏟아져 나온다. 그것은 점점 커지기 시작하더니 지면에 가까워지면서 윤곽이 확연히 드러났다. 그 형태는 칸셀의 인형 병기와 똑같았다. 칸셀의 얼굴이 밝아졌다.

"프라우드 솔러스 부대! 루퍼스 컴퍼니!"

50기에 달하는 인형 병기, 프라우드 솔러스는 땅에 도달하기 직전 역분사를 수행해서 그 크기와 질량이 무색하게 사뿐히 착륙했다. 일부 솔러스의 어깨에 매달려 있는 동조자를 지면에 안전히 이송하기 위함이다.

착륙한 솔러스에서 턱스 전원과, 솔져 부대가 필드에 내려 오면서 순식간에 전투 배치를 완료. 곧 솔러스가 일제히 공격을 개시했다. 턱스와 솔져가 일사분란에게 이끄는 솔러스는 그야말로 군대를 연상시켰다. 열과 오를 맞추고, 타이밍을 맞춰 공격하면서 전진하는 것만으로 몬스터의 시체로 된 길이 만들어진다. 실로 압도적인 광경이었다.

그 사이 다른 솔러스 보다 머리 하나가 높은 특수 사양의 솔러스 3기가 몬스터의 시체를 치우며 칸셀에게 다가왔다.

그 중 중앙의 기체의 손에 올라타 있는 새하얀 양복. 루퍼스 신라였다. 그가 설계했기 때문일까. 루퍼스는 묘하게 솔러스와 함께 있는 것이 어울렸다. 그의 보좌로 붙어있던 쳉은 칸셀과 가볍게 시선을 맞추도 보일 듯 말 듯 목례한 뒤 기체를 돌려 전장으로 선행했다.

루퍼스가 솔러스에서 내려와 칸셀과 마주보고 섰다. 그가 평소와 같은 어조로 말했다.

"무사한가."

루퍼스의 말을 칸셀이 여유롭게 농담으로 받았다.

"좀 더 힘들 때 당신이 더 드라마틱하게 왔다면 반했을지도 모르겠어."

루퍼스는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반복했다.

"무사한가."

그 진지한 얼굴에 칸셀이 머쓱하게 대답할 수 밖에 없었다.

"..그래. 연락 두절해서 미안했다. 프레지던트."

루퍼스의 수려한 얼굴이 희미한 미소를 만들어 냈다.

"무사하다면 됐네. 몬스터들은 이제 우리가 맡지. 그녀 옆에서 좀 쉬게."

"난 더 싸울 수 있어. 예비 솔러스 2기, 아니 3기. 지금 바로 동조하게 해줘."

다시 한 번 루퍼스가 반복했다.

"그녀 옆에서 쉬게."

아무래도 도련님은 조금 화가 난 것 같았다.

칸셀은 입을 딱 다물었다. 그녀는 순순히 물러나 티파의 곁에 털썩 주저 앉았다. 루퍼스도 몸을 돌려 그의 솔러스와 함께 전장으로 향했다.

티파가 칸셀의 수고를 상찬하면서, 유사 엑스 포션을 한 병 칸셀에게 건냈다.

"고마워 칸셀. 덕분에 살았어."

"포션인가. 사양하지 않을게."

"미안해. 그것 하나 밖에는 줄 수 없을 것 같아."

"충분해. 좀 쓰지만 이런 용량으로 효과가 대단하네. ...상황은 어때?"

"좋지는 않지만 나쁘지도 않아. 클라우드도 웨폰도 서로 노려보고만 있어. 저 벽을 부술 힘이 다 모일 때까지 이대로 조금 더 가만히 있어줬으면 좋겠는데."

칸셀이 티파의 오른 손을 슬쩍 흘겨봤다.

"아직 부족한 거야?"

"빈센트로부터 신호가 오기로 되어 있어."

티파가 오른 쪽 귀에 걸어둔 소형 통신기를 톡톡 건드렸다.

"'너는 저 벽을 부수기 위해 필요한 힘을 아직 정량적으로 계산하지 못하니까', 라더라고."

언뜻 평온해 보이지만, 티파는 지금 클라우드를 구하러 가지 못하 속이 타들어가고 있을 것이다. 칸셀이 그녀를 안타깝게 올려다 봤다.

그 때 함께 온 비행정에서도 검은 점이 두 개 더 낙하해왔다. 저것도 프라우드 솔러스인가? 아니다. 미묘하게 다르다. 게다가 크다. 루퍼스 사장 사양의 커스텀 메이드보다도. 벽 저편에서 클라우드와 대치하고 있는 웨폰과도 맞먹을 수 있을 정도로.

그 어깨와 손에는 낯익은 누군가가 타고 있었다. 칸셀은 그들을 데이터 베이스에서 본 일이 있었다. 비행사 시드 하이윈드와 수호자 일족의 나나키 더 레드 서틴. 미드갈의 여덟 영웅 중 나머지가 도착한 것이다.

시드는 정체 불명의 기체가 채 착륙하기도 전에 땅으로 뛰어내렸다. 그 정도 높이 쯤이야 그에게는 아무 것도 아니겠지.

"이거 리브가 꾸물대는 동안 맛있는 장면은 루퍼스 놈에게 죄다 빼앗겼구만."

티파가 동료들을 돌아보며 옅게 웃었다.

"시드. 걱정하지마. 아직 활약할 수 있는 기회도 많아. 모두들, 어서와."

티파가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동료들을 환영했다.

"구름과자라도 대접하고 싶지만 상황이 이러네. 그 인형 병기는 리브야? 그리고, 바렛트?"

"맞습니다, 티파. 저기 싸우고 있는 인형 병기의 프로토 타입입니다. 유일하게 원격 조정이 가능한 사양이죠. 겁쟁이인 저에게 꼭 맞는 기체입니다."

반대 쪽의 기체의 머리가 뒤로 젖혀지고 가슴이 열리자 친근한 바렛트의 상반신이 나타났다. 그 큰 몸집이 작아 보일 지경이다.

"이 쪽은 마지막으로 만들어진 탑승 사양이라더군. 아무튼 사정은 대충 파악했다. 우리들은 지금부터 티파를 지킨다."

그러나 나나키가 냉정하게 상황을 파악, 동료들에게 설명한다.

"그러기에는 적이 너무 많아. 클라우드와 티파를 진심으로 도우려면 우리같은 전투원들은 전열에 서는 게 좋아. 녀석들은 본능이 강해. 자신의 목숨을 쥐고 있는 적이 전장 한복판에 있으면 놈들도 감히 무시하지 못할 거야."

티파가 그의 말에 긍정했다.

"나나키의 말이 맞아. 바렛트. 여긴 나와 칸셀로 충분해."

"칸셀이라구요?"

리브가 프로토 타입의 얼굴을 움직여 카메라로 칸셀을 바라봤다. 칸셀이라면, 분명히-

"칸셀이다. 솔져, 일단 클래스 퍼스트다."

하지만 곧 이어진 칸셀의 자기 소개에 리브의 회고는 끊어지고 말았다. 이상하다. 분명히 들어본 일이 있었던 것 같은데.

"일단?"

칸셀의 애매한 소개에 시드가 눈썹을 치켜 떴다.

"그래. 일단. 방금 자칭 전 솔져가 턱스 오브 턱스와 싸우는 모습을 봤거든."

그 말에 시드가 껄껄 거리며 웃었다.

"아아. 그 놈들. 그건 자신감 없어지지."

"하지만 지키는 싸움은 특기다."

하늘에서 추가로 솔러스 3기가 낙하.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안착. 칸셀은 이미 택틱컬 바이저를 통해 솔러스의 추가 지원을 알고 있었다. 칸셀은 프레지던트 루퍼스에게 마음 속으로 감사를 전했다.

"게다가 이런 걸 방금 세 대나 배당 받았어. 루퍼스 컴퍼니의 녹을 먹고 사는 사원으로써 쉬고 있을 수는 없는 거지."

"그렇겠지요. 그럼 여기는 맡기겠습니다."

생각해 봐야 의미가 없는 일이다. 리브가 돌아섰다. 다른 동료들도 그의 뒤를 따랐다. 티파는 다시 클라우드를 돌아봤다.

"고마워 모두들. 빨리, 끝내볼게."

미드갈의 영웅들은 티파의 말을 받는 둥 마는 둥 하면서 전장으로 걸음을 옮겼다. 어짜피 정중한 인사가 필요한 사이는 아니었다.

이윽고 전쟁이 벌어졌다. 과거 별을 지켜낸 자들과 지금 별을 재건하는 자들이 공조해서, 별의 군대와 싸우기 시작한 것이다.

역설적인 이야기였다.

때를 같이하여 클라우드와 웨폰의 대치 상태도 끝을 고했다. 웨폰과 클라우드의 일기토가 시작되고 말았다.

티파는 이를 악물고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

웨폰이 먼저 움직였다. 손에 쥔 창을 빙글빙글 돌리면서 돌진. 달려오는 기세를 그대로 담아 공기에 구멍을 내버릴 것 같은 찌르기를 뿜어냈다. 평범하면서도 절대적인 일격. 클라우드가 이를 흘려내자 웨폰은 하반신을 교묘하게 놀리며 한 호흡만에 일곱 번의 찌르기를 구사. 반시계 방향으로 원을 그리며 달리면서 그 중심에 서있는 클라우드에게 용서없는 공격을 펼쳐냈다. 마치 옛날 이야기에 나오는 기사가 마상에서 도보로 이동하는 병사를 도륙하는 것 같았다. 클라우드의 접근 자체를 거절하는 것 같은 무거운 공격. 게다가 백병전에서 사정거리는 절대적. 웨폰의 창은 최소 8 미터는 되어 보였다. 그 거대한 클라우드의 합체검조차 웨폰에게는 단검으로밖에는 보이지 않을 터.

하지만 클라우드는 간격에 제한을 받지 않는 전사였다.

클라우드가 웨폰의 일곱번째 창격을 비스듬히 흘려내면서 그대로 검을 흩뿌렸다. 파황격. 내달리는 마황의 압력이 웨폰의 이동 그 자체를 막아낸다. 웨폰이 움직임을 멈춘 틈에 소리도 없이 접근한 클라우드가 일곱 번의 추가 참격. 웨폰의 공격을 그대로 되돌린 것 같은 우직한 반격을 웨폰은 속절없이 방어.

그리고 이를 신호로 1 킬로미터 반경의 전장이 좁아보일 지경의 난전이 시작되었다.

클라우드는 더이상 한 곳에 멈춰 있지 않았다. 특기인 고속 이동 전투를 전개. 웨폰이 모습을 드러낼 때 여파로 융기한 지형, 폐허의 건물 벽, 말라 죽은 나무, 심지어 웨폰의 본체와 놈이 휘두르는 병장기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발판 삼아 도약. 마치 순간 이동을 하는 것 처럼 움직이며 웨폰을 공격. 베고, 찌르고, 후려치고, 걷어찬다. 강화 외골격 사이에 드러난 관절을 찌르고, 바위처럼 튼튼한 다리를 검면으로 후려치고, 창을 쥔 손가락을 돌려차고 짓이기며 도약하는가 하면, 한껏 끌어올린 마황을 합체검에 싣고 심장, 척수, 목과 같은 숨길 수 없는 약점을 전력으로 베어버린다.

웨폰은 견고한 강화 외골격을 방패 삼아 클라우드가 수없이 자아내는 가벼운 공격은 무시. 마황이 무겁게 실린 치명적인 공격만을 선택적으로 방어하며 폭풍 같은 일격으로 반격했다. 웨폰은 결코 서두르는 일이 없이, 필요한 타이밍에 그 거체에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섬광과도 같은 찌르기를 쏟아냈다. 공격 횟수는 많지 않았지만, 중요하지 않았다. 일격 일격이 치명적이기에, 오히려 공세를 이어가고 있는 클라우드 쪽이 불리했다. 클라우드의 공격은 전혀 먹히지 않았던 것이다.

더 빠르게. 그리고 더 강한 공격이 필요하다. 하지만 어떻게? 웨폰과 클라우드는 질량이, 체급이 다르다. 치고 받는 싸움이 되면 결코 이길 수 없다.

초구무신패참은, 아직 사용할 수 없다. 혹시라도 놈이 그 기술을 견뎌낸다면, 마황을 소진한 자신은 웨폰의 공격을 더는 감당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역시 답은 하나 뿐이다. 녀석의 움직임을 기다리면서 계속 생각했던 것이다. 마황이다. 빈센트가 그랬던 것처럼, 힘을, 마황을, 그냥 방출하는 것이 아니라- 정제하고 집중해서 필요할 때에 날카롭게 방출할 수 있다면.

클라우드가 마음을 굳혔다.

마황의 증거가 눈동자에 짙게 깃들었다.

.

티파는 이변을 바로 알아챘다. 클라우드의 움직임이 조금 둔해진 것이다. 웨폰의 묵직한 공격을 완전히 회피하지 못하는 일도 생겼다. 공방 중에 몸이 고장난 것이 아니다. 뭔가를 노리고 있다.

아마도, 아니, 분명히 그는 지금 티파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

하지만 티파는 그 사실이 기쁘지 않았다.

안 돼.

안돼안돼안돼안돼.

클라우드. 서두르지 마.

기다려.

내가 갈 때까지.

<티파. 마황이 모이지 않고 있다. 더 집중해>

빈센트로부터의 통신.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평온한 목소리가, 지금은 조급함을 가중시켰다.

"빈센트. 지금 긴급 상황이야. 아직도 부족한 거야?"

티파의 목소리에 다급함이 묻어났다.

<티파. 말했듯이 넌 아직 네 힘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없다. 써 본 일이 없으니까. 사용할 타이밍은 내가 정해야만 한다>

"알고 있어! 알고 있지만!"

<네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고는 말하지 않겠다>

빈센트가 냉정함을 잃지 않았다.

<다만 지금 때를 그르치면 그 때야말로 클라우드를- 잃게 된다>

클라우드를-

잃게 된다.

티파는 빈센트가 클라우드의 가까운 미래에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어떤 사실을 돌려서 표현했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그리고 자신이 초조해 해서는 안된다는 사실도.

티파가 격동하는 감정을 투기로 바꿔 오른 손에 저장했다. 그러면서도 머리를 냉정하게 식혀 힘의 정제에 몰입했다. 빈센트는 다시 한 번 그녀에게 감탄했다.

'안정됐군.'

티파의 마황이 순조롭게 증폭되는 것을 확인한 빈센트는 다시 몬스터 제거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빈센트는 그녀의 강함이 눈부시다고 생각했다. 자신은 가질 수 없었던 종류의 힘이다.

'힘내라. 두 사람 모두. 죽지 마라.'

빈센트는 종교를 가져본 일이 없다. 하지만 진심으로 그렇게 기도하고 싶은 생각에 사로 잡혔다.

.

"크헉"

클라우드가 또 한 번 튕겨져 나갔다. 웨폰이 휘두른 창을 미처 피하지 못하고 막아낸 탓이다. 싸우는 도중에 마황을 정제한다는 것은 이렇게나 어려운 일인가. 웨폰의 공격이 딱히 매서워 진 것이 아닌데도, 피하는 것이 점점 힘들어진다. 물리적 충격이 쌓이면서 곧 충격량이 회복량을 웃돌기 시작했다.

한 순간의 판단 미스. 좀 더 상황을 지켜봤어야 했다. 그러나 그 실수의 대가는 너무도 컸다.

승기를 잡았다는 것을 느꼈을까. 웨폰이 높게 점프했다. 이제 껏 보지 못한 움직임이다. 하지만 어떤 공격인지 상상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것은 시드의 점프 공격과 비슷했으니까.

창을 든 놈들은 왜 이렇게나 높이 뛰는 것을 좋아할까. 클라우드는 길게 몸을 날려 창의 사정거리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그러나 그 위력은 시드의 그것과 비교도 되지 않았다. 땅에 꽂힌 웨폰의 창이 지축을 진동시켰고, 클라우드는 전방위로 뻗어나가는 충격파까지는 피하지 못했다. 그는 그 파도에 휘말려 조약돌처럼 날아갔다. 웨폰이 그대로 클라우드에게 쇄도. 끝장을 볼 기세로 창을 찔러댄다.

위험하다.

리스크를 끌어안지 않고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다.

클라우드는 죽음을 각오했다.

클라우드가 마황을 끌어올려 오히려 찔러 들어오는 창을 향해 돌진. 그대로 혼신의 힘을 다해 검을 휘둘러 창의 기세를 상쇄했다. 그러나 무모. 출혈. 클라우드의 눈에 실 핏줄이 터지고 혈누가 흘러내린다. 뼈 마디가 전부 어긋나는 것 같은 진동을 억누르고 이격 째. 이번에는 웨폰의 찌르기가 정확히 클라우드의 기세를 상쇄. 토혈. 클라우드가 울컥 피를 뱉어냈다. 그대로 지축이 진동하는 공방이 이어진다. 곧 클라우드의 귀와 코에서도 출혈. 하지만 클라우드는 멈추지 않았다. 본능적으로 거의 초구무신패참에 버금가는 연속 공격을 한 순간에 펼쳐낸 클라우드의 머릿 속에는 한가지 생각 밖에는 없었다.

더 강하게.

더 빠르게.

마황을.

그리고 드디어 클라우드가 웨폰과 대등하게 공격을 주고 받기 시작했다. 중력도 관성도 그리고 그 외 다른 물리 법칙들도 클라우드에게 전혀 제약을 주지 못하는 것 같았다. 한동안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하던 클라우드가 다시 고속으로 이동하며 검을 뿌리기 시작했다. 속도도 위력도 이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았다. 그래도 아직 완전하지는 않지만, 세피로스조차 반응하기 어렵게 움직였던 그 때를 생각나게 했다. 그랬다. 나는 원래 이렇게 할 수 있었다. 클라우드의 온 몸에 전능감이 내달렸다. 혈액을 온 사방에 흩날리며 클라우드가 웨폰을 몰아 세우기 시작했다. 그 귀기서린 모습에 티파가 숨을 들이켰다.

'클라우드...!'

연인의 이름을 되뇌이며 티파는 냉정하게 상황을 분석했다. 서둘러서는 안된다는 다짐을 끊임없이 자신에게 반복해 들려주면서.

클라우드에게는 자신이 무엇인가 요령을 잡아냈다는 자각조차 없을 것이다. 사실 그에게 요령이 필요했던 일은 없었다. 그는 제멋대로 보고 제멋대로 훔치고 제멋대로 자신의 것으로 삼았다. 그는 수련할 필요가 없었다. 클라우드는 스스로 상상한 그대로 움직일 수 있는 천재니까.

그는 어지간한 공격은 한 번 보면 바로 이해하고 흉내낼 수 있다. 한달 전 그 승부에서 순식간에 티파의 발차기를 복사해 낸 것처럼. 한 번 봤을 뿐인 티파의 연속기를 이용해 빈센트를 쓰러뜨렸던 것처럼.

그리고 지금 그가 무의식 중에 흉내내고 있는 것은-

'안 돼, 클라우드!'

티파는 입술을 피가 나도록 깨물었다.

'빈센트를, 흉내내선 안 돼!'

그러나 그녀의 상념이 클라우드에게 전달되는 일은 없었다.

클라우드는 이제 거의 숨을 쉬는 것과 같이 마황을 운용했다. 제어하는 것도 정제하는 것도 숨겨두는 것도 자유자재. 끝도 없이 이어지는 클라우드의 공세에 웨폰이 위험을 감지. 개전 이후 처음으로 뒤로 물러난다.

그리고 웨폰의 등이 융기. 뾰족한 어떤 것이 튀어 나왔다. 첫 인상은 송곳. 완전히 튀어나온 그것이 웨폰으로부터 완전히 떨어져 나와 부유. 갯수는 열 세 개. 마황의 흐름을 읽어낸 클라우드는 그것이 곧 어지럽게 날아다니며 타격력과 관통성을 가진 채 마황을 에너지 탄환의 형태로 쏘아낼 수 있는 투척용 칼날 형태의 다목적 지원 병기라는 것을 간파했다. 말하자면 웨폰의 비수. 저렇게 작아도 웨폰의 공격이다. 어짜피 직격을 받으면 몸이 찢어지는 것은 마찬가지다. 이제부터 14기의 웨폰과 싸우는 꼴이 될 것이다.

그래. 같잖은 기사도 흉내는 그만 두는 게 좋을 거야. 전력을 다해보라고.

클라우드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자아, 다시 해보자.

더 높은 세계로 가보자.

클라우드의 내면이 그렇게 속삭였다. 클라우드는 이제 웨폰의 마황 이외에는 감지할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더이상 그 사실을 유감스럽게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빈센트에게서 훔쳐낸, 대웨폰 결전 태세가 지금 완성된 것이다.

완전히 전투에 몰입한 클라우드가 웨폰과 세번째로 격돌했다.

그 광경을 본 티파는 뜨거운 쇳물을 삼킨 것 같았다.

그만.

더는 안돼.

그 이상 힘을 쓰지마!

티파가 더 이상은 참을 수 없을 것 같다고 생각한 바로 그 때, 빈센트가 외쳤다.

<지금이다! 티파! 부숴라!>

그 목소리에는 안타까움. 그리고 비통함. 오갈 길 없는 분노가 서려 있었다.

<가서 클라우드를 구해!>

티파는 지체하지 않고 주먹을 내질렀다. 그 주먹은 척력장을 무시하고 마황의 벽에 직접 꽂혔다.

.

바렛트는 솔러스 전용 플라즈마 미니건의 에너지 매거진을 다섯번이나 교환했다. 더이상 격발해도 반응이 없어 확인해보니 고열로 총신이 휘어 있었다. 그에게 예비 미니건을 건내 줘야할 시에라 호는 아까부터 근처에 없었다. 그러나 그는 전혀 실망하지 않고 백병전을 준비했다.

유피는 수중에 있었는 대부분의 투척용 수리검을 소진했다. 오른 손에 쥐고 있는 풍마수리검으로만 싸우기 시작한지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손에 감각이 거의 사라졌다. 유피는 턱스 오브 턱스가 그녀의 곁에 있는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비공정 시에라는 온갖 장소에서 분탕치는 시드를 화력 지원 하느라 격납고로 돌아갈 연료까지 거의 다 사용했다. 시드는 기운차게 날아다녔지만 점프의 높이나 비거리가 줄어든 것은 숨길 수 없었다. 그리고 그것은 결코 그의 나이 탓이 아니었다.

리브의 솔러스는 오른 쪽 다리를 당해 전장 한 복판에 주저앉아 자가 수복을 수행하며 쉬고 있었다. 아무도 그를 비겁하다 비난할 수 없었다. 그는 티파의 도움을 받아 프로그래밍으로 짜 넣은 잔간류 격투술로 1000필 이상의 몬스터를 혼자서 사냥했다.

건재한 것은 수호자 일족의 나나키 더 레드 서틴과 턱스 오브 턱스 뿐이었다. 빈센트는 마황의 벽 건너편에서 벌어진 이변을 모두 파악하고 있었으나 자리를 이탈할 수 없었다. 그가 자리를 비우면 한 순간에 균형이 무너질 테니까.

루퍼스 컴퍼니도 상황은 비슷했다. 루퍼스 컴퍼니의 전투 매뉴얼에 입각해 솔러스를 잃어버린 솔져가 하나 둘 전장을 이탈하고 있었다. 그 덕인지 사망자는 아징 발생하지 않았다. 그나마 루퍼스를 위시한 턱스는 건재했다. 그들이 수 많은 몬스터를 쓰러뜨리며 전열을 가다듬고 있었지만 그것도 시간 문제나 마찬가지였다.

상황은 최악으로 치닫고 있었다. 모두가 목숨을 걸어야할지도 모르겠다고 각오할 무렵이었다.

굉음.

그리고 대기가 진동하는 것이 여기까지 전해졌다. 그리고 다음 순간, 필드에서 몬스터가 전부 사라졌다.

모두 갑작스러운 사태에 망연자실할 수 밖에 없었다.

곧바로 행동에 옮긴 것은 빈센트를 필두로 한 그의 동료들 뿐이었다. 그들은 바람같은 속도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완전히 얼이 빠져 버린 루퍼스 컴퍼니의 사설 부대에게는 비공정의 통신망을 통해 새로운 소식이 전해졌다. 마황의 벽 붕괴. 전황이 급변. 다음 순간 그들은 있는 미드갈의 영웅을 쫓아 힘을 다해 마황의 핵을 향해 질주했다.

루퍼스는 아직 불안함을 떨쳐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전투의 고양감을 유지하며 불안함을 애써 무시했다.

"자아, 그럼. 길이냐, 흉이냐."

아무도 루퍼스에게 그 답을 알려주지 않았다.

.

티파의 주먹은 일격에 마황의 벽을 산산조각냈다. 반경 1 킬로 미터에 달하는 견고한 척력장이 주먹 한방에 박살난 것이다.

하지만 웨폰은 티파를 상대하는 대신 바깥에서 전쟁을 벌이고 있는 몬스터를 전부 소환했다. 클라우드까지 이어지는 길에 몬스터가 꽉꽉 들어섰다. 아무래도 웨폰은 클라우드를 상대로 한 일기토를 어지간히 방해받고 싶지 않은 모양이다.

그리고 티파는 머리 끝까지 화가 치밀었다. 난 아직 아무 것도 하지 못했다.

그러니까 방해하지마.

"방해하지마아아아아아아아-------!!!!!!!"

그녀는 길을 막아서는 몬스터를 후려치고, 잘라내고, 걷어차고, 내던지며 일직선으로 질주했다. 티파의 뒤에는 몬스터의 시체로 만든 길이 생겨났다. 마황을 개방한 티파는 일기당천. 그야말로 영웅적이라는 표현이 아깝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전혀 영웅이 될 생각이 없었다.

한 사람.

단 한 사람만을 구하고 싶을 뿐이다.

그러나 나쁜 예감이 들었다. 그 단 한 사람이 손이 닿지 않는 곳으로 가버릴 것 같은 최악의 예감. 이미 늦었을지도 모른다는 섬뜩한 절망감.

그 예상을 떨쳐 버리기 위해 티파는 달렸다.

"클라우드...!"

달리고,

달리고,

또 달렸다.

.

클라우드의 신체는 이미 오래전에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육체 안에 휘몰아치고 있는 마황의 흐름에 방향성을 부여하여 억지로 몸을 움직이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 였다. 그의 몸은 거의 한계에 도달했다. 피도 2리터 이상이나 흘렸다. 이대로 계속 싸운다면 그는 폐인이 되더라도 이상하지 않았다.

하지만 클라우드는 멈추지 않았다.

어지럽게 날아다니는 웨폰의 13개의 비수를 모두 튕겨내고, 그 비수가 간헐적으로 발사하는 마황 탄환도 모조리 회피하고, 웨폰이 휘두르는 천둥 같은 일격도 전부 받아냈다. 그럴 때 마다 뼈가 부서지고 관절이 삐걱였지만 마황의 흐름을 조절해 움직임을 보정하고 부러진 뼈를 짜맞추며 억지로 고정했다. 마황으로 찢어진 근육을 수복하고 상처를 봉합하고 출혈을 멎게 했다. 처절한 싸움이었다.

웨폰 또한 무사하지 않았다. 몸통의 외골격은 자가 회복하기 무섭게 난자 당했다. 모든 관절에 칼집이 들어갔고 그 틈에서 마황이 새어나왔다. 클라우드는 방어와 동시에 공격했다. 웨폰이 무리하게 공격할 수록 정밀한 반격이 되돌아 갔다. 서로를 파괴하는 공방이 끝없이 이어졌다.

클라우드는 완전히 무아지경에 빠져 있었다.

그리고 그 경지가 무심코 클라우드의 전술을 결정했다. 클라우드는 무의식 속에서도 미소를 지었다. 저 세피로스와도 비견될 사상 최대의 적을, 지금 이 순간에 쓰러뜨리는 것이다.

내 모든 것과 바꿔서.

클라우드가 숨가쁜 공방이 이어지는 가운데 솜씨좋게 마황을 덜어내 대기에 방출시킨다. 그 사이에 웨폰이 내려꽂는 창을 종이 한장 차이로 피하며 손 목을 베어낸다. 일반적인 상대였다면 지금 창을 놓쳤을 테지만 이 녀석은 사람이 아니다. 클라우드는 실망하지 않고 공방을 지속한다. 다음으로 핵으로 삼을 먼지 입자를 선택. 준비해둔 마황에 섞는다. 다시 한 번 날아드는 비수를 피하며 고속 전투에 돌입. 복잡하게 달려드는 비수를 피하고 쳐내고 따돌린다. 동시에 작업을 이어간다. 핵과 마황과 산소의 반응을 확인. 반응을 촉진시키기 위해 공기중으로부터 질소를 강제 분리. 응축된 산소가 폭발하한선에 도달. 착화. 이제부터는 불꽃의 핵이 된 입자가 마황을 연료 삼아 자발적으로 산소를 흡입하며 화구를 생성한다.

메테오레인 준비 완료. 화구의 숫자는 웨폰의 비수와 맞춘 13개. 클라우드의 본능은 한 발의 실수도 예상하지 않는다.

웨폰도 이변을 감지. 고속 이동을 하고 있는 클라우드에게 속도를 한계까지 높인 비수가 쇄도한다. 하지만 클라우드는 이 모든 마황의 움직임을 손에 잡을 듯이 읽고 있었다.

클라우드가 한순간에 마황을 끌어올려 상반신에 집중. 비틀려 끊어질 정도로 허리를 돌려 뒤틀고, 그 저항을 단번에 반대 방향으로 풀어버린다. 클라우드의 육체가 격렬하게 회전하며 합체검을 휘둘러 마황의 폭풍을 자아내고, 폭풍의 여파가 지면에 기하학적인 문양을 새기며 전방위로 방출된다.

웨폰의 비수는 클라우드가 생성해낸 마황의 폭풍에 휘말려 나뭇잎 처럼 흔들렸다. 그리고 클라우드는 움직임을 멈춘 비수에 용서없이 메테오레인을 내려 꽂았다.

별이여, 흩날려 떨어져라.

웨폰의 비수가 남김없이 폭발했다. 원거리 공격 수단을 완전히 잃어버린 웨폰이 으르렁 거리며 달려온다.

그래.

끝을 보자. 웨폰.

다시금 클라우드와 웨폰의 일기토가 시작됐다.

클라우드의 강맹한 공격을 버티지 못하고 웨폰의 창이 균열. 그리고 클라우드가 마치 도발하듯 도약. 웨폰이 이끌리듯 뻗은 창 끝을 목표로 검을 내려친다. 이어 클라우드가 마황을 뿜어내어 지향성을 부여하고 등 뒤로 분사. 클라우드가 검을 내려치는 자세로 그대로 지면에 내려 꽂힌다. 그 일격에 웨폰의 창이 날부터 자루까지 이등분. 남겨진 기세에 웨폰의 본체에도 깊은 검흔. 상처에서 마황이 엄청난 기세로 뿜어져 나온다. 처음으로 웨폰에게 유의미한 대미지를 입히는데 성공.

웨폰이 쪼개진 창을 버리고 등 뒤에 메고 있는 배틀 액스를 쥐어 들었다. 클라우드는 웨폰이 배틀 액스를 휘두르기도 전에 웨폰의 품 안에 접근. 마황을 한 껏 머금은 합체검을 몇 번이고 휘두른다. 마음가는 데로 휘두른 검이 웨폰의 강화 외골격을 버터처럼 잘라내며 흉측한 검상을 남긴다.

다음 순간 웨폰이 겨우 휘두른 배틀 액스는 클라우드가 뿜어낸 검기에 잘려나가 자루만 남았고, 이어지는 수평 베기가 웨폰의 좌우 정강이를 깊게 베어냈다. 무릎을 꿇은 웨폰의 복부에 클라우드의 검이 깊숙히 꽂힌다. 클라우드가 그대로 도약. 웨폰의 상반신이 수직 방향으로 잘려 나간다. 그대로 클라우드가 공중제비를 돌며 웨폰의 어깨 위에 착지, 그와 동시에 웨폰의 정수리에 기운차게 검을 꽂아 넣는다. 합체검이 웨폰의 턱을 뚫고 나왔으나 웨폰은 아직도 건재. 웨폰이 처음으로 분노의 포효를 내질렀다.

부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

하지만 클라우드의 기세는 사그러들지 않는다. 웨폰의 강화 외골격을 차례로 베어 갈라 내면서, 그와 동시에 전신의 마황을 끌어올려 정제한다. 웨폰은 마지막으로 남은 츠바이핸더를 양손에 쥐고 마구잡이로 휘둘렀다. 무의미. 클라우드는 이제까지 보다도 한 층 빠른 속도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클라우드가 마지막 공격을 시작했다.

클라우드의 첫 번째 참격이 웨폰의 목을 반이나 갈라 버렸다. 이어서 심장을 찌르고 척추를 토막내고 전방 오른 쪽 어깨를 분쇄. 계속해서 왼쪽 손목을 끊어버리고, 자세를 낮춰 이동하며 웨폰을 지탱하는 억센 다리를 모조리 잘라냈다. 웨폰을 산산조각 낼 기세였다.

그대로 클라우드가 웨폰의 정면으로 이동. 이제 완전히 전투력을 잃어버린 웨폰의 몸통을 연속 공격. 다섯 번, 열 번, 스무 번. 계속되는 공격에 웨폰의 마황이 꺾이고, 유실된 라이프 스트림이 별로 돌아간다. 계속해서 이어지는 가학적인 공격에 웨폰의 상반신이 온통 파헤쳐진다. 그리고 클라우드가 계속 노리고 있었던 두 개의 마황의 핵이 노출. 이를 확인한 클라우드가 이제 겨우 한 줌 남아있는 마황을 모조리 끌어내고 육체의 한계를 돌파. 검을 비스듬히 휘둘러 베어 올리며 두 개의 핵을 한꺼번에 잘라 파괴한다. 이어서 검기를 타고 폭발적으로 확산된 마황이 그대로 웨폰의 본체까지 두 쪽으로 갈라버렸다. 곧 웨폰은 미끌어지듯 허물어졌고, 웨폰에 남아있던 마황도 모두 흩어져 소멸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클라우드의 근육이 전부 파열. 전신에서 혈액이 분출. 하지만 클라우드는 더 이상 통각을 느낄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몸에 전혀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움직이는 내내 몸에 두르고 있었던 전능감도, 최강의 웨폰을  쓰러뜨렸다는 성취감도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클라우드는 무너지듯 검을 땅에 꽂고 무릎을 꿇었다.

"...티파..."

남아있는 호흡을 쥐어짜 자아낸 그 말이 마지막이었다.
posted by nameless7777 2016. 7. 9. 12:01
빈센트는 이끌리는 것 처럼 마황의 핵에 다가갔다. 사태는 예상대로였다. 저 어마어마한 에너지. 그곳에 있는 것은 한 때 빈센트가 몸안에 품고 있었던 것이다. 착각할 리가 없다.

별의 그 자체의 죽음과 때를 함께하여 나타나는 특별한, 그리고 치명적인 존재.

카오스 웨폰.

이런 타이밍에 이런 것이 깨어난다면 끝장이다. 믿을 수 있는 동료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하물며 그들이 전부 모인다 한들 승산은 얼마나 될 것인가. 게다가 이 녀석이 나왔다는 것은-

아니, 억측이다.

그러나 곧 빈센트는 생각의 확장을 중지했다.

자신의 몸에 내제되어 있던 혼돈을 상징하는 별의 최종병기- 카오스 웨폰을 별에 돌려보낸 이후로, 빈센트는 최악의 사태를 막기 위해 쉬지 않고 별의 동향을 주시해 왔다. 별은 이제 건강하다. 별을 위협하는 존재도 더이상 없다. 책임을 통감한 루퍼스 신라는 그 막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세계재생위원회를 설립해서 투명하게 별을 재건하고 있고, 그 효과는 빈센트가 지속적으로 파악하고 있었다.

빈센트는 확신했다.

없었다.

별이 이렇게나 빠르게 재차 카오스 웨폰을 보낼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저것이 카오스 웨폰이 아니라면, 이 무시무시한, 심지어 친숙하기까지 한 이 에너지의 폭풍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어쨌든 빈센트는 이 자리를 벗어날 수 없었다. 이 존재의 정체가 무엇이든, 이 곳에 묶어둬야 한다. 그것이 나의 사명이다.

이 녀석을 상대로, 카오스의 힘도 잃어버린 내가- 어디까지 버틸 수 있을까. 아니, 약해질 수는 없다. 결단코 막아내고야 말 것이다. 빈센트는 그렇게 다짐하며 마황의 핵을 겨냥하여 정신을 집중했다.

그 어느 때 보다도 긴 하루가 될 것 같았다.

.

유피는 초조함에 손톱을 깨물고 있었다. 어째서인지 모르겠지만 가슴 떨림이 진정되지 않았다.

빈센트가 갑자기 사라진지 하루 이상 지났다. 물론 그녀도 알고 있었다. 초조해 하고 있는 것은 자신 뿐이었다. 당연하지. 진심으로 싸우는 빈센트를 이 세상 어느 누가 대적할 수 있겠어? 유피는 괜스레 어깨가 으쓱해졌다. 알아? 그게 빈센트라고. 무적이라고.

하지만 걱정이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과도한 신체 개조의 여파 때문에 그는 가끔씩 불안정해지기도 하니까. 유피의 얼굴에 다시금 수심이 피어났다. 그랬다. 언젠가 유피는 절체 절명의 위기에 빠진 빈센트를 구해냈던 일도 있었다. 하지만 그 때를 떠올리자 유피는 공연히 의기양양해졌다. 역시 빈센트 옆에는 내가 없으면 안된다구!

클라우드는 우울과 우쭐이 초단위로 교차하는 유피의 옆모습을 신묘한 표정으로 관찰했다. 역시 닌자 마스터. 행동 패턴을 감히 읽을 수 없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그의 정신이 다 흔들렸다.

"유피. 마황의 핵까지 이제 금방이다. 좀 진정하지 그래?"

티파도 맞장구를 쳤다.

"맞아. 만 하루만에 빈센트를 만나는 거잖아? 이럴 때 일수록 의연하게 있어야지."

그녀는 클라우드와 팔짱을 끼고 있었다. 유피는 그 다정한 모습에 공연히 부아가 치밀었다. 그래, 남편 곁을 지키느라 나도 칸셀도 버렸다 이거지. 이제 다 필요없어. 남의 속도 모르고 여유로우시네요? 응? 티파 S. 록하트 여사님?

클라우드도 유피의 걱정과 고뇌를 전혀 알아채지 못하고 티파의 말에만 반응했다.

"응? 빈센트? 그 녀석 만나는데 왜 의연해야 되는데?"

"클라우드는 둔하구나. 당연히 유피가 빈센"

"으아아아랏차차! 무슨 소릴 하는 거야 티파!"

저 바보 부부. 되는대로 지껄이기나 하고. 그야 빈센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진 않았을 테지만. 나도 실은 알고 있거든!

가만.

마황의 핵? 빈센트?

유피가 미간에 주름을 잡았다.

"빈센트? 마황의 핵이 있는 곳에 가면 거기에 빈센트가 있는 거야?"

클라우드와 티파가 눈을 맞추고는 유피를 빤히 쳐다봤다. 왜 그런 걸 굳이 확인하냐는 눈 빛이었다. 유피의 혼돈이 깊어졌다.

"있는데?"

티파의 말에 클라우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유피. 너도 무예가라면 티파처럼 사람의 기척 정도는 느낄 수 있어야지."

"뭐야아?"

나 닌자 마스터 유피가, 사람의 기척을 못 읽어? 그걸 지금 말이라고? 클라우드, 누나 기분이 지금 좀 이상해지려고 해.

유피가 완전히 허를 찔려 있는 동안 칸셀이 슬쩍 다가왔다. 그리고 조심조심 클라우드에게 말을 걸었다.

"아까부터 계속 궁금했는데, 당신 설마 마황의 핵이 어디 있는지 느껴지는 거야?"

이번에는 클라우드가 솔져 클래스 퍼스트가 그런 것도 모르는 거냐는 눈을 하고 되물었다.

"솔져라면 마황에 민감한 게 당연한 거 아닌가?"

못해! 솔져도 장비를 사용한다고!

이 녀석, 만년 반편이에 솔져도 아닌 주제에! 칸셀은 왠지 유피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 녀석 역시 꽤 짜증난다.

그러자 생각치도 않은 티파가 칸셀의 마음에 불을 지폈다.

"그래. 이렇게, 보이지도 않고 무게도 느껴지지 않는데, 흐름에 몸이 쏠려서 밀려나는 것 같은 느낌?"

"역시 티파. 그게 마황. 농축된 라이프 스트림이야."

칭찬하는 클라우드의 얼굴을 마주보며 티파가 배시시 웃었다. 훌륭한 염장 공격이다. 그 모습을 보며 칸셀은 생각했다. 그 자애롭고 따뜻한 티파도 이럴 땐 은근히 열받게 하는 구나.

유피는 가까스로 제 정신으로 돌아왔다. 인간이 맨몸으로 라이프 스트림을 느낄 수 있다는 사실에도 크게 신경쓰지 않기로 했다.

"이제 됐어! 이 바보 부부랑 이야기하다보면 속이 다 뒤집혀!"

칸셀이 크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동감이다."

"누가 바보 부부라는 거야?"

항의하면서도 티파는 왠지 기뻐보였다. 유피는 속이 거북해졌다. 뭐야, 내가 지금 부러워한 것 같잖아. 유피는 내면에서 발생한 감정과 전력을 다해 싸웠다. 하지만 이미 자신은 꺾인 것 같았다. 유피는 차라리 체념하기로 마음 먹었다.

그런 그녀의 입에서 귀여운 한숨이 폭 새어 나왔다.

"그래서? 그 마황의 핵이란 거랑 함께 있다는 빈센트는, 어디 쯤에 있는데?"

티파가 가볍게 거리를 쟀다.

"음... 저 쪽 방향으로- 3킬로미터 정도?"

"3킬로미터!"

유피가 다시 절규했다.

그렇게 멀리 있는 사람의 기척을 어떻게 읽어?! 그걸 못느낀다고 이 사람 같지도 않은 것들이 날 무시해? 오늘 진짜 자존심 상해서 대화를 못 해먹겠네!

티파는 난처하게 웃을 수 밖에 없었다.

"어떻게냐니... 그야."

클라우드가 고개를 끄덕이고 티파의 말을 받았다.

"저렇게 무시무시한 에너지를 내뿜고 있으니까. 나로써는 모르고 넘어가는 게 더 힘들 것 같은데."

그 말에 유피가 번뜩 고개를 들어 클라우드를 올려다 봤다. 그녀의 표정에 약간의 희망이 깃들었다.

"무시무시? 빈센트는 괜찮은거야?"

"괜찮고 말고, 마치 혼자 웨폰이라도 때려잡을 기세야. 설마 걱정하고 있었던 거야?"

"거거거거걱정은 무슨!"

"힘껏 걱정하고 있구만. 빈센트 실력 몰라? 왜 그렇게 빈센트를 못 믿는 거지?"

그 말은 너무나 충격적이고 자극적이어서 유피는 그만 주저앉고 말았다. 심장이 내려앉는 것 같았다.

내가 빈센트를 믿지 못하고 있다?

유피의 눈이 초점을 잃어버렸다.

"내가 클라우드에게 졌어. 그것도 빈센트로. 뭐야. 이거 현실이야?"

"이봐."

"나... 빈센트를 클라우드에게 빼앗기는 거야?"

"이보라고."

"티파! 남편 간수 똑바로 못 해? 뭐냐고 이게!"

"풔. 푸헙프아하하하하하하!"

티파는 도저히 참지 못하고 발작적으로 웃으며 유피의 등짝을 후려쳤다. 감전사할 것 같은 충격. 가히 뇌신의 철퇴. 유피가 무너지며 서러운 신음을 흘렸다. 눈물이 북받혀 올랐다. "빈센트, 얘네가 나 괴롭혀..." 유피는 정신적, 육체적으로 완전히 궁지에 몰려 버리고 말았다. 그런데도 티파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끅끅 거리며 허리를 펴지 못했다. 너무한 사람이다. 정말 심하다. 그로부터 유피가 패배감을 떨쳐 내기까지는 무려 반시간이나 걸렸다.

어쨌든 그들의 예상은 꽤 정확하게 들어맞았다는 것이 곧 밝혀졌다.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들은 이미 마음을 나누고 함께 사선을 건너온 바꿀 수 없는 동료니까.

그리고 그 결과는 최악의 방식으로 나타났다.

.

빈센트는 정신을 집중하고 있었다.

마황의 핵은 당장에라도 터져나올 것 처럼 약동하다가도, 곧 자취를 감출 것 처럼 희미해지곤 했다. 조금만 방심해도 이 존재는 빈센트의 탐지를 벗어나 세상을 향해 쏘아져 나갈 것만 같았다. 빈센트는 방해되는 오감을 차단. 온전히 마황의 흐름에 몰입했다. 시간의 흐름이 애매해지고, 세상과 자신의 경계도 사라져갔다. 그리고 곧 자신의 본능과 마황의 핵만이 남았다.

놓치지 않는다.

다가올 싸움에 대비하며 빈센트가 계속해서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그녀로 인해 세상에 나올 때를 착각한 죽음의 웨폰이, 이제 더이상 활개치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그녀의 죄를, 나의 죄를 더는 쌓지 않으리라.

빈센트는 더욱 힘을 날카롭게 정제했다.

한순간이다. 이 정제한 힘으로 급소를 꿰뚫을 수만 있다면, 마황의 핵- 카오스 웨폰조차 쓰러뜨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것말고는 방법이 없었다. 몇 번이고 노려 주겠다. 이길 수 있는 한, 설사 결국 이길 수 없게 된다 하더라도.

빈센트가 그렇게 다짐한, 바로 그 때였다.

마황의 핵이 요동쳤다. 빈센트는 그 존재가 각성할 때가 도래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인지했다. 이윽고 그 힘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빈센트의 감각이 순간적으로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빈센트의 본능이 최대급의 경고음을 울렸다.

마황의 핵은 이미 각성했다.

빈센트는 바로 등 뒤에서 그 존재를 감지했다.

놈은 산책이라도 하는 듯 평온한 상태로 빈센트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그러나 오감을 차단하고 마황에 대한 감각만을 열어둔 빈센트에게 놈은 경도될 정도의 마황 에너지를 밀어붙이고 있었다. 산이 움직여 다가오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 안에 숨기고 있는 마황은 거의 계측할 수 조차 없으리라.

주저하고 있을 여유가 없었다.

마치 마술처럼 빈센트가 3연장 핸드 캐논- 켈베로스를 꺼내들었다. 그 속도가 너무도 빨라 마치 총이 손에서 돋아난 것 같았다.

지체하지 않고, 탄환에 정제된 힘을 실어 발사. 이어서 약간의 시간차를 두고 연속으로 남은 두 발을 한번에 연사. 오랜 시간을 두고 정제한 힘을 한 순간에 전부 사용한 것이다. 힘을 아낄 상황이 아니었다.

날카롭게 정제된 힘이 켈베로스 탄환에 실려 음속의 세 배에 달하는 속도로 적에게 쇄도했다. 하지만 녀석은 피하지 않았다. 마치 물리 법칙을 초월한 것같은 움직임으로 빈센트가 사용한 모든 공격을 전부 튕겨낸 것이다. 놈은 날붙이를 사용한다. 게다가 그 숙련도가 무시무시하게 높다.

곧바로 놈이 돌진했다. 섬전처럼 이어지는 공격. 고개를 틀고 뒤로 물러서고 총신으로 막아내며 가까스로 재장전. 영거리에서 켈베로스를 연사. 놈은 그것을 전부 피해내며 거리를 좁혀왔다. 틀렸다. 놈의 간격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 속도, 투기, 전투 센스. 빈센트는 초격의 실패에 실망할 여유조차 사치라고 생각했다.

착각이었다.

명백하게, 놈은 카오스 웨폰이 아니었다.

카오스 웨폰과 융합했던 과거의 자신조차 뛰어넘는, 완전히 다른 존재였던 것이다.

.

"빈센트! 정신 차려, 빈센트! 날 알아보지 못하겠어?"

유피가 안타깝게 외쳤다. 하지만 그 목소리는 빈센트에게 닿지 않았다. 금방이라도 달려들 것 같은 그녀를 티파가 막아섰다. 빈센트가 타겟을 바꿔 난전이 시작되면 끝장이다. 클라우드가 그를 놓치면 우선 칸셀은 한 순간도 버티지 못할 것이다. 너무 위험하다. 지금은 클라우드에게 맡길 수 밖에 없다.

빈센트는 그야말로 트랜스 상태에 빠져 클라우드와 대적하고 있었다. 클라우드의 맹공을 아슬아슬하게 피해내며 켈베로스를 재장전하는 재주는 그 자체로 이미 인지를 초월. 검사 쪽이 명백히 유리한 지근거리에서도 타겟을 놓치지 않고 치명적인 공격을 펼쳐내는 전투 감각은 그야말로 턱스 오브 턱스. 날이 없는 검면에 발차기를 넣어 검의 궤적를 일그러뜨리고, 왼팔의 갈퀴같은 손톱을 휘둘러 패악스럽게 반격하는 빈센트에게 사각 따위는 전혀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런 빈센트를 상대로 클라우드는 용서없이 공격을 펼쳐내고 있었다. 이미 합체검의 본체는 내던져 버렸다. 지금 같은 초 근접전에 대검은 필요없었다. 클라우드는 가지고 있는 검 중 가장 가벼운 5번 검과 6번 검, 룬 블레이드를 양손에 쥐고 빈센트와 함께 죽음의 춤을 추고 있었다. 베고, 찌르고, 검을 역수로 바꿔 쥐며 페인트를 넣고, 켈베로스의 총구를 노려 흠집을 내고, 재장전을 방해하며 공격 시간을 늘려나간다. 클라우드가 검의 궤도를 마이크로 컨트롤. 팔의 힘줄과 방아쇠를 쥔 손가락, 아킬레스 건, 눈과 경동맥을 무작위로 공격. 공격 하나 하나가 살인적. 조금 다치더라도 빈센트는 죽지 않는다. 오히려 그 압도적인 재생 능력으로 금새 회복할 것이다. 팔이나 다리 하나 정도는 가져간다는 각오가 없으면, 빈센트는 결코 잡아둘 수 없다. 그리고 그를 묶어놓지 못한다면- 그 이후는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았다. 참극이다.

칸셀은 미드갈의 여덟 영웅 중 쌍벽이 펼치는 그 신들의 싸움과 같은 대결에 경악할 수 밖에 없었다. 클라우드의 실력을 감히 가늠해보려 했다니 생각이 모자랐다.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그는 역대 최강이었던 전설의 솔져를 쓰러뜨린 전사였다.

빈센트는 벌써 수십번이나 탄창을 교환했고, 클라우드의 공격 회수는 300회에 달했다. 클라우드는 이대로 몇 날 몇 일이라도 싸워 주겠다고 다짐했다. 빈센트가 다른 누군가를 해치는 모습 따위 절대로 보지 않을 것이다. 그 전에 반드시 빈센트를 구해내리라.

그러나 빈센트는 이 승부를 오래 끌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빈센트의 왼 팔이 세배로 부풀었다.

그 팔을 그저 휘두른 것 만으로, 음속의 충격파가 내달렸다.

"!?"

클라우드는 그 광포한 공격에 뒤로 밀려나면서도 상황을 냉정하게 파악했다. 물러서면서 땅에 꼽아둔 대검을 회수. 룬 블레이드를 꼽아넣었다. 빈센트가 이제와서 억지로 거리를 벌렸다. 온전한 합체검의 질량과 방어력이 없다면 대응할 수 없는 공격이 올 것이다.

예상대로 날카롭게 정제된 힘이 켈베로스에 맺히기 시작했다. 설마했지만 역시나 이곳에서 처음으로 펼쳐낸 3연사 공격을 재차 사용할 셈이다. 빈센트는 그 숨가쁜 공방 속에서도 힘을 아끼고 정제했던 것이리라. 정말이지 괴물같은 녀석이다.

목숨을 건 싸움의 상대로써, 부족함이 없다.

클라우드는 사선에 동료가 위치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이동했다. 켈베로스는 조용히 클라우드의 움직임을 따라왔다. 빈센트가 흔들림없이 자신을 겨냥하는 모습에 클라우드는 오히려 평온함을 느꼈다. 그걸로 됐다. 이제 유탄이 동료들을 위협할 일은 없을 것이다.

그래, 원한다면 어울려 주지.

체내의 힘을 정제해 탄환에 실어 발사하는 빈센트의 3연사는 이미 봤다. 총구의 방향을 정확히 인지하고 격발 타이밍만 읽어낸다면 음속보다 빠른 탄환도 쳐낼 수 있다. 전부 간파하고 반격에 나설 것이다. 이번에야말로 한 방 먹어주리라.

클라우드는 각오를 굳혔다.

이제 빈센트가 방아쇠를 당기는 그 순간, 이 대결이 끝날 것이다.

승부다, 빈센트.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미소가, 클라우드의 입가에 걸렸다.

.

티파는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클라우드와 빈센트의 대결을 지켜 봤다. 곁에 있는 유피도 날뛰지 않게 되었다. 칸셀은- 아마도 이런 싸움은 처음 경험하고 있을 것이다. 티파는 칸셀을 감각의 영역 안에 넣은 채로 만약의 사태에 대비했다.

곧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게 되었다. 바람조차 완전히 멈춰 있었다. 마치 온 세상이 그 둘의 대결을 숨죽여 관전하고 있는 것 같았다.

둘의 대치가 끝없이 이어졌다.

이대로 영원같은 시간이 흘러갈 것 같았다.

그리고 아무런 조짐도 없이 켈베로스가 초탄을 토해냈다.

그러나 클라우드는 그 순간을 정확하게 포착. 넓은 검면을 비스듬하게 세우고 아래에서 위로 휘둘러 에너지탄을 받아내며, 탄환의 궤도를 비틀었다. 이어서 폭발하듯 덮쳐오는 소닉붐을 억지로 버텨내고, 바로 다음 순간 코 앞까지 도달한 두번째 탄환을 눈에 보이지도 않는 속도로 내려 베어 두동강 낸다. 가히 신의 기술. 하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다. 다음 순간 땅이 폭발. 클라우드가 지면을 박차고 돌진한 것이다.

티파가 주먹을 꽉 쥐었다.

클라우드는 마지막 탄환을 돌진하면서 베어낼 생각이다. 그리고 바로 빈센트와 결착을 지을 심산이다. 음속의 세 배를 넘는 탄환을 눈앞에 두고 목숨을 담보로 한 상식 파괴는 클라우드 밖에는 시도해내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빈센트는 턱스 오브 턱스라고 까지 불렸던 에이젼트였다. 그는 냉철했다. 클라우드를 알아보지 못하고, 유피의 목소리를 잡아내지 못한 것이 이상할 정도로. 클라우드가 허를 찌르려 할 때 이미 빈센트는 허를 찌를 준비를 마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클라우드의 그것만큼 리스키하고 어려운 작업이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턱스 답게. 어렵고 복잡한 상황일수록 일수록 가볍고 쉽게.

빈센트의 세번째 공격은 탄환이 아니었다. 그것은 왼손으로 던진 비수였던 것이다. 그 엇박자 공격에 클라우드의 합체검이 목표를 잃고 조금 흔들렸다. 치명적인 오차였다. 비수는 겨우 쳐냈지만 그와 거의 동시에 도달한 켈베로스의 마지막 탄환이 클라우드에게 작렬했다. 파공음. 탄환이 사람을 꿰뚫는 소리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컸다. 클라우드가 간신히 검을 들어올려 머리가 꿰뚫리기 직전에 탄환을 막아낸 것이다. 하지만 흘려내기에는 역부족. 순간적으로 검에, 클라우드의 팔에, 그리고 전신에 어마어마한 압력이 내달렸다.

"...!!"

그 직후 티파가 감지한 것은 그녀 방향으로 조각 조각 분리되며 튕겨져 날아오는 클라우드의 합체검. 티파에게 직접 날아오는 3번 검 버터 플라이엣지를 걷어차고, 칸셀에게 떨어지는 퍼스트 츠루기를 회수. 아무렇게나 흩어지는 나머지 검들은 방치.

티파의 단정한 시선은 그 와중에도 클라우드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가, 클라우드.

계속 가는 거야.

티파의 속 마음이 전해진 것일까. 클라우드의 본능은 무기를 봉쇄당한 그 절망적인 상황에서 공격을 선택했다. 검을 놓친 그 기세를 스스로 회전하여 상쇄. 동선이 비틀려진 그대로 빈센트에게 돌진.

그 클라우드의 대담함에 티파는 미소지었다.

그래. 초조해하지 않아도, 할 수 있어.

이제 뭘 해야할 지는- 알고 있지?

다음 순간 클라우드는 빈센트가 전혀 대응할 수 없는 간격까지 파고들었다. 빈센트는 다가올 충격에 대비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했다. 클라우드의 레프트 보디 블로우가, 빈센트의 단단한 복근을 뚫고 내장을 그대로 헤집어 버릴 것 같은 기세로 꽂혀 들어온 것이다. 빈센트가 차단해둔 통각을 억지로 살려낼 정도의 막대한 충격. 빈센트의 상체가 90도로 접혔다.

멈추지 마, 클라우드. 멈추지 마!

티파의 생각 그대로. 조금의 시간차도 두지 않고, 클라우드의 오른손의 장타가 빈센트의 명치에 깊숙히 박힌다. 그대로 한 발 나서면서 팔을 굽혀 만든 왼팔꿈치가 인중을 가격. 연거푸 급소를 공략당한 빈센트가 비틀거렸다. 클라우드가 그대로 팔을 펼치며 회전. 레프트 백너클을 빈센트의 관자놀이를 함몰시킬 기세로 쑤셔 넣는다. 마지막으로, 백너클에 튕겨나간 빈센트의 머리에, 여세를 몰아 펼쳐낸 왼쪽 상단 돌려차기. 클라우드가 혼신의 힘을 담아낸 마지막 공격이 빈센트가 무의식적으로 펼친 가드를 부수며 목을 부러뜨릴 것 같은 속도로 날아들었다.

굉음.

빈센트는 몇 번이나 회전하며, 하늘을 바라보는 자세로 쓰러졌다. 그 치명적인 공격을 자아내던 날붙이를 잃고서 이런 공격이라니. 빈센트는 자신이 실패했다는 것을 인지하면서도 오히려 차분해 지는 것을 느꼈다. 그의 힘이 미치지 못함을 알았기 때문일까. 아니면 오래간만에 자신을 완전히 압도하는 상대를 만났기 때문일까. 빈센트의 눈이 천천히 감겼다.

정작 공격한 클라우드도 무사하지는 못했다. 한 순간에 모든 기력을 쏟아 부어버린 클라우드도 무너지듯 무릎을 꿇었다. 힐끗, 누워있는 빈센트에게 시선을 던졌다.

빈센트는 완전히 혼절해 있었다. 그러나 호흡은 평온 그 자체. 생명에 지장은 없으리라.

상황이 끝났음을 확인한 클라우드가 쏟아지는 피로와 전율적인 승리감 속에서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역시, 아무리 그래도 티파처럼 여유있게는 못하는 구나."

클라우드는 그 기나긴 투쟁의 시간 속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강적을 쓰러뜨리고서도, 그렇게 자평하는 것이었다.

.

"빈센트!"

클라우드가 겨우 한 숨 돌리고 있는데, 갑자기 훅 유피가 솟아올랐다. 그렇게 밖에 표현할 길이 없었다. 아, 깜짝 놀랐다.

"이봐 유피. 좀 조용"

"빈센트! 빈센트! 빈센트으!"

유피는 클라우드를 쳐다보지도 않고 빈센트를 안아 올렸다.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유피. 빈센트는 괜찮아."

"괜찮긴 뭐가 괜찮아! 사람을 이렇게 떡으로 만들어놓고! 당신 힘조절도 몰라? 이 얼굴 좀 보... 라고."

하지만 빈센트의 초 회복 능력은 정신을 잃은 상태에서도 변함이 없었다. 그리고 회복을 마친 빈센트의 얼굴은 신이 만든 피조물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아름다웠다. 유피는 빈센트의 잠든 얼굴을 완전히 홀려 있는 눈 빛으로 바라봤다.

그제야 클라우드는 이해했다.

아, 그랬군. 그래서 그렇게.

클라우드가 둘을 멍하게 바라보고 있을 때 등 뒤를 따뜻하게 감싸주는 사람이 있었다. 이 향기. 이 감촉. 절대로 착각할 수 없었다.

"티파."

"수고했어, 클라우드. 멋있었어."

티파가 클라우드의 목덜미에 가볍게 키스하면서 말했다. 그 부드러운 감촉에 클라우드는 살아있다는 감각이 들었다.

"무서운 상대였지만 어떻게든 됐군. 전부 티파 덕분이야. 그 때 티파와 겨루지 않았더라면 이길 수 없었을지도 몰라."

"문제가 뭐였는지, 이제 좀 알 것 같아?"

클라우드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아니, 실은 아직도 잘 모르겠어. 마지막에 흉내낸 티파의 기술도 완전히 이판사판이었고. 생각보다 잘 돼서 나도 모르게 가슴을 쓸어내렸을 정도야."

클라우드가 한심한 미소를 흘렸다. 그러나 그것은 티파를 두근거리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러니까 앞으로도 곁에서 가르쳐 주겠어? 한심하게도 내가 요령이 없어서 말야. 뭐든 하라는 데로 할테니까. 안될까?"

티파가 활짝 웃었다. 왠지 두 번째로 프로포즈를 받은 것 같은 느낌에 행복해진 티파가 클라우드의 목을 와락 껴안았다.

"안되긴! 대신 내 말만 들어야해? 록하트류 인생법은 독문절기에 타자불출이야. 다른 사람이 끼어들면 무효! 알았어?"

"하하하. 이제와서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클라우드가 고개를 돌려 티파에게 가볍게 키스했다.

"그거야 당연하지. 그 정도는 결혼하기 아주 오래 전부터 이미 그랬는 걸?"

티파가 온 얼굴로 웃었다. 달아오른 그녀는 참지 못하고 다시 클라우드의 입술을, 혀를, 타액을 훔쳤다. 곁에 있는 유피나 칸셀은 안중에도 없는 행동은 다른 일행들이 완전히 학을 떼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일행 중에는 빈센트도 있었다.

"과연."

빈센트가 상체를 완전히 일으켰다.

"클라우드가 그토록 강했던 이유를 알 것 같군. 웨폰으로 착각해버린 것도 무리는 아니었어."

"빈센트! 괜찮아? 정신 차렸어?"

유피가 빈센트의 머리를 품에 안았다. 빈센트는 의외로 그런 유피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부드럽게 답했다.

"미안했다 유피. 걱정을 끼쳤다."

"아니야 빈센트. 아니야."

그리고 유피는 그 후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간헐적으로 멍청하게 웃으며 "응후후~" 빈센트 곁에 찰싹 붙어 있었다. 얼굴에는 이미 미소가 돌아왔고, 장난기 서린 눈동자에도 반짝반짝 생기가 돌았다. 거의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 클라우드는 어이가 없었다. 나와 티파도 다른 사람에게는 저렇게 보일까.

그건 그렇고.

클라우드가 진지한 얼굴로 빈센트를 바라봤다. 티파도 분위기가 바뀐 것을 느끼고, 클라우드의 등에서 떨어져나와 그의 곁으로 이동해 앉았다.

"빈센트."

"클라우드."

"설명을 부탁해도 될까?"

"물론이다. 그전에."

빈센트가 고개를 숙였다.

"아까는 미안했다. 날 막아줘서 고맙다."

클라우드가 흐릿하게 미소를 지었다.

"괜찮아. 다친 사람도 없고."

빈센트도 마주 웃었다.

"그렇군. 설마하니 내가 찰과상 하나 입히지 못하다니. 대단한 일이야."

"한방이라도 맞았다면 죽었겠지만 말이지."

"하하하. 그리 겸손할 필요 없다."

빈센트는 오히려 다행이라는 듯이 덧붙였다.

"난 네 힘을 보고 희망을 느꼈으니까. 이 상황을 타개할 희망을."

"역시 아직 끝나지 않은 건가."

"시작조차."

빈센트의 선언에, 티파는 문득 떠올렸다. 이곳에 도달하기 전에 빈센트가 발하던, 웨폰이라도 상대할 수 있을 것 같던 에너지를.

티파가 조심스럽게 확인했다.

"빈센트. 아까 분명히 웨폰이라고 했지. 클라우드를 웨폰으로 착각했다고."

빈센트가 고개를 작게 끄덕여 긍정했다.

"바로 그렇다."

그 무거운 선언은 모든 사람이 빈센트에게 집중하게 만들었다. 카오스 웨폰. 지금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상대. 평화로운 삶이란 이렇게나 어려운 것일까. 안타까움에 클라우드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티파는 그런 클라우드의 손을 조용히 맞잡아 주었다.

 

posted by nameless7777 2016. 7. 6. 15:18
차라리 그 사건의 원흉이 제노바의 심장이었다면 좋았을 텐데.

실은 그것이 솔직한 심정이었을 것이다. 제노바의 세포와는 몇 번이고 겨뤘고, 이제와서 질 만한 요소는 없었으니까.

하지만 클라우드의 본능은 그것이 지나친 낙관론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준비해야 한다.

더 강해져야 한다

티파와- 계속 함께 하기 위해서.

여행에서 돌아온 클라우드는 바로 트레이닝을 시작했다.

그리고 처음부터 문제에 봉착했다. 클라우드는 연습을 해본 일이 없었다. 검을 휘두르는 법은 전부 아류. 클라우드의 검은 전부 실전에서만 습득한 것이다. 무예로써의 검은 배워본 일도, 닦아본 경험도 없다.

클라우드는 자신이 실은 무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인지했다. 하지만 멈춰있을 수는 없었다.

처음 일주일은 무작정 검을 휘둘렀다. 먹지도 쉬지도 않고 수십 시간을 연습에 몰두한 날도 있었다. 그리고 클라우드는 몸을 혹사시키는 방식이 자신에게는 전혀 통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체내에서 생성되는 마황이 끊임없이 체력을 활성화시키고 있었다. 처음으로 클라우드는 마황이 수련을 방해하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대로 강해지는 것은 불가능한 일처럼 여겨졌다.

시간이 얼마나 남아있는지 알 수도 없는 상황에, 완전히 시간 낭비를 하고 말았다. 그렇게 생각한 클라우드는 수단을 가리지 않기로 결심했다.

클라우드는 마황로의 원리를 응용해서 한계까지 자신의 마황을 적출하고, 탈진 직전까지 수련에 매진했다. 적출한 마황은 신경독 치유를 위한 촉진제로써 바렛트에게 전달했다. 마침 공장 시운전 시기였다. 중독자가 다발할 시점이기에 클라우드의 마황은 치료에 큰 도움이 될 수 있었다. 그로 인해 바렛트도 괜한 걱정하게 만들었지만, 거기까지 신경 쓸 여유는 없었다. 클라우드도 필사적이었다. 초조함을 느끼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였다.

하지만 티파는 단 한 번의 대련으로 클라우드의 방식이 잘 못 되어 있다는 것을 일깨워 주었다. 새삼스러운 이야기였지만 티파는 강했다. 창촐간에 온갖 생각이 교차했다. 역시 들켰다. 티파는 전부 알고 있었구나. 한심하다. 또 틀렸다. 난 더 이상 강해질 수 없는 건가. 어리석었다. 이렇게 약해진 상태에서 적이 습격하면 어떻게 할 셈이었나. 클라우드는 길을 잃었다. 혼란스러웠다.

티파는 그런 클라우드의 고뇌를 한마디로 일축했다.

클라우드는 생각이 너무 많아.

내 허가가 있을 때까지 검은 잡지 마.

그 이후로는 검은 건드리지도 못하고 한달이 흘렀다. 티파의 의도대로 그 동안에는 아무 생각도 없이 지냈던 것이다. 곧 마황도 전부 회복했다.

그러나 신기한 일이었다. 언제부턴가 클라우드는 전혀 불안함을 느낄 수 없었다. 루퍼스의 의뢰를 받을 때에도 전혀 초조하지 않았다. 티파의 말처럼 생각이 너무 많았던 것일까. 클라우드는 영문을 알 수 없었다.

한 가지 흔들리지 않는 사실이 있었다.

이 모든 것은 티파의 덕택이다.

티파의 말대로 하면, 문제없다.

나는 이 얼마나 행운아인가.

지금은 그저 등 뒤로 느껴지는 티파의 온기를 느낄 수 있는 것으로 충분했다.

아니, 아니다.

클라우드가 돌연 펜닐을 멈추었다.

클라우드의 등에 얼굴을 파묻고 있던 티파가 고개를 내밀었다.

"클라우드.. 무슨 일 있어?"

"3분."

"응?"

"3분 정도.. 늦어도 큰 문제는 없지 싶어서."

"응?"

티파는 이야기의 맥락을 따라가지 못했다. 그러나 곧 알 수 있게 되었다. 언제부턴가 그들은 말보다 행동을 보이는데 더 익숙해졌다.

그러나 클라우드가 키스를 마칠 때 까지는 예상보다 7분이나 더 걸렸다.

.

목적지에 도착했다.

때를 같이 해서 마황의 흔들림을 감지. 곧 병장기가 부딪히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감지되는 인원은 두 명.

상대는 고위험군 몬스터. 다수.

클라우드가 펜닐의 속력을 올렸다. 티파가 가볍게 투덜거렸다.

"정말. 그러게 3분만 했으면 괜찮았잖아."

"할 말이 없군. ..유피에게는 비밀이다."

"당연하지. ..아앗! 맞아! 유피!"

"왜 그래?"

"아무 것도 아냐. 유피를 반드시 안전하게 확보하는 거야."

"?"

당연한 이야기를 왜 하는 거야? 하지만 이를 되물을 시간은 없었다. 육안으로 유피와 조사단으로 추정되는 무리를 확인한 것이다.

유피는 건재.

그녀는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느긋한 움직임으로 적의 급소를 차례로 공격하고 있었다. 적의 시야와 사각을 계산해서 전장 한 복판에서 모습을 숨긴다. 그야말로 닌자 마스터의 기술. 베히모스조차 부지불식간에 유피에게 경동맥을 따이고 일격에 격침당했다. 그러므로 난전 속에서 유피의 안전을 우려하는 것은 불가능. 아군의 위험이 그녀의 위험일 뿐이다. 그녀가 무리하기 시작할 테니까.

그러므로 문제는 조사단 쪽이다.

총 3인. 아니, 그 중 둘은 인간이 아니었다. 아마도 루퍼스 컴퍼니의 자동 인형 병기. 크기는 약 3 미터. 두터운 장갑판으로 둘러 쌓여 있는 백병전 지원기로 보였다. 거대한 배틀 액스를 내려치는 힘은 6개월전에 티파와 함께 쓰러뜨린 철거인에 필적. 공간을 선점하는 기민함이나 레드 드래곤의 공격을 어렵지 않게 받아내는 장갑판은 그 이상. 그런 괴물이 2기.

이를 지휘하는 것은 경검사. 체형을 보건데 여성. 이렇다할 방어구 하나 없는 가벼운 복장에서 몸놀림에 대한 자신감이 읽혔다. 과연 움직임이 빠르고 부족함이 없어 움직임이 재빠른 몬스터의 공격도 그녀는 무리 없이 회피해냈다. 무기는 특징이 없는 롱소드였지만 공격력에도 불안함은 없었다. 주로 인형 병기의 공격으로 자세가 흐트러진 몬스터의 급소를 날카로운 검기로 일격에 꿰뚫는 연계를 통해 적의 숫자를 줄여나가고 있었다. 매끄러운 연계를 고려할 때, 인형 병기는 경검사의 지시를 받아 움직이고 있는 것 같았다. 정보 전달 매체는 얼굴을 가리고 있는 바이저일까.

두 사람은 더 할 나위 없이 매끄럽게 전투를 수행하고 있었다. 갑작스러운 난입은 오히려 밸런스를 무너뜨릴지도 모른다. 클라우드는 충분히 멀리 떨어진 곳에 펜닐을 정차시켰다. 수신호로 티파와 의견을 교환. 자세를 낮추고 신속하게 전장으로 이동한다.

목표는 전방의 드래곤의 머리. 티파가 소리 없이 클라우드의 넒은 검면을 딛고 날아올랐다. 드래곤의 머리를 발 뒷꿈치로 강타. 1톤은 족히 넘을 것 같은 드래곤의 머리를 땅바닥에 처박았다. 몸을 가누지 못하는 용에게 다가간 클라우드가 목에 일섬. 한순간에 머리를 잃어버린 드래곤은 그대로 절명. 아군조차도 눈치채지 못한 기습에 몬스터들은 대혼란. 그리고 유피가 반가운 목소리를 냈다.

"티파! 어서와!"

"유피! 얼른 정리하자!"

난 보이지도 않는 거냐. 클라우드는 쓴 웃음을 짓고 언제나처럼 합체검에서 2번 검 오거닉스를 분리. 방어력이 높아 보이는 적을 위주로 섬멸하기 시작했다. 이 정도의 멤버가 모였다. 고 위험군 몬스터 집단이라 해서 두려워할 요소가 없었다.

전투는 곧 끝났다.

피해는 없었다.

.

"유피! 동료의 사생활을 팔다니! 그러고도 무사할 줄 알았어?"

"으읏! 벌써 들켰나! 루퍼스 입 가벼워!"

"유피이이이이이이!"

"으앗! 오지마!"

"일단 한 대 맞자!"

"말도 안돼! 세상에서 삭제된다고!"

그렇군. 범인은 유피였나. 티파가 한 발 먼저 떠올린 것이겠지. 아무래도 유피는 피로연 때 구석에 티파를 끌고 가서 이것 저것 자세한 이야기를 들었던 것 같았다. 술에 취한 티파가 전부 불어버렸겠지. 적은 항상 내부와 알콜에 있는 법이다.

결국 티파에게 붙잡힌 유피가 필사적으로 죄를 뉘우치고 있었다. 저건 뿌리치지 못하지. 클라우드는 유피의 무사함을 빌며 경검사- 루퍼스의 에이젼트에게 다가갔다.

"조사단의 리더, 인가."

그녀가 짧게 대답했다.

"그래."

"무사해서 다행이다. 나는."

"클라우드 스트라이프. 이제 됐지? 그만 임무로 돌아가게 해줘."

노골적인 적의. 루퍼스가 말했던 것이 이것인가. 클라우드는 모르는 척 확인 작업을 시작했다.

"클라우드 L. 스트라이프다. 의뢰주의 이름 정도는 똑바로 기억해 줬으면 좋겠군. 당신은."

그녀가 내뱉듯이 답했다.

"칸셀."

"칸셀? 어디선가 들어본 이름인데. 우리 혹시 구면이던가?"

"핫. 반편이 주제에 나한테 작업거는거야?"

"거기까지만 하지. 티파에 대해서도 알고 있겠지? 말해두는데 아내가 들으면 당신 죽어."

그리고 나도 죽는다. 이건 위협이 아니다.

"흥."

마침 티파가 유피와 딱 달라붙어 팔짱을 낀 채 돌아왔다. 언제 화해한 거지? 분위기를 봐서는 방금 칸셀의 비아냥은 못 들은 것 같다. 못 들었기를 바란다. 칸셀은 사태의 심각성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조금 위험한데. 지금 같은 발언이 또 나온다면 끝장이다.

클라우드는 표정을 무너뜨리지 않은 상태로 화제를 전환시켰다. 초인적인 포커 페이스였다. 이 어빌리티로 클라우드는 몇 번이나 사선을 넘었다.

"이야기를 되돌리지. 의뢰는 이상 상태가 일어난 장소를 특정짓는 것 뿐이다. 어째서 귀환하지 않았지?"

"어째서 당신에게 그런 걸 설명해야 하지?"

"루퍼스 신라가 이틀 전에 헬퍼들을 보냈을 텐데. 우린 그 두 번째다. 협조를 부탁하지."

"그 냉혈 도련님이 그렇게 까지 심장이 약할 줄은 몰랐군."

동감이다. 클라우드가 어깨를 으쓱였다. 칸셀이 해명을 시작했다.

"통신이 끊길 정도로 강력한 마황을 관측했다. 명백한 비상 사태였지. 원인도 규명하지 못한 채 귀환할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클라우드는 납득하지 못했다.

"72시간 동안이나 연락을 두절시키고 말인가?"

클라우드가 상황을 정리했다.

"당신, 솔져지? 그 실력, 클래스 퍼스트라고 봤다."

칸셀이 약간 놀랐지만 이내 비아냥 거렸다.

"흥. 눈이 단추 구멍은 아니군. 하고 싶은 말이 뭐야?"

"72시간의 공백은 분명 탈주에 해당한다. 탈주는 퍼스트 클래스에 있어서 중죄 중의 중죄. 취급하는 정보의 급이 다르기 때문이다. 사안에 따라서 처분 명령조차 하달될 수 있어. 어째서 그런 위험을 감수한 거지?"

칸셀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핫! 정말이지 반편이 주제에 말 한 번 잘하네. 누가 들으면 진짜 솔져 인 줄 알겠어."

그 말에 티파가 발끈했다.

"뭐야? 당신, 도와주러 온 사람한테-"

"웃기지 마. 난 도와달라고 하지 않았어. 내가 무사한 것은 확인했지? 미션 컴플리트야. 돌아가."

유피가 참지 못하고 끼어들었다.

"칸셀! 당신 왜 그래? 그런 거 당신 답지 않아! 지금 이 둘이 필요하다는 거 누구보다도 당신이 제일 잘 알잖아?"

칸셀이 코웃음쳤다.

"흥. 틀렸어. 이 녀석 도움 만큼은 필요없어."

그녀가 검을 들어 클라우드의 미간을 겨냥했다. 남은 거리는 10 센티미터 남짓. 그러나 클라우드는 평온했다. 그녀의 검은 이미 봤다. 물론 초일류지만, 그녀에게는 단 한 줄의 찰과상도 허용할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완전히 이성을 잃어버린 사람이,

한 명.

그 사람이 칸셀의 검을 손가락으로 잡았다.

"이 이상은 못 참아."

티파가 웃었다. 하지만 눈이 웃고 있지 않았다. 칸셀이 약간 움찔했지만 곧 태세를 정비했다. 그리고 힘껏 지뢰를 밟았다.

"제 3자는 빠져. 이건 나와 클라우드가 풀 문제야."

티파의 고운 눈썹이 약간 흔들렸다. 클라우드는 새파랗게 질렸다.

"당신과, 클라우드?"

얼음장같은 날카로운 투기.

"제 3자?"

공기에 찔려 죽을 것 같은 살기.

칸셀의 뇌가, 심장이, 온 몸의 세포가 위험을 경고했다.

"당신, 죽을래? 어디서 수작질이야?"

티파가 손가락에 힘을 준다.

꾸드드드드드득.

티파의 가죽 장갑이 마찰음을 내기 시작했다. 뭐야? 설마 이 여자, 솔져용으로 제련된 검을? 손가락으로? 농담이지? 그 상상이 말도 안된다고 생각하면서도, 낭패를 느낀 칸셀이 검을 회수하려 했다. 그러나 검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조금도.

티파가 힐끔 검을 보고 다시 칸셀의 눈을 바라보았다.

"위대하신, 솔져 클래스 퍼스트?"

칸셀은 이미 완전히 압도되었다.

"내가 언젠가 신라 빌딩에서 어떤 빌어먹을 매드 사이언티스트의 관을 짰던 적이 있었거든. 그 때 당신같은 걸 몇 명 박살냈을 것 같아?"

클라우드는 전혀 끼어들지 않았다. 아니, 끼어들 수 없었다. 도발은 네가 했으니, 수습도 네가 해라, 칸셀.

"클라우드. 저 여자랑 눈 빛 교환하면 혼날 줄 알아."

클라우드는 지체하지 않고 몸을 아예 뒤로 돌려버렸다. 이제 칸셀의 검끝은 클라우드의 뒤통수를 향하게 되었다. 물론 위험은 털끝만큼도 느껴지지 않았다.

"대답."

"아, 응. 나 뒤로 돌았다고."

"좋아."

티파가 다시 시선을 되돌렸다.

"칸셀? 저 인형 병기라도 움직여 보지? 뭐, 회사 기물 파손 시말서 같은 게 있다면 내가 써줄게. 어짜피 당신은 앞으로 식사를 옆구리로 하게 될테니까."

티파가 손에 더욱 힘을 주는 것이 느껴졌다.

"감히, 누구에게 칼을 겨누는 거야?"

검이 깨진다. 이제 정말로 깨진다.

그것 만큼은 절대로 막지 않으면 안된다.

여기까지다.

"미안. 무례를 사죄하겠어."

칸셀이 검을 놓고 물러나 무릎을 꿇었다.

"그 검은 굉장히 소중한 거야. 전부 설명해줄게. 따로 궁금한 것까지 전부. 그러니까 제발."

검을 부수지 말아줘.

칸셀이 머리를 깊이 숙였다. 그러나 티파는 투기를 풀지 않았다. 싸늘한 눈이 투항한 병사를 내려다 본다. 냉정하게 식은 머리가, 방금 것이 클라우드를 향한 단순 무력 도발이었다는 것을 간파해 냈다. 대충 등을 맡길 상대의 실력이라도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겠지. 그녀의 모든 언동이 진심이었던 것은 아니었으리라. 하지만 뜨겁게 달아오른 심장이 칸셀을 용서하는 것을 방해했다.

그런 티파를, 클라우드가 조심스럽게 제지했다.

"티파. 그 검을 돌려줘. 그건."

그는 소중한 것을 바라보는 눈을 하고 있었다.

"친구의- 잭스의 유품이야."

잭스.

잭스 페어.

그 이름이 가진 무거움에, 드디어 티파가 검을 쥔 손가락에 힘을 풀었다.

살았다.

잭스의 유품이 안전하게 지켜졌다

그러나 평화는 곧 깨졌다. 우연히도 클라우드와 칸셀이 동시에 한숨을 내쉼으로써 티파가 발을 굴러 국소 지진을 초래하게 만든 것이다. "아, 그래, 환상의 팀웍 나셨어, 그치?" 그 파급력은 마치 자연재해. 그야말로 타이탄의 분노.

공포에 질린 칸셀이 머리를 다시 조아린 것은 말할 필요도 없으리라.

.

일행은 함께 클라우드의 마황 감지 능력을 나침반 삼아 마황의 핵을 향해 이동하고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안정을 되찾은 클라우드는 유피에게 빈센트의 행방을 물었다. 그가 말한 '혼돈'에 대해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빈센트는 그렇게 일방향 통신을 보내고 나서 그대로 사라졌어. 그 혼돈인가 뭔가를 감지한 게 아닐까? 나도 몰라."

유피는 약간 토라진 것 같았다. 클라우드의 민감한 청각은 유피의 중얼거림도 포착했다. '이렇게 귀여운 일행을 내버려 두는 게 말이 돼?' 그리고 티파에게는 유피를 이해하는 것에 그런 청각은 필요없었다. 그녀는 자애로운 미소를 지은 채 유피의 등을 토닥였다. 유피는 앙탈을 부리면서도 "아 진짜 나 이제 애기 아니거든? 스무살 됐거든?" 티파의 손길을 거부하지 않았다.

언제나의 티파로 돌아왔다. 정말 다행이다. 클라우드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클라우드가 칸셀- 잭스와 수차례 임무를 수행하곤 했던 솔져의 이름을 떠올리는 것이 조금만 늦었더라면, 잭스의 두 번째 검은 손잡이만 남게 되었으리라. 그랬다면 분위기는 결코 지금 같지 않았을 것이다.

그 칸셀은 클라우드에게서 가장 멀리 떨어져서 걷고 있었다.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지만, 그녀의 사회성이 그렇게 유도했다고 해야 할까. 그녀는 이 기묘한 일행의 지배자가 누구인지 정확히 인지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발생한 피해는 거대했다. 그녀는 심문 과정에서 클라우드에게 관심이 없음을 증명하기 위해 지극히 개인적인 사항까지 모조리 토해내야 했다. 그래서 '키는 6피트 이상, 근육질 몸매에 흑발인 남성'이 취향인 칸셀은, 그 진정성있는 고백을 통해 일행에 합류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다만 그 과정에서 티파는 칸셀이 잭스를 짝사랑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채고 말았다. 실은 알아채지 못하는 것이 이상했다. 심지어 그녀는 잭스가 남긴 검을 가지고 있었고, 이를 보호하기 위해 자존심까지 내던졌으니까.

칸셀이 연모하던 사람이,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지켜내고 죽었다. 그런데도 자신은 사소한 질투심을 견디지 못하고 칸셀에게 과도한 폭언을 내뱉고 말았다. 그리고 티파는 표정을 숨기지 못하는 종류의 사람이었다.

칸셀은 그런 그녀의 침울한 표정을 보면서 티파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을 완전히 걷어냈다. 칸셀은 모든 것을 알아채고도 섯불리 자신의 과거나 감정을 건드리지 않는 티파가 고마웠다.

실은 방금의 상황에서 아무도 다치지 않고 끝난 것은 온전히 티파의 공이다. 의도했든 그렇지 않았든 그녀가 칸셀을 지켜낸 것과 마찬가지다. 그대로 클라우드와 일전을 벌였다면 그냥 끝나지는 않았을 테니까. 실제로 그녀가 한 일은 칸셀의 검을 잡고 놓아주지 않은 것이 전부였다. 티파는 분노를 눌러 삼키며 끝내 칸셀에게 손을 대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 선한 사람에게, 오히려 내가 개인적인 욕심- 잭스가 살아있었다는 증거를 시험하고 싶다는 명목으로 너무 심한 짓을 해버린 것이 아닐까.

칸셀은 티파의 기분을 풀어주기로 마음먹었다.

"옛날 이야기야. 미즈 록하트. 난 다 잊었어. 게다가 이렇다할 일도 없었으니까."

칸셀이 웃으며 티파를 다독였다.

"그 자식, 내가 몰래 휴가까지 맞춰서 해변에 찾아갔는데 그냥 스쿼트만 하더란 말이지. 진짜, 제 정신이야? 난 수영복까지 챙겨 입었는데."

티파는 날카롭게 고개를 돌려 클라우드의 신발을 바라봤다. 하지만 그녀가 웃음을 참고 있다는 걸 숨길 수는 없었다. 칸셀은 승기를 잡았다. 거의 다 됐다.

"게다가 임무 핑계를 대고 그 자식 부모님을 찾아가서 점수도 땄는데 말야. 결국 아들의 신부가 되어 달라는 이야기까지 들어버렸는데 말야! 좀 머리가 모자라지만 본성은 선하다면서. 그런데도 그 자식은 부모님 말상대해줘서 고맙다는 이야기나 하고 앉았고. 바보 아냐?"

"쿽"

티파가 매우 괴상한 소리를 냈다. 성공했다. 이런 과거 이야기가 이제와서 부끄러울 것도 없었다. 그래. 괴로운 이야기가... 아닌 것이다.

그러니까 괜찮다.

"흠?"

하지만 칸셀은 곧 일행이 모두 멈춰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클라우드와 유피는 몇 걸음 앞선 곳에 등을 돌리고 서 있었다. 앞으로의 진행 방향을 점검하고 있는 것일까? 곧이어 칸셀은 티파가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는 것을 눈치챘다. 기대와는 달리 그녀의 기분은 전혀 풀리지 않은 것 같았다. 고운 아미를 잔뜩 찌뿌리고, 당장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얼굴로,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칸셀이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미즈 록하트?"

주제넘는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티파는 나서지 않을 수 없었다.

"칸셀."

"응?"

"이리와 칸셀."

티파가 손을 뻗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칸셀은 티파의 목소리가 너무 감미로워서, 티파의 손를 거절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칸셀은 순순히 그녀의 품에 안겼다. 자신의 행동에 의문을 느끼면서도 칸셀은 티파의 포근함을 거부할 수 없었다.

그러다가 칸셀은 갑자기 깨달았다.

아,

그렇구나.

난 지금 울고 있구나.

"미즈... 난..."

"쉬이이. 티파면 돼."

"티파... 나... 그 자식이... 보고 싶어..."

"응."

"잭... 왜 죽었어... 내가... 얼마나...!"

그 동안 그에 대한 감정은 다 버렸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오만이었을 뿐이었다. 칸셀은 그렇게 한참 동안 티파의 품안에서 오열했다.

티파는 그런 그녀를 아무 말 없이 안아주었다.

posted by nameless7777 2016. 7. 1. 16:48
쳉은 가게 내부의 시장통 같은 분위기에 눈살을 찌뿌렸다.

"이런 날까지 장사를 할 필요가 있는 건가."

쳉은 느긋하게 등 뒤를 따르고 있는 고용주, 루퍼스 신라의 눈치를 살폈다. 정확하게는 기척이다.

그랬다.

턱스의 주임은 너무도 유능해서 기척만으로 사장님의 기분을 유추해낼 줄 알았다. 그야말로 최측근의 귀감이다.

쳉이 살피기에 루퍼스의 기분은 결코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즐기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쳉은 완전히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며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한 숨을 내쉬었다. 실로 묘기였다.

하지만 루퍼스 신라 또한 만만치 않은 남자였다.

"왜 그러나? 기분이 썩 좋아보이지 않는군."

"..아닙니다. 사장님."

쳉은 속이 거북해지는 것을 느꼈다.

쳉이 그의 기분을 살필 수 있는 것처럼, 루퍼스는 턱스의 모든 인원의 기분을 간파해냈다. 레노의 속내도, 루드의 표정도, 이리나의 연심도. 그리고 물론, 최측근의 심상도, 예외가 될 수는 없었다.

그 둘을 따라 레노, 루드, 이리나의 순서로 턱스의 행동파 삼인방이 줄줄이 세븐스 헤븐에 들어섰다. 깎아 놓은 것 같은 미남 두 명에 이어 새까만 정장을 입은 붉은 머리, 대머리, 그리고 단정한 여성이라는 압도적으로 이질적인 파티가 들어왔음에도, 손님들은 그들에게 제대로 된 눈길도 주지 않았다.

'하긴, 이 가게 손님들이라면 진귀한 것은 이미 볼 만큼 봤을 거야.'

차라리 잘 된 일이지. 이리나가 상념을 뒤로 하고 쳉을 앞서 나가며 빈 자리를 찾아냈다. 루퍼스 신라와 턱스 전원, 게다가 세븐스 헤븐의 주인들이 앉을 만한 넓은 자리는 그다지 많이 남아 있지 않았다.

"사장님. 이 쪽으로."

루퍼스 일행이 우르르 움직여 넓다란 테이블에 모여 앉았다. 그러자 얼마 지나지 않아 클라우드가 홀연히 나타났다. 손에 들려 있는 쟁반에는 인원수 만큼의 우유.

우유라니.

쳉이 혀를 찼다.

"마치 내가 유치원에라도 온 것 같군."

그러나 클라우드는 쳉의 비아냥 차분하게 받았다. 오늘 유난히 여유와 관록이 돋보였다. 감히 턱스를 상대로 기선을 잡을 셈일까.

"나로써는 그래도 손님 대접에 심혈을 기울인 건데 말이야."

쳉의 눈썹이 흔들렸다. 포커페이스가 무너진 것이다.

턱스 멤버 전원이 그들의 리더까지 대동해 중요한 이야기를 하러 온 자리에 이런 취급이라니. 쳉의 심기가 불편해 진 것도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째서지?

진심으로 불쾌해 보이는 쳉을 보면서 레노는 불길한 위화감을 읽어냈다.

클라우드가 우유를 내온 이유를 어째서 주임 정도 되는 정보원이 이해하고 있지 못하고 있으냐 말이다.

이상하지 않은가?

그걸 맛 봤다면.

그래. 그 날 분명히 이리나에게 주임과 사장님이 충분히 맛 보실 수 있을 만큼의-

아.

레노가 무심코 이리나를 돌아봤다.

그녀는 레노와 시선을 맞추지 못했다.

물건의 전달은 직접 수행하는 것이 철칙.

임무에 대해서는 동료조차 믿지 않는 것이 턱스의 율법.

레노는 실수를 통감했다. 루드는 선글라스 너머의 눈 빛으로 레노를 태워버릴 것 같은 기세로 노려봤다. 레노의 실수는 곧 루드의 실수다.

삼인방은 불안한 눈빛을 숨기지 못하고 그들의 주임과 클라우드를 번갈아 바라봤다. 주로 클라우드의 눈치를 살피고 만 것은 결코 그들의 허물이 아니다.

하지만 이어진 말은 삼인방을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뜨렸다.

"필요없다면 어쩔 수 없지."

레노가 더는 참지 못하고 일어섰다.

"자, 잠깐만! 잠깐만 기다리라고! 서두르지 말고! 주임! 가끔은 괜찮치 않슴까! 그, 뭐냐, 우유는 건강에도 좋고!"

이리나가 눈치를 보며 레노를 거들었다.

"선배 말이 맞아요! 취해서 할 이야기도 아니고! 그렇죠? 루드 선배!"

루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팔짱을 끼고 있는 손등과 밋밋한 머리에 돋아있는 험상궂은 힘줄이 존재감을 어필하고 있었다.

"변함없이 즐겁게 사는구나. 당신들은."

클라우드가 한 숨을 쉬며 우유잔을 돌렸다. 쳉은 동료들의 반응에 허를 찔렸는지 굳어서 제대로 반응하지 못했다. 왠지 억울함을 느낀 쳉이 뭐라고 한 마디 하려는 순간 타이밍 좋게 티파가 커다란 쟁반을 들고 나타났다.

"기다렸지! 우유와 함께 먹으면 더욱 맛있답니다!"

턱스의 행동파 삼인방의 눈이 탐욕으로 빛났다.

.

"그런가... 이게 그 유명한 '구름과자' 로군."

루퍼스가 만면에 미소를 띄고 '구름과자'를 음미했다.

"과연. 이 세상의 맛이 아닌 것 같군. 이리나가 빼돌릴 만한 맛이야."

".......죄송합니다......."

이리나의 말은 거의 기어다니는 것 같았다. 그 모습을 보고 클라우드가 비웃음을 참지 못하자 "유치원이라니, 어느 쪽이 말이냐." 삼인방은 얼굴을 벌겋게 물들였고 티파는 팔꿈치로 클라우드의 옆구리를 찔렀다.

루퍼스가 삼인방에게 힐끔 시선을 주고는 말을 이었다.

"이건 케익을 만들고 남은 장식이나 초콜릿을 모아 조합한 거로군. 그래서 크기도 구성물도 모두 미묘하게 달라. 찌꺼기로 만든 게 이런 맛이라니, 자네가 가진 단 맛에 대한 이해도에 고개가 숙여질 정도야."

공치사. 그것은 반격의 봉화였다.

"과연, 프로포즈에 사용하겠답시고 포션을 스위츠로 바꾼 남자다. 도저히 인간이 할 만한 일이 아니야."

커헉.

클라우드의 뇌가 비명을 내질렀다.

"네 놈, 어떻게 그걸-"

"심지어 반지를 전달할 때 그 포션을 사용한 방법은 경탄할 만한 것이었어. 누구나 상상이야 할 수 있겠지만 실행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지."

이번에는 티파가 얼굴을 물들일 차례였다.

"그만, 그만해!"

루퍼스는 신경쓰지 않고 공격을 이었다.

"하지만 유동성 젤리에 반지를 숨기다니 어리석어. 만약 그녀가 포션과 함께 반지를 삼켰다면 어쩔 셈이었나."

"꺄악!"

이리나였다. 이 정도 쯤 되니 상황을 상상할 수 있게 된 것이겠지. 레노는 눈 빛으로 분위기 파악을 못하는 이리나를 죽여 버렸다. 잃어버린 턱스의 위신을 살리기 위해 저 정도의 고급 정보를 쾌척하시는 사장님의 마음을 읽지 못하는 거냐. 목숨을 잃은 이리나는 침울하게 다시 구름과자를 섭취했다. 그리고 되살아났다. 그녀는 눈을 초롱초롱하게 빛내며 루퍼스의 공격을 경청했다. 티파에게 아련한 연심을 품고 있던 루드의 낯 빛이 썩어들어가는 것은 아무도 신경쓰지 않았다.

클라우드는 거의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위험하다. 이런 종류의 공격은  평생 받아본 경험이 없었다. 도저히 반격할 수 없다.

"루퍼스... 너... 잘도... 하지만..."

루퍼스는 클라우드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표정을 분석했다.

"음? 호오. 그런가. 혀를 사용해서 반지의 움직임을 컨트롤한 것이로군. 과연. 하지만 어떤 식으로 연습을 했는지 궁금해지는데. 자네, 분명히 그 쪽으로는 반편일텐데 말일세."

무섭다. 나는 이 남자가 진심으로 두렵다. 난 그저, 한 마디만 돌려줬을 뿐이다.

"하지만 그 리스키한 계획이 자네 목숨을 살렸지. 대공동의 만년설처럼 정체되어 있는 관계도 한 순간에 녹여 버렸어. 단 맛에 대한 지식은 덤으로 얻었고. 이런 사업을 시작할 정도니까 말이야. 뭐, 푼돈이네만."

클라우드는 완전히 격침당했다. 하지만 이제 더는 잃어버릴 것도 없다. 나 혼자 죽지는 않으리라. 저 놈을 죽이고 나도 죽겠다.

"아, 잊을 뻔 했군. 그러고보니 코스타 델 솔에서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었네만."

클라우드가 즉시 고개를 숙였다.

"미안. 내가 잘 못 했다. 다시는 턱스를 얕보지 않겠다. 약속하지."

그 한심한 모습에 무심코 티파도 웃어버리고 말았다. 루퍼스는 클라우드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우유잔을 기울였다. 어째서인지 쳉의 얼굴이 의기양양해졌을 뿐이다.

그렇게 클라우드는 홈 그라운드에서, 엉망진창으로 망가진 상태로- 겨우 의뢰에 대한 턱스의 보고를 들을 수 있게 된 것이었다.

.

보고에 앞서 쳉이 의뢰 내용을 정리했다.

"클라우드 L. 스트라이프가 당사 루퍼스 컴퍼니에 의뢰한 것은 마황의 이상 발생과 그에 따른 고위험군 몬스터가 출현한 장소, 혹은 그 여파로 전멸한 집락이나 도시가 있는지 조사하는 것이었다. 범위는 미드갈 에리어를 중심으로 대륙 전체. 제노바나 그에 준하는 레벨의 불특정 생명체의 신체 일부가 핵으로 사용되었을 가능성 있음. 이상, 틀린 점은 없나."

3개월 전 클라우드는 신혼 여행에서 돌아온 후 바로 리브와 접촉했다. 그리고 이름없는 마을에서 일어난 참상과 클라우드가 발견한 것에 대해 빠짐없이 의견을 공유했다.

장고 끝에 리브는 스스로 조사를 맡기에 역부족임을 인정하고 한 발 물러섰다. 그리고 추천한 업체가 신생 루퍼스 컴퍼니였다. 클라우드는 귀가 더러워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리브는 단호했다.

"클라우드. 루퍼스 신라는 믿을 만한 사람입니다. 예전과는 다릅니다. 아시지 않습니까."

"리브. 난 배가 아무리 고파도 몰볼을 구어먹지는 않아."

리브는 조용하게 클라우드의 약점을 지적했다.

"클라우드. 당신의 성향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게 아닙니다. 긴급을 요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이 일을 맡을 능력이 있는 자는 루퍼스 신라 이외에는 없습니다."

지극히 합리적인 대응이었다. 클라우드는 아무 말도 되돌려 보내지 못했다.

그리고 3개월 후, 현재에 이른다. 결과적으로 클라우드는 리브의 통찰력에 순순히 감사할 수는 없었다. 쳉의 확인 요청에 대답하는 클라우드의 목소리에는 힘이 전혀 실려 있지 않았다.

"틀린 점은 없다. 계속해줘."

쳉이 아타셰 케이스에서 봉투를 꺼내어 클라우드에게 건냈다. 클라우드가 지체없이 밀봉을 뜯어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봉투 안에는 X 표시가 되어 있는 지도.

폐허가 되어버린 거주구의 사진.

쳉이 무정하게 선언했다.

"있었다."

사진을 검토하는 클라우드의 눈 빛이 험악해졌다.

"아직 너무 긴장할 필요는 없다. 적어도 인명피해는 발생하지 않았다. 그 근처에 사는 사람은 없으니까."

"그렇다면?"

"버려진 지 오래된 곳이다. 구 신라 컴퍼니의 데이터 베이스에 따르면 50년 이상."

클라우드의 표정이 조금 풀어졌다.

"그렇군. 마황 농도는?"

"계측 불가. 가볍게 봐도 대공동 수준이었다. 너무나도 짙은 마황 때문에 핵의 위치 또한 측정할 수 없었다."

납득이 가지 않는 이야기다. 반 년 전에 클라우드가 티파와 함께 제압한 곳도 충분히 끔찍했지만, 그 정도는 아니었다.

"어떻게 가능한 거지? 그런 장소가 이제야 발견됐다고?"

루퍼스가 쳉의 보고를 이어받았다.

"그럴리가 없지. 이것은 명백하게 이상 사태다. 우리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어. 나 개인적으로는 미증유의 재난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네."

소금 덩어리를 삼키는 것 같은 이야기다. 그러나 클라우드는 동의할 수 밖에 없었다. 더 심각한 사태가 벌어지기 전에 향후의 방침을 서둘러 수립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정보가 너무도 부족했다.

클라우드가 루퍼스에게 제안했다.

"조사단을 직접 만나보고 싶군."

그러나 루퍼스는 고개를 세로 젓지 않았다.

"그건 불가능하네."

루퍼스가 가볍게 통보했다. 차량이 막혀 약속 시간을 지키기 어렵겠다는 정도의 가벼운 말투였다.

"조사단과의 연락은 끊겼다네. 72시간 전이군."

72시간 전이라면, 레노가 마스터 스위츠에 왔을 즘에는 이미 그 조사단에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났다는 이야기다.

티파가 벌떡 일어섰다.

"그렇다면 큰일이잖아! 여기서 이럴 시간이 있는 거야?"

의외의 사태에 클라우드도 눈을 부릅 떴다. 하지만 루퍼스의 태도는 지나치게 평온했다.

클라우드는 냉정하게 상황을 평가했다.

루퍼스 신라는 냉혈 인간이지만 부하의 신뢰는 두텁다. 여기서 그를 보좌하고 있는 턱스를 보면 그 사실은 명확하다. 턱스는 루퍼스가 모든 것을 잃었을 때도, 성흔 증후군에 휘말려 거동조차 하지 못할 때에도 그의 곁을 지켰다. 그가 언젠가 다시 일어설 것을 믿었다. 이 신뢰는 거저 얻어낸 것일 수 없었다.

결론을 내렸다.

루퍼스는 부하들을 저버리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들은 아직 실패하지 않았다.

조사단은 아마도 건재. 아마도 루퍼스의 깊은 신뢰를 받고 있으리라. 지금 루퍼스가 아무런 우려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오늘 회합의 목적은 보고가 아니었군."

클라우드가 루퍼스를 똑바로 바라봤다.

"루퍼스 컴퍼니의 의뢰. 그렇게 봐도 좋을까."

루퍼스가 웃었다.

"이야기가 빨라서 좋군. 자네 말대로다."

루퍼스는 여유를 잃지 않고 말했다.

"당사의 조사단에 예상치 못한 피해가 있었지. 그에 대한 필요한 조치는 이미 마쳤네. 하지만 일이 이렇게 된 이상 이미 여기 부터는 우리 루퍼스 컴퍼니의 일이다. 다만 자네들이 우리와 함께 사건 해결에 함께할 의지가 있는 지, 그걸 확인하러 왔을 뿐이다."

클라우드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필요한 조치라고?"

"그래. 48시간 전에, 당사는 턱스 오브 턱스를 현장에 파견했다네. 그자의 유능함은 자네가 더 잘 알고 있을테지."

루퍼스의 이 발언에는 과연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빈센트를? 잘도 연락이 닿았군."

"닌자 마스터의 전폭적인 협력을 얻었지. 솔직히 말해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네."

닌자 마스터. 현대에 그 칭호를 받을 수 있는 존재는 한 사람 밖에 없다.

"유피까지? 설마 유피도 현장에 있다는 건가?"

"당시 우리가 취할 수 있었던 최대한의 조치였다고 자부하네."

경위는 둘 째 치고, 그 둘의 전투력은 가히 클라우드와 티파의 콤비와도 비견될 수 있으리라.

하지만 그렇기에, 사건의 심각성이 피부로 느껴질 뿐이었다.

"빈센트와 유피가 현장에 있다. 하지만 그러고도 아직 상황이 끝나지 않았다?"

"바로 그렇다네. 자랑할 만한 일은 아니지만 당사가 파견한 조사단 또한 당사 최대의 전력일세. 그 정도의 멤버가 모였는데도 아직까지 사태가 진정되지 않았어. 우리가 턱스 오브 턱스로부터 받은 것은 일방통행의 메시지 뿐이었지. '조사단 확보'. '위험 상존'. '서둘러'. 그리고."

"그리고?"

"'혼돈'."

"혼돈."

다름아닌 빈센트가 그렇게 말했다면 이는 보통 일이 아니다. 빈센트가 두려워하는 혼돈이란 딱 한가지 뿐이니까.

클라우드는 티파를 돌아봤다. 잠깐의 시선 교환으로 의견은 일치. 그리고 클라우드가 결연한 얼굴로 통보.

"그 곳에 빈센트와 유피가 있다면 지금 우리가 기다리고 있을 수 없어. 애초에 각오가 없었다면 의뢰도 하지 않았을 거다."

루퍼스가 싱긋 웃었다.

"자네라면 반드시 그렇게 말해 줄 거라고 믿고 있었네. 출발은 언제 할 예정인가?"

"당장."

"준비할 시간은?"

"필요없어."

"좋아. 하지만 우리들은 준비하는데 시간이 더 필요하다네. 자네만큼 발이 가볍지 않아서 말야. 이해해주게. 우리로써도 만전을 기해야 하는 상황이거든."

"알고 있어. 그래서 우리에게 온 것일테지. 먼저 출발하겠다."

"고맙네. 이 빚은 언제라도 꼭 갚도록 하지. 선수금이 필요한가?"

"돈 때문에 하고 있는 일이 아니야. 따로 당부하고 싶은 사항은 있나."

그 말에 루퍼스는 신중한 모습을 보였다. 마치 말을 고르고 있는 것 같았다. 정말이지, 루퍼스 신라 답지 않은 일이었다.

"상황이 여유롭지는 않군. 가겠다."

클라우드가 일어섰다. 티파는 이미 손님들에게 폐점을 공지하고, 양해를 구하고 있었다.

"조심하도록 하게, 클라우드."

루퍼스가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우리 조사단의 리더는, 자네의 도움을 반기지 않을지도 모르겠네."

그것은 불길한 말이었다. 하지만 그 말을 끝으로 루퍼스가 입을 여는 일은 없었다.

클라우드 또한 그런 루퍼스에게 그 이상의 설명을 기대하지 않았다. 어짜피 모든 가능성에 대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클라우드는 즉시 펜닐을 준비했고, 그 사이 티파는 아이템 백에 유사 엑스 포션을 채워넣었다.

이윽고 펜닐이 굉음을 흘리며 출발했다.

비공정이 무색한 속도였다.

posted by nameless7777 2016. 6. 29. 19:45
어느새 마스터 스위츠는 그대로 클라우드의 별명 그 자체가 되었다. 요 며칠 동안에는 친애를 담아 그냥 마스터라고 부르는 사람도 많아졌다.

"마스터 스위츠. 우리 왔어요."

"마스터."

"마스터! 여기 주문이요!"

설탕을 설탕으로 씻는 목가적인 전쟁의 나날들. 클라우드는 자신이 마지막으로 검을 휘두른 것이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누군가 지적해 주지 않는다면 그게 고작 한 달 전이라는 것을, 클라우드는 쉽게 떠올리지 못했다.

티파가 나더러 생각이 너무 많다고 했던가. 성공했다. 클라우드는 지금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지금 그는 케익을 만들어내는 기계나 마찬가지였다.

테이블에 앉은 손님의 모든 주문에 대응하고 잠시 숨을 돌리고 있자니 가게의 문이 벌컥 열렸다. 클라우드는 살짝 눈썹을 찌푸렸다. 이 가게를 개장한 뒤로 저렇게 무례하게 들어오는 손님은 한 명도 없었다.

"진짜냐? 진짜 여기 클라우드가 있다! 우리 저 녀석이 만든 케익 먹는 거냐고!"

"이미 알고 있었잖나."

턱스 행동 대장. 레노와 루드. 지긋지긋한 얼굴들이다. 그래도 이런 곳에 올 때는 제발 그 시커먼 양복은 벗어줬으면 좋겠는데. 그리고 빨리 좀 돌아갔으면 한다.

둘의 얼굴을 확인한 클라우드가 노골적으로 인상을 찌뿌렸다. 1년 반 전에는 도움을 받은 적도 있어서, 클라우드는 저 이인조를 생각만큼 야멸차게 뿌리치지 못하고 있었다.

"대체 여긴 왠 일이야?"

웅성웅성.

"마스터가 얼굴 찡그린 거 처음 봐."

"그러게. 접객 멘트도 하지 않고."

"누구지? 그런데 왠지 불량해 보이지 않아?"

레노가 웅성거리는 손님들은 쳐다보지도 않은 채 클라우드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걸었다.

"그렇게 날 세우지 말라고! 슬슬 우리 친구 아니냐."

클라우드가 코웃음을 쳤다.

"친구 좋아하네. 방해하지 말고 가라. 정신 사납다."

"또, 또 그런다 또... 우리 지난 번엔 사지를 함께 넘어서지 않았냐고?"

사지를 함께 넘었네 마네 하면 손님들이 놀란다고. 분위기 좀 읽고 그런 살벌한 이야기는 이제 그만둬 줬으면 한다.

"그런데 우리 뒤에 사람들 눈 빛이 왜 이러냐? 이거 살기냐?"

레노가 가게 출입구 쪽을 돌아보며 말했다. 이 불량배 놈들에겐 대기 손님들이 기다리고 있는데 새치기해서 들어왔다는 자각도 없는 것 같았다.

클라우드가 한 숨을 쉬며 말했다.

"번호표를 뽑고 대기해 주십시오, 손님. 대기 예상 시간은 네 시간입니다."

"뭐라고!?"

가게의 새하얀 분위기에 눌려 침묵으로 일관하던 루드가 기어코 소리를 질렀다. 조용히 하라고.

"진짜다. 영업에 방해되는 거 알았으면 좀 가라."

클라우드가 프라이팬에서 굽고 있던 조그맣고 동그란 과자를 두 개 꺼냈다.

"이거 줄 테니까."

클라우드가 과자를 휙휙 던졌다. 레노와 루드가 엉겁결에 받아들었다.

"뭐냐고 이게?"

웅성웅성. 그 답은 앉아있던 손님들이 크게 동요하며 내려주었다.

"설마...!"

"저건!?"

"구름과자? 구름과자라고?!"

"처, 처음 봐... 분명히 이름이 덴젤이나 마린이 아니라면 받아갈 수 없다는 그... 환상의..."

"마스터! 새치기나 하는 놈들에게 왜 그런 걸 줘요! 나한테 팔아요!"

클라우드가 난처하다는 듯 손님을 돌아보며 대답했다.

"죄송합니다 손님. 조잡해서 손님께 상품으로 내놓을 만한 게 못 됩니다."

못보던 사이 클라우드는 완전히 파티셰가 되어 있었다. 레노가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하고 얼떨떨한 표정을 한 채 구름 과자를 입에 넣었다. 그리고 경악했다. 파도처럼 휘몰아치는 식감과 맛의 폭풍. 레노는 꾸밈없는 남자였다.

"으어! 뭐냐고 이거! 사기치는 거 아니냐고?"

어째 언젠가 들어봤던 것 같은 평을 내리는 레노. 역시 첫 날 만났던 그 녀석은 턱스와 같은 레벨이었음에 틀림없었다. 클라우드가 한 숨 쉬며 다시 한 번 꺼지라고 말하려 하는데, 레노가 참지 못하고 거침없이 외쳤다.

"이걸 니가 만들었냐? 이렇게 맛있는 건 난생 처음 먹아봤다! 좋은 말 할 때 프라이팬에 있는 거 전부 내놓으라고!"

웅성웅성웅성.

"마스터 스위츠 앞에서 무슨 판에 박힌 소릴!"

"지가 무슨 은행강도야? 천박하긴!"

"마스터, 절대 저런 불한당에게 굴복해서는 안됩니다!"

웅성웅성웅성. 테이블에 앉아 있는 손님들도 눈을 충혈시키며 레노와 클라우드를 번갈아 바라봤다. 그러나 손님들은 클라우드의 얼굴을 보고 경악했다.

클라우드는 완전히 방심 상태에 빠져 있었다. 약간 홍조를 띄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다른 손님들이 간과하고 있었던 사실이 있었다. 그랬다. 이것은 클라우드가 가게를 열고 나서 처음으로 들을 수 있었던, 압도적으로 긍정적인 평가였다. 다들 황송해서 감히 내놓을 수 없었던 평가이기도 했다. 마스터 스위츠의 음식에 어찌 토를 달 수 있단 말인가.

서슬 퍼런 레노의 박력에 밀려 클라우드가 주섬주섬 봉투에 구름 과자를 담기 시작했다. 설마 레노 따위에게 기세에서 밀리다니. 클라우드는 복잡한 기분이 들었다.

"전부!"

"어? 어어..."

다른 손님들은 경악에 찬 눈으로 그 장면을 바라봤다. 하지만 곧 평정을 찾고 눈을 빛냈다. 마스터 스위츠가 칭찬에 약하다는 귀중한 사실을 알아냈기 때문이다. 심지어 마스터는 당황한 얼굴은 그 이상으로 진귀한 수확이었다. 이 정보, 문 밖에 대기하고 있는 놈들과는 절대로 공유하지 않을 것이다.

클라우드는 스스로도 어처구니가 없다고 생각했지만, 순순히 과자 봉투를 레노에게 넘겼다. 뒤 늦게 구름 과자를 삼킨 루드는 그 맛에 경도된 나머지 구름 과자가 담긴 봉투를 통째로 씹어먹을 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레노가 희열에 찬 환호성을 내질렀다.

"고맙다 친구! 오늘은 이만 갈테니까 장사 잘하라고!"

"나 참. 진짜 왜 온거야."

레노가 제 정신으로 잠깐 돌아왔다. 그리고 아차 하는 표정으로 클라우드에게 다가왔다.

"아 참 참. 잊어버릴뻔 했다. 의뢰했던 일로 주임이 곧 찾아가겠다는 말을 전하러 왔다고. 전화는 대체 왜 안받는 거냐? 아니, 됐다. 이제 충분히 알 것 같다고."

레노가 클라우드에게 귓말로 속삭였다. 과연 손님들과는 공유하고 싶지 않은 뒷 세계의 이야기다. 갑자기 자신을 배려하는 레노를 클라우드는 의아하게 생각했다. 클라우드는 구름 과자를 통해 자신이 레노에게 VIP가 되었다는 사실까지는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

"이번주 금요일 오후 6시. 장소는 세븐스 헤븐."

"그래. 알았다."

"기대하고 있겠다! 전부 모아서 가겠다고!"

방금 주임만 온다고 하지 않았나. 아니, 전부는 곤란하다. 루퍼스는 특히 껄끄럽고. 하지만 레노는 클라우드가 제지하는 것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과자 봉투를 신주 단지 모시듯 품에 안고 바람같이 사라졌다.

클라우드는 어쩔 수 없이 마스터 스위츠의 얼굴로 돌아왔다. 곧 테이블 회전이 시작될 것이다. 클라우드는 곧 아무 생각없이 생업에 종사하기 시작했다. 오늘도 숨어서 검을 휘두르는 것은 불가능할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