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nameless7777 2017. 2. 26. 23:07
"덴젤."

도시락을 받아들고 돌아선 덴젤을 클라우드가 다시 불러세웠다. 답지 않게 머뭇거리고 있는 클라우드를 보며, 덴젤이 피식 웃었다.

"새로 만든 거지? 주려면 얼른 줘."

"...자."

클라우드는 덴젤의 손에 꾸러미를 쥐어 주었다. 그 조심스러운 동작에 무심코 웃음이 나올 것 같았다.

"친구들 반응 보고. 돌아오면 알려줄게."

"그래."

덴젤이 꾸러미 안에 들어있는 생초콜릿을 물끄러미 바라 보았다. 이걸 친구들에게 나눠주고, 그 반응을 물어 클라우드에게 전해야 하는 의뢰가 이번으로 벌써 다섯 번 째다. 덴젤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솔직히 말야...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어?"

실은 전부터 묻고 싶었다. 덴젤은 단 맛에 대해 잘 모른다. 하지만 클라우드의 실력. 마스터 스위츠의 신위. 덴젤은 감히 단언했다. 그의 스위츠를 부정할 수 있는 무뢰배는 엣지에- 미드갈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고 말고.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 놈은 무례한 놈이다.

"어차피 다들 맛있다고 할텐데."

하지만 클라우드는 결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틀림없이 필요해."

보통 클라우드의 표정은 참 읽기 힘들지만 지금 이 얼굴은 덴젤도 잘 알고 있다.

가끔 세븐스 헤븐에 마시러 오는 비공정 아저씨의 표현을 빌리자면 '세피로스의 등짝이라도 쑤시러 가는 표정'이다. 입이 거친 아저씨지만, 그의 말은 언제나 정곡을 찌른다. 덴젤은 몰래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그럴 때 클라우드는 정말이지 아무래도 좋은, 그야말로 엉뚱한 일을 시작한다.

지난 번에는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티파를 깜짝 놀라게 해서 비명을 지르게 만들었고, 기어이 엉덩이를 걷어차여 벽에 쳐박혔다. 아직도 저기 어디에 흔적이 남아있다. 그렇게 크게 웃는 클라우드는 그 날 처음 봤다. 얼굴은 물론 온 몸이 새빨개진 티파도. 진풍경이었다.

요컨데 이것은 티파와 관련이 있는 일이라는 것이다. 괜히 물어볼 필요가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본전도 못 찾을 일이다.

덴젤은 총명한 아이였다. 그러므로 덴젤은 그 이상 깊게 들어갈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쓸데없는 일에 말려 들었다. 그러나 잘 모르고 약속을 했더라도 약속은 약속이다. 부탁받은 만큼의 일만 해주면 되겠지. 부디 상식 선에서 마무리 되면 좋겠다. 나에게 불똥이 튀지 않도록. 덴젤은 그렇게 생각하며 집을 나섰다.

부탁한다, 덴젤.

클라우드는 덴젤의 뒷 모습을 보며 슬쩍 미소를 짓고는 냉장고의 문을 열었다. 산더미 처럼 쌓여있는 식재 사이에서 그는 자그마한 병을 꺼냈다. 투명한 유리병 안에는 하얀색 유체가 가득 들어있었고 표면에는 음각으로 글자가 패여 있다. 티파 전용. 클라우드는 병을 조리대에 올려 놓았다. 거의 경건함이 느껴질 정도로 신중한 동작이었다.

다음으로 클라우드는 앙증맞다는 표현이 필요할 만큼 작고 귀여운 스푼을 꺼냈다. 역시 손잡이에는 음각. 클라우드는 티파 전용 스푼에 병안에 들어있는 티파 전용 생크림을 조금 묻혔다.

클라우드는 스푼을 들고 2층에 마련된 침실로 향했다. 서두를 필요는 없다. 클라우드는 스푼에 묻은 생크림이 떨어지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겼다.

끼이익.

기름칠해두지 않은 경첩에서 다소 거슬리는 소리가 나더라도 티파는 깨어나는 법이 없다. 스푼을 들지 않은 손으로 아무렇게나 흩어진 머리결을 건드려 본다. 반응이 없다. 이어서 클라우드는 조심스럽게 티파의 옆 머리를 쓰다듬었다. 티파가 조금 뒤척였다. 좋아.

살폿 잠이 깬 티파는 침대보를 핥는 버릇이 있다. 이 때다. 클라우드는 스푼에 묻어있는 생크림을 자신의 새끼 손가락에 옮겼다. 그대로 살며시 새끼 손가락을 티파의 입가에 옮긴다.

오물오물.

할짝할짝.

티파의 입술에 묻은 생크림이 그녀의 혀를 타고 입안으로 미끌어져 들어갔다. 클라우드 특제, 티파 전용 잠깨기 생크림을 맛본 잠탱이 여신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린다.

성공이다.

클라우드는 황송하기 그지 없는 여신의 이름을 입에 올렸다.

"티파."

여신이 뒤척이며 한심하게 답했다.

"으으음... 5분만 더..."

"안 돼. 어서 일어나서 밥먹어. 나 늦겠어."

"...이렇게... 후아암... 깨우는 거... 그만 두면 안돼?"

"또. 큰일날 소리 한다."

"치."

신혼 초 클라우드는 티파가 잠결에 내지른 주먹에 입이 돌아갈 뻔 했다. 그 권압에 의해 성대하게 구멍난 벽은 일부러 대충 막아놨다. 언제고 티파를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해. 물론 티파는 맹세코 처음 있는 일이었다고 주장했다. 웃음도 나오지 않는 일이다. 두 번째는 처음보다 쉽다.

티파 전용 잠깨기 생크림과 같은 테크닉은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얻어낸 생존전략 중 하나인 것이다. 7번가의 잠자는 사자는 클라우드가 아니면 깨울 수 없다.

그렇다.

그런 걸로 해두자.

거기까지 생각한 클라우드가 소리를 죽이고 웃었다. 그에게 티파의 아침잠을 깨우는 일만큼 즐거운 오락은 달리 없었다. 티파의 잠자는 얼굴도, 수면을 방해받을 때의 못마땅한 표정도 전부 흡족하다. 사랑스럽다. 다른 누구에게도 맡길 생각은 없다. 맡길까보냐.

"그만 하고. 일어나."

"후아아."

하품을 참으며 티파가 상반신을 일으켰다. 티파는 클리우드에게 몸을 껴안아 오는 듯 싶더니 그의 몸을 타고 영차영차 등 뒤로 이동해 메달렸다. 티파의 길고 매끈한 다리가 클라우드의 허리에 감겼고, 그녀의 숨결이 연인의 목덜미에 내려앉았다.

등 뒤로 느껴지는 보드라운 느낌이 말초신경을 자극하자 클라우드의 사고가 정지. 이성의 목소리가 사라지고, 욕망의 헐떡거림만이 남았다.

그리하여 지금 클라우드의 자제력은 설탕과 베이킹 파우더를 조합해 만든 과자와도 같았다. 조금만 힘이 들어가도 산산히 부서질 것이다.

하지만.

그러나.

이 정도 자극은 늘 있는 일이다.

나를 신혼 초의 애송이라 생각하면 곤란하다. 클라우드는 초인적인 자재력으로 검은 욕망을 억눌렀다. 승리한 것이다. 개가를 올려라.

"...티파."

"업어줘."

"이미 업혀 있잖아."

"식당으로~ 고~"

"나참."

남편의 번뇌를 아는지 모르는지. 티파는 당분간 클라우드의 등에서 내려올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티파를 업은 채로 일어선 클라우드가 문을 나서 식당으로 향했다. 그 사이 잠이 아직 덜깬 티파는 오물오물 거리며 클라우드의 목덜미를 침 범벅으로 만들었다.

티파는 그대로 입술도 때지 않은 채 물었다.

"애들은?"

"화요일이잖아. 현장학습. 벌써 나갔어."

"흐응."

티파가 클라우드의 목에 이빨을 세웠다.

"티파. 아프잖아."

어느새 티파는 더 이상 잠에 취해 있지 않았다.

"애들이 없네."

"응?"

"애들이 없다고. 클라우드."

클라우드는 머리에 스쳐 지나가는 것이 있었다. 정보를 해석하기 전에 다리가 멋대로 걸음을 멈췄고, 한 발 늦게 뇌가 상황을 정리했다.

클라우드가 중얼거렸다.

"맞아. 그렇군."

클라우드의 나쁜 손이 슬금슬금 티파의 허벅지를 지나 엉덩이로 옮겨졌다.

하지만 티파가 더 빨랐다.

클라우드의 검은 손이 뻗쳐 오는 그 짧은 순간 티파는 허리에 감아둔 다리를 푸는가 싶더니 그대로 휘리릭 클라우드의 몸을 타고 정면으로 이동. 클라우드에게 앞으로 업힌 상태로 고쳐 메달렸다. 그 엄청난 솜씨. 파도처럼 밀려드는 리비도. 클라우드는 거의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클라우드는 티파의 입술을 정면으로 받아내며 그대로 뒷걸음질쳤다. 어찌어찌 침실로 되돌아간 것은 클라우드의 마지막 남은 정신력이 이뤄낸 자그마한 승리였다.

클라우드가 가까스로 침대에 걸터 앉았을 때 티파의 공세는 더욱 격해졌고, 클라우드의 이성은 너덜너덜하게 녹아내렸다. 이런 정신 상태로는 늘 그러던 것처럼 마황을 운용해 문틈에 유사 침묵 마법을 걸어두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했다. 곤란하다. 멀어지는 이성 속에서 클라우드는 혀를 찼다. 두 사람은 소음을 많이 내는 편이다.

티파는 클라우드의 눈동자가 작게 흔들리는 것을 보고 클라우드가 무엇을 걱정하고 있는지 알아챘다. 뭐, 아무렴 어때. 집에 우리 말곤 아무도 없는데. 안심하라는 의미에서 티파는 눈웃음을 지어보였고, 그것으로 클라우드는 티파의 노예가 되었다. 어차피 그는 거리낄 것이 없었다. 매우 오래 전부터 클라우드는 야외에서도 거침없는 파렴치한이었다.

그리고 한 시간 뒤, 티파는 거실에서 커피를 홀짝이고 있는 바렛트를 발견했다.

아차.

어제 바렛트가 돌아와 있었지.

티파는 지금 온몸에 클라우드의 체향을 듬뿍 묻힌 상태였다. 바렛트가 의미심장하게 웃는 것보다 한발 빨리 티파는 그대로 방에 돌아와 쳐박혔다. 그리고 그녀는 바렛트가 외출할 때까지 방에서 한 걸음도 나오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클라우드는 그제야 방에 침묵 마법을 걸어주었다. 바렛트의 음흉한 미소와 치켜세운 엄지 손가락도 클라우드가 대신 받았다. 때늦은 배려였다.

클라우드는 이 날 간신히 지각을 면했다. 대기줄 맨 앞에서 대기하고 있던 오늘의 첫 손님은 서둘러 문을 열고 있는 마스터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행운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 손님은 발갛게 상기되어 있는 마스터의 얼굴을 보고, 불경스럽게도, 승천할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

클라우드의 생초콜릿에 대한 도전은 일곱 번째 시도에서 종료되었다. 꿈결처럼 맛있는 생초콜릿을 받고 그것이 사랑 고백이라고 착각한 여학생이 스스로가 몰모트에 불과했다는 추악한 진실을 알게 된 후 덴젤의 뺨을 후려쳤기 때문이다. 아무튼 눈물이 핑 돌고 어금니가 흔들릴 정도의 일격이었다.

상황을 설명하며 뾰루퉁해져서 뺨을 쓰다듬고 있는 덴젤에게 클라우드는 사과하는 대신 승리자의 미소를 지어보였다. 덴젤은 클라우드가 작게 "완성됐다"고 중얼 거리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덴젤은 괴성을 지르며 클라우드의 엉덩이를 걷어찼다. 물론 클라우드는 맞아주지 않았다. 이 엉덩이는 티파 전용이니까.

클라우드는 아무튼 발렌타인 데이에 맞출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세간에서는 여자가 남자에게 초콜릿을 주는 날이라 하는 모양이지만 사회 부적응자인 상태로 20년 이상 살아온 클라우드에게 그런 아무래도 좋은 상식은 통하지 않았다.

클라우드는 정성스럽게 포장한 생초콜릿을 들고 의기양양한 걸음걸이로 티파가 기다리는 침실로 향했다. 이걸 먹고난 티파의 기쁜 얼굴을 상상하면서. 오늘은 조금 짖궂은 장난을 쳐도 용서해주지 않으려나.

하지만 티파는 클라우드의 기대를 완벽하게 배신했다.

티파는 배꼽이 훤히 드러나 보이는 탱크탑과 속옷을 간신히 가릴 정도로 짧은 숏 팬츠를 입고, 침대를 점령하고 있었다. 실은 늘 있는 일이다. 당황할 일이 아니다. 하지만 클라우드는 곧 자신이 당황하게될 것임을 직감했다.

그리고 티파가 다리를 꼬면서 도발적으로 선언했다.

"초콜릿은 내 몸 어딘가에 숨겨놨어."

하, 한 번 찾아보지 그래? 티파도 과연 긴장한 모양이지만, 클라우드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그는 예상대로, 완전히 당황한 상태에서, 급기야 손에 들고 있는 생초콜릿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여신의 탱크탑 속 계곡 사이에서 녹아내린 초콜릿이 새하얀 옷감에 갈색 얼룩을 만들어낸 것을 본 탓이었다.

"어, 하나 들켰네."

티파 자신도 예상하지 못했다는 듯한 목소리였다.

그리고 성욕의 노예가 된 클라우드는 덴젤을 희생양 삼아 정성스레 연성한 생초콜릿에는 시선도 옮기지 않고 티파에게 저벅저벅 걸어갔다. 그 심상치 않은 기세에 티파는 조금 움츠러 들었다.

"앗..."

그러나 기세와는 달리 클라우드는 서두르지 않았다. 이럴 때 클라우드는 침착하게 미친 사람처럼 행동했다. 그는 손가락을 튕겨 불을 끄고, 지난 번에는 잊었던 침묵 마법을 이중으로 걸었다. 오늘은 특히 소음을 많이 낼 예정이니까. 물론 클라우드는 시간을 충분히 활용하여 진지하게 초콜릿을 발굴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전부 일곱 개였다.

그리고 티파는 이런 미친 짓을 다시 하지 않겠다고, 굳이 다짐하지는 않았다. 그녀는 침대보 대신 클라우드의 입술을 오물거리며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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