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nameless7777 2016. 6. 29. 15:32
미드갈에 가을이 찾아왔다.

그러나 대도시 미드갈에 계절은 중요하지 않았다. 코발트 색으로 점철된 무기질적인 도시. 그저 높게, 효율적으로만 설계된 건물이 여운도 없이 다박다박 붙어있는, 단지 그 뿐인 도시. 여유를 즐길 수 있는 초록 대신 아직 복구가 덜된 폐허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계절은 미드갈을 바꿀 수 없었다. 대자연의 힘조차 미드갈을 축복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럴 수 밖에 없는 역사적 사건이 있었다.

정체 불명의 조직에 따른, 인위적 거대 운석 소환. 이야기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에 따르면 이 사건은 신라 컴패니 소속의 전설적인 솔져가 홀로 획책한 것이라 한다. 물론 이 얼빠진 소문을 믿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 재앙의 규모가 너무도 격이 달랐기 때문이다.

아무튼 미드갈은 그 운석이 직격으로 떨어질 뻔한 도시였다. 초거대 운석의 무도한 질량은 물리 법칙을 초월한 것처럼 느껴질 정도의 중력 역전 현상을 초래했다. 그리고 초고층 빌딩이 즐비한 미드갈은 그러한 중력 역전에 가장 취약한 도시였다. 미드갈은 그대로 버려져도 이상할 것 없을 정도로 파괴되었다.

그러나 시민들은 문화와 기술의 중심지였던 미드갈을 내버려둘 수 없었다. 마치 기적과도 같이, 미드갈은 빠르게 부흥했다. 하지만 그 미증유의 사태조차 부족했는지, 미드갈에는 크고 작은 일이 끊이질 않았다. 한 번은 크기가 20 미터는 족히 넘을 것 같은 거대 크리쳐가 미드갈을 습격한 일도 있었다. 그런 와중에, 시민들이 미드갈 재건 작업에서 기능성 이상의 무엇을 추구할 수는 없었던 것도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7번가의 끄트머리에 자리하고 있는 작은 가게는 과연 이질적이라고 밖에는 표현할 수 없었다.

그 건물은 다 쓰러져가는 폐허 속에 삼켜져 있는 단층 구조물로, 시골에서나 볼 수 있는 소박한 삼각 지붕 형태의 목조 건물이었다. 다만 몹시 새하얗게 도색되어 있었는데, 미드갈 가을 날씨 특유의 비바람에도 얼룩 하나 없는 걸 보면 과연 미드갈 건축물에 걸맞는 기술로 코팅되어 있는 것 같았다. 삼각 지붕의 꼭짓점 아래에는 미취학 어린이들이나 좋아할 것 같은 동화적 필체로 부담스럽기 그지 없는 건물의 이름이 쓰여 있었다.

마스터 스위츠.

이름 그대로 이곳은 케익을 중심으로 한 각종 스위츠를 취급하는 가게였다. 참고로 스위츠를 다루는 가게는 미드갈에서 운석 낙하 이래 근 4년 동안 멸종 상태였다.

과연 꾸물꾸물한 지붕은 여러 겹으로 겹쳐져 밀피유를 연상시키는가 하면, 굴뚝의 외형은 앙증맞은 딸기 모양으로 마감시킴으로써 강한 존재감을 드러냈다. 그 뿐인가. 벽면 곳곳에는 생크림 모양 장식으로 뒤덮여 있었고 막대 사탕과 거대 초콜릿 조각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설계자가 가게의 존재 이유를 설명해 주기 위해 안달이 나 있는 것 같았다.

그 화려함에 대비하여 이 가게의 좌 우는 고블린이라도 나올 것 같은 완전한 폐건물. 가게의 뒷 편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굳이 궁금하게 여길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소문으로는 저주라도 받았는지 무시무시한 돌풍이 불거나 날카로운 귀곡성까지 들린다고 한다. 뜬금없고 기묘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뭔가의 착오로 설계되었다거나, 조직 폭력배의 자금 세탁 목적으로 만들어졌다는 소문까지 있었다.

그러나 그 수상함은 가게에 들어서면 다소 사그러든다.

손님용 탁자가 듬성듬성 있는 가게 안은 건물 외벽과 대조되어 완전히 심플했다. 유리 장식장에는 특별할 것 없는 스위츠가 진열되어 있었지만 그 수수함이 오히려 편안함을 느끼게 했다. 4년 전만 해도 미드갈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케익 가게일 뿐이다.

그리고 그런 것들 또한 이내 뇌리에서 사라진다.

가게 안에 단 한 명, 그 수수한 장식 속에 돌출되어 있는 것처럼 새하얀 사람이 서 있기 때문이다.

품이 큰 셰프복이 오히려 연약하고 크지 않은 체구를 숨길 수 없게 했다. 하지만 그 체격에 반비례하는 강렬한 인상은 남녀노소,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한 번에 시선을 빼앗는다. 아니, 그 인상은 강렬함과는 거리가 멀다. 사실 완전히 정반대라 할 수 있으리라. 그는 셰프의 모자로 머리칼을 완전히 감싸고 있어서 마치 머리를 깎고 속세를 등진 수도승처럼 보였다. 덧없어 보이는 녹색 눈동자는 금방이라도 눈물을 자아낼 것처럼 우수에 차 있었고, 선이 가는 갸름한 얼굴과 수려한 이목구비는 그의 목소리를 듣기 전까지 성별을 가늠할 수 없게 만들곤 했다.

"안녕하세요. 마스터 스위츠입니다."

녹아내릴 것 같은 중저음의 맑은 음성은 그 외모 만큼이나 덧없어, 마치 이 세상의 것이 아닌 것만 같았다.

"어떤 것으로 하시겠습니까?"

신은 그를 통해 남성에게는 질투와 안도를, 여성에게는 선망과 탄식을 가르쳤다.

그는 기혼자였다. 반년 정도 된 모양이다.

.

클라우드와 티파가 길고 먼 길을 돌아 서로의 마음을 다시 확인한 지 6개월이 흘렀다. 그리고 의례 그렇듯이 결혼은 둘의 삶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여유를 되찾은 티파는 더이상 예전의 그녀처럼 질투의 화신이 아니었다. 클라우드가 업무 상 집을 비우거나 외박을 하는 일에 대해서는 이미 마음의 준비를 해둔 상태였다. 물론 클라우드의 변함없는 미모에 꼬이는 도둑 고양이에 대해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덤벼볼테면 덤벼보라지. 어짜피 고백받은 건 나니까.

하지만 이 모든 상념은 기우에 불과했다. 클라우드는 티파가 상상한 것 이상으로 티파에게 빠져 있었다. 클라우드는 티파와 떨어져 있는 시간을 참으려 하지 않았던 것이다.

클라우드는 집에 남아 세븐스 헤븐의 일을 돕는 경우가 많아졌다. 어짜피 돈은 필요한 만큼 있었고, 대공동에서 수집한 고가의 현물도 썩어날 만큼 많았다. 휴양지인 코스타 솔 델타에 구매해둔 펜션의 임대 수익 만으로 생활비는 대충 들어온다는 것도 티파는 최근 알게 되었다. 애초에 해결사나 운반책 일은 클라우드가 마음을 치료하기 위해 시작한 일이었을 뿐이었다. 그런 생활에 큰 애착은 없었다. 이미 받아둔 의뢰는 당일에 처리하고 돌아왔다. 밤을 새서 달려왔다는 말에 티파는 얼굴 가득히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러면 클라우드는 늘 티파를 보듬은 팔에 필요 이상의 힘을 주지 않기 위해 온 힘을 다 해야 했다.

클라우드는 숨을 쉬는 것 보다 자연스럽게 티파를 사랑했다. 좋아하는 TV 프로그램을 정신없이 보는 티파의 옆에는 어느 샌가 달콤한 케익이 놓였다. 그런데 이게 꿈결처럼 맛있었다. 티파가 감탄하면 클라우드는 그저 웃어줄 뿐이었다. 이후 마린에게 그 케익이 클라우드가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크게 놀라 이에 대해 묻자, 클라우드는 공허한 눈으로-

"나는 맛의 구도자, 클라우드"

라던가,

"그대, 단 맛을 갈망하는가."

같은 알 수 없는 대사를 읊었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는 모르겠지만 케익은 말 할 필요가 없이 맛있었으니 아무래도 좋은 일이었다.

세븐스 헤븐에 손님이 몰릴 때에는 어느 새 클라우드가 곁에 있었다. 그럴 때면 어김없이 주방이 번쩍번쩍 빛난다던가 칵테일의 밑재료가 눈 깜박할 사이에 손질되어 있었다. 클라우드는 티파가 목이 마를 때에 타이밍 좋게 물을 건냈고, 불을 사용하는 요리를 만들 때에는 땀이 눈에 들어가기 전에 이마를 닦아 줬다. 전쟁같은 시간이 끝나 티파가 숨을 돌리고 있을 때에는 슬며시 다가와 손을 잡아 준다던가 이마에 조심스럽게 입을 맞추곤 했다.

티파는 그럴 때마다 행복감을 감추지 않고 클라우드를 향해 활짝 웃어주었는데, 클라우드는 단지 그 미소가 마냥 좋을 뿐이었다. 처음으로 클라우드가 그런 소소한 행복에 대해 이야기했을 때 티파는 참지 못하고 클라우드에게 달려 들었다. 티파가 지금 당장 하고 싶다고 말하면 클라우드도 티파를 더는 깨지기 쉬운 유리 세공품처럼 다루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클라우드가 이성을 놓는 일은 없었다. 이럴 때 클라우드는 침착하게 미친 사람처럼 행동했다. 끓어오르는 흑심을 참을 수 없어 안절부절하지 못하면서도 결코 서둘러 티파에게 부담을 주거나 거사를 그르치지 않았다. 클라우드에게 있어서 그것은 일종의 정신적 서커스에 가까웠다. 클라우드의 심리 상태는 굳이 보려하지 않아도 보였다. 티파는 그런 클라우드가 마냥 귀엽다고 생각했다.

어릴 때 부터 기구한 인생을 살아왔던 티파는 이 정도로 만족스러운 삶을 누려본 일이 없었다. 손님들 앞에서 자각도 없이 멍청하게 풀어진 얼굴로 하루 종일 지내는 일도 많아졌다. 그러나 아무도 이를 지적하지 않았다. 물론 바라보고 있으면 따스한 광경이기도 했지만 누구에게나 목숨은 하나 뿐인 탓이 더 컸다. 티파에 대한 도시전설은 얼마든지 있었고, 그것은 사실 전설이 아니었으며, 모두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에 대한 반대급부였을까. 클라우드는 티파를 사랑하는 일 이외에는 완전히 무관심한 것처럼 보였다. 남아있던 운반책 일이 끝난 뒤로는 티파가 함께 하지 않는 이상 집에만 틀어박혀 있거나 집 앞 공터에서 무시무시한 기세로 검만 휘둘렀다. 집에 돌아와서는 땀도 닦지 않은 채 소파에 대충 드러눕거나 거실을 굴러서 이동함으로써 집을 온통 얼룩 투성이로 만들곤 했다. 청소 책임자인 마린이 불만을 토로해도 클라우드는 마린에게까지 상남자의 면모를 드러내지는 않았다. 다만 왠지 클라우드를 라이벌로 생각하던 덴젤은 크게 안심한 것 같았다. 클라우드가 집에서 속 옷 차림으로 돌아다니기 시작하기 전까지는 그랬다는 뜻이다. 클라우드가 그런 꼬락서니를 보일 때 마다 덴젤은 발작적으로 마린의 시야를 사수했다.

클라우드의 어지간한 비행은 눈감아 주던 티파도 덴젤이 정신적으로 피폐해지는 일까지 좌시할 수는 없었다. 클라우드에게 실내복을 착실히 입어 달라고 요청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근본적으로 클라우드를 구속하거나 바른 생활을 강요하지 않았다. 어쨌든 그녀는 클라우드의 고백을 3년이나 기다려 준 관용의 화신이었다. 티파는 클라우드에게 받은 사랑을 마린과 덴젤에게 조금씩 나눠주는 방식으로 집안의 밸런스를 잡아갔다.

꿈결같은 날은 그렇게 끝없이 이어지는 듯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