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널 판타지 전력 60분'에 해당되는 글 4건

  1. 2017.02.26 파판전력60분. 티파 전용 (FF7) 1
  2. 2016.09.18 파판전력60분. 상처 (FF4)
  3. 2016.09.09 파판전력60분. 간병 (FF7) 1
  4. 2016.08.07 파판전력60분. 못참아 (FF7)
posted by nameless7777 2017. 2. 26. 23:07
"덴젤."

도시락을 받아들고 돌아선 덴젤을 클라우드가 다시 불러세웠다. 답지 않게 머뭇거리고 있는 클라우드를 보며, 덴젤이 피식 웃었다.

"새로 만든 거지? 주려면 얼른 줘."

"...자."

클라우드는 덴젤의 손에 꾸러미를 쥐어 주었다. 그 조심스러운 동작에 무심코 웃음이 나올 것 같았다.

"친구들 반응 보고. 돌아오면 알려줄게."

"그래."

덴젤이 꾸러미 안에 들어있는 생초콜릿을 물끄러미 바라 보았다. 이걸 친구들에게 나눠주고, 그 반응을 물어 클라우드에게 전해야 하는 의뢰가 이번으로 벌써 다섯 번 째다. 덴젤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솔직히 말야...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어?"

실은 전부터 묻고 싶었다. 덴젤은 단 맛에 대해 잘 모른다. 하지만 클라우드의 실력. 마스터 스위츠의 신위. 덴젤은 감히 단언했다. 그의 스위츠를 부정할 수 있는 무뢰배는 엣지에- 미드갈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고 말고.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 놈은 무례한 놈이다.

"어차피 다들 맛있다고 할텐데."

하지만 클라우드는 결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틀림없이 필요해."

보통 클라우드의 표정은 참 읽기 힘들지만 지금 이 얼굴은 덴젤도 잘 알고 있다.

가끔 세븐스 헤븐에 마시러 오는 비공정 아저씨의 표현을 빌리자면 '세피로스의 등짝이라도 쑤시러 가는 표정'이다. 입이 거친 아저씨지만, 그의 말은 언제나 정곡을 찌른다. 덴젤은 몰래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그럴 때 클라우드는 정말이지 아무래도 좋은, 그야말로 엉뚱한 일을 시작한다.

지난 번에는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티파를 깜짝 놀라게 해서 비명을 지르게 만들었고, 기어이 엉덩이를 걷어차여 벽에 쳐박혔다. 아직도 저기 어디에 흔적이 남아있다. 그렇게 크게 웃는 클라우드는 그 날 처음 봤다. 얼굴은 물론 온 몸이 새빨개진 티파도. 진풍경이었다.

요컨데 이것은 티파와 관련이 있는 일이라는 것이다. 괜히 물어볼 필요가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본전도 못 찾을 일이다.

덴젤은 총명한 아이였다. 그러므로 덴젤은 그 이상 깊게 들어갈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쓸데없는 일에 말려 들었다. 그러나 잘 모르고 약속을 했더라도 약속은 약속이다. 부탁받은 만큼의 일만 해주면 되겠지. 부디 상식 선에서 마무리 되면 좋겠다. 나에게 불똥이 튀지 않도록. 덴젤은 그렇게 생각하며 집을 나섰다.

부탁한다, 덴젤.

클라우드는 덴젤의 뒷 모습을 보며 슬쩍 미소를 짓고는 냉장고의 문을 열었다. 산더미 처럼 쌓여있는 식재 사이에서 그는 자그마한 병을 꺼냈다. 투명한 유리병 안에는 하얀색 유체가 가득 들어있었고 표면에는 음각으로 글자가 패여 있다. 티파 전용. 클라우드는 병을 조리대에 올려 놓았다. 거의 경건함이 느껴질 정도로 신중한 동작이었다.

다음으로 클라우드는 앙증맞다는 표현이 필요할 만큼 작고 귀여운 스푼을 꺼냈다. 역시 손잡이에는 음각. 클라우드는 티파 전용 스푼에 병안에 들어있는 티파 전용 생크림을 조금 묻혔다.

클라우드는 스푼을 들고 2층에 마련된 침실로 향했다. 서두를 필요는 없다. 클라우드는 스푼에 묻은 생크림이 떨어지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겼다.

끼이익.

기름칠해두지 않은 경첩에서 다소 거슬리는 소리가 나더라도 티파는 깨어나는 법이 없다. 스푼을 들지 않은 손으로 아무렇게나 흩어진 머리결을 건드려 본다. 반응이 없다. 이어서 클라우드는 조심스럽게 티파의 옆 머리를 쓰다듬었다. 티파가 조금 뒤척였다. 좋아.

살폿 잠이 깬 티파는 침대보를 핥는 버릇이 있다. 이 때다. 클라우드는 스푼에 묻어있는 생크림을 자신의 새끼 손가락에 옮겼다. 그대로 살며시 새끼 손가락을 티파의 입가에 옮긴다.

오물오물.

할짝할짝.

티파의 입술에 묻은 생크림이 그녀의 혀를 타고 입안으로 미끌어져 들어갔다. 클라우드 특제, 티파 전용 잠깨기 생크림을 맛본 잠탱이 여신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린다.

성공이다.

클라우드는 황송하기 그지 없는 여신의 이름을 입에 올렸다.

"티파."

여신이 뒤척이며 한심하게 답했다.

"으으음... 5분만 더..."

"안 돼. 어서 일어나서 밥먹어. 나 늦겠어."

"...이렇게... 후아암... 깨우는 거... 그만 두면 안돼?"

"또. 큰일날 소리 한다."

"치."

신혼 초 클라우드는 티파가 잠결에 내지른 주먹에 입이 돌아갈 뻔 했다. 그 권압에 의해 성대하게 구멍난 벽은 일부러 대충 막아놨다. 언제고 티파를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해. 물론 티파는 맹세코 처음 있는 일이었다고 주장했다. 웃음도 나오지 않는 일이다. 두 번째는 처음보다 쉽다.

티파 전용 잠깨기 생크림과 같은 테크닉은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얻어낸 생존전략 중 하나인 것이다. 7번가의 잠자는 사자는 클라우드가 아니면 깨울 수 없다.

그렇다.

그런 걸로 해두자.

거기까지 생각한 클라우드가 소리를 죽이고 웃었다. 그에게 티파의 아침잠을 깨우는 일만큼 즐거운 오락은 달리 없었다. 티파의 잠자는 얼굴도, 수면을 방해받을 때의 못마땅한 표정도 전부 흡족하다. 사랑스럽다. 다른 누구에게도 맡길 생각은 없다. 맡길까보냐.

"그만 하고. 일어나."

"후아아."

하품을 참으며 티파가 상반신을 일으켰다. 티파는 클리우드에게 몸을 껴안아 오는 듯 싶더니 그의 몸을 타고 영차영차 등 뒤로 이동해 메달렸다. 티파의 길고 매끈한 다리가 클라우드의 허리에 감겼고, 그녀의 숨결이 연인의 목덜미에 내려앉았다.

등 뒤로 느껴지는 보드라운 느낌이 말초신경을 자극하자 클라우드의 사고가 정지. 이성의 목소리가 사라지고, 욕망의 헐떡거림만이 남았다.

그리하여 지금 클라우드의 자제력은 설탕과 베이킹 파우더를 조합해 만든 과자와도 같았다. 조금만 힘이 들어가도 산산히 부서질 것이다.

하지만.

그러나.

이 정도 자극은 늘 있는 일이다.

나를 신혼 초의 애송이라 생각하면 곤란하다. 클라우드는 초인적인 자재력으로 검은 욕망을 억눌렀다. 승리한 것이다. 개가를 올려라.

"...티파."

"업어줘."

"이미 업혀 있잖아."

"식당으로~ 고~"

"나참."

남편의 번뇌를 아는지 모르는지. 티파는 당분간 클라우드의 등에서 내려올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티파를 업은 채로 일어선 클라우드가 문을 나서 식당으로 향했다. 그 사이 잠이 아직 덜깬 티파는 오물오물 거리며 클라우드의 목덜미를 침 범벅으로 만들었다.

티파는 그대로 입술도 때지 않은 채 물었다.

"애들은?"

"화요일이잖아. 현장학습. 벌써 나갔어."

"흐응."

티파가 클라우드의 목에 이빨을 세웠다.

"티파. 아프잖아."

어느새 티파는 더 이상 잠에 취해 있지 않았다.

"애들이 없네."

"응?"

"애들이 없다고. 클라우드."

클라우드는 머리에 스쳐 지나가는 것이 있었다. 정보를 해석하기 전에 다리가 멋대로 걸음을 멈췄고, 한 발 늦게 뇌가 상황을 정리했다.

클라우드가 중얼거렸다.

"맞아. 그렇군."

클라우드의 나쁜 손이 슬금슬금 티파의 허벅지를 지나 엉덩이로 옮겨졌다.

하지만 티파가 더 빨랐다.

클라우드의 검은 손이 뻗쳐 오는 그 짧은 순간 티파는 허리에 감아둔 다리를 푸는가 싶더니 그대로 휘리릭 클라우드의 몸을 타고 정면으로 이동. 클라우드에게 앞으로 업힌 상태로 고쳐 메달렸다. 그 엄청난 솜씨. 파도처럼 밀려드는 리비도. 클라우드는 거의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클라우드는 티파의 입술을 정면으로 받아내며 그대로 뒷걸음질쳤다. 어찌어찌 침실로 되돌아간 것은 클라우드의 마지막 남은 정신력이 이뤄낸 자그마한 승리였다.

클라우드가 가까스로 침대에 걸터 앉았을 때 티파의 공세는 더욱 격해졌고, 클라우드의 이성은 너덜너덜하게 녹아내렸다. 이런 정신 상태로는 늘 그러던 것처럼 마황을 운용해 문틈에 유사 침묵 마법을 걸어두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했다. 곤란하다. 멀어지는 이성 속에서 클라우드는 혀를 찼다. 두 사람은 소음을 많이 내는 편이다.

티파는 클라우드의 눈동자가 작게 흔들리는 것을 보고 클라우드가 무엇을 걱정하고 있는지 알아챘다. 뭐, 아무렴 어때. 집에 우리 말곤 아무도 없는데. 안심하라는 의미에서 티파는 눈웃음을 지어보였고, 그것으로 클라우드는 티파의 노예가 되었다. 어차피 그는 거리낄 것이 없었다. 매우 오래 전부터 클라우드는 야외에서도 거침없는 파렴치한이었다.

그리고 한 시간 뒤, 티파는 거실에서 커피를 홀짝이고 있는 바렛트를 발견했다.

아차.

어제 바렛트가 돌아와 있었지.

티파는 지금 온몸에 클라우드의 체향을 듬뿍 묻힌 상태였다. 바렛트가 의미심장하게 웃는 것보다 한발 빨리 티파는 그대로 방에 돌아와 쳐박혔다. 그리고 그녀는 바렛트가 외출할 때까지 방에서 한 걸음도 나오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클라우드는 그제야 방에 침묵 마법을 걸어주었다. 바렛트의 음흉한 미소와 치켜세운 엄지 손가락도 클라우드가 대신 받았다. 때늦은 배려였다.

클라우드는 이 날 간신히 지각을 면했다. 대기줄 맨 앞에서 대기하고 있던 오늘의 첫 손님은 서둘러 문을 열고 있는 마스터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행운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 손님은 발갛게 상기되어 있는 마스터의 얼굴을 보고, 불경스럽게도, 승천할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

클라우드의 생초콜릿에 대한 도전은 일곱 번째 시도에서 종료되었다. 꿈결처럼 맛있는 생초콜릿을 받고 그것이 사랑 고백이라고 착각한 여학생이 스스로가 몰모트에 불과했다는 추악한 진실을 알게 된 후 덴젤의 뺨을 후려쳤기 때문이다. 아무튼 눈물이 핑 돌고 어금니가 흔들릴 정도의 일격이었다.

상황을 설명하며 뾰루퉁해져서 뺨을 쓰다듬고 있는 덴젤에게 클라우드는 사과하는 대신 승리자의 미소를 지어보였다. 덴젤은 클라우드가 작게 "완성됐다"고 중얼 거리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덴젤은 괴성을 지르며 클라우드의 엉덩이를 걷어찼다. 물론 클라우드는 맞아주지 않았다. 이 엉덩이는 티파 전용이니까.

클라우드는 아무튼 발렌타인 데이에 맞출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세간에서는 여자가 남자에게 초콜릿을 주는 날이라 하는 모양이지만 사회 부적응자인 상태로 20년 이상 살아온 클라우드에게 그런 아무래도 좋은 상식은 통하지 않았다.

클라우드는 정성스럽게 포장한 생초콜릿을 들고 의기양양한 걸음걸이로 티파가 기다리는 침실로 향했다. 이걸 먹고난 티파의 기쁜 얼굴을 상상하면서. 오늘은 조금 짖궂은 장난을 쳐도 용서해주지 않으려나.

하지만 티파는 클라우드의 기대를 완벽하게 배신했다.

티파는 배꼽이 훤히 드러나 보이는 탱크탑과 속옷을 간신히 가릴 정도로 짧은 숏 팬츠를 입고, 침대를 점령하고 있었다. 실은 늘 있는 일이다. 당황할 일이 아니다. 하지만 클라우드는 곧 자신이 당황하게될 것임을 직감했다.

그리고 티파가 다리를 꼬면서 도발적으로 선언했다.

"초콜릿은 내 몸 어딘가에 숨겨놨어."

하, 한 번 찾아보지 그래? 티파도 과연 긴장한 모양이지만, 클라우드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그는 예상대로, 완전히 당황한 상태에서, 급기야 손에 들고 있는 생초콜릿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여신의 탱크탑 속 계곡 사이에서 녹아내린 초콜릿이 새하얀 옷감에 갈색 얼룩을 만들어낸 것을 본 탓이었다.

"어, 하나 들켰네."

티파 자신도 예상하지 못했다는 듯한 목소리였다.

그리고 성욕의 노예가 된 클라우드는 덴젤을 희생양 삼아 정성스레 연성한 생초콜릿에는 시선도 옮기지 않고 티파에게 저벅저벅 걸어갔다. 그 심상치 않은 기세에 티파는 조금 움츠러 들었다.

"앗..."

그러나 기세와는 달리 클라우드는 서두르지 않았다. 이럴 때 클라우드는 침착하게 미친 사람처럼 행동했다. 그는 손가락을 튕겨 불을 끄고, 지난 번에는 잊었던 침묵 마법을 이중으로 걸었다. 오늘은 특히 소음을 많이 낼 예정이니까. 물론 클라우드는 시간을 충분히 활용하여 진지하게 초콜릿을 발굴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전부 일곱 개였다.

그리고 티파는 이런 미친 짓을 다시 하지 않겠다고, 굳이 다짐하지는 않았다. 그녀는 침대보 대신 클라우드의 입술을 오물거리며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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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nameless7777 2016. 9. 18. 23:14
세실은 기본적으로 예의바르고 조심스럽고 성실한 남자였다. 정말 믿을 수 없게도 세실을 알고 지낸 이후 근 30년 동안 로자는 그가 편한 복장을 입고 있거나 흐트러져 있는 모습을 본 일이 없었다. 하물며, 벗은 몸은 꿈도 꿀 수 없었다. 로자 스스로도 말이 되지 않는 일이라는 것은 이해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엄연한 사실이다.

예를 들어 암흑기사 시절, 기사는 언제나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고 믿었던 세실은 잠들기 직전까지 갑주 차림을 고수하곤 했다. 로자가 가끔씩 그의 숙소에 방문할 때면, 그녀는 언제나 세실의 갑주를 벗겨내기 위해 어마무지한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 그리고 보통 그 작업은 자정이 넘어서야 끝나곤 했다. 불 빛 하나 없는 세실의 침실에서 그의 몸을 제대로 감상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는 언제나 로자보다 일찍 일어났고, 그녀가 깨어날 때 쯤에는 이미 갑주를 완전히 착용해둔 상태로 대기함으로써 로자를 실망스럽게 만들었다.

왕이 된 이후로는 더욱 그랬다. 그는 왕으로써의 마음가짐은 정갈한 복장에서부터 비롯된다고 굳게 믿고 있는 것 같았다. 물론 그의 생각이 거의 틀리지 않았다는 것은 신하들의 태도에서 자명하게 드러났다. 로자나 세오도어와 휴식을 취하고 있는 시간에조차 세실은 빈틈이 없었다. 우아한 복장을 착용한 채 유려한 동작으로 홍차를 마시는 세실을 목도한 신하들은 그 빈틈없고 준비된 자세에 몸 둘 바를 모르게 된다. 휴식 시간을 방해받았음에도 자애로움 그 자체로 신하를 대하며 정무에 임하는 그는 그야말로 성왕. 세실을 상대로 정쟁을 일삼는 신하는, 지금에 와서는 거의 남아있지 않다. 그 누가 성왕의 성실함을 두고 감히 트집을 잡을 수 있겠는가.

로자는 그녀의 반려와 마찬가지로 지금도 젊고 아름답지만, 세실과 균형을 맞추기 위해 예전에 즐겨 입던 각종 대담한 복장들은 참아야만 했다. 가끔은 예전처럼 화려한 복장을 입고 싶어질 때도 있지만, 세실이 진지한 얼굴로 손톱을 손질하고 있는 모습을 본 이후로는 모든 것을 내려 놓을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렇지만.

로자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었다. 아내인 자신에게까지 그럴 필요는 없지 않은가. 자신에게만큼은 좀 더 흐트러진 모습을 보여도 괜찮은 게 아닌가. 하지만 세실은 이상하게 완고한 면이 있었다. 모든 단편적인 시도를 실패로 날려버린 로자는 장기 계획을 세우기에 이르렀다.

이름하여, 왕 전용 휴식 공간 창출 프로젝트. 왕과 그가 허락한 사람만이 출입할 수 있는 인공 호수를 만들기로 한 것이다. 로자는 국무회의에 참석하여 이 안건을 내놓고, 그 근거와 상세 내용을 밝혔다.

1. 신하들의 무능과 횡포가 도를 넘어, 티타임을 즐기는 시간조차 온전히 왕을 쉬게 놔두질 않는다.

2. 몸을 돌보지 않고 정무에 골몰하는 왕에게 신하들의 방해없이 쉴 수 있는 휴식 공간은 필수불가결하다.

3. 예산은 그 동안 비축해둔 왕비 품위 유지비를 사용하며, 따라서 추가 예산 편성은 불필요하다.

세실이 성왕이라면, 이럴 때 로자는 패왕이었다. 그녀가 나선 이상 승산은 없다. 신하들은 얼굴을 흙빛으로 바꾸며 만장일치로 이 안건을 통과시켰다. 로자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수치심 따위 애저녁에 내다 버렸다. 이제 곧 세실의 벗은 몸이 백일하에 들어날 것이다.

.

"응?"

"응, 벗어. 같이 호수에 들어가야지."

로자는 이미 겉 옷을 벗고 수영복 차림으로 세실 앞에 서 있었다. 예전의 백마도사 시절을 연상시키는 눈부신 몸매에 세실은 눈을 떼지 못하면서도, 왕으로써의 위엄을 찾으려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부인, 이렇게 갑자기-"

"부인이고 자시고. 얼른 벗어."

"으... 하지만... 왕의... 위엄이..."

세실은, 언제부턴가 로자를 안달나게 만들곤 했다. 나는 전장에서조차 언제나 냉정하고 침착했는데, 세실이 나를 망쳐놨다. 로자의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우물쭈물하는 세실을 바라보며 로자가 말문을 열었다. 다시 열린 것은 왕비의 발언이었다.

"왕의 위엄이 흘러넘치는 폐하께오선."

"응?"

휙휙 급변하는 정세에 세실은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저와의 정사가 계획되어 있는 날에도 정사를 오후 아홉시 까지 보시지요. 그렇게 해가 떨어진 후 들어오셔서, 아녀자에게 수치를 주지 않으려 먼저 방의 촛불을 모두 끄시고,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용케 미리 준비된 백탕을 찾아 어수를 씻으십니다. 제가 재촉하면, 여인의 은밀한 곳에 손을 대는데 청결하지 아니할 수 없다 하시고 손톱 사이사이까지 모두 닦아내시지요."

"..."

"그리곤 의복을 하나씩 벗고 개켜 침대 구석에 차곡차곡 쌓으시고, 그 이후에는 제 의복을 하나씩 벗기고 개켜 침대 구석에 차곡차곡"

"아, 그래, 알았어, 로자."

"정사를 시작하실 때에는..."

"미안. 알았어. 벗어. 당장 벗는다고."

진작 그럴 것이지. 로자가 표정을 풀고 약간 장난스럽게 웃었다. 마치 연애 시절로 돌아온 것 같은 간질간질한 느낌에, 세실의 표정도 20년 전의 청년처럼 풀어진다.

그렇게 잠시 후 드러난 것은, 전혀 쇠락하지 않은 근육질의 건장한 육체. 40세에 가까운 나이에도 불구하고 군살 하나 없다. 터질 것 처럼 팽팽한 대흉근, 꿈틀거리는 상완, 꽉 조여져 있는 복근과 둔근, 통나무같은 대퇴근.

그리고 로자는 왜 세실이 자신에게 벗은 몸을 보여주지 않았는지 알게 되었다.

"세실..."

그의 온 몸은 크고 작은 상처로 가득했다. 언뜻 보더라도 세자리 수는 되는 것 같다. 물론 몸을 맞대고 있으면 그 몸에 나있는 상처를 느낄 수 있었다. 조금이지만 옷 아래 드러난 상처를 본 일도 있었다. 그는 항상 아군을 신경쓰고, 모든 치명적인 공격을 스스로 받아내며 싸워왔다. 상처가 없을 수는 없다.

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세실은 약간 난처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괜찮아, 로자. 후유증 같은 건 없으니까. 그리고 대부분 암흑기사 시절에 입었던 상처야. 로자와 함께 있을 때 얻은 상처는 네가 전부 고쳐줘서 하나도 남아있지 않아."

하지만, 여전히 납득은 되지 않았다.

"그런 건 나도 알아. 기사가 상처를 입은 게 뭐 어때서 그래. 숨길 필요는 없었잖아?"

"그건..."

"뼈가 드러나는 상처나, 육체가 결손되는 중상도 숱하게 봐 왔어. 내가 충격이라도 받을 줄 알았던 거야?"

"...맞아. 로자. 20년 전에는 네가 그런 걸 보면 큰일나는 줄 알았어. 걱정시킬 수 없다고... 내 상처는 나 혼자 전부 짊어지면 된다고. 바보같은 이야기였지."

최전선에서 회복을 담당했던 로자는, 나보다 훨씬 강한 사람이었는데.

세실이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암흑기사의 갑주... 세세한 구조는 잘 모르지? 입을 때 엄청 아프게 되어 있어. 익숙해지는 것 따윈 불가능해. 가능하면 벗고 싶지 않을 정도지. 육체적 고통과 트라우마에 가까운 분노야말로 암흑기사가 가진 힘의 원천이거든. 그걸 끌어내기 위한 거야. 그래서 그걸 입을 때 내 표정... 로자에게만큼은 보여주고 싶지 않았어."

로자는 살며시 세실의 손을 잡고 호수로 이끌었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이제와서 위로할 필요는 없다. 이 고백은 세실에게도 난처할 뿐 괴로운 이야기는 아니었다. 결국 20년전의, 세실이 가장 힘들 때의 이야기일 뿐이다.

세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로자는 곧 그의 육체를 시각적으로 탐닉할 여유를 되찾았다. 밝은 낮에 그의 몸을 보는 것은 오늘이 처음이다. 간신히 쟁취한 기회를 날려보낼 수는 없는 일이다.

과연 완벽한 육체다.

상처가 있음에도, 아니, 상처가 있기에 오히려.

자상한 아버지, 사려깊은 남편, 현명한 군주. 하지만 그 본질은 상처투성이의, 야만스러운, 전사 중의 전사. 그 달과 지구 사이의 거리에 준하는 차이에 로자는 정신이 나갈 것만 같았다.

로자가 다시금 세실을 갈망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지금은 어떤거야? 우리 결혼한 다음에 말야. 왜 지금까지 벗은 몸을 안보여줬어??"

로자가 이제 대놓고 재촉하자 세실 표정에서 난처함이 깊어졌다.

"그건... 계속 그러다보니 왠지. 봐, 난 사실 왕이 될 재목이 아니었어. 그래서 바닥부터 제왕학을 배웠잖아. 그 중에 방중술도 있었다는 건데..."

세실은 자신도 깊이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이었기에 약간 멈칫했다. 그러나 오늘의 로자에게는 자비가 없었다.

"왜 멈춰? 얼른 이야기해봐. 나 안달나게 하지 말고."

세실이 턱을 쓰다듬으며 생각을 정리했다.

"...왕이 왕비를 고풍스럽게 안아주는 방법이 말이야, 왕비를 아껴준다는 느낌이 너무 좋아서 계속 그 역할에 몰입했던 것 같아."

그야...

로자도 무심코 얼굴을 붉혔다.

로자도 처음에는 그런 제왕학의 세실이 무척 생경하고 가슴이 두근두근 거려서 무척이나 황홀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하지만 말이지. 연예기간까지 합해 20년이나 사랑하는 남성의 실루엣만 보고 밤을 지샜단 말이지. 나도 참을 만큼 참았다 이거야.

잘 익은 사과 같은 로자의 얼굴을 본 세실이 겨우 여유를 되찾았다.

"그래서 여길 만든 거야? 고작 내 벗은 몸을 보려고?"

로자는 세실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고작이라니, 무슨 말도 안되는 이야길 하는 거야. 이 차림 그대로 함께 해변에 나가면 어떻게 될지, 아마 이 남자는 전혀 상상도 하지 못하겠지.

세실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웃을 뿐이었다.

그리고 둘은 호수에 몸을 천천히 담궜다. 물은 약간 차가웠지만, 큰 상관은 없었다. 두 사람의 체온은 이미 적당히 달아올라 있었다.

로자가 세실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세실은 팔을 둘러 로자를 감싸 안았다.

로자가 세실의 가슴에 대고 담담히 고백했다.

"세실, 난 말야, 항상 당신과 이렇게 하고 싶었어. 왕과 왕비라는 직책에 얽메이지 않고 말야. 세실은, 왕 같은 거 되지 않았어도 좋았을 텐데."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세실이 답했다.

녹아들어갈 것 같은 목소리였다.

"로자. 1년만 지나면 세오도르도 20세가 돼. 그러면. 그 때가 되면."

로자가 세실을 가만히 올려다 봤다.

"난 세오도르에게 왕위를 물려줄 거야. 그리고 우린 왕성에서 나가자. 비공정으로 전세계를 돌아다니면서, 마음 가는데로 사는 거야. 어때?"

세실의 물음에 로자는 대답을 돌려주지 않았다. 상관없다. 세실도 딱히 대답을 바라지는 않았다. 어짜피 세실은 그 이후의 인생을 오롯하게 로자를 위해서만 쓰기로 다짐했으니까.

다만 잠시 후 세실은, 이후의 인생 설계와는 별개로, 로자에게 다시 질문을 던질 수 밖에 없었다.

"로자? 당신, 수영복 어쨌어?"

로자에게서는 여전히 대답을 들을 수 없었다. 그리고 세실은 그 이상 로자에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세실이 호수에서 나올 때까지 대부분의 시간동안 그의 입술은 로자의 입술이나 그에 준하는 다른 것으로 막혀 있었다.

세실이 제왕학에서 배운 방중술은, 망극하게도 호수에서는 전혀 쓸모가 없었다. 그러나, 물론, 세실은 로자가 기대했던 것과 같이- 자신이 본질적으로 비할 바 없이 야만스러운 전사인 것을 스스로 증명해냈던 것이었다.
posted by nameless7777 2016. 9. 9. 21:16
티파의 목소리가 심상치 않다. 그녀는 평소에 이런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체온이 높았고, 피부에도 붉은 빛이 감돌았다. 클라우드는 바로 행위를 멈췄다.

티파가 숨을 헐떡거리며 뒤를 돌아보았다.

"...클라우...드?"

"...티파? 괜찮아?"

"괜찮냐니... 왜... 멈췄어?"

그녀는 자신의 상태도 제대로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 클라우드는 냉큼 그녀를 안아들고 성큼성큼 침실로 향했다.

티파가 귀여운 목소리를 내며 탱크탑을 배까지 내렸다. 배꼽은 가리지 못했지만. 그 자태에 클라우드는 다시금 끓어올랐으나, 애써 본능을 무시할 수 밖에 없었다.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다.

티파는 조금 부끄러워하며 항의하면서도 "나 괜찮은데..." 클라우드가 엄한 표정을 짓자 순순히 침대에 누웠다. 그의 얼굴에 근심이 가시질 않았다. 그 모습도 너무 사랑스러워서, 웃음이 가시질 않는다.

클라우드가 걱정스러운 어조로 물었다.

"푹 젖었는데, 닦아 줄까?"

그 발언이 티파의 무엇을 건드렸던 걸까. 티파가 황급히 모포를 목까지 끌어올렸다.

"다다다다닦아? 어어어어어디를??"

클라우드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대답했다.

"? 이마 말이야."

아, 이마... 그래. 이마.

클라우드는 천성이 무시무시할 정도로 둔감하다. 결혼 이후로 꽤 나아진 편이지만, 당황하거나 심각한 상황에서는 원래 성격이 드러나곤 한다. 티파는 왠지 안타까워 하면서도, 클라우드의 아련한 배려가 간질간질해서 몹시 행복해졌다.

"...응. 그럼 부탁해."

티파는 행복감 속에서 깊이 잠들었다. 클라우드는 티파 앞에 앉아 그녀의 이마에 차가운 수건을 갈아주며 밤새도록 자리를 지켰다.

이튿날 아침 몸이 개운해진 티파는 침대 앞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는 클라우드를 발견했다. 클라우드를 어영차 부축해 침대에 눕힌 티파는 싱글벙글한 얼굴로 한동안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을 구경했다. 티파의 얼굴이 욕망으로 끓어오르기 까지는 그다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클라우드는 건강을 회복한 티파에게 영문도 모른 채 꼼짝없이 붙들렸다. 그리고 그 날 마스터 스위츠와 세븐스 헤븐은 아무런 통보도 없이 휴점했다.
posted by nameless7777 2016. 8. 7. 22:27
"못 참아!"

유피가 선언했다. 칠리 소시지를 손님에게 건네던 클라우드가 움찔하며 그녀를 돌아봤다.

"진정해라. 유피. 화낼 일이 아니다."

그리고 모든 것이 분명해졌다. 저 불쌍한 빈센트는 아직 뭐가 문제인지도 모르는 것 같았다. 이런 빌어먹을.

오.

오오오.

온다.

온다온다온다!

클라우드는 아무것도 모른채 요리에 열중하고 있는 티파를 덮쳐 쓰러뜨렸다. 그리고 그와 거의 동시에 유피가 폭발했다.

"못 참아~~~~~~~!!!!!!!"

닌자 마스터가 눈에 보이지도 않는 속도로 인을 맺는다. 풍신의 술법에 화둔이 섞여 대폭발. 그리고 순간적으로 과소모된 산소가 저기압을 발생시키고, 주변의 공기를 끓어들여 2차 폭발. 세븐스 헤븐의 지붕이 통째로 날아간다. 구멍 투성이가 된 천정을 비상구 삼아 도주하는 그림자가 하나. 그리고 이를 뒤쫒는 사람이 하나.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가 있어? 내가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는데 감히 어떻게 그렇게 대놓고 그 여자를 각오해 못참아 죽여버릴거야!"

유피의 말은 중간부터 비문이 되었다. 그녀는 정말 화가 났을 때에는 이런 식으로 혼을 의식의 흐름에 맡겨 아무렇게나 단어를 내뱉는다. 그리고 이 모습이야말로 유피의 분노가 정수리까지 차올랐다는 증거.

빈센트는 혀를 찼다. 이 상태가 되면 그녀는 힘이 다할 때 까지 날뛰고 나서야 겨우 가라앉는다. 저 멀리 망연자실한 티파가 주저 앉고, 클라우드의 눈이 녹색 레이저를 내뿜는 모습이 보였다. 그러나 빈센트는 그 두 사람에게 사과할 시간이 없었다. 유피가 침천본의 수법으로 수리침을 던져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 수법의 두려운 점은, 정말로 천개의 비수를 던진다는 것이다. 의복에 무기를 숨기는 요령은 불과 일주일 전에 알려줬을 뿐이다. 그리고 유피는 천재적인 학생이었다. 빈센트는 괜한 것을 가르쳐 줬다고 때늦게 후회했다.

"전부 피했어? 피하지 말고 맞아!"

유피가 드디어 정신줄을 놓았다. 그녀의 공격을 정통으로 받으면 빈센트도 그냥 끝나지는 않는다.

다음 무기는 저 작은 몸 어디에 숨어있었는지도 모를 풍마수리검이다. 지향성을 가진 거대한 날붙이가 예측 불가능한 궤적을 그리며 쇄도. 빈센트는 허리가 잘려나가기 직전에 케르베로스의 총신으로 풍마수리검을 받아낸다. 그리고 그는 낭패한 심정으로 다섯 번 더 똑같은 곡예를 펼쳐야 했다. 그 짧은 사이에 유피는 풍마수리검을 다섯개나 더 던졌던 것이다. 게다가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빈센트으으으으으으으!!!!!!!"

그리고 빈센트를 따라잡으며 유피가 마지막 무기를 꺼내들었다. 그 꺼림직한 느낌 때문에 저 세퍼 세피로스와 싸웠을 때 이후로는 손에 쥐어본 일이 없는 무기였다.

불구대천.

그러므로 유피는 이제 빈센트와 같은 하늘을 이고 살아가지 못하겠다고 선언한 것과 같았다.

그녀의 유려한 공격이 마치 춤을 추는 것 처럼 이어졌다. 열 번의 공격이 마치 한 동작과 같이 이어졌고, 연계가 끝났다 싶으면 새로운 공격이 시작되었다. 게다가 일격 일격이 필살의 급소를 노리고 전개되자 제 아무리 빈센트라 한들 진땀을 흘리며 받아낼 수 밖에 없었다. 급기야 왼 쪽의 기계팔에 금이 가기 시작하자 빈센트의 등에도 식은 땀이 흘러내렸다.

오래 끌 수 없는 싸움이다. 결국 빈센트는 승부를 걸었다. 유피에게 돌진. 기계팔로 유피의 불구대천을 쥐고, 동시에 유피의 몸안으로 파고 들어 오른팔로 유피의 허리를 껴안는 것처럼 감싼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유피의 다리 사이에 오른 쪽 다리를 끼워넣는다.

유피의 기세가 빈센트의 다리에 가로 막혀 두 사람은 마치 탱고를 추는 것 같은 동작으로 빙글빙글 돌면서 화려하게 쓰러졌다. 빈센트는 기세를 조절해 유피를 감싸안는 형태로 간신히 유피의 쿠션이 되어줄 수 있었다.

"유피."

"그래! 가! 가라고! 루크레치아를 보러 가는데 왜 나한테 보고 씩이나 하는 거야!"

"유피."

"왕복 세 달이라고! 그래! 돌아와서 날 찾을 생각은 하지도 마!"

"유피. 그러니까 같이 가자."

"그래! 같이 가자! ...어?"

그제야 유피는 빈센트의 얼굴을 똑바로 내려다봤다. 약간 난처한 듯한 미소를 짓고 있는, 그녀가 잘 알고 있는 빈센트가 있었다.

"같이 가자, 유피."

"어? 같이?"

"루크레치아에게 널 소개해 주고 싶다."

"어? 어어어어어어어?"

유피는 다시 한번 패닉에 빠졌다. 그리고 빈센트는 그녀가 완전히 당황했을 때에도 맥락없는 말을 늘어놓기 시작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두 사람은 꼭 껴안은 채 한참동안 일어나지 않았다.

"빈센트, 이 개자식아. 내가 몇 번을 말해. 그 말을 먼저 하란 말이야."

저 뒤에서 그런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던 클라우드의 혼잣말이 공허하게 밤하늘에 흩어질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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