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7. 9. 12:01
빈센트는 이끌리는 것 처럼 마황의 핵에 다가갔다. 사태는 예상대로였다. 저 어마어마한 에너지. 그곳에 있는 것은 한 때 빈센트가 몸안에 품고 있었던 것이다. 착각할 리가 없다.
별의 그 자체의 죽음과 때를 함께하여 나타나는 특별한, 그리고 치명적인 존재.
카오스 웨폰.
이런 타이밍에 이런 것이 깨어난다면 끝장이다. 믿을 수 있는 동료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하물며 그들이 전부 모인다 한들 승산은 얼마나 될 것인가. 게다가 이 녀석이 나왔다는 것은-
아니, 억측이다.
그러나 곧 빈센트는 생각의 확장을 중지했다.
자신의 몸에 내제되어 있던 혼돈을 상징하는 별의 최종병기- 카오스 웨폰을 별에 돌려보낸 이후로, 빈센트는 최악의 사태를 막기 위해 쉬지 않고 별의 동향을 주시해 왔다. 별은 이제 건강하다. 별을 위협하는 존재도 더이상 없다. 책임을 통감한 루퍼스 신라는 그 막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세계재생위원회를 설립해서 투명하게 별을 재건하고 있고, 그 효과는 빈센트가 지속적으로 파악하고 있었다.
빈센트는 확신했다.
없었다.
별이 이렇게나 빠르게 재차 카오스 웨폰을 보낼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저것이 카오스 웨폰이 아니라면, 이 무시무시한, 심지어 친숙하기까지 한 이 에너지의 폭풍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어쨌든 빈센트는 이 자리를 벗어날 수 없었다. 이 존재의 정체가 무엇이든, 이 곳에 묶어둬야 한다. 그것이 나의 사명이다.
이 녀석을 상대로, 카오스의 힘도 잃어버린 내가- 어디까지 버틸 수 있을까. 아니, 약해질 수는 없다. 결단코 막아내고야 말 것이다. 빈센트는 그렇게 다짐하며 마황의 핵을 겨냥하여 정신을 집중했다.
그 어느 때 보다도 긴 하루가 될 것 같았다.
.
유피는 초조함에 손톱을 깨물고 있었다. 어째서인지 모르겠지만 가슴 떨림이 진정되지 않았다.
빈센트가 갑자기 사라진지 하루 이상 지났다. 물론 그녀도 알고 있었다. 초조해 하고 있는 것은 자신 뿐이었다. 당연하지. 진심으로 싸우는 빈센트를 이 세상 어느 누가 대적할 수 있겠어? 유피는 괜스레 어깨가 으쓱해졌다. 알아? 그게 빈센트라고. 무적이라고.
하지만 걱정이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과도한 신체 개조의 여파 때문에 그는 가끔씩 불안정해지기도 하니까. 유피의 얼굴에 다시금 수심이 피어났다. 그랬다. 언젠가 유피는 절체 절명의 위기에 빠진 빈센트를 구해냈던 일도 있었다. 하지만 그 때를 떠올리자 유피는 공연히 의기양양해졌다. 역시 빈센트 옆에는 내가 없으면 안된다구!
클라우드는 우울과 우쭐이 초단위로 교차하는 유피의 옆모습을 신묘한 표정으로 관찰했다. 역시 닌자 마스터. 행동 패턴을 감히 읽을 수 없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그의 정신이 다 흔들렸다.
"유피. 마황의 핵까지 이제 금방이다. 좀 진정하지 그래?"
티파도 맞장구를 쳤다.
"맞아. 만 하루만에 빈센트를 만나는 거잖아? 이럴 때 일수록 의연하게 있어야지."
그녀는 클라우드와 팔짱을 끼고 있었다. 유피는 그 다정한 모습에 공연히 부아가 치밀었다. 그래, 남편 곁을 지키느라 나도 칸셀도 버렸다 이거지. 이제 다 필요없어. 남의 속도 모르고 여유로우시네요? 응? 티파 S. 록하트 여사님?
클라우드도 유피의 걱정과 고뇌를 전혀 알아채지 못하고 티파의 말에만 반응했다.
"응? 빈센트? 그 녀석 만나는데 왜 의연해야 되는데?"
"클라우드는 둔하구나. 당연히 유피가 빈센"
"으아아아랏차차! 무슨 소릴 하는 거야 티파!"
저 바보 부부. 되는대로 지껄이기나 하고. 그야 빈센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진 않았을 테지만. 나도 실은 알고 있거든!
가만.
마황의 핵? 빈센트?
유피가 미간에 주름을 잡았다.
"빈센트? 마황의 핵이 있는 곳에 가면 거기에 빈센트가 있는 거야?"
클라우드와 티파가 눈을 맞추고는 유피를 빤히 쳐다봤다. 왜 그런 걸 굳이 확인하냐는 눈 빛이었다. 유피의 혼돈이 깊어졌다.
"있는데?"
티파의 말에 클라우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유피. 너도 무예가라면 티파처럼 사람의 기척 정도는 느낄 수 있어야지."
"뭐야아?"
나 닌자 마스터 유피가, 사람의 기척을 못 읽어? 그걸 지금 말이라고? 클라우드, 누나 기분이 지금 좀 이상해지려고 해.
유피가 완전히 허를 찔려 있는 동안 칸셀이 슬쩍 다가왔다. 그리고 조심조심 클라우드에게 말을 걸었다.
"아까부터 계속 궁금했는데, 당신 설마 마황의 핵이 어디 있는지 느껴지는 거야?"
이번에는 클라우드가 솔져 클래스 퍼스트가 그런 것도 모르는 거냐는 눈을 하고 되물었다.
"솔져라면 마황에 민감한 게 당연한 거 아닌가?"
못해! 솔져도 장비를 사용한다고!
이 녀석, 만년 반편이에 솔져도 아닌 주제에! 칸셀은 왠지 유피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 녀석 역시 꽤 짜증난다.
그러자 생각치도 않은 티파가 칸셀의 마음에 불을 지폈다.
"그래. 이렇게, 보이지도 않고 무게도 느껴지지 않는데, 흐름에 몸이 쏠려서 밀려나는 것 같은 느낌?"
"역시 티파. 그게 마황. 농축된 라이프 스트림이야."
칭찬하는 클라우드의 얼굴을 마주보며 티파가 배시시 웃었다. 훌륭한 염장 공격이다. 그 모습을 보며 칸셀은 생각했다. 그 자애롭고 따뜻한 티파도 이럴 땐 은근히 열받게 하는 구나.
유피는 가까스로 제 정신으로 돌아왔다. 인간이 맨몸으로 라이프 스트림을 느낄 수 있다는 사실에도 크게 신경쓰지 않기로 했다.
"이제 됐어! 이 바보 부부랑 이야기하다보면 속이 다 뒤집혀!"
칸셀이 크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동감이다."
"누가 바보 부부라는 거야?"
항의하면서도 티파는 왠지 기뻐보였다. 유피는 속이 거북해졌다. 뭐야, 내가 지금 부러워한 것 같잖아. 유피는 내면에서 발생한 감정과 전력을 다해 싸웠다. 하지만 이미 자신은 꺾인 것 같았다. 유피는 차라리 체념하기로 마음 먹었다.
그런 그녀의 입에서 귀여운 한숨이 폭 새어 나왔다.
"그래서? 그 마황의 핵이란 거랑 함께 있다는 빈센트는, 어디 쯤에 있는데?"
티파가 가볍게 거리를 쟀다.
"음... 저 쪽 방향으로- 3킬로미터 정도?"
"3킬로미터!"
유피가 다시 절규했다.
그렇게 멀리 있는 사람의 기척을 어떻게 읽어?! 그걸 못느낀다고 이 사람 같지도 않은 것들이 날 무시해? 오늘 진짜 자존심 상해서 대화를 못 해먹겠네!
티파는 난처하게 웃을 수 밖에 없었다.
"어떻게냐니... 그야."
클라우드가 고개를 끄덕이고 티파의 말을 받았다.
"저렇게 무시무시한 에너지를 내뿜고 있으니까. 나로써는 모르고 넘어가는 게 더 힘들 것 같은데."
그 말에 유피가 번뜩 고개를 들어 클라우드를 올려다 봤다. 그녀의 표정에 약간의 희망이 깃들었다.
"무시무시? 빈센트는 괜찮은거야?"
"괜찮고 말고, 마치 혼자 웨폰이라도 때려잡을 기세야. 설마 걱정하고 있었던 거야?"
"거거거거걱정은 무슨!"
"힘껏 걱정하고 있구만. 빈센트 실력 몰라? 왜 그렇게 빈센트를 못 믿는 거지?"
그 말은 너무나 충격적이고 자극적이어서 유피는 그만 주저앉고 말았다. 심장이 내려앉는 것 같았다.
내가 빈센트를 믿지 못하고 있다?
유피의 눈이 초점을 잃어버렸다.
"내가 클라우드에게 졌어. 그것도 빈센트로. 뭐야. 이거 현실이야?"
"이봐."
"나... 빈센트를 클라우드에게 빼앗기는 거야?"
"이보라고."
"티파! 남편 간수 똑바로 못 해? 뭐냐고 이게!"
"풔. 푸헙프아하하하하하하!"
티파는 도저히 참지 못하고 발작적으로 웃으며 유피의 등짝을 후려쳤다. 감전사할 것 같은 충격. 가히 뇌신의 철퇴. 유피가 무너지며 서러운 신음을 흘렸다. 눈물이 북받혀 올랐다. "빈센트, 얘네가 나 괴롭혀..." 유피는 정신적, 육체적으로 완전히 궁지에 몰려 버리고 말았다. 그런데도 티파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끅끅 거리며 허리를 펴지 못했다. 너무한 사람이다. 정말 심하다. 그로부터 유피가 패배감을 떨쳐 내기까지는 무려 반시간이나 걸렸다.
어쨌든 그들의 예상은 꽤 정확하게 들어맞았다는 것이 곧 밝혀졌다.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들은 이미 마음을 나누고 함께 사선을 건너온 바꿀 수 없는 동료니까.
그리고 그 결과는 최악의 방식으로 나타났다.
.
빈센트는 정신을 집중하고 있었다.
마황의 핵은 당장에라도 터져나올 것 처럼 약동하다가도, 곧 자취를 감출 것 처럼 희미해지곤 했다. 조금만 방심해도 이 존재는 빈센트의 탐지를 벗어나 세상을 향해 쏘아져 나갈 것만 같았다. 빈센트는 방해되는 오감을 차단. 온전히 마황의 흐름에 몰입했다. 시간의 흐름이 애매해지고, 세상과 자신의 경계도 사라져갔다. 그리고 곧 자신의 본능과 마황의 핵만이 남았다.
놓치지 않는다.
다가올 싸움에 대비하며 빈센트가 계속해서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그녀로 인해 세상에 나올 때를 착각한 죽음의 웨폰이, 이제 더이상 활개치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그녀의 죄를, 나의 죄를 더는 쌓지 않으리라.
빈센트는 더욱 힘을 날카롭게 정제했다.
한순간이다. 이 정제한 힘으로 급소를 꿰뚫을 수만 있다면, 마황의 핵- 카오스 웨폰조차 쓰러뜨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것말고는 방법이 없었다. 몇 번이고 노려 주겠다. 이길 수 있는 한, 설사 결국 이길 수 없게 된다 하더라도.
빈센트가 그렇게 다짐한, 바로 그 때였다.
마황의 핵이 요동쳤다. 빈센트는 그 존재가 각성할 때가 도래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인지했다. 이윽고 그 힘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빈센트의 감각이 순간적으로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빈센트의 본능이 최대급의 경고음을 울렸다.
마황의 핵은 이미 각성했다.
빈센트는 바로 등 뒤에서 그 존재를 감지했다.
놈은 산책이라도 하는 듯 평온한 상태로 빈센트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그러나 오감을 차단하고 마황에 대한 감각만을 열어둔 빈센트에게 놈은 경도될 정도의 마황 에너지를 밀어붙이고 있었다. 산이 움직여 다가오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 안에 숨기고 있는 마황은 거의 계측할 수 조차 없으리라.
주저하고 있을 여유가 없었다.
마치 마술처럼 빈센트가 3연장 핸드 캐논- 켈베로스를 꺼내들었다. 그 속도가 너무도 빨라 마치 총이 손에서 돋아난 것 같았다.
지체하지 않고, 탄환에 정제된 힘을 실어 발사. 이어서 약간의 시간차를 두고 연속으로 남은 두 발을 한번에 연사. 오랜 시간을 두고 정제한 힘을 한 순간에 전부 사용한 것이다. 힘을 아낄 상황이 아니었다.
날카롭게 정제된 힘이 켈베로스 탄환에 실려 음속의 세 배에 달하는 속도로 적에게 쇄도했다. 하지만 녀석은 피하지 않았다. 마치 물리 법칙을 초월한 것같은 움직임으로 빈센트가 사용한 모든 공격을 전부 튕겨낸 것이다. 놈은 날붙이를 사용한다. 게다가 그 숙련도가 무시무시하게 높다.
곧바로 놈이 돌진했다. 섬전처럼 이어지는 공격. 고개를 틀고 뒤로 물러서고 총신으로 막아내며 가까스로 재장전. 영거리에서 켈베로스를 연사. 놈은 그것을 전부 피해내며 거리를 좁혀왔다. 틀렸다. 놈의 간격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 속도, 투기, 전투 센스. 빈센트는 초격의 실패에 실망할 여유조차 사치라고 생각했다.
착각이었다.
명백하게, 놈은 카오스 웨폰이 아니었다.
카오스 웨폰과 융합했던 과거의 자신조차 뛰어넘는, 완전히 다른 존재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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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트! 정신 차려, 빈센트! 날 알아보지 못하겠어?"
유피가 안타깝게 외쳤다. 하지만 그 목소리는 빈센트에게 닿지 않았다. 금방이라도 달려들 것 같은 그녀를 티파가 막아섰다. 빈센트가 타겟을 바꿔 난전이 시작되면 끝장이다. 클라우드가 그를 놓치면 우선 칸셀은 한 순간도 버티지 못할 것이다. 너무 위험하다. 지금은 클라우드에게 맡길 수 밖에 없다.
빈센트는 그야말로 트랜스 상태에 빠져 클라우드와 대적하고 있었다. 클라우드의 맹공을 아슬아슬하게 피해내며 켈베로스를 재장전하는 재주는 그 자체로 이미 인지를 초월. 검사 쪽이 명백히 유리한 지근거리에서도 타겟을 놓치지 않고 치명적인 공격을 펼쳐내는 전투 감각은 그야말로 턱스 오브 턱스. 날이 없는 검면에 발차기를 넣어 검의 궤적를 일그러뜨리고, 왼팔의 갈퀴같은 손톱을 휘둘러 패악스럽게 반격하는 빈센트에게 사각 따위는 전혀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런 빈센트를 상대로 클라우드는 용서없이 공격을 펼쳐내고 있었다. 이미 합체검의 본체는 내던져 버렸다. 지금 같은 초 근접전에 대검은 필요없었다. 클라우드는 가지고 있는 검 중 가장 가벼운 5번 검과 6번 검, 룬 블레이드를 양손에 쥐고 빈센트와 함께 죽음의 춤을 추고 있었다. 베고, 찌르고, 검을 역수로 바꿔 쥐며 페인트를 넣고, 켈베로스의 총구를 노려 흠집을 내고, 재장전을 방해하며 공격 시간을 늘려나간다. 클라우드가 검의 궤도를 마이크로 컨트롤. 팔의 힘줄과 방아쇠를 쥔 손가락, 아킬레스 건, 눈과 경동맥을 무작위로 공격. 공격 하나 하나가 살인적. 조금 다치더라도 빈센트는 죽지 않는다. 오히려 그 압도적인 재생 능력으로 금새 회복할 것이다. 팔이나 다리 하나 정도는 가져간다는 각오가 없으면, 빈센트는 결코 잡아둘 수 없다. 그리고 그를 묶어놓지 못한다면- 그 이후는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았다. 참극이다.
칸셀은 미드갈의 여덟 영웅 중 쌍벽이 펼치는 그 신들의 싸움과 같은 대결에 경악할 수 밖에 없었다. 클라우드의 실력을 감히 가늠해보려 했다니 생각이 모자랐다.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그는 역대 최강이었던 전설의 솔져를 쓰러뜨린 전사였다.
빈센트는 벌써 수십번이나 탄창을 교환했고, 클라우드의 공격 회수는 300회에 달했다. 클라우드는 이대로 몇 날 몇 일이라도 싸워 주겠다고 다짐했다. 빈센트가 다른 누군가를 해치는 모습 따위 절대로 보지 않을 것이다. 그 전에 반드시 빈센트를 구해내리라.
그러나 빈센트는 이 승부를 오래 끌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빈센트의 왼 팔이 세배로 부풀었다.
그 팔을 그저 휘두른 것 만으로, 음속의 충격파가 내달렸다.
"!?"
클라우드는 그 광포한 공격에 뒤로 밀려나면서도 상황을 냉정하게 파악했다. 물러서면서 땅에 꼽아둔 대검을 회수. 룬 블레이드를 꼽아넣었다. 빈센트가 이제와서 억지로 거리를 벌렸다. 온전한 합체검의 질량과 방어력이 없다면 대응할 수 없는 공격이 올 것이다.
예상대로 날카롭게 정제된 힘이 켈베로스에 맺히기 시작했다. 설마했지만 역시나 이곳에서 처음으로 펼쳐낸 3연사 공격을 재차 사용할 셈이다. 빈센트는 그 숨가쁜 공방 속에서도 힘을 아끼고 정제했던 것이리라. 정말이지 괴물같은 녀석이다.
목숨을 건 싸움의 상대로써, 부족함이 없다.
클라우드는 사선에 동료가 위치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이동했다. 켈베로스는 조용히 클라우드의 움직임을 따라왔다. 빈센트가 흔들림없이 자신을 겨냥하는 모습에 클라우드는 오히려 평온함을 느꼈다. 그걸로 됐다. 이제 유탄이 동료들을 위협할 일은 없을 것이다.
그래, 원한다면 어울려 주지.
체내의 힘을 정제해 탄환에 실어 발사하는 빈센트의 3연사는 이미 봤다. 총구의 방향을 정확히 인지하고 격발 타이밍만 읽어낸다면 음속보다 빠른 탄환도 쳐낼 수 있다. 전부 간파하고 반격에 나설 것이다. 이번에야말로 한 방 먹어주리라.
클라우드는 각오를 굳혔다.
이제 빈센트가 방아쇠를 당기는 그 순간, 이 대결이 끝날 것이다.
승부다, 빈센트.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미소가, 클라우드의 입가에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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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파는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클라우드와 빈센트의 대결을 지켜 봤다. 곁에 있는 유피도 날뛰지 않게 되었다. 칸셀은- 아마도 이런 싸움은 처음 경험하고 있을 것이다. 티파는 칸셀을 감각의 영역 안에 넣은 채로 만약의 사태에 대비했다.
곧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게 되었다. 바람조차 완전히 멈춰 있었다. 마치 온 세상이 그 둘의 대결을 숨죽여 관전하고 있는 것 같았다.
둘의 대치가 끝없이 이어졌다.
이대로 영원같은 시간이 흘러갈 것 같았다.
그리고 아무런 조짐도 없이 켈베로스가 초탄을 토해냈다.
그러나 클라우드는 그 순간을 정확하게 포착. 넓은 검면을 비스듬하게 세우고 아래에서 위로 휘둘러 에너지탄을 받아내며, 탄환의 궤도를 비틀었다. 이어서 폭발하듯 덮쳐오는 소닉붐을 억지로 버텨내고, 바로 다음 순간 코 앞까지 도달한 두번째 탄환을 눈에 보이지도 않는 속도로 내려 베어 두동강 낸다. 가히 신의 기술. 하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다. 다음 순간 땅이 폭발. 클라우드가 지면을 박차고 돌진한 것이다.
티파가 주먹을 꽉 쥐었다.
클라우드는 마지막 탄환을 돌진하면서 베어낼 생각이다. 그리고 바로 빈센트와 결착을 지을 심산이다. 음속의 세 배를 넘는 탄환을 눈앞에 두고 목숨을 담보로 한 상식 파괴는 클라우드 밖에는 시도해내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빈센트는 턱스 오브 턱스라고 까지 불렸던 에이젼트였다. 그는 냉철했다. 클라우드를 알아보지 못하고, 유피의 목소리를 잡아내지 못한 것이 이상할 정도로. 클라우드가 허를 찌르려 할 때 이미 빈센트는 허를 찌를 준비를 마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클라우드의 그것만큼 리스키하고 어려운 작업이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턱스 답게. 어렵고 복잡한 상황일수록 일수록 가볍고 쉽게.
빈센트의 세번째 공격은 탄환이 아니었다. 그것은 왼손으로 던진 비수였던 것이다. 그 엇박자 공격에 클라우드의 합체검이 목표를 잃고 조금 흔들렸다. 치명적인 오차였다. 비수는 겨우 쳐냈지만 그와 거의 동시에 도달한 켈베로스의 마지막 탄환이 클라우드에게 작렬했다. 파공음. 탄환이 사람을 꿰뚫는 소리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컸다. 클라우드가 간신히 검을 들어올려 머리가 꿰뚫리기 직전에 탄환을 막아낸 것이다. 하지만 흘려내기에는 역부족. 순간적으로 검에, 클라우드의 팔에, 그리고 전신에 어마어마한 압력이 내달렸다.
"...!!"
그 직후 티파가 감지한 것은 그녀 방향으로 조각 조각 분리되며 튕겨져 날아오는 클라우드의 합체검. 티파에게 직접 날아오는 3번 검 버터 플라이엣지를 걷어차고, 칸셀에게 떨어지는 퍼스트 츠루기를 회수. 아무렇게나 흩어지는 나머지 검들은 방치.
티파의 단정한 시선은 그 와중에도 클라우드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가, 클라우드.
계속 가는 거야.
티파의 속 마음이 전해진 것일까. 클라우드의 본능은 무기를 봉쇄당한 그 절망적인 상황에서 공격을 선택했다. 검을 놓친 그 기세를 스스로 회전하여 상쇄. 동선이 비틀려진 그대로 빈센트에게 돌진.
그 클라우드의 대담함에 티파는 미소지었다.
그래. 초조해하지 않아도, 할 수 있어.
이제 뭘 해야할 지는- 알고 있지?
다음 순간 클라우드는 빈센트가 전혀 대응할 수 없는 간격까지 파고들었다. 빈센트는 다가올 충격에 대비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했다. 클라우드의 레프트 보디 블로우가, 빈센트의 단단한 복근을 뚫고 내장을 그대로 헤집어 버릴 것 같은 기세로 꽂혀 들어온 것이다. 빈센트가 차단해둔 통각을 억지로 살려낼 정도의 막대한 충격. 빈센트의 상체가 90도로 접혔다.
멈추지 마, 클라우드. 멈추지 마!
티파의 생각 그대로. 조금의 시간차도 두지 않고, 클라우드의 오른손의 장타가 빈센트의 명치에 깊숙히 박힌다. 그대로 한 발 나서면서 팔을 굽혀 만든 왼팔꿈치가 인중을 가격. 연거푸 급소를 공략당한 빈센트가 비틀거렸다. 클라우드가 그대로 팔을 펼치며 회전. 레프트 백너클을 빈센트의 관자놀이를 함몰시킬 기세로 쑤셔 넣는다. 마지막으로, 백너클에 튕겨나간 빈센트의 머리에, 여세를 몰아 펼쳐낸 왼쪽 상단 돌려차기. 클라우드가 혼신의 힘을 담아낸 마지막 공격이 빈센트가 무의식적으로 펼친 가드를 부수며 목을 부러뜨릴 것 같은 속도로 날아들었다.
굉음.
빈센트는 몇 번이나 회전하며, 하늘을 바라보는 자세로 쓰러졌다. 그 치명적인 공격을 자아내던 날붙이를 잃고서 이런 공격이라니. 빈센트는 자신이 실패했다는 것을 인지하면서도 오히려 차분해 지는 것을 느꼈다. 그의 힘이 미치지 못함을 알았기 때문일까. 아니면 오래간만에 자신을 완전히 압도하는 상대를 만났기 때문일까. 빈센트의 눈이 천천히 감겼다.
정작 공격한 클라우드도 무사하지는 못했다. 한 순간에 모든 기력을 쏟아 부어버린 클라우드도 무너지듯 무릎을 꿇었다. 힐끗, 누워있는 빈센트에게 시선을 던졌다.
빈센트는 완전히 혼절해 있었다. 그러나 호흡은 평온 그 자체. 생명에 지장은 없으리라.
상황이 끝났음을 확인한 클라우드가 쏟아지는 피로와 전율적인 승리감 속에서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역시, 아무리 그래도 티파처럼 여유있게는 못하는 구나."
클라우드는 그 기나긴 투쟁의 시간 속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강적을 쓰러뜨리고서도, 그렇게 자평하는 것이었다.
.
"빈센트!"
클라우드가 겨우 한 숨 돌리고 있는데, 갑자기 훅 유피가 솟아올랐다. 그렇게 밖에 표현할 길이 없었다. 아, 깜짝 놀랐다.
"이봐 유피. 좀 조용"
"빈센트! 빈센트! 빈센트으!"
유피는 클라우드를 쳐다보지도 않고 빈센트를 안아 올렸다.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유피. 빈센트는 괜찮아."
"괜찮긴 뭐가 괜찮아! 사람을 이렇게 떡으로 만들어놓고! 당신 힘조절도 몰라? 이 얼굴 좀 보... 라고."
하지만 빈센트의 초 회복 능력은 정신을 잃은 상태에서도 변함이 없었다. 그리고 회복을 마친 빈센트의 얼굴은 신이 만든 피조물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아름다웠다. 유피는 빈센트의 잠든 얼굴을 완전히 홀려 있는 눈 빛으로 바라봤다.
그제야 클라우드는 이해했다.
아, 그랬군. 그래서 그렇게.
클라우드가 둘을 멍하게 바라보고 있을 때 등 뒤를 따뜻하게 감싸주는 사람이 있었다. 이 향기. 이 감촉. 절대로 착각할 수 없었다.
"티파."
"수고했어, 클라우드. 멋있었어."
티파가 클라우드의 목덜미에 가볍게 키스하면서 말했다. 그 부드러운 감촉에 클라우드는 살아있다는 감각이 들었다.
"무서운 상대였지만 어떻게든 됐군. 전부 티파 덕분이야. 그 때 티파와 겨루지 않았더라면 이길 수 없었을지도 몰라."
"문제가 뭐였는지, 이제 좀 알 것 같아?"
클라우드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아니, 실은 아직도 잘 모르겠어. 마지막에 흉내낸 티파의 기술도 완전히 이판사판이었고. 생각보다 잘 돼서 나도 모르게 가슴을 쓸어내렸을 정도야."
클라우드가 한심한 미소를 흘렸다. 그러나 그것은 티파를 두근거리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러니까 앞으로도 곁에서 가르쳐 주겠어? 한심하게도 내가 요령이 없어서 말야. 뭐든 하라는 데로 할테니까. 안될까?"
티파가 활짝 웃었다. 왠지 두 번째로 프로포즈를 받은 것 같은 느낌에 행복해진 티파가 클라우드의 목을 와락 껴안았다.
"안되긴! 대신 내 말만 들어야해? 록하트류 인생법은 독문절기에 타자불출이야. 다른 사람이 끼어들면 무효! 알았어?"
"하하하. 이제와서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클라우드가 고개를 돌려 티파에게 가볍게 키스했다.
"그거야 당연하지. 그 정도는 결혼하기 아주 오래 전부터 이미 그랬는 걸?"
티파가 온 얼굴로 웃었다. 달아오른 그녀는 참지 못하고 다시 클라우드의 입술을, 혀를, 타액을 훔쳤다. 곁에 있는 유피나 칸셀은 안중에도 없는 행동은 다른 일행들이 완전히 학을 떼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일행 중에는 빈센트도 있었다.
"과연."
빈센트가 상체를 완전히 일으켰다.
"클라우드가 그토록 강했던 이유를 알 것 같군. 웨폰으로 착각해버린 것도 무리는 아니었어."
"빈센트! 괜찮아? 정신 차렸어?"
유피가 빈센트의 머리를 품에 안았다. 빈센트는 의외로 그런 유피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부드럽게 답했다.
"미안했다 유피. 걱정을 끼쳤다."
"아니야 빈센트. 아니야."
그리고 유피는 그 후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간헐적으로 멍청하게 웃으며 "응후후~" 빈센트 곁에 찰싹 붙어 있었다. 얼굴에는 이미 미소가 돌아왔고, 장난기 서린 눈동자에도 반짝반짝 생기가 돌았다. 거의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 클라우드는 어이가 없었다. 나와 티파도 다른 사람에게는 저렇게 보일까.
그건 그렇고.
클라우드가 진지한 얼굴로 빈센트를 바라봤다. 티파도 분위기가 바뀐 것을 느끼고, 클라우드의 등에서 떨어져나와 그의 곁으로 이동해 앉았다.
"빈센트."
"클라우드."
"설명을 부탁해도 될까?"
"물론이다. 그전에."
빈센트가 고개를 숙였다.
"아까는 미안했다. 날 막아줘서 고맙다."
클라우드가 흐릿하게 미소를 지었다.
"괜찮아. 다친 사람도 없고."
빈센트도 마주 웃었다.
"그렇군. 설마하니 내가 찰과상 하나 입히지 못하다니. 대단한 일이야."
"한방이라도 맞았다면 죽었겠지만 말이지."
"하하하. 그리 겸손할 필요 없다."
빈센트는 오히려 다행이라는 듯이 덧붙였다.
"난 네 힘을 보고 희망을 느꼈으니까. 이 상황을 타개할 희망을."
"역시 아직 끝나지 않은 건가."
"시작조차."
빈센트의 선언에, 티파는 문득 떠올렸다. 이곳에 도달하기 전에 빈센트가 발하던, 웨폰이라도 상대할 수 있을 것 같던 에너지를.
티파가 조심스럽게 확인했다.
"빈센트. 아까 분명히 웨폰이라고 했지. 클라우드를 웨폰으로 착각했다고."
빈센트가 고개를 작게 끄덕여 긍정했다.
"바로 그렇다."
그 무거운 선언은 모든 사람이 빈센트에게 집중하게 만들었다. 카오스 웨폰. 지금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상대. 평화로운 삶이란 이렇게나 어려운 것일까. 안타까움에 클라우드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티파는 그런 클라우드의 손을 조용히 맞잡아 주었다.
별의 그 자체의 죽음과 때를 함께하여 나타나는 특별한, 그리고 치명적인 존재.
카오스 웨폰.
이런 타이밍에 이런 것이 깨어난다면 끝장이다. 믿을 수 있는 동료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하물며 그들이 전부 모인다 한들 승산은 얼마나 될 것인가. 게다가 이 녀석이 나왔다는 것은-
아니, 억측이다.
그러나 곧 빈센트는 생각의 확장을 중지했다.
자신의 몸에 내제되어 있던 혼돈을 상징하는 별의 최종병기- 카오스 웨폰을 별에 돌려보낸 이후로, 빈센트는 최악의 사태를 막기 위해 쉬지 않고 별의 동향을 주시해 왔다. 별은 이제 건강하다. 별을 위협하는 존재도 더이상 없다. 책임을 통감한 루퍼스 신라는 그 막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세계재생위원회를 설립해서 투명하게 별을 재건하고 있고, 그 효과는 빈센트가 지속적으로 파악하고 있었다.
빈센트는 확신했다.
없었다.
별이 이렇게나 빠르게 재차 카오스 웨폰을 보낼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저것이 카오스 웨폰이 아니라면, 이 무시무시한, 심지어 친숙하기까지 한 이 에너지의 폭풍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어쨌든 빈센트는 이 자리를 벗어날 수 없었다. 이 존재의 정체가 무엇이든, 이 곳에 묶어둬야 한다. 그것이 나의 사명이다.
이 녀석을 상대로, 카오스의 힘도 잃어버린 내가- 어디까지 버틸 수 있을까. 아니, 약해질 수는 없다. 결단코 막아내고야 말 것이다. 빈센트는 그렇게 다짐하며 마황의 핵을 겨냥하여 정신을 집중했다.
그 어느 때 보다도 긴 하루가 될 것 같았다.
.
유피는 초조함에 손톱을 깨물고 있었다. 어째서인지 모르겠지만 가슴 떨림이 진정되지 않았다.
빈센트가 갑자기 사라진지 하루 이상 지났다. 물론 그녀도 알고 있었다. 초조해 하고 있는 것은 자신 뿐이었다. 당연하지. 진심으로 싸우는 빈센트를 이 세상 어느 누가 대적할 수 있겠어? 유피는 괜스레 어깨가 으쓱해졌다. 알아? 그게 빈센트라고. 무적이라고.
하지만 걱정이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과도한 신체 개조의 여파 때문에 그는 가끔씩 불안정해지기도 하니까. 유피의 얼굴에 다시금 수심이 피어났다. 그랬다. 언젠가 유피는 절체 절명의 위기에 빠진 빈센트를 구해냈던 일도 있었다. 하지만 그 때를 떠올리자 유피는 공연히 의기양양해졌다. 역시 빈센트 옆에는 내가 없으면 안된다구!
클라우드는 우울과 우쭐이 초단위로 교차하는 유피의 옆모습을 신묘한 표정으로 관찰했다. 역시 닌자 마스터. 행동 패턴을 감히 읽을 수 없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그의 정신이 다 흔들렸다.
"유피. 마황의 핵까지 이제 금방이다. 좀 진정하지 그래?"
티파도 맞장구를 쳤다.
"맞아. 만 하루만에 빈센트를 만나는 거잖아? 이럴 때 일수록 의연하게 있어야지."
그녀는 클라우드와 팔짱을 끼고 있었다. 유피는 그 다정한 모습에 공연히 부아가 치밀었다. 그래, 남편 곁을 지키느라 나도 칸셀도 버렸다 이거지. 이제 다 필요없어. 남의 속도 모르고 여유로우시네요? 응? 티파 S. 록하트 여사님?
클라우드도 유피의 걱정과 고뇌를 전혀 알아채지 못하고 티파의 말에만 반응했다.
"응? 빈센트? 그 녀석 만나는데 왜 의연해야 되는데?"
"클라우드는 둔하구나. 당연히 유피가 빈센"
"으아아아랏차차! 무슨 소릴 하는 거야 티파!"
저 바보 부부. 되는대로 지껄이기나 하고. 그야 빈센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진 않았을 테지만. 나도 실은 알고 있거든!
가만.
마황의 핵? 빈센트?
유피가 미간에 주름을 잡았다.
"빈센트? 마황의 핵이 있는 곳에 가면 거기에 빈센트가 있는 거야?"
클라우드와 티파가 눈을 맞추고는 유피를 빤히 쳐다봤다. 왜 그런 걸 굳이 확인하냐는 눈 빛이었다. 유피의 혼돈이 깊어졌다.
"있는데?"
티파의 말에 클라우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유피. 너도 무예가라면 티파처럼 사람의 기척 정도는 느낄 수 있어야지."
"뭐야아?"
나 닌자 마스터 유피가, 사람의 기척을 못 읽어? 그걸 지금 말이라고? 클라우드, 누나 기분이 지금 좀 이상해지려고 해.
유피가 완전히 허를 찔려 있는 동안 칸셀이 슬쩍 다가왔다. 그리고 조심조심 클라우드에게 말을 걸었다.
"아까부터 계속 궁금했는데, 당신 설마 마황의 핵이 어디 있는지 느껴지는 거야?"
이번에는 클라우드가 솔져 클래스 퍼스트가 그런 것도 모르는 거냐는 눈을 하고 되물었다.
"솔져라면 마황에 민감한 게 당연한 거 아닌가?"
못해! 솔져도 장비를 사용한다고!
이 녀석, 만년 반편이에 솔져도 아닌 주제에! 칸셀은 왠지 유피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 녀석 역시 꽤 짜증난다.
그러자 생각치도 않은 티파가 칸셀의 마음에 불을 지폈다.
"그래. 이렇게, 보이지도 않고 무게도 느껴지지 않는데, 흐름에 몸이 쏠려서 밀려나는 것 같은 느낌?"
"역시 티파. 그게 마황. 농축된 라이프 스트림이야."
칭찬하는 클라우드의 얼굴을 마주보며 티파가 배시시 웃었다. 훌륭한 염장 공격이다. 그 모습을 보며 칸셀은 생각했다. 그 자애롭고 따뜻한 티파도 이럴 땐 은근히 열받게 하는 구나.
유피는 가까스로 제 정신으로 돌아왔다. 인간이 맨몸으로 라이프 스트림을 느낄 수 있다는 사실에도 크게 신경쓰지 않기로 했다.
"이제 됐어! 이 바보 부부랑 이야기하다보면 속이 다 뒤집혀!"
칸셀이 크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동감이다."
"누가 바보 부부라는 거야?"
항의하면서도 티파는 왠지 기뻐보였다. 유피는 속이 거북해졌다. 뭐야, 내가 지금 부러워한 것 같잖아. 유피는 내면에서 발생한 감정과 전력을 다해 싸웠다. 하지만 이미 자신은 꺾인 것 같았다. 유피는 차라리 체념하기로 마음 먹었다.
그런 그녀의 입에서 귀여운 한숨이 폭 새어 나왔다.
"그래서? 그 마황의 핵이란 거랑 함께 있다는 빈센트는, 어디 쯤에 있는데?"
티파가 가볍게 거리를 쟀다.
"음... 저 쪽 방향으로- 3킬로미터 정도?"
"3킬로미터!"
유피가 다시 절규했다.
그렇게 멀리 있는 사람의 기척을 어떻게 읽어?! 그걸 못느낀다고 이 사람 같지도 않은 것들이 날 무시해? 오늘 진짜 자존심 상해서 대화를 못 해먹겠네!
티파는 난처하게 웃을 수 밖에 없었다.
"어떻게냐니... 그야."
클라우드가 고개를 끄덕이고 티파의 말을 받았다.
"저렇게 무시무시한 에너지를 내뿜고 있으니까. 나로써는 모르고 넘어가는 게 더 힘들 것 같은데."
그 말에 유피가 번뜩 고개를 들어 클라우드를 올려다 봤다. 그녀의 표정에 약간의 희망이 깃들었다.
"무시무시? 빈센트는 괜찮은거야?"
"괜찮고 말고, 마치 혼자 웨폰이라도 때려잡을 기세야. 설마 걱정하고 있었던 거야?"
"거거거거걱정은 무슨!"
"힘껏 걱정하고 있구만. 빈센트 실력 몰라? 왜 그렇게 빈센트를 못 믿는 거지?"
그 말은 너무나 충격적이고 자극적이어서 유피는 그만 주저앉고 말았다. 심장이 내려앉는 것 같았다.
내가 빈센트를 믿지 못하고 있다?
유피의 눈이 초점을 잃어버렸다.
"내가 클라우드에게 졌어. 그것도 빈센트로. 뭐야. 이거 현실이야?"
"이봐."
"나... 빈센트를 클라우드에게 빼앗기는 거야?"
"이보라고."
"티파! 남편 간수 똑바로 못 해? 뭐냐고 이게!"
"풔. 푸헙프아하하하하하하!"
티파는 도저히 참지 못하고 발작적으로 웃으며 유피의 등짝을 후려쳤다. 감전사할 것 같은 충격. 가히 뇌신의 철퇴. 유피가 무너지며 서러운 신음을 흘렸다. 눈물이 북받혀 올랐다. "빈센트, 얘네가 나 괴롭혀..." 유피는 정신적, 육체적으로 완전히 궁지에 몰려 버리고 말았다. 그런데도 티파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끅끅 거리며 허리를 펴지 못했다. 너무한 사람이다. 정말 심하다. 그로부터 유피가 패배감을 떨쳐 내기까지는 무려 반시간이나 걸렸다.
어쨌든 그들의 예상은 꽤 정확하게 들어맞았다는 것이 곧 밝혀졌다.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들은 이미 마음을 나누고 함께 사선을 건너온 바꿀 수 없는 동료니까.
그리고 그 결과는 최악의 방식으로 나타났다.
.
빈센트는 정신을 집중하고 있었다.
마황의 핵은 당장에라도 터져나올 것 처럼 약동하다가도, 곧 자취를 감출 것 처럼 희미해지곤 했다. 조금만 방심해도 이 존재는 빈센트의 탐지를 벗어나 세상을 향해 쏘아져 나갈 것만 같았다. 빈센트는 방해되는 오감을 차단. 온전히 마황의 흐름에 몰입했다. 시간의 흐름이 애매해지고, 세상과 자신의 경계도 사라져갔다. 그리고 곧 자신의 본능과 마황의 핵만이 남았다.
놓치지 않는다.
다가올 싸움에 대비하며 빈센트가 계속해서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그녀로 인해 세상에 나올 때를 착각한 죽음의 웨폰이, 이제 더이상 활개치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그녀의 죄를, 나의 죄를 더는 쌓지 않으리라.
빈센트는 더욱 힘을 날카롭게 정제했다.
한순간이다. 이 정제한 힘으로 급소를 꿰뚫을 수만 있다면, 마황의 핵- 카오스 웨폰조차 쓰러뜨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것말고는 방법이 없었다. 몇 번이고 노려 주겠다. 이길 수 있는 한, 설사 결국 이길 수 없게 된다 하더라도.
빈센트가 그렇게 다짐한, 바로 그 때였다.
마황의 핵이 요동쳤다. 빈센트는 그 존재가 각성할 때가 도래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인지했다. 이윽고 그 힘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빈센트의 감각이 순간적으로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빈센트의 본능이 최대급의 경고음을 울렸다.
마황의 핵은 이미 각성했다.
빈센트는 바로 등 뒤에서 그 존재를 감지했다.
놈은 산책이라도 하는 듯 평온한 상태로 빈센트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그러나 오감을 차단하고 마황에 대한 감각만을 열어둔 빈센트에게 놈은 경도될 정도의 마황 에너지를 밀어붙이고 있었다. 산이 움직여 다가오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 안에 숨기고 있는 마황은 거의 계측할 수 조차 없으리라.
주저하고 있을 여유가 없었다.
마치 마술처럼 빈센트가 3연장 핸드 캐논- 켈베로스를 꺼내들었다. 그 속도가 너무도 빨라 마치 총이 손에서 돋아난 것 같았다.
지체하지 않고, 탄환에 정제된 힘을 실어 발사. 이어서 약간의 시간차를 두고 연속으로 남은 두 발을 한번에 연사. 오랜 시간을 두고 정제한 힘을 한 순간에 전부 사용한 것이다. 힘을 아낄 상황이 아니었다.
날카롭게 정제된 힘이 켈베로스 탄환에 실려 음속의 세 배에 달하는 속도로 적에게 쇄도했다. 하지만 녀석은 피하지 않았다. 마치 물리 법칙을 초월한 것같은 움직임으로 빈센트가 사용한 모든 공격을 전부 튕겨낸 것이다. 놈은 날붙이를 사용한다. 게다가 그 숙련도가 무시무시하게 높다.
곧바로 놈이 돌진했다. 섬전처럼 이어지는 공격. 고개를 틀고 뒤로 물러서고 총신으로 막아내며 가까스로 재장전. 영거리에서 켈베로스를 연사. 놈은 그것을 전부 피해내며 거리를 좁혀왔다. 틀렸다. 놈의 간격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 속도, 투기, 전투 센스. 빈센트는 초격의 실패에 실망할 여유조차 사치라고 생각했다.
착각이었다.
명백하게, 놈은 카오스 웨폰이 아니었다.
카오스 웨폰과 융합했던 과거의 자신조차 뛰어넘는, 완전히 다른 존재였던 것이다.
.
"빈센트! 정신 차려, 빈센트! 날 알아보지 못하겠어?"
유피가 안타깝게 외쳤다. 하지만 그 목소리는 빈센트에게 닿지 않았다. 금방이라도 달려들 것 같은 그녀를 티파가 막아섰다. 빈센트가 타겟을 바꿔 난전이 시작되면 끝장이다. 클라우드가 그를 놓치면 우선 칸셀은 한 순간도 버티지 못할 것이다. 너무 위험하다. 지금은 클라우드에게 맡길 수 밖에 없다.
빈센트는 그야말로 트랜스 상태에 빠져 클라우드와 대적하고 있었다. 클라우드의 맹공을 아슬아슬하게 피해내며 켈베로스를 재장전하는 재주는 그 자체로 이미 인지를 초월. 검사 쪽이 명백히 유리한 지근거리에서도 타겟을 놓치지 않고 치명적인 공격을 펼쳐내는 전투 감각은 그야말로 턱스 오브 턱스. 날이 없는 검면에 발차기를 넣어 검의 궤적를 일그러뜨리고, 왼팔의 갈퀴같은 손톱을 휘둘러 패악스럽게 반격하는 빈센트에게 사각 따위는 전혀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런 빈센트를 상대로 클라우드는 용서없이 공격을 펼쳐내고 있었다. 이미 합체검의 본체는 내던져 버렸다. 지금 같은 초 근접전에 대검은 필요없었다. 클라우드는 가지고 있는 검 중 가장 가벼운 5번 검과 6번 검, 룬 블레이드를 양손에 쥐고 빈센트와 함께 죽음의 춤을 추고 있었다. 베고, 찌르고, 검을 역수로 바꿔 쥐며 페인트를 넣고, 켈베로스의 총구를 노려 흠집을 내고, 재장전을 방해하며 공격 시간을 늘려나간다. 클라우드가 검의 궤도를 마이크로 컨트롤. 팔의 힘줄과 방아쇠를 쥔 손가락, 아킬레스 건, 눈과 경동맥을 무작위로 공격. 공격 하나 하나가 살인적. 조금 다치더라도 빈센트는 죽지 않는다. 오히려 그 압도적인 재생 능력으로 금새 회복할 것이다. 팔이나 다리 하나 정도는 가져간다는 각오가 없으면, 빈센트는 결코 잡아둘 수 없다. 그리고 그를 묶어놓지 못한다면- 그 이후는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았다. 참극이다.
칸셀은 미드갈의 여덟 영웅 중 쌍벽이 펼치는 그 신들의 싸움과 같은 대결에 경악할 수 밖에 없었다. 클라우드의 실력을 감히 가늠해보려 했다니 생각이 모자랐다.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그는 역대 최강이었던 전설의 솔져를 쓰러뜨린 전사였다.
빈센트는 벌써 수십번이나 탄창을 교환했고, 클라우드의 공격 회수는 300회에 달했다. 클라우드는 이대로 몇 날 몇 일이라도 싸워 주겠다고 다짐했다. 빈센트가 다른 누군가를 해치는 모습 따위 절대로 보지 않을 것이다. 그 전에 반드시 빈센트를 구해내리라.
그러나 빈센트는 이 승부를 오래 끌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빈센트의 왼 팔이 세배로 부풀었다.
그 팔을 그저 휘두른 것 만으로, 음속의 충격파가 내달렸다.
"!?"
클라우드는 그 광포한 공격에 뒤로 밀려나면서도 상황을 냉정하게 파악했다. 물러서면서 땅에 꼽아둔 대검을 회수. 룬 블레이드를 꼽아넣었다. 빈센트가 이제와서 억지로 거리를 벌렸다. 온전한 합체검의 질량과 방어력이 없다면 대응할 수 없는 공격이 올 것이다.
예상대로 날카롭게 정제된 힘이 켈베로스에 맺히기 시작했다. 설마했지만 역시나 이곳에서 처음으로 펼쳐낸 3연사 공격을 재차 사용할 셈이다. 빈센트는 그 숨가쁜 공방 속에서도 힘을 아끼고 정제했던 것이리라. 정말이지 괴물같은 녀석이다.
목숨을 건 싸움의 상대로써, 부족함이 없다.
클라우드는 사선에 동료가 위치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이동했다. 켈베로스는 조용히 클라우드의 움직임을 따라왔다. 빈센트가 흔들림없이 자신을 겨냥하는 모습에 클라우드는 오히려 평온함을 느꼈다. 그걸로 됐다. 이제 유탄이 동료들을 위협할 일은 없을 것이다.
그래, 원한다면 어울려 주지.
체내의 힘을 정제해 탄환에 실어 발사하는 빈센트의 3연사는 이미 봤다. 총구의 방향을 정확히 인지하고 격발 타이밍만 읽어낸다면 음속보다 빠른 탄환도 쳐낼 수 있다. 전부 간파하고 반격에 나설 것이다. 이번에야말로 한 방 먹어주리라.
클라우드는 각오를 굳혔다.
이제 빈센트가 방아쇠를 당기는 그 순간, 이 대결이 끝날 것이다.
승부다, 빈센트.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미소가, 클라우드의 입가에 걸렸다.
.
티파는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클라우드와 빈센트의 대결을 지켜 봤다. 곁에 있는 유피도 날뛰지 않게 되었다. 칸셀은- 아마도 이런 싸움은 처음 경험하고 있을 것이다. 티파는 칸셀을 감각의 영역 안에 넣은 채로 만약의 사태에 대비했다.
곧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게 되었다. 바람조차 완전히 멈춰 있었다. 마치 온 세상이 그 둘의 대결을 숨죽여 관전하고 있는 것 같았다.
둘의 대치가 끝없이 이어졌다.
이대로 영원같은 시간이 흘러갈 것 같았다.
그리고 아무런 조짐도 없이 켈베로스가 초탄을 토해냈다.
그러나 클라우드는 그 순간을 정확하게 포착. 넓은 검면을 비스듬하게 세우고 아래에서 위로 휘둘러 에너지탄을 받아내며, 탄환의 궤도를 비틀었다. 이어서 폭발하듯 덮쳐오는 소닉붐을 억지로 버텨내고, 바로 다음 순간 코 앞까지 도달한 두번째 탄환을 눈에 보이지도 않는 속도로 내려 베어 두동강 낸다. 가히 신의 기술. 하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다. 다음 순간 땅이 폭발. 클라우드가 지면을 박차고 돌진한 것이다.
티파가 주먹을 꽉 쥐었다.
클라우드는 마지막 탄환을 돌진하면서 베어낼 생각이다. 그리고 바로 빈센트와 결착을 지을 심산이다. 음속의 세 배를 넘는 탄환을 눈앞에 두고 목숨을 담보로 한 상식 파괴는 클라우드 밖에는 시도해내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빈센트는 턱스 오브 턱스라고 까지 불렸던 에이젼트였다. 그는 냉철했다. 클라우드를 알아보지 못하고, 유피의 목소리를 잡아내지 못한 것이 이상할 정도로. 클라우드가 허를 찌르려 할 때 이미 빈센트는 허를 찌를 준비를 마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클라우드의 그것만큼 리스키하고 어려운 작업이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턱스 답게. 어렵고 복잡한 상황일수록 일수록 가볍고 쉽게.
빈센트의 세번째 공격은 탄환이 아니었다. 그것은 왼손으로 던진 비수였던 것이다. 그 엇박자 공격에 클라우드의 합체검이 목표를 잃고 조금 흔들렸다. 치명적인 오차였다. 비수는 겨우 쳐냈지만 그와 거의 동시에 도달한 켈베로스의 마지막 탄환이 클라우드에게 작렬했다. 파공음. 탄환이 사람을 꿰뚫는 소리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컸다. 클라우드가 간신히 검을 들어올려 머리가 꿰뚫리기 직전에 탄환을 막아낸 것이다. 하지만 흘려내기에는 역부족. 순간적으로 검에, 클라우드의 팔에, 그리고 전신에 어마어마한 압력이 내달렸다.
"...!!"
그 직후 티파가 감지한 것은 그녀 방향으로 조각 조각 분리되며 튕겨져 날아오는 클라우드의 합체검. 티파에게 직접 날아오는 3번 검 버터 플라이엣지를 걷어차고, 칸셀에게 떨어지는 퍼스트 츠루기를 회수. 아무렇게나 흩어지는 나머지 검들은 방치.
티파의 단정한 시선은 그 와중에도 클라우드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가, 클라우드.
계속 가는 거야.
티파의 속 마음이 전해진 것일까. 클라우드의 본능은 무기를 봉쇄당한 그 절망적인 상황에서 공격을 선택했다. 검을 놓친 그 기세를 스스로 회전하여 상쇄. 동선이 비틀려진 그대로 빈센트에게 돌진.
그 클라우드의 대담함에 티파는 미소지었다.
그래. 초조해하지 않아도, 할 수 있어.
이제 뭘 해야할 지는- 알고 있지?
다음 순간 클라우드는 빈센트가 전혀 대응할 수 없는 간격까지 파고들었다. 빈센트는 다가올 충격에 대비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했다. 클라우드의 레프트 보디 블로우가, 빈센트의 단단한 복근을 뚫고 내장을 그대로 헤집어 버릴 것 같은 기세로 꽂혀 들어온 것이다. 빈센트가 차단해둔 통각을 억지로 살려낼 정도의 막대한 충격. 빈센트의 상체가 90도로 접혔다.
멈추지 마, 클라우드. 멈추지 마!
티파의 생각 그대로. 조금의 시간차도 두지 않고, 클라우드의 오른손의 장타가 빈센트의 명치에 깊숙히 박힌다. 그대로 한 발 나서면서 팔을 굽혀 만든 왼팔꿈치가 인중을 가격. 연거푸 급소를 공략당한 빈센트가 비틀거렸다. 클라우드가 그대로 팔을 펼치며 회전. 레프트 백너클을 빈센트의 관자놀이를 함몰시킬 기세로 쑤셔 넣는다. 마지막으로, 백너클에 튕겨나간 빈센트의 머리에, 여세를 몰아 펼쳐낸 왼쪽 상단 돌려차기. 클라우드가 혼신의 힘을 담아낸 마지막 공격이 빈센트가 무의식적으로 펼친 가드를 부수며 목을 부러뜨릴 것 같은 속도로 날아들었다.
굉음.
빈센트는 몇 번이나 회전하며, 하늘을 바라보는 자세로 쓰러졌다. 그 치명적인 공격을 자아내던 날붙이를 잃고서 이런 공격이라니. 빈센트는 자신이 실패했다는 것을 인지하면서도 오히려 차분해 지는 것을 느꼈다. 그의 힘이 미치지 못함을 알았기 때문일까. 아니면 오래간만에 자신을 완전히 압도하는 상대를 만났기 때문일까. 빈센트의 눈이 천천히 감겼다.
정작 공격한 클라우드도 무사하지는 못했다. 한 순간에 모든 기력을 쏟아 부어버린 클라우드도 무너지듯 무릎을 꿇었다. 힐끗, 누워있는 빈센트에게 시선을 던졌다.
빈센트는 완전히 혼절해 있었다. 그러나 호흡은 평온 그 자체. 생명에 지장은 없으리라.
상황이 끝났음을 확인한 클라우드가 쏟아지는 피로와 전율적인 승리감 속에서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역시, 아무리 그래도 티파처럼 여유있게는 못하는 구나."
클라우드는 그 기나긴 투쟁의 시간 속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강적을 쓰러뜨리고서도, 그렇게 자평하는 것이었다.
.
"빈센트!"
클라우드가 겨우 한 숨 돌리고 있는데, 갑자기 훅 유피가 솟아올랐다. 그렇게 밖에 표현할 길이 없었다. 아, 깜짝 놀랐다.
"이봐 유피. 좀 조용"
"빈센트! 빈센트! 빈센트으!"
유피는 클라우드를 쳐다보지도 않고 빈센트를 안아 올렸다.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유피. 빈센트는 괜찮아."
"괜찮긴 뭐가 괜찮아! 사람을 이렇게 떡으로 만들어놓고! 당신 힘조절도 몰라? 이 얼굴 좀 보... 라고."
하지만 빈센트의 초 회복 능력은 정신을 잃은 상태에서도 변함이 없었다. 그리고 회복을 마친 빈센트의 얼굴은 신이 만든 피조물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아름다웠다. 유피는 빈센트의 잠든 얼굴을 완전히 홀려 있는 눈 빛으로 바라봤다.
그제야 클라우드는 이해했다.
아, 그랬군. 그래서 그렇게.
클라우드가 둘을 멍하게 바라보고 있을 때 등 뒤를 따뜻하게 감싸주는 사람이 있었다. 이 향기. 이 감촉. 절대로 착각할 수 없었다.
"티파."
"수고했어, 클라우드. 멋있었어."
티파가 클라우드의 목덜미에 가볍게 키스하면서 말했다. 그 부드러운 감촉에 클라우드는 살아있다는 감각이 들었다.
"무서운 상대였지만 어떻게든 됐군. 전부 티파 덕분이야. 그 때 티파와 겨루지 않았더라면 이길 수 없었을지도 몰라."
"문제가 뭐였는지, 이제 좀 알 것 같아?"
클라우드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아니, 실은 아직도 잘 모르겠어. 마지막에 흉내낸 티파의 기술도 완전히 이판사판이었고. 생각보다 잘 돼서 나도 모르게 가슴을 쓸어내렸을 정도야."
클라우드가 한심한 미소를 흘렸다. 그러나 그것은 티파를 두근거리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러니까 앞으로도 곁에서 가르쳐 주겠어? 한심하게도 내가 요령이 없어서 말야. 뭐든 하라는 데로 할테니까. 안될까?"
티파가 활짝 웃었다. 왠지 두 번째로 프로포즈를 받은 것 같은 느낌에 행복해진 티파가 클라우드의 목을 와락 껴안았다.
"안되긴! 대신 내 말만 들어야해? 록하트류 인생법은 독문절기에 타자불출이야. 다른 사람이 끼어들면 무효! 알았어?"
"하하하. 이제와서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클라우드가 고개를 돌려 티파에게 가볍게 키스했다.
"그거야 당연하지. 그 정도는 결혼하기 아주 오래 전부터 이미 그랬는 걸?"
티파가 온 얼굴로 웃었다. 달아오른 그녀는 참지 못하고 다시 클라우드의 입술을, 혀를, 타액을 훔쳤다. 곁에 있는 유피나 칸셀은 안중에도 없는 행동은 다른 일행들이 완전히 학을 떼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일행 중에는 빈센트도 있었다.
"과연."
빈센트가 상체를 완전히 일으켰다.
"클라우드가 그토록 강했던 이유를 알 것 같군. 웨폰으로 착각해버린 것도 무리는 아니었어."
"빈센트! 괜찮아? 정신 차렸어?"
유피가 빈센트의 머리를 품에 안았다. 빈센트는 의외로 그런 유피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부드럽게 답했다.
"미안했다 유피. 걱정을 끼쳤다."
"아니야 빈센트. 아니야."
그리고 유피는 그 후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간헐적으로 멍청하게 웃으며 "응후후~" 빈센트 곁에 찰싹 붙어 있었다. 얼굴에는 이미 미소가 돌아왔고, 장난기 서린 눈동자에도 반짝반짝 생기가 돌았다. 거의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 클라우드는 어이가 없었다. 나와 티파도 다른 사람에게는 저렇게 보일까.
그건 그렇고.
클라우드가 진지한 얼굴로 빈센트를 바라봤다. 티파도 분위기가 바뀐 것을 느끼고, 클라우드의 등에서 떨어져나와 그의 곁으로 이동해 앉았다.
"빈센트."
"클라우드."
"설명을 부탁해도 될까?"
"물론이다. 그전에."
빈센트가 고개를 숙였다.
"아까는 미안했다. 날 막아줘서 고맙다."
클라우드가 흐릿하게 미소를 지었다.
"괜찮아. 다친 사람도 없고."
빈센트도 마주 웃었다.
"그렇군. 설마하니 내가 찰과상 하나 입히지 못하다니. 대단한 일이야."
"한방이라도 맞았다면 죽었겠지만 말이지."
"하하하. 그리 겸손할 필요 없다."
빈센트는 오히려 다행이라는 듯이 덧붙였다.
"난 네 힘을 보고 희망을 느꼈으니까. 이 상황을 타개할 희망을."
"역시 아직 끝나지 않은 건가."
"시작조차."
빈센트의 선언에, 티파는 문득 떠올렸다. 이곳에 도달하기 전에 빈센트가 발하던, 웨폰이라도 상대할 수 있을 것 같던 에너지를.
티파가 조심스럽게 확인했다.
"빈센트. 아까 분명히 웨폰이라고 했지. 클라우드를 웨폰으로 착각했다고."
빈센트가 고개를 작게 끄덕여 긍정했다.
"바로 그렇다."
그 무거운 선언은 모든 사람이 빈센트에게 집중하게 만들었다. 카오스 웨폰. 지금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상대. 평화로운 삶이란 이렇게나 어려운 것일까. 안타까움에 클라우드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티파는 그런 클라우드의 손을 조용히 맞잡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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