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7. 30. 09:05
레니는 평범한 미드갈의 시민이었다.
그녀는 초자연 현상은 믿지 않는 상식인이지만, 너무도 뜻밖인, 그러나 바라마지 않는 것을 목격하고 자신이 환상을 보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즉시 휴대폰을 꺼내들고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바로 사진을 확인했다.
마스터 스위츠.
영업 중.
틀림없다. 분명히 개점했다. 기계는 결코 거짓을 고하지 않으니까. 아무런 예고도 없이 문을 닫은 지 꼭 한달 째 되는 날이었다.
안에 그 분이 계시다. 그녀는 두근거리는 심장을 가라앉히며, 이끌리는 것 처럼 가게 문을 열었다.
계셨다.
한 달 만에 배알한 그 분은, 전혀 변하지 않은 목소리로, 안타까움에서 증오로 바뀌려 하던 레니의 응어리진 감정을 전부 풀어주었다.
"어서 오십시오. 마스터 스위츠입니다."
불경하게도 그녀는 마스터가 거의 사랑의 밀어를 속삭이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레니의 뇌리에서 만감이 교차했다.
테이블을 안내받은 레니의 눈에 사명감이 불타 올랐다. 그녀는 즉각 스위츠를 주문했다. 종류 별로 무려 일곱 개. 이 정도면 충분히 테이블을 독차지한 값은 하리라. 그 심상치 않은 수량에 마스터의 눈에 이채가 떠올랐으나, 손님의 여유로운 표정에는 기품까지 느껴졌다. 마스터는 의구심을 지우지 못했지만, 그래도 프로답게 더 묻지 않았다.
곧 마스터 스위츠가 쟁반을 들고 돌아왔다.
"생크림 케익 외 6종, 나왔습니다."
하지만 다시금 마스터 스위츠의 눈에 떠오른 것은 숨길 수 없는 경외감. 저 작은 손님의 어디에 이것들이 다 들어간단 말인가. 그는 조심스럽게 가게의 정책을 설명했다.
"손님, 포장이 필요하시면 언제든 말씀해 주세요."
하지만 레니는 전혀 흔들림없는 눈동자로 마스터를 마주 봄으로써 그를 경탄케 했다. 진심이다. 손님께서는 혼자 전부 해치울 생각이다. 마스터는 깊이 고개를 숙이고 자리로 되돌아갔다.
그제야 레니는 마스터 스위츠의 재개장 사실을 지인들에게 전파했다. 반짝이는 스위츠의 사진들과 함께. 효과는 즉각 나타났다. 레니가 첫 번째 스위츠를 다 먹기도 전에, 테이블은 만석. 일곱 개를 완식할 무렵에는 가게 앞에도 긴 행렬이 생겨났다.
클라우드는 먼지가 뽀얗게 쌓여 있는 번호표 생성기를 서둘러 꺼냈다. 오늘도 만만치 않은 하루가 될 것 같았다.
.
틀렸다.
만만치 않은 정도가 아니었다.
폭풍 같은 하루였다.
한 달 동안이나 스위츠다운 스위츠를 입에 넣지 못한 손님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가게를 찾았다. 그들은 눈에는 핓 발을 세우고 거친 숨을 몰아쉬며 자그마한 마스터 스위츠를 다섯겹으로 포위했다. 클라우드는 그들 앞에 나서 연신 머리를 조아리며 다음 날 찾아오는 것을 종용했으나 손님들은 막무가내였다. 흥분을 이기지 못하고 카운터에 지갑을 투척하려 하는 과격파 테러리스트가 나타나고 나서야 클라우드는 현 상황이 중과부적임을 깨달았다.
결국 그는 티파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전부터 마스터 스위츠의 보조를 해보고 싶었던 티파가 기세 좋게 등장한 것 까지는 좋았지만, 그녀조차 이 정도의 인파는 상상하지 못했다. 그대로 뒷걸음치려는 티파를 그녀의 체향을 맡고 나타난 클라우드가 강제로 포획. "와줘서 고마워 티파. 사랑해." 그대로 마스터 스위츠에 질질 끌고 갔다. "엄마아아아아아아!" 클라우드는 화사하게 웃으며 제빵과 상관없는 모든 잡일을 티파에게 일임했다.
그리고 티파는 귀여운 엄살과는 달리 유능한 전사였다. 살갑고 능숙한 접객은 물론 테이블 메이킹이나 서빙하는 움직임에도 전혀 군더더기가 없었고, 클라우드가 스위츠 제작에 집중할 수 있도록 손쉽게 보조했다. 덕분에 클라우드는 여유를 되찾고 마지막 남은 단골 손님에게까지 스위츠를 대접할 수 있었다. 전부 티파의 덕분이었다.
폐점이 조금 늦긴 했지만 세븐스 헤븐의 영업 시작 시간까지는 아직 여유가 있었다. 클라우드는 가게를 정리하는 티파를 바라보며 소소한 행복감을 만끽했다.
그렇게 마스터 스위츠를 정리하고 집에 돌아갈 준비를 하는 무렵 그 날의 마지막 손님이 찾아왔다.
테이블을 닦던 티파가 고개를 돌렸다. 반가운 얼굴이었다.
"칸셀. 아니,"
티파가 정정했다.
"시즈네. 어서 와. 여기 앉아."
.
택틱컬 바이저와 솔져용 전투복 대신 딱 맞는 핏의 새까만 정장을 입고 고급스러운 넥타이를 멘 칸셀- 시즈네는 느낌이 완전히 달라 보았다. 붉은 빛을 띄고 있는 몽글몽글한 머리칼이 여성스러우면서도, 자세는 늠름하고 움직임에는 절도가 있었다. 이것이 시즈네의 원래 모습이겠지.
시즈네는 티파가 권한 테이블에 앉으며 말했다.
"영업 끝났는데 들어와서 미안해. 사실 오긴 꽤 오래 전에 왔는데, 엄두가 안나서 들어가질 못했어. 엄청난 인기네."
"시즈네라면 언제든 환영이야."
티파는 클라우드를 살짝 돌아봤다. 어느새 그는 정리해 뒀던 프라이팬을 꺼내 팬케익을 굽고 있었다. 티파는 클라우드에게 눈 웃음을 보내고 시즈네를 돌아봤다.
"그 복장은 혹시 턱스의?"
시즈네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복귀했어. 시즈네는 원래 턱스로써의 코드 네임이었거든."
라이프 스트림의 하얀 공간에서 되돌아 온 후 티파는 잭스의 마지막 인삿말을 기억해 냈다.
<시즈네에게도 안부 전해줘>
티파는 이것이 칸셀이라고 직감. 그녀에게 잭스의 말을 전달하고, 혹시 본명이 시즈네가 아니냐고 물었던 것이다. 칸셀은 조용히 이를 인정하고 대답했다.
"맞아. 내 본명은 시즈네야. ...그렇게 하기로 지금 정했어."
티파는 그녀의 말이 완전히 이해되지는 않았지만, 굳이 캐묻지는 않았다. 그럴 필요가 없었다. 그녀는 왠지 개운해진 얼굴을 하고 있었으니까.
그 때를 떠올리며, 시즈네가 늦은 설명을 해주었다.
"내 본명은 따로 있었어. 알고 있는 사람은 극소수야. 잭스도 몰라. 턱스로써의 코드 네임인 시즈네라고만 알고 있었지. 그를 보기 좋게 구해내고, 나는 그에게 내 진짜 이름을 알려주려고 했어. 하지만 실패했어."
그녀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그리고 나는 턱스를 그만 뒀어. 턱스로써의 나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으니까. 그대로 마황을 받고 솔져가 되었지. 칸셀은 내 솔져로써의 코드 네임. 잭스의 친구였던, 실존하는 솔져의 이름이야. 그 사람은 잭스가 죽고 나서 신라에 염증을 느끼고 은퇴하면서, 잭스가 예전에 사용하던 검과 함께 그의 이름을 넘겨 주었어."
클라우드가 팬케익 시럽을 졸이는 막간을 이용하여 티파는 간단한 조각빵과 포크, 나이프를 시즈네에게 건냈다.
시즈네는 조각빵을 만지작거리면서 이야기를 계속했다. 아직 약간 불안해 보였지만, 이전처럼 조마조마한 분위기는 아니었다. 이제 상당히 떨쳐낸 것이겠지.
"계속 그 사람의 이름을 쓰면서 살아갈 생각이었는데. 결국 잭스가 마지막까지 기억하고 있었던 내 이름이 시즈네였다는 걸 되새기게 됐으니까. 그렇다면 아예 이참에 이것저것 다 청산하고 가장 의미있는 이름 하나만 남겨도 괜찮겠다, 그렇게 생각했다는 말씀. 그리고 시즈네라면, 역시 턱스니까."
잭스에게 마지막으로 보인 자신의 모습도 턱스였으니까. 시즈네는 이제 그만 스스로를 용서하기로 한 것인지도 모른다.
시즈네의 이야기가 끝났다. 분위기가 조금 가라앉을 무렵, 클라우드가 팬케익을 준비해 왔다. 달큰한 냄새가 코끝을 자극했고, 시즈네에게 기분좋은 공복감을 느끼게 했다.
그 옆에 함께 내놓은 것은 마스터 스위츠 비장의 '굉장한 초코보의 허니밀크'. 엄선된 초코보에게서 짜낸 젖의 농밀한 단백질과 달콤한 지방이 어우러진 세계 최고의 유제품이다. 한 모금 마신 시즈네의 얼굴이 만족감에 활짝 펴졌다.
그리고 클라우드가 조금 과장스럽게 마스터 스위츠의 어조로 팬케익을 권했다.
"식기 전에 드십시오, 손님."
시즈네가 마스터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고 팬케익을 한 조각 조심스럽게 잘라 입으로 옮겼다. 평범한 팬케익처럼 보였지만 그 맛은 전혀 평범하지 않았다. 따끈따끈하고 폭신폭신한 식감. 그 위에 뿌려진 시나몬 슈가 시럽의 단맛이 혀끝을 간지럽힌다 싶을 때 맛이 변화. 깊이 있는 풍미가 입 안 전체로 퍼지며, 식도를 온통 장악했다. 기분이 붕 들뜨고, 한 순간 성층권에 앉아 있는 것 같은 착각까지 불러왔다. 그야말로 절품. 이 간단한 팬케익이, 방금 마셨던 초 고급 허니밀크에 앞서지도 뒤지지도 않고 절묘런 조화를 이루고 있다. 시즈네는 순수하게 감탄했다. 내가 지금까지 먹어왔던 팬케익은 대체 무엇이었단 말인가.
"아, 이거, 이리나에게 미안해지네."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시즈네의 손은 이미 휴대폰을 꺼내 들고 있었다. 한 입 먹은 팬케익을 촬영. 간단한 문자와 함께 사진을 동봉. '이게 뭔지 알아?' 이내 진동하기 시작하는 휴대폰을 내팽겨쳐 놓고, 팬케익을 흡입. 멀뚱한 눈으로 쳐다보는 클라우드와 티파에게 감상을 말하는 시간도 아깝다는 듯이, 시즈네는 팬케익을 황급하게 살해했다. 접시에는 무참한 혈흔. 그러나 시즈네는 턱스의 긍지 만큼은 잃지 않았다. 남아있는 시럽을 핥지 않고 놔둔 것이다. 실로 턱스. 초인적인 자제력.
시즈네가 넵킨으로 입을 우아하게 닦으며 아직 떨림을 멈추지 않는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발신인의 이름은 굳이 확인할 필요도 없었다.
"미안해, 이리나. 식기 전에 먹어야 한다더라고."
수화기에서는 원통한 목소리.
<선배님!>
이리나는 거의 고함을 지르는 것 같았다. 클라우드도 티파도 그녀의 목소리를 여과없이 들을 수 있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외근나가신다면서요!>
"외근 맞는데? 행선지가 여기였을 뿐이지."
<마스터 스위츠에 간다고는 말씀 안하셨잖아요?!>
"안 물어 봤잖아."
<내가 마스터 스위츠 사랑하는 거 뻔히 알면서!>
시즈네가 말을 끊고 살짝 티파의 눈치를 살피고는 비장하게 대답했다.
"이리나. 어떡하냐. 티파가 너 묻어버리겠대."
<큿...>
티파가 난처하게 웃었다. "들켰네." 그리고 클라우드의 등에 약간의 식은땀. 극히 가끔이지만 티파의 농담과 진담은 구분되지 않을 때가 있다. 아무튼 서둘러 전화를 끊게 만들어야 한다. 클라우드가 평온한 어조로 다급하게 말했다. 묘기였다.
"시즈네. 돌아갈 때 생크림 케익 한 박스 들고 간다고 전해."
대답은 시즈네에게서 나오지 않았다.
<우와! 진짜죠! 마스터 스위츠, 진짜죠! 선배님, 들었죠! 꼭 갖고 오세요!>
"귀청 떨어지겠네. 너 죽을지도 모른다는 말 못들었어?"
<까짓거 죽겠습니다! 그걸 먹고!>
"난 사실 내가 케익 한 상자를 전부 먹을 수 있을지 없을지 늘 궁금하다고 생각했어."
<선배님!!!!!!!>
시즈네가 전화를 일방적으로 끊고 배터리를 분리했다. 자신을 뚫어지게 바라보는 부부를 응시하며 시즈네가 약간 멋적게 말했다.
"놀리는 재미가 있는 아이라서."
티파가 미소를 지우지 않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동요했을 때에는 참 읽기 쉬운데, 이럴 땐 표정이 미묘하다. 시즈네가 티파의 눈치를 살피며 조금 진지하게 말했다.
"제발 죽이지 말아줘?"
티파가 난처하게 웃으며 답했다.
"아하하. 내가 그렇게 무서워?"
아무렇지도 않게 답하는 티파를 보며 시즈네는 약간 억울함을 느꼈다. 클라우드는 너무 속을 졸였던 것 같았다. 그는 나머지 빈 접시를 챙기고 자리를 황급히 피했다. 목소리가 살짝 뒤집혔지만 "처, 천천히들 이야기 나누라고." 시즈네는 모르는 척 넘어가주기로 했다. 대신 그녀는 티파에게 살짝 항의했다.
"나 그 날 엄청 무서웠거든. 잭스의 마지막 유품도 부러지는 줄 알았거든."
티파의 얼굴에 조금 미안한 감정이 스쳤다.
"그야... 그 땐 어쩔 수 없었다구. 게다가 이리나는 쳉씨에게 일편단심이잖아? 얼마 전까지 우린 동지였으니까 잘 알아. 이리나가 다른 사람에게 마음을 품을 여유가 없다는 것쯤은."
시즈네는 한 때 대립각을 세웠던 티파와 이리나를 서로 살갑게 대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동병상련이라는 거겠지. 그리고 '동지였다'고 굳이 과거형으로 표현한 것은 지금은 티파가 클라우드와 결혼해서, 이젠 격이 달라졌다는 뜻이겠지. 티파도 은근히 심한 소리를 한다. 이 대화를 전해주면, 틀림없이 이리나는 울겠지. 쳉을 원망하면서.
"흥. 행복에 절어서는."
시즈네가 샐쭉한 표정을 짓자 티파의 얼굴이 약간 어두워졌다. 시즈네는 티파의 표정이 언제 읽기 쉬워지는지 알 것 같았다. 주로 다른 사람의 감정을 생각해 침울해질 때. 아마 틀림 없겠지.
시즈네가 티파를 안심시키려는 듯 웃으며 말했다. 그 미소에 더이상 그늘은 없었다.
"티파. 설마 날 이리나 같은 초짜랑 같은 취급을 하는 건 아니겠지. 물론 나는 잭스를 좋아했어. 하지만 그렇게까지 외골수는 아니야. 그 때는 왠지 감정이 흔들려서 꼴 사나운 모습을 보여 버렸지만. 일단."
티파의 표정이 어두움을 거두고 호기심을 나타냈다.
"응? 일단?"
"만나는 사람도 있고."
티파가 홍조를 띄우며 입을 가렸다. 사실 시즈네는 거기까지 말할 생각은 없었지만, 어쩐지 티파 앞에서는 뭐든 술술 불어버리게 된다. 그 때 공포에 질려 티파에게 취조 당했을 때가 생각났다. 아마 그 탓이겠지. 그나마 트라우마가 되지 않아 다행이다.
티파는 시즈네를 재촉하지는 않았으나, 시즈네는 기대에 찬 티파의 눈 빛을 배신할 수 없었다.
"솔직히 말하면 내 취향은 아니지만 노력이 가상해서 만나고는 있어. 그게 전부 헛돌고 있다는 게 문제지만."
"헛돌아?"
"응. 사람이 약간 사차원이야. 사는 세계가 좀 다르거든. 늘 이해할 수 없는 이벤트 같은 걸 준비해."
티파의 눈에 흥미가 깊어졌다. 이래서는 안된다고 생각하면서도 눈을 반짝이며 시즈네 쪽으로 몸을 기울인다.
"그래서 그래서? 누구야? 혹시 내가 아는 사람이야?"
그 말에 시즈네가 조금 주저했다.
"그게... 그러네. 아는 사람이긴 한데..."
시원시원한 시즈네 답지 않았다. 그 순간 마스터 스위츠의 문이 벌컥 열렸다. 티파가 영업 끝났다고 말하기도 전에, 붉은 머리의 사내가 마스터 스위츠에 뛰어 들어왔다.
"찾았다! 시즈네! 너 대체 뭘 하고 있는 거냐고!"
레노였다. 그 옆을 지키고 있는 것은 당연하게도 루드. 둘 다 표정을 험상궂게 일그러뜨리고 있었다.
"사장님이 언제 찾으실지 모른다고! 전화 잘 받으라고! 내가 그랬어 안 그랬어?"
그러나 시즈네는 태연했다. 그녀가 어깨를 으쓱거리며 짧게 물었다.
"도련님이 왜?"
"10분 단위로 찾으신다고! 얼른 못 가?"
"내가 왜? 업무 시간도 끝났는데."
"왜냐니... 으하..."
레노가 이마를 짚었다. 잠깐 굳어있다가, 폭발.
"다 알면서 그래! 네가 없으면 사장님 기분이 안좋다고! 만만한 게 나랑 루드라고! 우리만 깨진다고!"
"그러게 도련님 성대 모사는 그만 좀 하지 그래? 결국 본전도 못 찾잖아?"
"안그래도 오늘 감봉 당했다고! 감, 봉! 됐고! 얼른 가자!"
어쩔 수 없다는 듯 시즈네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상황이 이래서 말야. 이젠 가봐야 겠어."
티파의 눈이 커졌다. 설마? 그 상대라는 것은?
"루퍼스였어?"
시즈네가 피식 웃었다.
티파는 지금 상황을 믿을 수가 없었다. 그 루퍼스를, 이렇게까지 안달나게 만드는 사람이 있다고? 그녀는 유피의 표현을 빌릴 수 밖에 없었다.
"헐. 대박."
옆에서는 레노와 루드가 발정난 강아지 마냥 눈을 까뒤집고 안절부절하지 못하고 있었다.
"갑자기 시끄럽다 했더니. 뭘 하는 건지."
클라우드는 늦춰졌던 가게 정리를 마치고, 시즈네에게 줄 생크림 케익을 손에 든 채 먼 발치에서 레노와 루드의 촌극을 지켜보고 있었다. 아마도 사장 명령으로 행방이 묘연해진 시즈네를 찾아다니고 있던 것이겠지. 아무리 그래도 저 녀석들, 솜씨 좋은 일급 정보원일 텐데, 이런 막일에 동원되다니. 클라우드는 그만 레노와 루드를 동정하고 말았다.
클라우드가 레노와 루드에게 다가와 말했다.
"레노, 루드. 그 뭐냐, 힘내라."
그러자 입을 꾹 다물고 있던 루드가 당치도 않다는 듯 말했다.
"이런저런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
마지막 말은 레노가 받았다.
"턱스, 라고."
왜 잘난 척하는 거야. 하나도 폼나지 않는구만. 그러나 클라우드는 굳이 그런 말을 입 밖에 내지 않았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 아무래도 마스터 스위츠의 복장을 하고 있을 때에는 성격이 조금 좋아지는 것 같았다.
"그래 그래."
클라우드가 케익 상자를 레노에게 내밀었다.
"뭐냐, 고? 이게."
"생크림 케익이다. 이리나와 먹어. 쳉도 부르고."
레노가 눈을 부릅 떴고, 루드는 코를 한 차례 벌름거렸다.
"자신작이다."
"~~~~~~~"
레노의 얼굴에 형용할 수 없는 환희, 분노, 격정이 내달렸다.
"그래! 우리 넷이서 먹는 거야! 시즈네와 사장은 둘이서 어디론가 사라지라고! 나누는 것도 넷인 편이 쉽다고!"
루드도 지당하다는 듯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턱스의 긍지 같은 것은 사실 상 없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시즈네는 다음번에는 접시를 핥아도 큰 무리는 없을 것 같다고 생각하며, 작별인사를 건냈다.
"그럼 티파, 마스터. 또 봐."
티파가 아직 충격이 가시지 않은 채로 시즈네를 붙잡았다.
"시즈네."
"응?"
"다음 번에는 루퍼스와 함께 와."
그러자 시즈네가 산들바람처럼 은은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티파는 루퍼스가 그녀에게 반한 것도 무리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마음이 내키면. 나중에 연락할게."
시원하게 답한 시즈네는 레노와 루드에게 이끌려 가게 밖으로 퇴장했다. 마스터 스위츠는 겨우 조용한 공간으로 돌아왔다. 그제야 클라우드가 조금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티파에게 물었다.
"루퍼스라니. 그 녀석을 굳이 왜 마스터 스위츠에 초대하는 거야?"
"응, 그런 게 있어."
클라우드의 목소리가 내키지 않는 음색을 자아냈다.
"루퍼스는 껄끄럽단 말이야. 남 약점이나 잡고."
"괜찮아 괜찮아. 게다가 우리도 어쩌면 잡을 수 있을 것 같거든."
티파의 그 말에는 클라우드도 크게 놀랐다.
"그 녀석에게 약점 같은 게 있어?"
"곧 알게 될거야."
클라우드는 아직도 반신반의 하는 얼굴이었다. 티파는 굳이 그런 그의 궁금증을 풀어주지 않았다. 그 대신 티파는 세븐스 헤븐으로의 출발을 재촉했다. 이번에는 클라우드가 티파를 도울 차례였다. 클라우드도 루퍼스에 대한 의문은 마음 한켠에 접어둘 수 밖에 없었다. 아마도 바쁜 밤이 될 것 같으니까.
.
클라우드의 궁금증이 해소된 것은 그로부터 한달 뒤의 일이었다. 믿을 수 없게도 루퍼스 신라가 시즈네를 수행하는 형태로 마스터 스위츠를 찾아온 것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클라우드는 이 때 처음으로 온 몸이 굳어 마네킹처럼 행동하는 루퍼스를 목도하게 되었다. 얼이 빠진 클라우드 대신 티파가 완벽한 영업 미소로 그들을 맞이했고, 그들을 위해 갓 만들어진 영롱한 스위츠가 테이블에 장식되었다. 그리고 이후 이루어진 사건들을 통해, 루퍼스 신라는 절대로 인정하지 않겠지만- 클라우드는 그의 약점을 잡았다고 확신했다.
물론 클라우드가 이 약점을 이용해 루퍼스에게 한 방 먹이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루퍼스는 티파를 교묘히 선동하여 폭소를 유도함으로써 클라우드의 등짝을 후려치게 만들었다. 설마 티파의 버릇조차 이용할 줄이야. 엄청난 놈이다. 클라우드는 루퍼스의 힘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클라우드가 루퍼스와 턱스에게 사용할 수 있었던 유일한 무기는, 이후로도 독설이나 전투력이 아니라 마스터 스위츠로써 제공하는 공전절후의 스위츠 뿐이었다고 한다. 클라우드는 이 사실을 지극히 유감스럽다고 생각했으나, 티파는 오히려 이 상황을 내심 환영했다. 주변 사람들의 신뢰할 수 있는 증언에 따르자면, 검을 쥐고 무시무시한 투기를 뿜어내는 클라우드보다, 진지하게 스위츠를 만드는 클라우드가 그녀를 더 두근거리게 했다는 것 같다.
그렇게 클라우드는 쉬지 않고 매일 산더미같은 스위츠를 만들게 되었다. 그리고 마스터 스위츠는 손님이라면 그 누구도 차별하지 않고 절정의 스위츠를 대접했으므로, 그 앞에서는 누구나 평등했고 또 행복했다.
여담이지만, 놀랍게도, 마스터 스위츠는 자신이 만든 스위츠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던 것 같다. 일설에 따르면 그는 평생 아내가 만들어 주는 스위츠 만을 기꺼워하며 즐겼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티파가 직접 스위츠를 만드는 모습은 그 누구도 본 일이 없었다고 한다.
진실은 아마도 그들 부부만이 알고 있으리라.
그녀는 초자연 현상은 믿지 않는 상식인이지만, 너무도 뜻밖인, 그러나 바라마지 않는 것을 목격하고 자신이 환상을 보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즉시 휴대폰을 꺼내들고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바로 사진을 확인했다.
마스터 스위츠.
영업 중.
틀림없다. 분명히 개점했다. 기계는 결코 거짓을 고하지 않으니까. 아무런 예고도 없이 문을 닫은 지 꼭 한달 째 되는 날이었다.
안에 그 분이 계시다. 그녀는 두근거리는 심장을 가라앉히며, 이끌리는 것 처럼 가게 문을 열었다.
계셨다.
한 달 만에 배알한 그 분은, 전혀 변하지 않은 목소리로, 안타까움에서 증오로 바뀌려 하던 레니의 응어리진 감정을 전부 풀어주었다.
"어서 오십시오. 마스터 스위츠입니다."
불경하게도 그녀는 마스터가 거의 사랑의 밀어를 속삭이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레니의 뇌리에서 만감이 교차했다.
테이블을 안내받은 레니의 눈에 사명감이 불타 올랐다. 그녀는 즉각 스위츠를 주문했다. 종류 별로 무려 일곱 개. 이 정도면 충분히 테이블을 독차지한 값은 하리라. 그 심상치 않은 수량에 마스터의 눈에 이채가 떠올랐으나, 손님의 여유로운 표정에는 기품까지 느껴졌다. 마스터는 의구심을 지우지 못했지만, 그래도 프로답게 더 묻지 않았다.
곧 마스터 스위츠가 쟁반을 들고 돌아왔다.
"생크림 케익 외 6종, 나왔습니다."
하지만 다시금 마스터 스위츠의 눈에 떠오른 것은 숨길 수 없는 경외감. 저 작은 손님의 어디에 이것들이 다 들어간단 말인가. 그는 조심스럽게 가게의 정책을 설명했다.
"손님, 포장이 필요하시면 언제든 말씀해 주세요."
하지만 레니는 전혀 흔들림없는 눈동자로 마스터를 마주 봄으로써 그를 경탄케 했다. 진심이다. 손님께서는 혼자 전부 해치울 생각이다. 마스터는 깊이 고개를 숙이고 자리로 되돌아갔다.
그제야 레니는 마스터 스위츠의 재개장 사실을 지인들에게 전파했다. 반짝이는 스위츠의 사진들과 함께. 효과는 즉각 나타났다. 레니가 첫 번째 스위츠를 다 먹기도 전에, 테이블은 만석. 일곱 개를 완식할 무렵에는 가게 앞에도 긴 행렬이 생겨났다.
클라우드는 먼지가 뽀얗게 쌓여 있는 번호표 생성기를 서둘러 꺼냈다. 오늘도 만만치 않은 하루가 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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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렸다.
만만치 않은 정도가 아니었다.
폭풍 같은 하루였다.
한 달 동안이나 스위츠다운 스위츠를 입에 넣지 못한 손님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가게를 찾았다. 그들은 눈에는 핓 발을 세우고 거친 숨을 몰아쉬며 자그마한 마스터 스위츠를 다섯겹으로 포위했다. 클라우드는 그들 앞에 나서 연신 머리를 조아리며 다음 날 찾아오는 것을 종용했으나 손님들은 막무가내였다. 흥분을 이기지 못하고 카운터에 지갑을 투척하려 하는 과격파 테러리스트가 나타나고 나서야 클라우드는 현 상황이 중과부적임을 깨달았다.
결국 그는 티파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전부터 마스터 스위츠의 보조를 해보고 싶었던 티파가 기세 좋게 등장한 것 까지는 좋았지만, 그녀조차 이 정도의 인파는 상상하지 못했다. 그대로 뒷걸음치려는 티파를 그녀의 체향을 맡고 나타난 클라우드가 강제로 포획. "와줘서 고마워 티파. 사랑해." 그대로 마스터 스위츠에 질질 끌고 갔다. "엄마아아아아아아!" 클라우드는 화사하게 웃으며 제빵과 상관없는 모든 잡일을 티파에게 일임했다.
그리고 티파는 귀여운 엄살과는 달리 유능한 전사였다. 살갑고 능숙한 접객은 물론 테이블 메이킹이나 서빙하는 움직임에도 전혀 군더더기가 없었고, 클라우드가 스위츠 제작에 집중할 수 있도록 손쉽게 보조했다. 덕분에 클라우드는 여유를 되찾고 마지막 남은 단골 손님에게까지 스위츠를 대접할 수 있었다. 전부 티파의 덕분이었다.
폐점이 조금 늦긴 했지만 세븐스 헤븐의 영업 시작 시간까지는 아직 여유가 있었다. 클라우드는 가게를 정리하는 티파를 바라보며 소소한 행복감을 만끽했다.
그렇게 마스터 스위츠를 정리하고 집에 돌아갈 준비를 하는 무렵 그 날의 마지막 손님이 찾아왔다.
테이블을 닦던 티파가 고개를 돌렸다. 반가운 얼굴이었다.
"칸셀. 아니,"
티파가 정정했다.
"시즈네. 어서 와. 여기 앉아."
.
택틱컬 바이저와 솔져용 전투복 대신 딱 맞는 핏의 새까만 정장을 입고 고급스러운 넥타이를 멘 칸셀- 시즈네는 느낌이 완전히 달라 보았다. 붉은 빛을 띄고 있는 몽글몽글한 머리칼이 여성스러우면서도, 자세는 늠름하고 움직임에는 절도가 있었다. 이것이 시즈네의 원래 모습이겠지.
시즈네는 티파가 권한 테이블에 앉으며 말했다.
"영업 끝났는데 들어와서 미안해. 사실 오긴 꽤 오래 전에 왔는데, 엄두가 안나서 들어가질 못했어. 엄청난 인기네."
"시즈네라면 언제든 환영이야."
티파는 클라우드를 살짝 돌아봤다. 어느새 그는 정리해 뒀던 프라이팬을 꺼내 팬케익을 굽고 있었다. 티파는 클라우드에게 눈 웃음을 보내고 시즈네를 돌아봤다.
"그 복장은 혹시 턱스의?"
시즈네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복귀했어. 시즈네는 원래 턱스로써의 코드 네임이었거든."
라이프 스트림의 하얀 공간에서 되돌아 온 후 티파는 잭스의 마지막 인삿말을 기억해 냈다.
<시즈네에게도 안부 전해줘>
티파는 이것이 칸셀이라고 직감. 그녀에게 잭스의 말을 전달하고, 혹시 본명이 시즈네가 아니냐고 물었던 것이다. 칸셀은 조용히 이를 인정하고 대답했다.
"맞아. 내 본명은 시즈네야. ...그렇게 하기로 지금 정했어."
티파는 그녀의 말이 완전히 이해되지는 않았지만, 굳이 캐묻지는 않았다. 그럴 필요가 없었다. 그녀는 왠지 개운해진 얼굴을 하고 있었으니까.
그 때를 떠올리며, 시즈네가 늦은 설명을 해주었다.
"내 본명은 따로 있었어. 알고 있는 사람은 극소수야. 잭스도 몰라. 턱스로써의 코드 네임인 시즈네라고만 알고 있었지. 그를 보기 좋게 구해내고, 나는 그에게 내 진짜 이름을 알려주려고 했어. 하지만 실패했어."
그녀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그리고 나는 턱스를 그만 뒀어. 턱스로써의 나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으니까. 그대로 마황을 받고 솔져가 되었지. 칸셀은 내 솔져로써의 코드 네임. 잭스의 친구였던, 실존하는 솔져의 이름이야. 그 사람은 잭스가 죽고 나서 신라에 염증을 느끼고 은퇴하면서, 잭스가 예전에 사용하던 검과 함께 그의 이름을 넘겨 주었어."
클라우드가 팬케익 시럽을 졸이는 막간을 이용하여 티파는 간단한 조각빵과 포크, 나이프를 시즈네에게 건냈다.
시즈네는 조각빵을 만지작거리면서 이야기를 계속했다. 아직 약간 불안해 보였지만, 이전처럼 조마조마한 분위기는 아니었다. 이제 상당히 떨쳐낸 것이겠지.
"계속 그 사람의 이름을 쓰면서 살아갈 생각이었는데. 결국 잭스가 마지막까지 기억하고 있었던 내 이름이 시즈네였다는 걸 되새기게 됐으니까. 그렇다면 아예 이참에 이것저것 다 청산하고 가장 의미있는 이름 하나만 남겨도 괜찮겠다, 그렇게 생각했다는 말씀. 그리고 시즈네라면, 역시 턱스니까."
잭스에게 마지막으로 보인 자신의 모습도 턱스였으니까. 시즈네는 이제 그만 스스로를 용서하기로 한 것인지도 모른다.
시즈네의 이야기가 끝났다. 분위기가 조금 가라앉을 무렵, 클라우드가 팬케익을 준비해 왔다. 달큰한 냄새가 코끝을 자극했고, 시즈네에게 기분좋은 공복감을 느끼게 했다.
그 옆에 함께 내놓은 것은 마스터 스위츠 비장의 '굉장한 초코보의 허니밀크'. 엄선된 초코보에게서 짜낸 젖의 농밀한 단백질과 달콤한 지방이 어우러진 세계 최고의 유제품이다. 한 모금 마신 시즈네의 얼굴이 만족감에 활짝 펴졌다.
그리고 클라우드가 조금 과장스럽게 마스터 스위츠의 어조로 팬케익을 권했다.
"식기 전에 드십시오, 손님."
시즈네가 마스터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고 팬케익을 한 조각 조심스럽게 잘라 입으로 옮겼다. 평범한 팬케익처럼 보였지만 그 맛은 전혀 평범하지 않았다. 따끈따끈하고 폭신폭신한 식감. 그 위에 뿌려진 시나몬 슈가 시럽의 단맛이 혀끝을 간지럽힌다 싶을 때 맛이 변화. 깊이 있는 풍미가 입 안 전체로 퍼지며, 식도를 온통 장악했다. 기분이 붕 들뜨고, 한 순간 성층권에 앉아 있는 것 같은 착각까지 불러왔다. 그야말로 절품. 이 간단한 팬케익이, 방금 마셨던 초 고급 허니밀크에 앞서지도 뒤지지도 않고 절묘런 조화를 이루고 있다. 시즈네는 순수하게 감탄했다. 내가 지금까지 먹어왔던 팬케익은 대체 무엇이었단 말인가.
"아, 이거, 이리나에게 미안해지네."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시즈네의 손은 이미 휴대폰을 꺼내 들고 있었다. 한 입 먹은 팬케익을 촬영. 간단한 문자와 함께 사진을 동봉. '이게 뭔지 알아?' 이내 진동하기 시작하는 휴대폰을 내팽겨쳐 놓고, 팬케익을 흡입. 멀뚱한 눈으로 쳐다보는 클라우드와 티파에게 감상을 말하는 시간도 아깝다는 듯이, 시즈네는 팬케익을 황급하게 살해했다. 접시에는 무참한 혈흔. 그러나 시즈네는 턱스의 긍지 만큼은 잃지 않았다. 남아있는 시럽을 핥지 않고 놔둔 것이다. 실로 턱스. 초인적인 자제력.
시즈네가 넵킨으로 입을 우아하게 닦으며 아직 떨림을 멈추지 않는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발신인의 이름은 굳이 확인할 필요도 없었다.
"미안해, 이리나. 식기 전에 먹어야 한다더라고."
수화기에서는 원통한 목소리.
<선배님!>
이리나는 거의 고함을 지르는 것 같았다. 클라우드도 티파도 그녀의 목소리를 여과없이 들을 수 있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외근나가신다면서요!>
"외근 맞는데? 행선지가 여기였을 뿐이지."
<마스터 스위츠에 간다고는 말씀 안하셨잖아요?!>
"안 물어 봤잖아."
<내가 마스터 스위츠 사랑하는 거 뻔히 알면서!>
시즈네가 말을 끊고 살짝 티파의 눈치를 살피고는 비장하게 대답했다.
"이리나. 어떡하냐. 티파가 너 묻어버리겠대."
<큿...>
티파가 난처하게 웃었다. "들켰네." 그리고 클라우드의 등에 약간의 식은땀. 극히 가끔이지만 티파의 농담과 진담은 구분되지 않을 때가 있다. 아무튼 서둘러 전화를 끊게 만들어야 한다. 클라우드가 평온한 어조로 다급하게 말했다. 묘기였다.
"시즈네. 돌아갈 때 생크림 케익 한 박스 들고 간다고 전해."
대답은 시즈네에게서 나오지 않았다.
<우와! 진짜죠! 마스터 스위츠, 진짜죠! 선배님, 들었죠! 꼭 갖고 오세요!>
"귀청 떨어지겠네. 너 죽을지도 모른다는 말 못들었어?"
<까짓거 죽겠습니다! 그걸 먹고!>
"난 사실 내가 케익 한 상자를 전부 먹을 수 있을지 없을지 늘 궁금하다고 생각했어."
<선배님!!!!!!!>
시즈네가 전화를 일방적으로 끊고 배터리를 분리했다. 자신을 뚫어지게 바라보는 부부를 응시하며 시즈네가 약간 멋적게 말했다.
"놀리는 재미가 있는 아이라서."
티파가 미소를 지우지 않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동요했을 때에는 참 읽기 쉬운데, 이럴 땐 표정이 미묘하다. 시즈네가 티파의 눈치를 살피며 조금 진지하게 말했다.
"제발 죽이지 말아줘?"
티파가 난처하게 웃으며 답했다.
"아하하. 내가 그렇게 무서워?"
아무렇지도 않게 답하는 티파를 보며 시즈네는 약간 억울함을 느꼈다. 클라우드는 너무 속을 졸였던 것 같았다. 그는 나머지 빈 접시를 챙기고 자리를 황급히 피했다. 목소리가 살짝 뒤집혔지만 "처, 천천히들 이야기 나누라고." 시즈네는 모르는 척 넘어가주기로 했다. 대신 그녀는 티파에게 살짝 항의했다.
"나 그 날 엄청 무서웠거든. 잭스의 마지막 유품도 부러지는 줄 알았거든."
티파의 얼굴에 조금 미안한 감정이 스쳤다.
"그야... 그 땐 어쩔 수 없었다구. 게다가 이리나는 쳉씨에게 일편단심이잖아? 얼마 전까지 우린 동지였으니까 잘 알아. 이리나가 다른 사람에게 마음을 품을 여유가 없다는 것쯤은."
시즈네는 한 때 대립각을 세웠던 티파와 이리나를 서로 살갑게 대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동병상련이라는 거겠지. 그리고 '동지였다'고 굳이 과거형으로 표현한 것은 지금은 티파가 클라우드와 결혼해서, 이젠 격이 달라졌다는 뜻이겠지. 티파도 은근히 심한 소리를 한다. 이 대화를 전해주면, 틀림없이 이리나는 울겠지. 쳉을 원망하면서.
"흥. 행복에 절어서는."
시즈네가 샐쭉한 표정을 짓자 티파의 얼굴이 약간 어두워졌다. 시즈네는 티파의 표정이 언제 읽기 쉬워지는지 알 것 같았다. 주로 다른 사람의 감정을 생각해 침울해질 때. 아마 틀림 없겠지.
시즈네가 티파를 안심시키려는 듯 웃으며 말했다. 그 미소에 더이상 그늘은 없었다.
"티파. 설마 날 이리나 같은 초짜랑 같은 취급을 하는 건 아니겠지. 물론 나는 잭스를 좋아했어. 하지만 그렇게까지 외골수는 아니야. 그 때는 왠지 감정이 흔들려서 꼴 사나운 모습을 보여 버렸지만. 일단."
티파의 표정이 어두움을 거두고 호기심을 나타냈다.
"응? 일단?"
"만나는 사람도 있고."
티파가 홍조를 띄우며 입을 가렸다. 사실 시즈네는 거기까지 말할 생각은 없었지만, 어쩐지 티파 앞에서는 뭐든 술술 불어버리게 된다. 그 때 공포에 질려 티파에게 취조 당했을 때가 생각났다. 아마 그 탓이겠지. 그나마 트라우마가 되지 않아 다행이다.
티파는 시즈네를 재촉하지는 않았으나, 시즈네는 기대에 찬 티파의 눈 빛을 배신할 수 없었다.
"솔직히 말하면 내 취향은 아니지만 노력이 가상해서 만나고는 있어. 그게 전부 헛돌고 있다는 게 문제지만."
"헛돌아?"
"응. 사람이 약간 사차원이야. 사는 세계가 좀 다르거든. 늘 이해할 수 없는 이벤트 같은 걸 준비해."
티파의 눈에 흥미가 깊어졌다. 이래서는 안된다고 생각하면서도 눈을 반짝이며 시즈네 쪽으로 몸을 기울인다.
"그래서 그래서? 누구야? 혹시 내가 아는 사람이야?"
그 말에 시즈네가 조금 주저했다.
"그게... 그러네. 아는 사람이긴 한데..."
시원시원한 시즈네 답지 않았다. 그 순간 마스터 스위츠의 문이 벌컥 열렸다. 티파가 영업 끝났다고 말하기도 전에, 붉은 머리의 사내가 마스터 스위츠에 뛰어 들어왔다.
"찾았다! 시즈네! 너 대체 뭘 하고 있는 거냐고!"
레노였다. 그 옆을 지키고 있는 것은 당연하게도 루드. 둘 다 표정을 험상궂게 일그러뜨리고 있었다.
"사장님이 언제 찾으실지 모른다고! 전화 잘 받으라고! 내가 그랬어 안 그랬어?"
그러나 시즈네는 태연했다. 그녀가 어깨를 으쓱거리며 짧게 물었다.
"도련님이 왜?"
"10분 단위로 찾으신다고! 얼른 못 가?"
"내가 왜? 업무 시간도 끝났는데."
"왜냐니... 으하..."
레노가 이마를 짚었다. 잠깐 굳어있다가, 폭발.
"다 알면서 그래! 네가 없으면 사장님 기분이 안좋다고! 만만한 게 나랑 루드라고! 우리만 깨진다고!"
"그러게 도련님 성대 모사는 그만 좀 하지 그래? 결국 본전도 못 찾잖아?"
"안그래도 오늘 감봉 당했다고! 감, 봉! 됐고! 얼른 가자!"
어쩔 수 없다는 듯 시즈네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상황이 이래서 말야. 이젠 가봐야 겠어."
티파의 눈이 커졌다. 설마? 그 상대라는 것은?
"루퍼스였어?"
시즈네가 피식 웃었다.
티파는 지금 상황을 믿을 수가 없었다. 그 루퍼스를, 이렇게까지 안달나게 만드는 사람이 있다고? 그녀는 유피의 표현을 빌릴 수 밖에 없었다.
"헐. 대박."
옆에서는 레노와 루드가 발정난 강아지 마냥 눈을 까뒤집고 안절부절하지 못하고 있었다.
"갑자기 시끄럽다 했더니. 뭘 하는 건지."
클라우드는 늦춰졌던 가게 정리를 마치고, 시즈네에게 줄 생크림 케익을 손에 든 채 먼 발치에서 레노와 루드의 촌극을 지켜보고 있었다. 아마도 사장 명령으로 행방이 묘연해진 시즈네를 찾아다니고 있던 것이겠지. 아무리 그래도 저 녀석들, 솜씨 좋은 일급 정보원일 텐데, 이런 막일에 동원되다니. 클라우드는 그만 레노와 루드를 동정하고 말았다.
클라우드가 레노와 루드에게 다가와 말했다.
"레노, 루드. 그 뭐냐, 힘내라."
그러자 입을 꾹 다물고 있던 루드가 당치도 않다는 듯 말했다.
"이런저런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
마지막 말은 레노가 받았다.
"턱스, 라고."
왜 잘난 척하는 거야. 하나도 폼나지 않는구만. 그러나 클라우드는 굳이 그런 말을 입 밖에 내지 않았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 아무래도 마스터 스위츠의 복장을 하고 있을 때에는 성격이 조금 좋아지는 것 같았다.
"그래 그래."
클라우드가 케익 상자를 레노에게 내밀었다.
"뭐냐, 고? 이게."
"생크림 케익이다. 이리나와 먹어. 쳉도 부르고."
레노가 눈을 부릅 떴고, 루드는 코를 한 차례 벌름거렸다.
"자신작이다."
"~~~~~~~"
레노의 얼굴에 형용할 수 없는 환희, 분노, 격정이 내달렸다.
"그래! 우리 넷이서 먹는 거야! 시즈네와 사장은 둘이서 어디론가 사라지라고! 나누는 것도 넷인 편이 쉽다고!"
루드도 지당하다는 듯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턱스의 긍지 같은 것은 사실 상 없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시즈네는 다음번에는 접시를 핥아도 큰 무리는 없을 것 같다고 생각하며, 작별인사를 건냈다.
"그럼 티파, 마스터. 또 봐."
티파가 아직 충격이 가시지 않은 채로 시즈네를 붙잡았다.
"시즈네."
"응?"
"다음 번에는 루퍼스와 함께 와."
그러자 시즈네가 산들바람처럼 은은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티파는 루퍼스가 그녀에게 반한 것도 무리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마음이 내키면. 나중에 연락할게."
시원하게 답한 시즈네는 레노와 루드에게 이끌려 가게 밖으로 퇴장했다. 마스터 스위츠는 겨우 조용한 공간으로 돌아왔다. 그제야 클라우드가 조금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티파에게 물었다.
"루퍼스라니. 그 녀석을 굳이 왜 마스터 스위츠에 초대하는 거야?"
"응, 그런 게 있어."
클라우드의 목소리가 내키지 않는 음색을 자아냈다.
"루퍼스는 껄끄럽단 말이야. 남 약점이나 잡고."
"괜찮아 괜찮아. 게다가 우리도 어쩌면 잡을 수 있을 것 같거든."
티파의 그 말에는 클라우드도 크게 놀랐다.
"그 녀석에게 약점 같은 게 있어?"
"곧 알게 될거야."
클라우드는 아직도 반신반의 하는 얼굴이었다. 티파는 굳이 그런 그의 궁금증을 풀어주지 않았다. 그 대신 티파는 세븐스 헤븐으로의 출발을 재촉했다. 이번에는 클라우드가 티파를 도울 차례였다. 클라우드도 루퍼스에 대한 의문은 마음 한켠에 접어둘 수 밖에 없었다. 아마도 바쁜 밤이 될 것 같으니까.
.
클라우드의 궁금증이 해소된 것은 그로부터 한달 뒤의 일이었다. 믿을 수 없게도 루퍼스 신라가 시즈네를 수행하는 형태로 마스터 스위츠를 찾아온 것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클라우드는 이 때 처음으로 온 몸이 굳어 마네킹처럼 행동하는 루퍼스를 목도하게 되었다. 얼이 빠진 클라우드 대신 티파가 완벽한 영업 미소로 그들을 맞이했고, 그들을 위해 갓 만들어진 영롱한 스위츠가 테이블에 장식되었다. 그리고 이후 이루어진 사건들을 통해, 루퍼스 신라는 절대로 인정하지 않겠지만- 클라우드는 그의 약점을 잡았다고 확신했다.
물론 클라우드가 이 약점을 이용해 루퍼스에게 한 방 먹이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루퍼스는 티파를 교묘히 선동하여 폭소를 유도함으로써 클라우드의 등짝을 후려치게 만들었다. 설마 티파의 버릇조차 이용할 줄이야. 엄청난 놈이다. 클라우드는 루퍼스의 힘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클라우드가 루퍼스와 턱스에게 사용할 수 있었던 유일한 무기는, 이후로도 독설이나 전투력이 아니라 마스터 스위츠로써 제공하는 공전절후의 스위츠 뿐이었다고 한다. 클라우드는 이 사실을 지극히 유감스럽다고 생각했으나, 티파는 오히려 이 상황을 내심 환영했다. 주변 사람들의 신뢰할 수 있는 증언에 따르자면, 검을 쥐고 무시무시한 투기를 뿜어내는 클라우드보다, 진지하게 스위츠를 만드는 클라우드가 그녀를 더 두근거리게 했다는 것 같다.
그렇게 클라우드는 쉬지 않고 매일 산더미같은 스위츠를 만들게 되었다. 그리고 마스터 스위츠는 손님이라면 그 누구도 차별하지 않고 절정의 스위츠를 대접했으므로, 그 앞에서는 누구나 평등했고 또 행복했다.
여담이지만, 놀랍게도, 마스터 스위츠는 자신이 만든 스위츠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던 것 같다. 일설에 따르면 그는 평생 아내가 만들어 주는 스위츠 만을 기꺼워하며 즐겼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티파가 직접 스위츠를 만드는 모습은 그 누구도 본 일이 없었다고 한다.
진실은 아마도 그들 부부만이 알고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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