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시디아 파이널 판타지'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7.03.13 DDFF. 성왕과 병사
  2. 2016.08.09 DDFF. 병사와 용기사
posted by nameless7777 2017. 3. 13. 23:57
클라우드는 살짝 혀를 찼다.

아무래도 카인에게 잘못된 정보를 가르쳐 준 것 같다. 앞으로 나아갈 수록 그는 친숙했던 성기사의 기운을 강하게 느낄 수 있었다. 폭신폭신한 어둠이 강한 빛에 감싸여 균형을 이루는, 특이하고도 신비한 기감.

틀림없다. 이 앞에 카인이 찾는 사람이 있다.

그렇다면 그 앞에 있었던 것은 누구였을까. 어째서 내가 이걸 착각해 버린 걸까. 지금쯤 카인은 그 사람과 만났을까.

뭐, 큰 문제야 있으려고. 다름 아닌 저 자상한 성기사와 닮은 사람일 터이다. 클라우드는 꼬리를 무는 생각을 털어내고 걸음을 옮겼다. 성기사가 티파의 정보를 알고 있다면 좋을텐데.

하지만 클라우드는 곧 익숙한 공간의 균열을 감지했다. 패왕 엑스데스가 세계 곳곳에 내놓은 상흔은 지금처럼 찢어지곤 한다. 그리고 차원의 틈새에 대량으로 서식하는 꺼림직한 존재들을 토해낸다.

구조적으로 돌맹이나 마찬가지인 무기질적 존재이면서도, 근처의 유기 생명체를 흉내내는 것을 통해 성장하는 이율배반적인 존재.

이미테이션.

그 상세는 완전히 수수께끼이다. 다만 알려진 것은, 본능적으로 자신이 흉내낸 존재들을 증오하고 배척한다는 것 정도다.

클라우드는 즉시 전력으로 질주했다. 수십 미터에 달하는 보폭을 고려하면 날아올랐다는 표현이 적절할 지도 모른다.

60초가 채 지나기 전에 클라우드는 검을 쥐고 서 있는 은발의 기사를 육안으로 확인하고, 안도했다. 성기사는 건재. 이미 쓰러져 있는 이미테이션이 다섯 개체. 서 있는 이미테이션은 두 개체에 불과했다. 클라우드는 처음부터 전혀 걱정할 이유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미테이션이 발생한 그 순간 성기사가 내뿜은 기세는 마치 산을 움직이고 달을 기울게 할 것 같았으니까.

이제 클라우드는 다른 의미로 의아함을 느꼈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의문과 해답이 교차했다. 저 성기사의 압도적인 기량에도 불구하고, 어째서 나머지 이미테이션들이 아직도 서 있을 수 있는가. 성기사가 등 뒤에 용기사를 감싸면서 싸우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저 용기사는 왜 이곳에 있는가. 분명히 그는 나와 반대 방향으로 걸어갔을 터이다.

아니,

아니다!

"...세실...! 뒤를 조심해!"

그건 카인이 아니야!

이미테이션이다!

클라우드는 속도를 한계 이상으로 끌어 올렸다. 피와 마황과 심장이 들끓고, 허파가 산소를 게걸스럽게 갈구하고, 빠른 속도로 손상되는 근육이 고통 속에서 아우성친다.

맞출 수 있을까? 클라우드는 이를 악물고 스스로를 독려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성기사의 정면으로 동시에 쇄도한 두 이미테이션들에게 세실이 출수하는 동안, 가짜 카인의 창은 이미 세실의 등뒤로 뻗어 이미 갑주에 닿고 있었다.

클라우드는 눈을 찌푸렸다. 저 위치는 심장 쪽이다. 치명상인 것이다. 클라우드와 세실의 시선이 교차했다. 세실은 부드럽게 웃고 있었다. 그러나 클라우드에게는 그 미소를 해석할 여유가 없었다.

섬전과도 같은 세실의 일격은 두 이미테이션의 목을 한 번에 훑고 지나갔다. 간신히 도달한 클라우드는 가짜 카인에게 모든 체중과 운동 에너지를 실어 일섬했다.

굉음.

거의 공간이 찢어져 그 틈새에서 새로운 이미테이션이 쏟아져도 이상할 것 같지 않은 파공성.

클라우드는 제 눈을 의심했다.

세실의 검이 클라우드가 휘두른 검의 궤적을 가로 막고 있었다. 자신의 심장을 꿰뚫릴 위기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가짜 카인을 지켜준 것이다.

클라우드의 아미가 찌뿌려졌다. 성기사와 용기사의 사정은 골베자에게 들어 대충 알고 있다.

하지만, 하지만!

"바보 자식! 사람이 좋은 것에도 정도가 있다!"

하지만 미소짓고 있는 세실의 표정은 평온했다.

도저히 심장을 손상당한 사람 같아 보이지 않았다. 클라우드의 시선이 가짜 카인의 창끝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는 눈을 의심했다. 부들부들 떨리고 있는 가짜 카인의 창끝은 세실의 등에 겨우 닿아 있을 뿐이다.

설마 이미테이션이, 살의를 억제하고, 공격을 멈췄다?

클라우드의 뇌가 포화상태에 빠져 설명을 요구하려는 때에, 타이밍 좋게 머리 위로 맑은 목소리가 흘러 내려왔다.

"젊은 전사여. 그만 투기를 풀어주시게. 내 두려워 견딜 수가 없으이."

그 위엄. 카리스마.

소싯적 싸가지가 없기로 그 왼편에 서있을 자가 없었던 클라우드조차 무심코 무릎을 꿇고 싶어지는 목소리였다.

아니다.

이 자는 내가 알고 있는 그 성기사가 아니다.

같은 영혼을 지녔으면서도 완전히 다른, 완숙한 존재다. 그러므로, 아무 문제도 없다. 클라우드는 힘을 풀고 손상된 근섬유에 마황을 돌려 신진대사를 촉진시켰다.

세실 너머에서 무너져내린 용기사는 잔뜩 억눌린 한 마디 만을 남겨놓았다.

나를, 나를 보지 마라.

거짓된 용기사는 등을 돌려 하늘로 사라졌다.

.

피차 설명할 것이 많았다.

클라우드는 간단한 식사를 준비하면서, 먼저 이 세계에 대해 설명했다. 두 신들의 싸움에 사용될 장기말로써, 이세계로부터 소환된 전사들. 신의 싸움이 끝나지 않는 한 죽을 수 없으며, 그 대신 죽을 때마다 전세의 기억을 잃어버리는 법칙 등.

대강의 일을 전해 들은 눈 앞의 남자, 성왕 세실 B. 하비는 생각에 잠겼다.

"설마하니 전설의 디시디아인가. 이야기가 복잡해졌군."

놀랍게도 이 자는 지금까지 클라우드가 알고 있던 성기사 세실 하비의 미래인 것 같다. 그릇이 큰 줄은 어렴풋 하게 느끼고 있었지만 설마하니 왕까지 되신 모양이다. 그에 따라 범상치 않은 지식을 쌓아두신 것 같다.

이 지옥같은 곳에 떨어진 뒤 산전수전에 공중전까지 겪은 클라우드라 한들 이 세계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것은 아니다.

클라우드가 물었다.

"알고 있는 건가?"

그러나 세실은 부정했다.

"아니, 내가 살고 있던 미시디아란 곳에서 읽은 책에 인용되어 있었을 뿐이야. 자네가 설명한 것 이상의 정보는 없네."

이제와서 새삼 실망스러울 일도 없다.

클라우드는 요리에 눈을 돌렸다. 세실과 함께 발견한 새둥지에서 가져온 알이다. 초코보 수정란 만큼은 아니지만 다행히 어느 정도 비슷한 풍미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클라우드는 돌을 깎아 만든 접시에 오믈렛을 담아 세실에게 건냈다. 절묘하게 덥힌 접시는 따끈한 오믈렛의 온기를 효과적으로 보존해주고 있었다.

"고맙네."

세실은 요리를 받아들고 턱을 쓰다듬었다.

"끝없는 싸움에, 죽지는 않더라도, 기억과 힘이 깎여나간다는 것인가. 흠. 골치아픈 일이로고. 곁에 로자가 있었다면 걱정할 일이 없겠지만."

로자. 성기사 시절에 맺어진 반려인가. 세실이 웃는 낯을 보였다.

"자네, 정말로 이곳에서 나와 함께 싸워왔던 것이로군. 슬슬 믿을 수 밖에 없겠어."

"하지만, 이런 곳에 당신의 아내가 함께 있다해도 좋은 일은 없어. 두렵고, 무슨 일이 있을지 상상할 수 없는 곳이다."

"흥. 모르는 소리. 힘들 때 함께 있지 않고서 어찌 반려라 할 수 있겠는가."

세실이 코웃음쳤다. 클라우드는 눈썹을 조금 들어올렸다. 세실이 가끔 보여주던 치기어린 표정이다. 클라우드는 그가 언제 이런 얼굴을 보여주는지 알고 있었다.

"걱정하지 말게. 그녀는 내가 가장 신뢰하는 완벽한 전사 중 한 명일세. 오히려 우리가 그녀의 발목이나 잡지 않으면 다행일 것이야."

클라우드는 한 숨을 내쉬었다. 그는 이 뒤에 이어질 말도 알고 있다. 괜한 말을 했다고 자각한다.

"아, 그래. 알았어. 알고 있어. 성왕."

"흠. 내 말을 믿지 못하는 모양인데, 그녀는."

"왕국 제일의 명사수이자 회복술사라지. 공격 마법은 하나 밖에 모르지만 위력은 절륜. 공성전에 중용될 정도라 했던가."

"뭐야, 잘 알고 있지 않은가. 하긴, 내가 말하지 않았을리 없지. 우주를 뒤져도 그런 사람은 다시 없을 것이니."

이번에는 클라우드가 코웃음칠 차례였다. 당신 만큼은 아니지만, 나 역시 그 예전의 애송이가 아니다.

"후. 내 아내를 보고도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 싶군."

검은 병사의 자심감 넘치는 발언은 겸양과 성실의 화신에게 불신과 호승심을 심었다.

"호오..?"

"당신 세계라면 또 모르겠지만 감히 우주를 들먹인다면 어쩔 수 없지. 별의 심장부에서 표류하던 나를 목숨을 걸고 꺼내준 사람이 바로 내 아내다. 티파 S. 록하트라 하지."

성왕은 물끄러미 병사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옳거니. 저것은 그저 자랑하고 싶어서가 아니다. 저 눈은, 자신과 같다. 진심으로 제 아내가 우주 제일이라 믿는 것이다.

설마.

설마 이 자는, 하늘이 주신, 세상 끝에서 온 내 호적수란 말인가.

세실의 눈이 지엄해졌다.

"이름을 클라우드경이라 했던가. 괜찮겠나? 이 나를 진심으로 만들어도."

"겨우 식전 요리를 대접했을 뿐이다. 당신이 내 진심을 이끌어낼 수나 있을 것 같아?"

클라우드의 도발에 세실은 호기롭게 웃었다. 이미테이션과 싸울 때 보다 전의에 불타고 있는 모습을 보며, 클라우드는 실소했다.

진심으로 나를, 티파를 이길 생각인가.

어리석다. 가소롭다. 박살을 내주마, 바론의 성왕 나으리.

그리고 둘은 검을 사용하지 않는 전투를 시작했다.

혀는 보통 보드랍고 유연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는 검보다도 단단해 진다. 상황에 따라서 혀는 병장기보다 치명적인 것이다.

클라우드가 포문을 열고, 세실이 응사했다.

"내 아내는 천사다. 폐인이 된 나를 포기하지 않고 간호해 줬지. 지금의 나는 티파가 만들었다."

"자애, 긍휼, 헌신을 3대 덕목으로 삼는 백마도사의 정점 앞에서 그 성정을 논하는가."

"티파는 밝고 활달하여 싫어하는 사람이 없다. 옛말에 인자무적이라 하더군."

"로자는 그 존재 자체로 왕국의 사기를 드높힌다. 칭송받아 마땅하다."

"옥의 티라면 너무 예쁘다는 것이겠지. 매일 질투가 날 정도다."

"하하하하. 날 믿게, 젊은 친구. 그 이야기는 감히 하지 않는 편이 나을 터."

"내가 방황하던 때에도 티파는 흔들리지 않고 기다려줬다. 내가 다시 고백할 때까지, 몇 년이나."

"몇 년이고 뭐고, 로자는 내가 성인이 되는 날까지 기다려줬다."

"...?"

"그 날 처음 맺어졌지."

"..."

"그 이야기가 아니었나?"

"...아니다, 성왕. 아니다."

"..."

"..."

"내가 성왕이라 불릴 즈음 로자는 패왕이라 불리웠지. 보통은 무엇을 빼앗을 때 기다리지 않는 사람이다."

"..."

"그리 부끄러워하지 말게. 내가 몸둘 바를 모르겠지 않은가."

"누가 부끄러워 한다는 거야."

"후후후. 자네 차례일세."

"...큭."

"흐하하. ...흠?"

"...먹었군."

"이, 이건..."

"티파는 방금 당신이 삼킨 오믈렛을 내가 직접 만들 수 있도록 큰 그림을 그렸다."

"..."

"왜."

"...이런 아무 것도 없는 곳에서... 이런 절품을 어떻게 만들었지? 그 어떤 시행착오도 없이?"

"...? 실패한 건 지금 내가 먹고 있다만?"

"허어... 그게... 그것도 이미 충분히 훌륭해 보인다만... 아니 그보다, 처음 본 사람에게 굳이 잘 만든 쪽을... 설마, 몸에 배어있는 이 배려 또한 아내의 지도 편달 덕분이라고...?"

"크게 말해. 중얼거리지 말고."

"무례한지고. 난 아직 지지 않았다."

"큭큭큭."

"후... 내 아내는 나와 둘째를 만들기 위해 왕성에 호수를 팠다."

"크헉..."

그 설전은 식사를 마치고, 함께 저녁 거리를 사냥하고, 사냥한 사슴을 정통 붉은날개 방식으로 호쾌하게 구워 먹은 뒤, 화톳불을 남겨 노숙을 준비할 때까지도 계속되었다. 몇 시간 째 웃을 때 귀엽다는 둥, 머리결이 비단결같다는 둥 미취학 아동의 논리가 사용되고 있다는 자각이 생길 즈음 피를 튀기지 않는 싸움이 종료되었다.

강맹한 전사들이었다. 하룻밤을 샌 정도로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

성왕과 병사는 해가 뜨는 방향으로 삼일 밤낮을 더 걸었다.

이미테이션의 습격은 다섯 번이나 있었지만 세실과 클라우드는 서로 협력하여 이를 격퇴했다. 클라우드는 세실이 펼치는 공방위일체의 바론 왕국 정통 검기에 매료되었고, 세실은 클라우드의 변화무쌍한 분리합체검술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요리는 대개 클라우드의 몫이었다. 짐승의 목을 따고 통째로 태워버릴 것처럼 굽는 야만스런 방식은 처음 한 번만 호쾌하게 느꼈을 뿐이다.

클라우드는 그 사실에 큰 불만을 느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클라우드는 저 반대편에 있을 용기사의 존재를 떠올리고 낭패한 기분을 느꼈다. 세실과 함께한 기묘한 여행에 정신이 팔려 카인에 대한 이야기를 완전히 잊고 있었던 것이다.

약 7일 거리 정도 뒤에, 그의 둘도 없는 친구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세실의 표정이 의문을 떠올렸다.

"카인? 그라면 4일 전에 봤지 않은가. 7일이라니."

"세실. 그 놈은 이미테이션이야. 진짜 카인이 아니다."

세실은 조금 생각하는 얼굴이 되었다. 그리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아닐세. 그는, 설령 자네 말대로 이미테이션이라 하더라도- 카인의 파편을 가지고 있어. 난 알 수 있네."

"그렇게 확신하는 이유가 뭐지?"

"죄책감. 그는 몇 번이고 나를 찌르려 했다가 실패했네. 마지막 것은 자네도 봤을 테지. 이미테이션과는 나도 이미 꽤 상대해 봤지. 이젠 나도 확신할 수 있네."

클라우드는 그 가짜 카인이 세실의 심장을 거의 꿰뚫을 뻔한 장면을 떠올리고 조금 아찔해졌다. 클라우드가 세실을 똑로 쳐다보며 말했다.

"성왕 나으리. 다신 그러지 마. 기다리는 사람도 있을텐데."

"어차피 죽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그런 문제가 아니잖아. 이 남자는 대담한 건지 어수룩한 건지 도통 분간이 가지 않았다. 한숨을 쉬는 클라우드를 보며 세실이 빙그레 웃었다.

"나와 내 친구의 관계. 이미 알고 있는 것 같군."

"어느 정도는. 골베자가 이야기해줬으니까."

"형님의 지인이셨는가... 이거, 실례가 많았다."

"신경쓰지마. 피차 서로 돕고 있으니."

"형님은 강령하신가."

"물론이다. 우리가 걱정할 필요가 없는 사람이지."

세실은 그리운 눈을 하고 산 너머를 바라보았으나 그 이상 골베자의 이야기는 꺼내지 않았다. 대신 세실은 친구의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카인이 날 공격한다면, 난 받아줄 수 밖에 없다네. 상처가 많았던 녀석이야. 모두 내 탓이라고 할 생각은 없지만, 녀석에게 내 존재가 가장 큰 상처였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으이."

"세실. 카인은 그런 걸 바라지 않아."

"알고 있네. 카인은 전부 떨쳐냈고, 기어이 나를 구해주었지. 하지만 이곳은 전설의 디시디아. 어떤 카인이 있다 하더라도 이상하지 않으니."

"엉뚱한 생각하지 마, 세실 하비."

클라우드가 나직하게 말했다.

"도저히 혼자 놔둘 수가 없군. 또 그런 소리만 해봐. 그 카인이 나타났을 때 내가 베어버릴 테니까."

친구를 베어버리겠다는 흉흉한 말에 세실은 분개하는 대신 웃는 얼굴을 돌려주었다.

"자네 아내. 티파님이라 했던가. 꼭 한 번 뵙고 싶군."

"뭐야 갑자기. 싫어. 안보여준다."

"자네가 그런 기특한 말을 하는 것은 분명 아내의 영향일 테지. 반드시 그럴 테지. 하하하. 꼭 뵙고 인사하고 싶으이."

"..."

클라우드는 입을 다물었다. 답지 않은 말을 해버리고 말았다. 귀찮은 일이 되어 버렸다. 더 이상 이야기가 꼬이기 전에, 클라우드는 이야기를 되돌렸다.

"카인을... 만나러 가지 않을 건가. 널 찾고 있는데."

"자네가 날 닮은 기세를 느꼈다 했지. 문제 없네. 필시 그 기세는 내 아들의 것일 테니."

"아들?"

"세오도르 B. 하비. 바론의 현 국왕이라네. 적룡왕이라 불리울 만큼 용맹하고, 내 친구와도 막역한 사이지. 걱정하지 말게. 충분히 제몫을 다할 터이니."

"국왕."

"내 아들이니 당연하지. 왜 그러는가?"

"...당신 올해 나이가?"

"내일 모레 오십일세."

"......."

클라우드는 정신적으로 입을 딱 벌렸다. 왠지 말이 고풍스럽다 했지만, 나이가 오십? 스스로 하늘의 뜻을 알아챈다는 그 오십? 그 얼굴로? 나와 동년배인 아들이 있다고? 농담이지?

세실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껄껄 거리며 웃었다.

"신경쓰지 마시게, 젊은 전사여. 내가 원래 동안이라는 이야긴 많이 듣는다네."

이런 패배감은 난생 처음이었다. 그 이후 클라우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묵묵히 이미테이션의 대군을 분쇄하며 계속 걸었다. 세실은 딱히 괘념치 않고 클라우드의 등 뒤를 지켰다.

말 없는 행군은 성왕과 병사가 거대한 크레이터를 발견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그리고 이를 조사하던 클라우드는 대뜸 환성을 내질러 세실을 움찔거리게 만들었다. 틀림없다. 이것은 티파의 흔적이었다. 영문을 모르는 성왕은 눈을 깜빡거릴 뿐이었다.

그리고 이 날 클라우드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았다.

그는 귀신같은 감각으로 사냥한 거북이형 몬스터를 부위별로 해체하여 열 다섯 가지의 신묘한 요리를 만들었고, 정통 바론식 요리를 재해석 하여 믿기 힘들 정도로 바삭바삭한 사슴 통구이를 대령했다. 산더미처럼 채집한 버섯과 산야채는 영롱한 칠색 빛의 스프가 되었고, 사탕수수를 졸여 만든 과자에 천연꿀을 발라 구운 후식이 화룡점정이었다. 세실은 아귀처럼 음식에 달려 들었다. 성왕의 혀에 돋은 돌기가 환호성을 울렸고, 위장의 융털이 전에 없이 폭주했다.

클라우드는 음식을 과흡입하고 완전히 뻗어버린 성왕 대신 불침번을 섰다. 바라던 바였다. 어차피 오늘 클라우드는 잠을 잘 생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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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DFF. 병사와 용기사  (0) 2016.08.09
posted by nameless7777 2016. 8. 9. 23:10
".......려."

용기사는 꿈을 꾸고 있었다.

그는 시련의 산에서 보일 리 없는 자신의 고향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언제나 자신을 생각해주던 단단하고 후덕한 기관장. 다정하고 우직한, 라이벌이자 친구인 성왕. 그리고-

언제까지나 하얗고 아름다운 그녀.

".......신 차려."

그녀의 장점을 꼽자면 용기사는 밤을 꼬박 샐 수도 있었다.

그녀는 단지 아름답기만 했던 것이 아니다. 그녀는 그 누구보다도 강했다. 그녀는 바론 왕국 최고의 명사수였고, 그 이상으로 뛰어난 백마도사였다. 무수한 적군을 쏘아 떨어뜨렸고, 그 보다 많은 아군을 치료하고 지켜냈다. 하지만 최전선에서 활동하는 백마도사는 가장 죽음과 근접해 있는 존재다. 필연적으로 그녀는 누구보다도 많은 가까운 죽음을 경험했다. 그러나 그녀는 그 모든 것을 극복하고, 초석으로 삼았다. 그리고 가장 무섭고 두려운 싸움에는 항상 그녀가 함께 했다.

".. 인, 정신 차려."

그 바보 같은 놈은 그녀의 진가를 모른다. 그녀의 강함을 이해하지 못하고, 이해하려 하지 않고- 그저 새장 속에 가둬 지키려 할 뿐이다. 내가 그녀를 가장 잘 알고 있다. 그래. 나야말로, 나야말로 그녀에게 어울린다.

"카인."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카인이 눈을 번쩍 떴다. 방금 꾼 꿈을 되새겨보려 노력했지만, 그럴 때가 아니라는 것을 용기사는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그는 태양의 역광 속에 그림자를 발견했다. 휘몰아치는 투기. 위협적. 그는 무의식 중에 창을 뻗으려다가 간신히 멈췄다. 상대는 적일지도 모른다. 목숨이 위험한 순간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카인은 더이상 스스로의 의지가 담기지 않은 창을 내찌르는 것을 금지하고 있었다.

상대가 역광 속에서 걸어왔다. 금발. 녹색 눈동자. 선이 가늘고 날카로운 인상. 압도적인 위압감에 비해 체구는 의외로 작다. 등에 걸치고 있는 것은, 그 왜소한 몸으로는 도저히 휘두를 수 없을 것 처럼 생각되는 거대한 검. 그 뒤에 있는 것은, 마치 산처럼 쌓여있는 이미테이션- 적들의 시체. 그 중에는 대단히 거대한 크리쳐도 있었다.

"날 알아보지 못하는군. 퇴행인가."

"퇴행."

"이 세계로 소환된 전사는 정신이 불안정하지. 지금 당신처럼 기억을 잃어버리는 일은 흔한 일이다."

"너는 누구지? 저 이미테이션들은 네가 다 해치운 건가?"

"클라우드다. 놈들이 스스로 내 검에 뛰어들어 죽어주지는 않더군."

클라우드가 손을 내밀었다. 그는 카인이 적의 정체를 잊어버리지 않은 것은 꽤 고무적이며, 체력이 회복되면 곧 기억도 돌아올 거라고 전망해 주었다.

"설 수 있겠나?"

"큭..."

카인은 상체를 일으키는 것 조차 힘겨워 했다. 당연한 일이다. 그의 육체는 죽기 직전까지 파손되어 있었다. 지금 정신을 차리고, 회복하기 시작했다는 것 자체가 이례적이다. 

"할 수 없군."

클라우드가 카인을 훌쩍 들어올려 등으로 옮겼다. 카인은 꼼짝없이 클라우드에게 업히게 되었다. 그리고 카인은 누군가에게 업혔던 기억이 없었다. 카인이 항의했다. 아니,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봐.

하지만 성대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그리고 급격하게 의식이 멀어지기 시작했다. 클라우드는 담담하게 현재 상황을 설명했다.

"기억나지 않겠지만 넌 나를 구하려다 다쳤다. 내가 돕는 것은 당연하지. 조금 쉬어두는게 좋아."

클라우드의 음성에는 어떤 거부할 수 없는 힘과 설득력이 있었다.

카인은 다시 잠에 빠졌다.

.

카인은 여섯 시간을 내리 골아 떨어졌다. 그가 일어났을 때 클라우드는 아직도 걷고 있었다. 보기와는 달리 엄청난 체력이었다. 카인은 이 강건한 병사의 이름을 기억해 냈다.

"클라우드. 클라우드 스트라이프."

클라우드는 카인이 몇 시간 전에는 알려주지 않았던 자신의 성을 부르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클라우드의 목소리가 조금 밝아졌다.

"기억해냈나. 꽤 회복된 것 같군."

"내려줘. 걸을 수 있다. 어깨는 조금 더 빌려야 겠지만."

"좋을 대로."

클라우드가 카인을 등에서 내려 주었다. 카인은 약간 휘청였지만 큰 문제는 없어보였다. 클라우드는 손에 아무렇게나 쥐고 있던 가죽 거치대를 다시 등에 걸고, 그대로 검을 고정했다. 거치대와 함께 쥐고 있던 카인의 창은 다시 주인의 손으로 돌아갔다. 카인은 그제야 클라우드의 복장도, 무기도 바뀌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클라우드의 어깨에 빌려 조심스럽게 이동하면서 카인이 물었다.

"내가 어떻게 된거지?"

"이 세계에서 둘이 함께 여행을 하기 시작한 후 일주일 째, 이미테이션의 매복에 걸렸다. 그것만이라면 다행이겠지만 이미테이션 중에 카오스의 복제가 섞여 있었지."

데스페라도 카오스의 이미테이션. 정신를 잃기 전에 봤던 그 거대한 크리쳐를 말하는 것 같았다. 카인의 기억이 조금씩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엄청난 녀석이었어. 넌 결정적인 순간에 날 감싸고 쓰러졌다."

그렇다면.

카인이 의구심을 감추지 못했다.

"우리가 어떻게 살아있지?"

클라우드는 심드렁하게 말했다.

"기억을 되찾았거든. 그 기억으로부터 얻어낸 힘으로 어떻게든 할 수 있었다."

카인이 클라우드의 설명을 따라잡지 못했다. 기억으로부터 얻어낸 힘이라니? 카인은 영문을 알 수 없었다. 클라우드가 간단하게 설명했다.

"이 세계는 정신이 육체를 지배한다. 나는 원래 세계의 기억을 되찾았다. 내가 기억해낼 수 있는, 내가 가장 강했던 시기를. 그리고 그 때의 힘을 쓸 수 있게 된거지."

"그것만으로 그렇게 강해진다는 건가?"

복제라고는 하지만, 저 데스페라도 카오스와 단기로 상대할 수 있을 정도로?

클라우드가 답했다.

단 한마디였다.

"골베자."

카인의 등에 소름이 돋아난다.

골베자.

꿈에서조차 잊을 수 없는 이름. 애써 숨겨왔던 비밀을 파해쳐내고, 이리저리 비틀고- 나를 조종하는데 사용한 이름이다. 그는 아직도 카인의 정신을 좀먹고 있었다.

"생각해봐. 그 녀석은 원래 세계에서도 그렇게 강했나?"

카인도 이상하다고는 생각하고 있었다.

물론 골베자는 강하다. 그러나 카인은 자신의 창을 걸고 단언할 수 있었다. 녀석의 강함은 이상하다.

"원래 놈은 극도로 단련되었지만, 결국에는 흑마도사일 뿐이었다. 접근하면 승산이 있었지. 힘으로는 그 부하에게도 못 미칠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완전히 달라. 애초에 그 체격은 사람인 것 같지도 않아. 게다가 그 완력에 염동력. 설사 그 데스페라도 카오스의 이미테이션이라 해도 지금의 골베자를 당해낼 수는 없을 터. 그래, 마치-"

스스로 정리하면서 카인은 문득 깨달았다. 그 골베자와 비슷할 만큼 강한 존재가 바로 옆에 있었던 것이다. 결국 카인은 반 강제로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골베자는 자신이 모르는 미래의 기억을 가지고 있고, 그 때의 강함을 그 몸에 익힌 것이다.

클라우드가 조용히 정리했다.

"이제 납득한 것 같군. 참고로 말하자면, 내 '지금' 이름은 클라우드 L. 스트라이프다."

클라우드가 굳이 강조하자 카인이 그 작은 차이를 잡아냈다.

"L?"

클라우드가 담담히 답했다.

"내 아내의 성이다."

카인은 입을 딱 벌렸다.

아내?

설마?

이 녀석이?

카인의 본능은 그 이상 가까이 가지 말라고 외치고 있었다. 하지만 카인의 정신은 수용 한계치를 넘어 너덜너덜하게 손상되어 있었고, 이미 이지적인 판단은 할 수 없게 되어 있었다.

그대로 그는 묻지 말아야 할 것을 묻고 말았다.

"상대는?"

"소꿉친구다."

결정타였다.

카인은 정신적으로 졸도했다.

힘이 쭉 빠진 그는 다시 클라우드의 등에 편하게 업혀 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용기사에게 남은 마지막 한조각의 긍지는 그를 황폐한 정신 속에서도 계속 자력으로 걷게 만들었다. 실로 초인적이었다.

.

날이 어두워졌고, 클라우드는 노숙을 제안했다. 카인은 말 없이 수긍했다. 잠깐동안 클라우드는 산더미같은 장작을 준비하고, 나무 열매를 따고, 산짐승을 잡아왔다. 여유롭게 준비하는 그를 보며 카인은 약간 자괴감을 느꼈다.

카인의 시선을 느낀 클라우드가 카인을 바라보았다.

"육체적으로 약해져서 쓸데없는 생각이 드는 거다. 지금은 회복하는 것만 생각해."

"여유가 넘치는군."

"아내의 지론을 말해줬을 뿐이야."

그리고 카인은 다시 침묵했다. 그 모습을 보며 클라우드가 작게 한숨을 쉬었다.

"나도 기억을 찾는다면 강해질 수 있을까. 그렇게 묻고 싶은 얼굴이군. 하지만 묻지 않아. 그게 가능하든 그렇지 않든, 자신이 어떻게든 해야할 일이니까. 그렇지?"

비로 그렇다.

마음을 완전히 읽혀버린 카인이 고개를 들었다. 클라우드가 그런 카인의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

"자존심의 덩어리같은 카인. 과연 골베자가 말했던 대로야."

카인의 눈이 경악으로 크게 떠졌다.

"그래. 나는 골베자와 함께 행동한 때도 있었다. 네 이야기는 그 때 들었지. 그는 네 이름을 언급하진 않았지만, 이젠 알 것 같군."

카인의 표정은 용기사의 투구에 가려 읽을 수 없었다. 차를 한 잔 마실 시간이 지나고, 용기사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어디까지 알고 있나."

클라우드가 담담하게 서술했다.

"친구를 두 번이나 배신하고, 그 연인을 탐했다."

카인이 얼굴을 조금 찌푸렸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클라우드에게 그 일은 골베자에게 세뇌당해서 저지른 일이라고 변명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것이 진실을 가리지는 못한다. 

골베자는 카인의 심층 심리를 꿰뚫고 교묘히 그를 조종했다. 카인의 배신에는 자신의 의지도 섞여 있었던 것이다.

그 뿐인가.

카인은 아직 그녀에 대한 마음을 털어낼 수 없다. 고향에서 얼마나 떨어져 있을지 모를 이곳에서도 그녀의 모습을 한치의 오차도 없이 그려낼 수 있으니까. 그녀의 눈 빛도, 입술도, 하물며 솜털 하나 하나까지. 세뇌가 완전히 풀린 이후 그녀를 취하고 싶다는 생각은 맹세코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그녀의 얼굴이 멋대로 떠오르는 것은, 카인이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므로 카인인 클라우드의 말에 불쾌함을 느끼지도, 분노하지도, 말을 되돌려주지도 않았다. 전부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내 죄이기 때문이다.

클라우드는 입을 다물어버린 카인을 조용히 응시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카인의 마음을 읽어냈다.

"카인. 죄는, 용서받을 수 있는 건가?"

카인이 차분하게 그 말을 받았다.

"죄는 사라지지 않아. 각자 그 그림자를 지고 걸어갈 뿐이다."

그 표정에 떠오른 것은 의지. 결의. 그리고 순수.

클라우드의 눈에는 이채.

"명답이다."

클라우드가 미소지었다.

"카인. 너는 알지 못하겠지만, 나는 너를 잘 알아."

골베자는, 동료를 구해내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몸부림치는 나를 격려하기 위해 네 이야기를 해줬으니까.

"너는 반드시 원래 세계의 기억을 되찾을 거다."

누구보다도 고결한, 그렇기에 죄를 외면하지 않고 살아간 용기사의 이야기를.

"조바심 내지 않아도, 너는 강해진다."

하지만 클라우드는 카인에게 아무런 이야기도 해줄 수 없다. 그 이야기를 듣고, 다시 걸어갈 힘에 보탤 수 있었다는 감사의 말조차. 그것이 다름아닌 용기사의 미래에 대한 이야기이기에. 그에게 말해줄 수 있는 부분은 지극히 한정적이다.

그렇지만 클라우드는, 그럼에도 카인의 가장 존경스러운 부분을 말해줄 수 있었다.

"너는 끝내 친구들을 지켜냈으니까."

클라우드가 웃었다. 카인은 그 얼굴에서, 한순간 뿐이지만, 자조적인 상처를 읽어냈다. 카인은 주먹을 꽉 쥐었다. 그도 나와 같다. 그 또한 나처럼 짊어지고 있는 것이 있는 것이다.

클라우드의 말에는 맥락도 근거도 없었다. 하지만 카인은 그의 눈에서 진실된 마음과 그 이상의 것을 읽을 수 있었다. 이 세계에 와서, 카인은 처음으로 그 존재를 인정받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둘은 그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

함께 다시금 길을 걸은지 3일 째.

돌연 클라우드가 멈춰섰다.

"여기까지다, 카인."

카인이 뒤를 돌아봤다. 그는 완전히 건강을 되찾은 상태였다.

"저 앞으로 3 킬로미터 정도. 너와 비슷한 기운을 가진 존재가 있는 것 같다."

카인의 얼굴이 조금이지만 밝아졌다.

"세실인가."

클라우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서두르면 따라잡을 수 있을 거다. 애석하지만 나는 그 쪽 방향이 아니라서."

카인이 조용히 말했다.

"티파를 찾으러 가는군."

클라우드가 깜짝 놀랐다.

"티파를 알고 있었나."

"티파가 네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던 것도 같군. 티파는 나에게 포션을 나눠줬었지. 너처럼."

그리고 카인은 크게 놀랐다.

클라우드가 경악한 얼굴로 카인을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티파가, 너에게 포션을 줬다고? 나처럼? 정말인가? 티파가, 설마 긴급 상황이라고는 해도 나 아닌 다른 녀석과- 아니, 그전에, 기억하고 있었나? 아니야, 있을 수 없어. 넌 분명히 정신을 잃고 있었을 텐데."

클라우드가 완전히 횡설수설하고 있었다. 저 표정에 떠오른 것은 분노인가, 체념인가, 그것도 아니면 수치심인가. 카인은 또 다시 클라우드의 맥락을 따라갈 수 없었다.

"? 티파가 나에게 포션을 끼얹어 준게, 뭐 문제라도 있는 건가?"

클라우드가 그 말에 표정 변화를 멈췄다.

"포션을 끼얹어 줬어?"

"아예 병으로 후려칠 기세였지. 너도 나에게 포션을 뿌려줬을 터. 깨어났을 때 포션향이 남아있어서 알아챌 수 있었다."

"어? 아아. 그랬지. 맞아."

클라우드는 그 때 카인의 목숨이 경각에 달려 있었고, 포션은 복용했을 때 가장 효과가 뛰어나며, 당시 카인은 스스로 포션을 삼킬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는 사실은 굳이 설명하지 않았다.

클라우드의 행동은 다소 이해하기 어려웠으나, 카인은 사소한 것은 신경쓰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가 손을 내밀었다.

"클라우드. 고마웠다."

침착함을 되찾은 클라우드가 그 손을 맞잡았다.

"다음 번에 만나면 꼭 한 번 겨뤄보고 싶군."

"기대하게. 강해져 있을테니."

그대로 클라우드는 왔던 길을 되짚어 떠났다. 카인은 클라우드가 세실을 찾아줬던 것 처럼 티파를 곧 발견할 수 있기를 기대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세실과는 하고 싶은 말이 아주 많았다. 이를 통해 서로의 기억을 찾고, 강해져서- 원래의 세계에 돌아가는데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그렇게 두 사람은 다음 만남을 기약하며 서로의 길을 재촉했다.

그러나 이 세계에서 그들이 다시 만나 자웅을 겨루는 일은 없었다. 그들은 이 세계와는 완전히 다른 장소에서 생각치 못한 형태로 목숨을 건 대결을 하게 되지만, 그것은 또 다른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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