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nameless7777 2016. 7. 20. 10:57
티파는 클라우드의 모든 것을 보고 듣고 있었다.

저 강대한 웨폰을 상대로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는 용맹함도, 기어이 승리를 쟁취해 내는 의지도.

그리고 전신에서 새어나가는 생명도, 마지막 순간 숨이 끊어질 듯 뱉어낸 자신의 이름도.

곧 무너져 내리는 그를 중심으로 마황이 흔들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희미한 빛이 새어나오는 것도 같았다. 웨폰이 쓰러진 후 굳어 움직이지 않던 몬스터들도 슬금슬금 클라우드를 향해 접근하기 시작했다.

너무 늦었나.

아니, 늦지 않았어.

늦지 않게 하겠어!

티파가 도약했다. 클라우드의 수직 위, 하늘 높이 날아오른 티파가 허공을 박차고 지면에 떨어져 내린다.

그리고 클라우드가 무너져 있는 바로 옆 땅에 맨틀을 뚫고 들어갈 것 같은 강렬한 스탬프. 내려 꽂힌 티파의 발을 중심으로 지맥이 뒤틀리고, 균열이 파도처럼 지면을 타고 격렬한 기세로 내달렸다.

.

새하얀 공간.

넓고, 무한하고, 아무 것도 없는 그 공간에 클라우드가 있었다. 꿈이라도 꾸고 있는 걸까. 하지만 이상한 느낌이 든다. 이 데자뷰. 아무래도 이곳에 몇 번 왔던 일이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들려오는 친숙한 목소리.

"클라우드. 내 목소리 들려?"

클라우드는 정신이 몽롱한 상태에서 그 목소리를 들었다. 뇌리에, 존재에 각인되어 있을 목소리. 잊을 수 있을 리가 없다.

<...잭스?>

나는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걸까. 클라우드는 반사적으로 가장 궁금한 것을 물었다. 꿈이라면 왠지 자신이 원하는 답을 내주지 않을까, 내심 그렇게 기대하면서.

<티파는?>

곧 잭스로부터 힘빠진 반응이 돌아왔다.

"이봐, 아무리 그래도 바로 티파를 찾냐? 날 알아보고서?"

알 바 아니었다. 클라우드가 질문을 반복했다.

<티파는 무사해?>

잭스가 미소를 짓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건강해. 그보다 네 몸을 걱정하지 그래? 이번에야말로 위험했다고."

<티파가 무사하면 나도 무사해>

"무슨 결론이 그래?"

<티파는 언제나 날 구해주니까>

이번엔 잭스가 쓴 웃음을 지은 것 같았다.

"어련하시겠습니까. 네 말대로야. 그 사람이 널 치료하고 있어. 목숨 건졌다고. 하지만 그걸론 부족해. 넌 이곳에 서둘러 와서 별의 축복을 받아야 해. 그렇지 않으면 너는 평생 그녀의 간호를 받으며 살아야 할거야."

<음... 그건 조금 곤란하군>

"그렇지? 그러면 얼른 그녀를 설득해봐."

<뭘?>

"잔뜩 경계하고 있거든. 널 여기로 보낼 생각이 없어. 차라리 네가 회복하는 동안 함께 여기에 와 있으면 어떨까 하는 거지. 어차피 그녀에게도 그럴 자격이 충분하니까."

클라우드는 지금 사고 능력이 완전하지 않았다. 그러나 티파와 함께라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무심결에 그런 결론에 도달했다.

<해보지>

"그래주라. 그냥 조금 빛날 때 잠깐 가만히 있어주기만 하면 돼. 부수지 말고. 아니 뭐, 아까는 덕분에 살았어. 그런데 이 번엔 좀 참아달라는 거야. 너 치료해야 하니까. 알았지? 이거 은근히 라이프 스트림이 많이 들어가거든."

말이 많아, 잭스. 클라우드가 짧게 대답했다.

<그래>

그렇게 대답하고 나서, 머리가 몽롱한 상태에서도 중요한 의문이 들었다.

<나갈 때. 나갈 때에도 문제는 없는 거겠지>

"응? 나갈 때? 아아. 그건 걱정마. 이 형님께서 다 알아서 해줄 테니까."

<왠지 못 미더운데>

"나만 믿으라니까. 아, 그렇지. 참고 삼아 말하자면, 바깥에 상황이 좀 이상하거든. 절대 놀라지 말고."

<?>

클라우드는 고개를 갸웃거리는 동작을 취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뭐, 아무렴 어때.

<알았다>

.

클라우드가 천천히 눈을 떴다. 잭스? 아까 그건 정말 잭스였나? 그는 약간 현기증을 느꼈지만, 입안을 맴도는 보드라운 느낌과 코로 전달되는 달착지근한 향기가 오히려 기분 좋을 정도였다. 의외로 몸 상태는 나쁘지 않은 것 같았다.

상처가 조금씩이지만 회복되고 있다. 몸이 받아들이고 있는 것은 내가 만든 유사 엑스 포션인가. 클라우드는 약간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이번에 티파가 잔뜩 챙겨온 포션은 빨간 녀석이다. 그건 이렇게 달콤하지 않을텐데.

게다가 이 보드라운 감촉. 이건 굉장히 익숙하다.

정신을 놓고 있던 클라우드는 스스로 액체를 삼킬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그래서 티파는 입으로 직접 클라우드에게 유사 엑스 포션을 전달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혀에 전달되는 약한 감각과 숨결을 느꼈다. 틀림없다. 클라우드가 깨어났다.

"클라우드?"

"...티파. 네가"

"클라우드!"

또 날 구해줬구나.

티파가 클라우드의 머리를 와락 껴안았다. 얼굴 가득히 전달되는 티파의 부드러운 감촉. 달콤한 향기. 클라우드는 자신이 살아났다는 것을 실감했다. 아, 그러고보면 예전에도 한 번 이랬던 일이 있었던 것 같은데.

티파의 감촉을 만끽하던 클라우드에게 곧 주위를 둘러볼 여유가 생겨났다. 그리고 클라우드는 헛숨을 들이켰다.

몬스터의 군집. 엄청난 숫자. 클라우드의 민감한 마황감지능력이 무의식 중에 이를 헤아려 보기 시작했다. 하나, 둘, 삼백, 오천 육백, 이만 사천 칠백 오십 육. 몬스터들이 마치 돌진 명령을 기다리는 병사들처럼, 클라우드와 티파를 포위하는 형태로 정갈한 원형 포메이션을 짜고 잔뜩 긴장한 채 이곳을 노려보고 있었다.

"뭐야, 저건?"

클라우드의 뺨에서 식은 땀이 흘러내렸다. 그러나 티파는 완전히 태연했다.

"아, 신경쓰지마. 방금 이 자세로 몇 마리 죽여놨더니 더는 안오더라고."

"뭐?"

상황을 잘 이해하지 못 하는 클라우드에게 마치 증거를 보여주겠다는 듯, 티파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몬스터들이 움찔 거리더니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대단히 희극적인 장면이었다. 방금 웨폰과 벌인 사투가 거짓말 같을 정도로.

그렇군. 저것은 원형 포메이션 따위가 아니다. 티파를 중심으로 반경 100 미터. 놈들이 감히 다가오지 못하고 있는 것 뿐이다.

그 반경 안에 있는 지면에는 온통 거미줄 같은 균열. 그리고 클라우드는 겨우 모든 상황을 이해했다. 잭스의 기억은 꿈이 아니었다. 여기에서 티파가 국소 지진을 일으킨 것이다. 단 일격으로 클라우드가 라이프 스트림으로 떨어지는 것을 막아내고, 덤으로 몬스터들에게 넘어오면 죽는 경계를 설정했다. 그리고 아마도 몇몇 발이 미끄러져 경계를 넘어서버린 몬스터들을 권풍으로 뭉게버렸겠지. 클라우드의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 소름의 원천이 살아남았다는 기쁨인지 심연을 목도한 공포인지 선뜻 판별하기 어려웠다.

잠시 후 그렇게 완전히 굳어버린 몬스터들의 머리 위로 익숙한 얼굴들이 튀어 나오기 시작했다. 일부는 몬스터들을 밟고 도약해서, 일부는 놈들의 머리 위를 저공 비행해서. 빈센트와 유피를 앞세운, 클라우드와 티파의 동료들이었다.

"우와, 빌어처먹을. 살아 있는 느낌이 안드는데."

시드가 거친 숨을 내쉬었다. 아무리 몬스터들이 저항하고 있지 않다고는 하지만, 그 두터운 포위망을 일직선으로 뚫고 지나온 것이다. 오금이 저리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그 옆에 기계 인형 2기가 차례로 굉음을 내며 착지했다.

"하지만 그 덕분에 최단거리로 합류할 수 있었습니다만."

기계음. 저건 리브의 새로운 전투 기체인 것 같았다. 그 옆의 기계 인형에게서는 바렛트의 기운이 느껴졌다. 이어서 칸셀이 그녀의 기계 인형과 함께, 그리고 마지막에는 나나키가 합류했다. 말 그대로 동물적인 감각을 가진 그가 몬스터 횡단이라는 초 고난이도 미션 중 파티의 후미를 지켰던 것이겠지.

빈센트가 클라우드의 신체를 죽 훑어봤다. 몸이 많이 상했지만, 생명에는 이상 없음. 그가 보일 듯 말듯 하게 미소지었다.

"살아있어서 다행이다, 클라우드. 혼자서 웨폰 융합체를 제압하다니. 이제는 정말로 세피로스의 경지에 이르렀는지도 모르겠군."

"아직 멀었어. 녀석이라면 좀 더 스마트하게 정리했겠지."

"이긴 것도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것도 너다. 좀 더 자랑스럽게 여겨도 좋아."

빈센트는 몬스터들을 돌아보지도 않았다. 이미 녀석들이 섯불리 접근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아챘으리라.

"그 무섭게 달려들던 놈들이 마치 겁먹은 강아지같네. 어떻게 된거야?"

이건 칸셀이다. 아마도 다치지는 않은 것 같다. 티파가 다시 포션을 입으로 흘려 넣어주기 시작한 참이라, 클라우드는 칸셀을 돌아볼 수도 없었다.

빈센트가 조용히 상황을 분석했다.

"지령을 내리던 웨폰이 사라져서 본능만이 남은 거다. 티파의 기백을 느끼고 가까이 다가가면 죽는다는 걸 알게 된거지."

"숫자가 이렇게 많은데도?"

"이성이 없으니까. 선발대가 죽는 걸 보고 느꼈겠지. 저기 그렇게 죽은 녀석들이 몇 있군."

척추가 비틀려 있는 키마이라, 등껍질이 산산히 부서져 있는 아다만타이마이, 그 외 다수.

빈센트가 주변의 상흔을 보고 그 자리에 있었던 것 처럼 설명한다.

"타격점을 보니 몇 놈들은 앉아있는 상태에서 그대로 공격해 죽인 것 같군. 본능밖에 없는 놈들이 굳어서 움직이지 못하는 것도 당연하다."

유피는 몸서리 치며 티파를 바라봤다. 그리고 그녀가 아직도 클라우드에게 입으로 포션을 옮겨주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아연실색했다.

"우와, 이젠 대놓고, 끝도 없이! 그만 좀 하지 그래? 사람들 앞에서 부끄럽지도 않아?"

티파가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계속 작업을 계속했다.

"유피, 이건 의료 행위야. 인공호흡 같은 거라고. 부끄러울 일이 뭐가 있어? 그렇지, 클라우드?"

지금껏 티파의 입술을 탐닉하는데 정신이 팔려 있던 클라우드는 이제와서 목으로 넘길 수 있으니 그냥 병을 기울여 포션을 흘려넣어도 괜찮다고 고백할 수는 없었다. 게다가 그는 충분히 합리적인 이유도 댈 수도 있었다.

"이 포션 그냥 마시면 써서 두 병 이상은 못 마셔."

그리고 티파가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게다가 오늘 클라우드는 출혈이 심했으니까, 포션을 많이 마셔서 혈액을 보충해야 돼."

결혼한지 얼마나 됐다고 죽이 아주 잘 맞는구만 그래! 유피는 바닥에 널부러진 빈 포션 병을 바라봤다. 벌써 열 개 이상은 되어 보였는데, 티파는 포션을 하나 더 열었다. 유피는 신경질 적으로 빈센트를 바라봤다. 저거, 보이냐고 저거. 뭔가 느껴지는 게 없어? 그러나 빈센트는 무표정하게 흐뭇한 얼굴로 티파와 클라우드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눈이 너무 환하고 기뻐 보여서, 유피는 그만 허탈하게 웃어버리고 말았다.

"허허허어. 내가 말을 말지."

유피가 모든 것을 내려놓고 소박한 질문을 입에 담았다.

"클라우드. 그렇게나 포션을 마셨는데 아직 일어나지 못하는 거야?"

티파의 입술이 떨어질 때까지 기다린 클라우드가 겨우 대답했다.

"그렇군. 힘이 잘 들어가지 않아."

그 어조가 너무나도 평온해서, 유피는 신경이 끊어지는 것 같았다. 착하게 살고 싶었지만, 이죽거리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냥 티파에게 안겨있고 싶은 건 아니고?"

클라우드는 의식하지도 않고 반격했다.

"그럴 바에야 빨리 집에 돌아가서 둘 만 남아있게 되는 편이 더 좋아."

또, 또 지뢰를 밟고 말았다. 유피는 눈물이 흐를 것만 같았다. 유피가 자폭하는 무렵 티파가 흘끔 클라우드의 사타구니를 흘겨봤다. 용솟음치는 마황, 확인 완료. 티파가 자신감 넘치는 미소를 보이며 선언했다.

"응. 괜찮네. 내가 잘 돌보면서 살면 돼."

잠깐, 그건, 그 시선은 대체 뭐야. 언니는 티파의 말이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어.

"음, 맞아. 분명히 내가 그것만큼은 확실히 보호해두긴 했지."

왠지 클라우드가 의기양양하게 응답했다. 그만둬. 더 이상 듣고 있을 수 없어. 난 꽃 같은 유피라고!

유피의 좌절을 심드렁하게 쳐다보던 바렛트는 그런 클라우드의 반응에 솔러스의 가슴팍을 열고 고개를 내밀며 물었다.

"그런데 정말 괜찮은거야 대주주님?"

클라우드가 바렛트를 비스듬하게 올려다 보려다 포기했다. 원래 커다란 친구가 더 커다란 물건에 올라타 있으니 바라보려 해도 고개가 아팠다.

"괜찮아 공장장님. 그리고 완전히 회복할 수단도 있는 모양이고."

그 말에 바렛트 대신 빈센트가 반응했다.

"설마... 라이프 스트림인가."

"그래. 잘 알고 있군."

"위험한 곳이다. 의식의 융합체에 휘말리면 되돌릴 수 없어."

"초대한 것은 잭스다. 믿을 만한 녀석이야."

그 말에 칸셀이 깜짝 놀라 클라우드를 바라봤지만 클라우드는 눈치 채지 못했다.

"게다가 티파도 같이 초대받았어. 티파가 함께라면 안심이다."

팔불출 같은 발언은 근엄한 얼굴로 재쳐두고, 빈센트가 잠시 생각했다. 객관적인 사유는 빈센트의 특기였다.

"괜찮겠지. 웨폰에 필적하는 두 사람이 함께. 게다가 서로의 인연도 강해. 흐름에 자신을 잊어버릴 가능성은 낮아."

빈센트의 판단이 떨어지자 마자 클라우드는 티파를 올려다 봤다.

"그래서 말인데, 같이 가주겠어? 티파."

티파의 얼굴이 활짝 피어났다.

"어디든지!"

티파는 클라우드의 얼굴을 볼을 맞대고 문질렀다. 라이프 스트림이라는 말에 가슴이 철렁했지만, 클라우드가 함께 가자고 말해주었다. 티파는 클라우드와 함께라면 어디든 갈 수 있다. 산이든 바다는 멘틀이든 핵이든, 심지어 라이프 스트림의 소용돌이까지도.

티파가 소박한 의문을 담았다.

"그런데, 어떻게 가면 되는 거야?"

클라우드가 조금 생각하는 얼굴이 되었다.

"그러니까, 잭스 말로는 빛이 날 때 잠깐 기다리면 된다고"

말을 마치기도 전에 맑은 녹색의 마황의 빛이 클라우드와 티파를 감쌌다. 클리우드는 곧바로 이해했다. 이것이야말로 두 사람이 라이프 스트림으로 이동하는 징조. 잭스의 인도였다.

"...했어. 시작했군. 이번에는 부수지 말아달라고 하더라."

곧 라이프 스트림으로 이동하기 시작하는 클라우드와 티파의 존재감이 조금씩 옅어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이변.

몬스터들이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동료들이 즉각 반응. 무기를 들고 몬스터들과 대치했다. 빈센트가 담담하게 클라우드와 티파를 안심시켰다.

"티파의 기세에 억눌려 있던 본능이 풀려났군. 걱정하지 마라. 놈들의 뒤를 받쳐주고 있던 웨폰도 없고. 시간을 들여 천천히 정리하면 된다."

빈센트가 탄환을 재장전했다. 시드가 혀를 내둘렀다.

"오늘 수천발은 쏜 것 같은데, 아직도 잔탄이 있는 거냐?"

솔러스의 자가 수복을 마친 리브가 잔간류의 자세를 잡으며 대신 답했다.

"예로부터 턱스 오브 턱스에게는 숨겨진 주머니가 있다고 하더군요."

바렛트는 비공정 시에라호로부터 미리 받아둔 예비 플라즈마 미니건에 매거진을 채워 넣으며 호기롭게 말했다.

"준비 완료. 3000필 정도는 나에게 맡겨."

나나키는 몬스터의 대군이 꿈틀거리고 있는데도 늘어지게 하품을 했다.

"후방에 루퍼스 일행도 도착했군. 협공해서 빨리 끝내자."

칸셀은 고개를 숙인 채 말이 없었다. 잭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 말하고 싶다. 부탁하고 싶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다. 그녀는 끝내 클라우드를 돌아보지 않았다. 그녀는 어느 새 전사의 얼굴을 한 채 몬스터의 대군을 쏘아 보고 있었다.

곧 클라우드와 티파는 빛에 휘말려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몬스터가 돌진하기 시작한 것은 그 직후였다.

.

클라우드와 티파가 라이프 스트림에 소환되었다. 소환되기 전과 동일한 상태였다. 클라우드는 아직 전신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 상태로, 티파의 무릎을 베고 누워 있다. 티파는 어디까지나 끝없이 펼쳐진 새하얀 방에 조금 놀란 눈치였으나, 특유의 대범함으로 평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어서와. 목이 빠질 뻔 했다고."

잭스가 클라우드와 티파를 맞이 했다. 클라우드는 아까와는 달리 잭스의 모습을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정신도 또렷했다. 그 탓일까. 클라우드는 더이상 그를 아까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대할 수 없었다.

"잭스."

클라우드의 목소리가 조금 떨렸다.

클라우드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 그에게 가까이 가고 싶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하나도 떠올릴 수 없었다.

그런 클라우드를 보며, 잭스가 웃는 얼굴로 성큼성큼 다가왔다.

"웨폰과 싸우는 모습, 전부 봤어."

잭스가 무릎을 꿇고 클라우드의 손을 굳게 잡았다.

"훌륭했다. 과연, 내가 살았던 증거다."

그리고 클라우드에게는 그 말로 충분했다.

"잭스. 고마웠다. 그리고 미안했어."

잭스는 고개를 숙였다. 그 표정에 드러난 것은, 고뇌. 그리고 자책.

"사과해야할 것은 내 쪽이야. 라이프 스트림의 폭주를 막지 못했어. 게다가, 클라우드. 너에게- 너희들에게 지금부터 괴로운 결단을 요구하지 않으면 안 돼."

티파가 잭스를 바라보며 말했다. 클라우드의 어깨를 감싸고 있는 손에, 조금 힘이 들어간다.

"자세한 설명이 필요할 것 같네."

잭스가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그가 무겁게 입을 열려고 할 때, 라이프 스트림이 준비한 새하얀 공간에 다른 존재가 방문했다.

"아, 정말. 왜 그렇게 겁을 주고 그래? 의외로 당사자들에게는 심각한 이야기가 아닐지도 모른다고."

청량감이 느껴지는 목소리였다. 그 목소리를 듣고 있자니 클라우드와 티파는 세상 모든 고민을 다 잊어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지금 하게 될 결단도 점심 메뉴 선택 정도로 가볍지 않을까.

그 존재의 등장에, 티파가 가장 먼저 반응했다.

"에어리스!"

에어리스가 화사하게 웃었다.

"티파. 오래간만이야."

그녀의 밝은 목소리를 듣고서, 티파는 고여 들어오는 눈물을 손가락으로 훔쳐 냈다.

같은 남자를 사랑했다. 하지만 분명히, 그것 뿐만이 아니었다. 신파극에서 자극적으로 다루는 감정 소모가 있을 법도 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티파는 에어리스를, 에어리스는 티파를, 서로 신뢰하고 의지했다. 죽음이 두 사람을 떨어뜨려 놓았을 때 티파는 눈이 눈물로 녹아내리는 것만 같았다. 부모님을 잃었던 때 이후로 처음으로 울었다. 그녀는 연적이었고, 언니였고, 친구였고, 존경할만한 여성이었고, 바꿀 수 없는 동료였으며, 별을 구하는 모험의 이정표였다.

티파의 감정이 얽혀 복받쳐 올랐다.

"에어리스. 그 때 우리가, 너무 늦어서..."

"괜찮아, 티파. 난 정말 괜찮아. 별을 지켜줘서 고마워."

"에어리스..."

"결혼 축하해 티파. 더 예뻐졌어. 진짜야."

"고마워. 고마워, 에어리스. 나 기뻐."

티파는 이제 눈물을 방울져 떨어뜨렸다. 너무도 행복했다. 그녀는, 에어리스는- 티파가 가장 축하받고 싶어했던 사람이었는지도 모른다.

클라우드는 약간 머쓱해졌다. 서투르게 그녀들 사이에 끼어들었다.

"역시 에어리스였구나. 날 치료해 주려는 거지? 그 때도 그렇고, 번번히 신세를 지게 되는군."

클라우드는 1년 반 전의 성흔증후군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 때 그녀의 치료가 아니었다면 이 별은 세피로스에게 넘어갔을 것이다.

클라우드는 에어리스에게 의연하고 어른스럽게 대응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에어리스는 그런 클라우드의 말을 장난스럽게 받았다.

"네, 그렇답니다. 어느샌가 오라버니가 되셨지요. 이제 홀몸도 아니실진데, 더이상 이런 곳에 실려 오시면 아니되지요."

클라우드는 뒷 머리가 간질간질한 느낌이 들었다.

"하하... 면목이 없어."

클라우드는 곧 자신이 마황을 순환시키는 것은 물론 스스로 머리를 긁적일 수 있게 되었음을 알았다. 치료는 시작되었다. 이게 저 환상의 절대 회복 주문, 그레이트 가스펠인가. 하지만 에어리스는 약간 심각한 얼굴이 되었다.

"생각보다 회복이 느려. 대체 얼마나 몸을 혹사시킨 거야? 순순히 티파를 기다릴 생각은 안 들었어?"

"할 말이 없네. 생각할 여유가 없긴 했지만, 설마 티파가 그 장벽을 날려버릴 줄은 상상도 못했어."

티파가 아직 눈물이 그렁그렁한 상태로 클라우드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내가 속으로 그렇게 서두르지 말라고, 기다리라고 신호를 보냈는데 말야. 앞으론 잘 알아 들으었으면 좋겠어."

클라우드가 손을 뻗어 티파의 얼굴을 쓰다듬고, 눈물을 닦아주었다.

"참회하겠습니다. 제가 아직 믿음이 부족하였나이다."

"그대의 죄를 사하노라."

티파가 장난스럽게 웃으며 받아주었다.

생각해보면 알아챌 계기는 늘 있었다. 티파에게 청혼한 그곳에서 다 꺼져가는 마황의 핵을 찾아낸 것도 그녀였다. 정말 둔하구나, 나는. 조금만 더 생각이 치밀했다면, 그녀가 가진 힘의 본질을 똑바로 인지했다면, 일이 이렇게까지 복잡해지지는 않았으리라.

하지만, 결국 티파는 스스로 자신의 힘을 깨닫고 마황의 장벽을 부쉈다. 그리고 숨이 끊어져 가는 클라우드에게 포션을 전달했다. 조금만 늦었더라면. 클라우드는 이제 평생을 사용하더라도 티파의 은혜를 보답할 수 없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래. 생각해보면 당연한 건지도 몰라. 카오스에게는 반려가, 오메가가 있는 법이니까. 그런 의미에서, 두 사람에게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 말이야."

에어리스가 목을 가다듬었다. 방금 잭스가 말하려던 것인가. 티파가 부지불식간에 허리를 꼿꼿하게 세웠다.

"클라우드, 티파. 두 사람은 카오스와 오메가의 인자를 이어받고, 그들을 대신하여 별의 전사가 되어주실 의사가 있으십니까."

.

"쳉. 그들은 정말 강하군."

"네, 사장님. 소름이 끼칠 정도입니다."

몬스터의 시체가 하나 둘 사라지기 시작했다. 고 위험군 몬스터, 웨폰 발생 시 함께 등장한 첫 개체부터 총 삼만 팔천 육백 십오 필, 전부 제거 완료. 그 중 절반을 저 여섯 명이 해치웠다. 공격력이 가장 강한 둘을 빼고서도 이 정도다. 게다가 그 둘 중 하나는 혼자서 지상 최강의 웨폰 융합체를 별로 돌려 보냈고, 다른 하나는 반경 1 킬로미터에 달하는 마황의 벽을 일격에 분쇄했다.

예전의 루퍼스였다면 세계 평화를 위해 그들을 격리시켜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리고 죽었을 테지. 힘으로 그들을 어떻게 할 수는 없다. 그걸 확인한 것만으로 수확이었다.

"피해 상황은?"

"프라우드 솔러스 28기 대파. 2기 개수 가능. 솔져 16병 부상. 사망자는 없습니다. 턱스 오브 턱스, 더 레드 서틴이 그들의 퇴로를 확보하며 몬스터를 섬멸해준 것이 주효했다고 판단됩니다."

"감사의 말을 전해주게. 아니, 내가 직접 가는 게 낫겠군."

루퍼스는 길고 아름다운 손가락으로 턱을 쓰다듬었다.

"그들은? 뭔가 알아낸 것이 있나?"

"턱스 오브 턱스에 따르면, 그들은 라이프 스트림에 있는 모양입니다."

"라이프 스트림."

"예. 다른 동료들에게는 이야기 해두지 않았지만, 뒷 처리를 하러 간 것으로 생각된다고."

"뒷 처리라."

루퍼스 신라가 조금 조용해지더니 이내 명령을 쏟아냈다. 좋겠지. 이 쪽의 뒷 처리는 내가 해주겠네.

"이곳에 루퍼스 컴퍼니의 캠프를 세운다. 최신예 마황 계측기와 프라우드 솔러스 100기, 솔져 50명을 배치. 기한은 클라우드와 티파가 발견될 때까지. 현장 책임자는 칸셀. 이상. 그들에게도 전해주도록."

"알겠습니다, 사장님."

쳉이 허리를 깊이 숙여 인사하고 자리를 떠났다.

.

"별의 전사?"

클라우드가 상반신을 일으키며 손가락을 움직여 본다. 조금만 더. 힘은 거의 돌아왔다.

"설명을 해주겠어?"

"말 그대로의 의미야. 별의 위기에 나타나 원흉을 제거하는 거지. 예전에 클라우드가 하던 일과 거의 같아. 이른바 해결사라는 거야."

"역시 웨폰은 날 시험하기 위해 보냈던 거였나?"

"맞아. 클라우드는 훌륭하게 통과했어. 티파는 사실 상정 외 였지만 강한 전사는 얼마나 있어도 부족해. 마침 웨폰의 인자도 둘이니까. 기쁜 오산이었지."

살갑던 그녀는 어디로 갔는지, 에어리스의 표정은 아다만타이트 처럼 단단히 굳어있었다. 그에 맞춰 티파의 표정이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클라우드는 현 상황이 여러가지 면에서 마음에 들지 않았다. 조금만 긴장을 풀면 표정이 무너질 것 같았다.

어려운 결정은 아니다. 답은 나와있다. 그러나 에어리스는- 별은 어떤 반응을 보여줄까.

이윽고 클라우드가 일어섰다. 몸은 무척 가벼웠다. 전능감. 힘이 돌아왔다. 대답할 준비는 끝났다.

클라우드는 티파와 눈을 맞추었다. 언제나와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은 마음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그러므로 이런 중요한 일은 말로 확인할 필요가 없다.

클라우드는 분명하게 대답했다.

"거절하겠어."

에어리스가 조용히 말했다.

"별을 지키는 명예로운 일이야."

"흥미 없어."

"카오스와 오메가의 인자를 이어받으면 너희들은 더 강해질 거야."

"필요 없어."

"티파와 함께 영원히 살 수도 있어."

"그런 것 없이도 티파와는 늘 함께야."

에어리스가 클라우드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내가, 잭스가 부탁하더라도?"

그 말에 클라우드는, 약간 슬픈 표정이 되었다.

"미안하다."

답은 그 한마디 뿐이었다. 클라우드가 입을 조개처럼 다물었다. 티파가 그의 말을 이었다.

"에어리스. 클라우드는 열심히 했어. 별을 두 번이나 지켰고, 오늘도 정체를 알 수 없는 적을 상대로 만신창이가 될 때까지 싸웠어. 아무런 보상도 바라지 않고."

티파가 계속 주장했다.

"나는 요구하겠어. 하늘과 땅과 바다에, 라이프 스트림에도. 우리는 우리의 삶을 살아갈 거야. 다른 어떤 존재의 영향도 받지 않겠어."

에어리스가 한 숨을 내쉬었다.

"별 그 자체가 위험하다 해도?"

클라우드가 결연한 표정으로 답했다.

"별은 지켜. 우리의 의지로. 여기는 나와 티파의 집이니까."

에어리스가 고개를 숙였다. 그녀의 어깨를 토닥이면서, 잭스가 앞으로 나섰다.

"마지막으로 확인하겠어. 별의 전사가 될 의사는 없는 거야? 번복의 여지 없이?"

클라우드는 티파와 맞잡은 손에 강하게 힘을 넣었다.

"몇 번 물어도 대답은 같아. 별의 전사는 되지 않아."

에어리스가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입가에는 언제나와 같은 상냥한 미소가 돌아와 있었다.

"에어리스."

"클라우드. 이제 정말 괜찮은 거지? "

"그래."

"앞으로는 티파를 울리지 않는 거지?"

"물론이야."

겨우 티파의 얼굴에도 미소가 되돌아왔다. 언제나의 에어리스였다.

"그럼 좋아. 별에게 반드시 그렇게 전하겠어."

"고마워, 에어리스. 알아줘서."

"티파. 너무 짓궂게 물어봐서 미안했어. 답은 이미 알고 있었는데도. 반드시 필요한 일이었거든. 별을 납득시키기 위해서."

잭스가 참았던 숨을 내쉬면서 고백했다.

"이제와서 이야기하는 거지만 사실 난 조금 걱정했어. 이 녀석 성실하니까. 책임감을 느껴버리면 어쩌나 하고 말이야."

티파와 결혼하지 못했더라면, 그랬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의 클라우드는 그 말을 장난스럽게 받아칠 수 있었다. 목소리에서 긴장은 완전히 풀려 있었다.

"음. 사실 난 알아채고 있었어. 잭스가 계속 오줌이 마려워 미칠 것 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으니까."

티파가 입을 가렸다. 그리곤 필사적으로 새어나오는 웃음을 참았다.

"그래서 나는 속으로 이미 결론을 내려놨지. '알았어 잭스. 그러니까 우리가 이거 받아 들이면 안된다는 것 맞지? 내 생각도 그래. 싫어. 안 할 거야. 딴 사람 찾아봐. 난 마스터 스위츠에 돌아가서 빵이나 굽고 살거야. 아 참, 우리 동료들은 안돼. 불쌍한 빈센트는 더 안 돼'. 이제 우리 의견은 확실히 알았지?"

클라우드가 아무런 표정 변화도 억양도 없이 속사포처럼 말을 쏟아냈다. 그 매끄러운 언변. 마치 한참 동안 준비해 놓은 것 같았다. 티파는 더는 참을 수 없었다.

"프아하하하하하하하!"

티파가 웃음보가 폭발했다. 결혼하고 나서 티파는 폭발하기 쉬워졌다. 클라우드가 실없는 소리라도 하면 여지없이 폭발했다. 이를 두고 클라우드가 굳이 폭발한다고 표현하는 이유는 그녀가 폭소하면서 옆에 있는 사람의 등을 후려치기 때문이다. 그냥도 아픈데 지금은 마황까지 실려 있었다. 수틀리면 이 공간 자체를 파괴할 심산으로 모아뒀겠지. 클라우드는 티파가 즐겁게 웃는 모습이 흐뭇해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티파의 공격을 묵묵히 받아냈다. 티파의 폭소는 클라우드가 거의 존재가 세상에서 지워질 것 같다고 느낄 때 쯤 겨우 잦아들었다.

잭스가 숙연해졌다.

"클라우드, 너, 맞고 사는구나..."

"이 정도는 혈액순환에 도움을 주는 잔간류 마사지 같은 거야."

강한 척. 허세. 덧 없는 이야기였다. 잭스가 혀를 찼다.

"두 번 도움 받았다가는 니가 라이프 스트림에 순환될 것 같은데."

"부정하진 못하겠군."

티파가 제 2차 폭소를 터뜨리려는 것 같았다. 농담이 아니다. 이대로 라이프 스트림에 파묻힐 수는 없었다.

"이제 티파의 힘을 알았겠지. 다들 조심해."

클라우드가 서둘러 말을 돌렸다. 게다가 슬슬 확인해야 할 일도 있었다.

"그럼 설명해 줘. 전부."

잭스가 표정에서 약간 웃음기를 지우며 고개를 끄덕였다.

"몇 년인가 전에, 라이프 스트림에 이물질이 섞여들어왔어."

"이물질이라고?"

"그래. 외계의 기억이야."

"점입가경이군."

"게다가 잘 인지하지 못한 사이에 완전히 융합해 버렸어. 성흔증후군과는 달리 이건 생명 그 자체를 직접 좀먹지는 않았으니까.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건지도 모르겠어."

잭스의 설명이 이어졌다.

"참고로 클라우드가 상대한 웨폰 융합체의 전투 패턴은 그 외계의 기억이 가지고 있던 전사의 기술을 가져온 거야."

클라우드가 전투 내용을 회상했다. 웨폰의 기량- 특히 창술은 의심할 바 없는 초일류 전사의 그것이었다. 그 기술을 닦은 당사자와 직접 겨뤄보고 싶을 정도로.

"그래. 그런 힘이 갑자기 섞여 들어온거야. 당장은 문제가 없을 지 모르겠지만, 불안의 씨앗이 된 것 만큼은 틀림없었지. 그러던 차에 문제가 생겼어."

"내가 반년 전에 제거했던 마황의 핵인가."

"맞아. 그게 마을 하나를 날려 버렸지. 그런데 우리는 그게 어떤 경위로 발생했는지도 파악하지 못했어."

"너희들조차 원인을 모른다고?"

"그래. 몰라.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나게 될지, 아니면 그저 그렇게 끝나버린 건지 전혀 예상이 안돼. 외계의 기억과 관련이 있는 건지 조차."

클라우드가 복잡한 얼굴을 했다. 잭스의 설명이 이어졌다.

"거기에 별의 라이프 스트림에 대한 마지막 안전 장치는 빈센트 발렌타인과 관련되어 있는 매드 사이언티스트에 의해 허점이 발견됐지. 그 결과 별은 단순한 병기가 아닌, 스스로 유연하게 판단하고 자율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전사가 필요하다고 느꼈던 거야. 그게 바로 너였던 셈이지."

이야기의 끝이 보였다. 클라우드가 예상가능한 최악의 결말을 이야기했다.

"티파가 없었다면, 웨폰을 상대하고 무력해진 나는 그대로 이곳에 불려와 웨폰의 인자를 받게 되었겠군. 승패와는 상관없이."

"그래. 티파가 널 지켜준 덕분에, 우리는 동요한 라이프 스트림의 틈을 찔러서 활동할 수 있게 됐어. 그리고 본인의 의사를 확인해야 한다는 절차를 밀어넣은 거지. 덤으로 그 사이에 널 치료할 수 있었고. 별이 무방비해진 너를 다시 건드릴 수 없도록 말이야."

잭스가 티파를 돌아봤다.

"고마워 티파. 최악의 결과를 막아낸 건 너야. 친구로써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어."

티파는 라이프 스트림의 일부에 불과한 에어리스나 잭스가 표면에 나오기 위해 어떤 희생을 치렀는지 상상도 가지 않았다. 만약 그들이 별의 편에 섰다면, 클라우드의 회복을 빌미로 선택을 강요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그러지 않았다. 그들이 클라우드와 티파를 생각하는 마음에는 아무런 거짓도 없는 것이다. 감사라니, 당치도 않았다. 티파는 오히려 잭스에게 고개를 숙일 수 밖에 없었다.

"나야말로 감사해. 어떻게 보답해야 할 지 모르겠어."

클라우드는 그런 티파의 머리칼에 가볍게 입을 맞추고, 남아 있는 문제를 지적했다.

"하지만 라이프 스트림의 입장에서는 계획이 파탄난 것과 마찬가지야. 앞으로 정말 괜찮은 거야?"

"이제와서 라이프 스트림이 너희들의 결정을 반대할 수는 없지. 우리들은 이미 너희들에게는 최강의 웨폰조차 통하지 않는다는 걸 알았어. 이제는 순수하게 너희들의 도움을 구할 수 밖에 없는 거야. 약속한다. 오늘 같은 일은 앞으로는 일어나지 않을 거다. 라이프 스트림이 몬스터들을 선동해 방해하는 사람까지 해치려 하다니, 있어서는 안될 일이었어."

클라우드가 굳게 고개를 끄덕였다.

"다름아닌 네가 한 말이야. 믿겠다."

그러나 어차피 걱정할 일은 없다. 티파가 곁에 있으니까. 언제고, 몇 번이고 그녀가 날 구해줄 것이다. 클라우드가 무심코 그녀를 바라보자 티파가 마주 보고 활짝 웃어주었다. 클라우드는 마음에 남은 앙금이 전부 씻겨 내려가는 것 같았다.

그러자 초조하게 지루한 표정으로 잭스의 설명이 끝나기만을 기다리던 에어리스가 손뼉을 쳤다.

"자, 그런 사소한 일은 됐고."

"사소한 일이라니. 나 거의 죽을 뻔 했는데."

클라우드가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굳이 반론했다. 그리고 에어리스는 클라우드를 완전히 무시했다.

"그럼 식을 진행하겠습니다."

"식? 무슨 식?"

"별의 축복."

"별의 축복?"

"결혼식. 클라우드가 새까맣게 까먹고 넘어간 그 결혼식 말이야."

클라우드와 에어리스가 매우 동어반복적으로 문답했다. 그리고 에어리스가 보내는 비난의 눈초리에 클라우드가 당당하게 선언했다.

"후. 우리는 사랑으로 연결되어 있어. 인간의 허례허식이 닿지 못할 정도로."

"이래서 클라우드는 안된다니까. 티파, 고생 많았어."

티파는 그저 난처하게 웃을 수 밖에 없었다. 그런 티파를 바라보며 에어리스는 장난스러운 분위기를 감추고 따뜻한 미소를 돌려 보냈다.

"우리가, 별의 대표로써 축복해주겠다는 거야. 그래주고 싶어. 괜찮을까?"

티파가 에어리스에게 답했다.

"고마워, 에어리스. 나 정말 상상도 못했어."

허락이 떨어졌다. 엣헴. 에어리스가 목을 가다듬고 낭랑하게 말했다.

"클라우드. 앞으로 티파를 아내로 맞아 행복한 삶을 살아갈 것을 맹세합니까?"

"맹세합니다."

"항상 티파의 의견을 구하며, 그녀의 음성을 듣고, 사랑으로 답할 것을 맹새합니까?"

"맹세합니다."

"항상 그녀의 눈 안에 머물고, 마지막 한 순간까지 그녀의 곁을 지킬 것을 맹세합니까?"

"맹세합니다."

"티파. 클라우드가 속썩이거나 잠적하면 마음속으로 날 불러. 바로 티파 전용 맞춤형 계시를 내려줄게."

"응. 알았어."

뭐야 이 편애는. 이 온도차는. 맹세는 왜 나만 하는 거야? 그리고 계시라고? 라이프 스트림을 그런 곳에 낭비하지 말라고.

게다가, 나는 말이지.

"나는 티파의 단 맛에 중독 됐거든."

클라우드가 티파를 돌아 봤다. 그녀가 입으로 넘겨준 달콤한 포션을 삼키며 새삼스럽게 생각했던 것이다.

"나는 이미 티파를 떠나서는 조금도 살 수 없게 됐어."

클라우드의 낯간지러운 고백에 티파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이제와서 부끄러워할 일도 없을 텐데. 티파는 되새겨 확인했다. 그 사이 티파는 클라우드와 또 한 번 사랑에 빠졌던 것이다. 그야말로 아무런 의심도 저항도 없이, 별조차 적대할 수 있을 정도로.

에어리스의 미소가 거룩함으로 가득찼다.

"두 사람이 별의 축복 속에서 온전히 맺어졌음을, 엄숙히 선언합니다."

그리고 다음 순간 그것은 장난기로 돌변했다.

"그럼 두 사람, 맹세의 키스를."

"뭐-"

"왜 그래 티파? 맹세하지 못하겠다는 거야?"

"아니"

"아니면 증인이 둘 뿐인게 불만이야?"

"그게 아니라"

"클라우드는 욕정, 아니 맹세할 마음으로 가득차 있는데?"

"으..."

욕정이라니. 아니거든. 클라우드는 쓴 웃음을 흘렸다. 하지만 구미가 당기는 이야기인 것은 확실하다. 별의 축복 속에서 이루어지는 맹세의 키스라니. 절대로 놓칠 수 없는 이야기다.

하지만 이럴 때 티파는 묘하단 말이지. 그럴 마음이 들 땐 주위의 시선을 전혀 신경쓰지 않으면서, 일단 부끄러움에 스위치가 들어가면 미스릴 광석이 무색한 철벽을 세워 버린다. 지금이 바로 그랬다. 매우 곤란하다.

결국 클라우드는 전가의 보도를 꺼내 들기로 마음 먹었다. 아니, 합체검은 밖에 놓고 왔지만, 진짜 무기는 늘 마음 속에 간직하는 것이다. 이런 게 이른 바 심검이라는 것이겠지.

"티파."

"으응?"

티파가 제대로 반응하지 못 하고 있다. 바로 지금이다.

"사랑해 티파."

이전의 티파는 허용 농도 이상의 부끄러움에 빠지면 클라우드의 관자놀이나 명치 같은 급소를 용서없이 타격했곤 했다. 자랑은 아니지만 클라우드는 그 공격을 받고 코피를 흘리거나 혼절한 경험도 있었다.

하지만 요즘의 티파는 높은 확률로 이렇게 굳어 버린다. 클라우드는 그런 그녀가 귀여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클라우드가 단번에 그녀의 입술을 빼앗고 혀를 구속했다. 티파의 타액이 감미로운 천상의 음료가 되어 클라우드의 목을 축였다. 클라우드는 철저하게 티파를 탐닉했다. 티파도 클라우드의 공세를 정신없이 받아들이면서도 유연하게 반격했고, 클라우드는 그 부드러운 감촉에 거의 정신을 잃어버릴 것 같았다. 그야말로 별의 축복. 세상 그 어떤 것보다도 완벽한, 궁극의 스위츠. 그렇게 클라우드는 깨달았다. 그녀야 말로 나만의, 나를 위한 마스터 오브 스위츠. 클라우드는 이제 다른 어떤 스위츠도 필요 없다고 생각했다.

늘 행복하길 빌어, 클라우드, 티파.

시즈네에게도 안부 전해줘.

멀어지는 감각 속에서 그런 마지막 인사를 들은 것 같았다. 하지만 곧 그것은 뇌리에서 사라져 갔다. 지금 클라우드의 세계에는 품에 안고 있는 티파만이 확실하게 존재하고 있었다.

.

그 빛의 기둥은 돌연 나타났다.

성층권까지 뻗어 있는 그 기둥은 발생 이후 지금까지 48시간 동안이나 유지되고 있었다. 마치 무엇인가를 예고하는 것처럼.

세계 각국은 그 빛의 기둥에 의미를 찾고자 모든 수단을 아끼지 않았다. 결론적으로 그들은 아무런 의미도 찾을 수 없었다. 심지어 이 빛은 완전히 무해하기까지 했다. 밝게 빛나면서도 눈부시지 않아 시력에조차 영향을 주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미드갈의 -지금은 여섯 밖에 남지 않은- 여덟 영웅들과 루퍼스 컴퍼니의 중진들은 이 빛이 라이프 스트림에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빛의 기둥이 관측된 상황이 클라우드와 티파가 사라질 때의 현상과 완전히 역순이었기 때문이다.

클라우드와 티파의 동료들은 지체없이 빛의 기둥 앞에 집결했다. 때를 같이 하여 루퍼스 신라 또한 기둥 앞에 전 병력을 배치했다. 그 물량은 웨폰 전쟁 때의 두 배. 솔러스 100기에 달했다. 그 어떤 일도 속단할 수 없기에, 루퍼스 신라의 대응은 지극히 타당했다.

루퍼스 컴퍼니가 예상한 시기가 다가왔고, 빛이 점점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전사들이 잔뜩 긴장한 가운데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 일어났다. 빛의 기둥을 중심으로 각양 각색의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뜻 밖의 상황에 전사들이 당황하고 있는 사이에 빛의 기둥은 급속도로 사라졌다. 그리고 그들은 그 빛 속에 낯익은 두 사람이 서 있는 것을 확인했다.

빛나는 금발을 하고 있는 선이 가늘고 단정한 미청년은 슬림핏의 흰색 턱시도를 입고 있었다. 그의 반대편에 서 있는 꽃이 피어난 것 처럼 아름다운 여성은 땅에 끌릴 정도로 길면서도, 늘씬하고 긴 다리를 그대로 드러내는 화려하고 새하얀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이것은 결혼식이었다. 그리고 신랑과 신부는 맹세의 키스를 나누고 있었다. 그 몽환적이고 성스럽기까지한 장면에 아무도 감히 입을 열 수 없었다.

지상으로 돌아온 클라우드와 티파는 공기가 바뀐 것을 눈치채고 입맞춤을 멈췄다. 서로의 타액이 짧게 늘어졌다가 끊어졌다. 이윽고 그들은 자신들의 복장이 바뀌어 있는 것에 놀라고, 주변에 잔뜩 피어있는 꽃들에 놀라고, 본의 아니게 하객으로 참석한 동료들과, 루퍼스 컴퍼니의 사장 이하 턱스 5인방과, 칸셀을 필두로 한 솔져 부대와, 100기에 달하는 솔러스를 보고 다시 놀랐다. 우리는 분명히 그 새하얀 공간에서, 에어리스가 주선한 결혼식을 올리고 있었을 텐데.

그리고 클라우드의 뇌리에, 문득 정신이 몽롱할 때 들었던 잭스의 경박한 목소리가 떠올랐다.

응? 나갈 때? 아아. 그건 걱정마. 이 형님께서 다 알아서 해줄 테니까.

그 때부터 이미 에어리스와 한통속이었나. 거기까지 간파해낸 클라우드가 주변을 다시 차분하게 주위를 돌아보며 잭스를 평가했다.

미친 놈아.

그러나 클라우드의 상념은 오래 가지 않았다. 티파가 그의 나비 넥타이를 잡아 끌어 두 번째 맹세의 키스를 시작한 것이다. 방금전까지 간직했던 부끄러움은 새하얀 웨딩 드레스 뒷편의 풍성한 치마폭에 전부 숨겨둔 것 같았다.

다시금 티파의 달콤한 숨결을 느끼며 클라우드는 잭스에 대한 평가를 조금 철회했다. 잘했어, 친구. 그야 뭐, 대부분 에어리스의 생각이었을테지만.

곧 그 모습을 보고 어이를 완전히 상실한 유피의 평가와 "헐. 대박." 루퍼스 신라의 박수를 시작으로- 억눌려 있던 흥분이 한순간에 풀려났다. 우뢰와 같은 함성, 귀청을 찢는 박수, 터져나가는 카메라 플래시가 끝도 없이 이어졌다.

클라우드의 티파는 그 환성 속에서 언제까지고 서로만을 생각하고, 또 사랑했다. 입맞춤이 이어질 수록 환호는 더욱 커져만 갔다. 이후 티파는 동료들 사이에서 이 때의 대담한 행동이 화제에 올랐을 때 실로 변화무쌍한, 문자 그대로 모든 종류의 반응을 보이게 된다. 이 때의 기억은 그녀를 울거나 웃게 했으며, 분노하게 하고 또 행복하게 했다. 또한 이 화제가 마치 무용담처럼 그녀의 평생에 걸쳐 회자되었음은 굳이 두 번 언급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렇게 클라우드와 티파는 3년을 돌고 돌아 이루어진 청혼 끝에, 그리고 순서를 완전히 무시한 신혼 여행과 피로연 끝에- 비로소 별과 동료의 축복 속에서 때늦은 결혼식을 올리게 된 것이었다. 그 이후에도, 이 커플에게는 여러가지 크고 작은 일이 일어나게 되지만, 그것은 또 다른 이야기이다.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