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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6.09.22 오버워치. 싸우는 토끼 (5)
posted by nameless7777 2016. 9. 22. 11:37
하나는 레나와의 데이트를 마치고 관사로 돌아오고 있었다.

만남 막바지에 레나는 계속 뭔가 말하고 싶어서 안달이 나있었던 것이 약간 마음에 걸린다. 눈치 빠른 하나는 이를 어느 정도 눈치채고 있었지만- 하나는 굳이 아는 척 하지 않았다. 하나는 공을 던져주면 당장 물어오겠다고 주장하는 듯한 레나의 강아지 같은 눈을 모른 척 구경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어?"

그 때 하나는 관사를 가로질러 달리는 무리를 발견했다. 열과 오를 맞춰, 힘이 느껴지는 구령과 함께 정갈하게 구보하고 있는 그들은 송하나 하사가 이끄는 제 13 메카 소대였다. 하나, 둘, 넷, 여덟, 열 하나. 이럴 수가. 전원이 모여있다.

"어라?"

보통 이 늦은 시간까지 구보하는 것은 하나 자신 뿐이다.

하나는 그녀가 소대원들에게 항상 강조하는 기본 체력, 팀웍, 궂은 일도 마다하지 않는 소대원들 사이의 유대 관계가 한 방에 해결된 모습을 보면서, 활짝 웃었다. 솔선수범한 보람이 있었다. 이 귀여운 녀석들 이제야 철이 들었구나.

"야, 늬들!"

구보를 이끌고 있는 하나의 후임, 김재열 하사가 하나를 알아보고 호령했다.

"전체, 쉬어!"

김 하사가 터벅터벅 걸어오는 하나를 향해 소대를 정렬시킨다. 그리고 대표하여 거수경례. 손날로 공기를 베어버릴 기세였다.

"충성! 송 하사님, 수고 많으셨습니다!"

하나가 약간 움찔했다. 이 자식들 왜 이래?

"야, 늬들 혹시 내가 오늘 잠깐 놀러갔다 왔다고 시위하는 거야?"

잠도 안자고 돌아왔는데?

"아닙니다!!! 그런 일 없습니다!!!"

즉답.

김 하사가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다. 그렇다면 이게 정말 자발적이라는 건데. 하나는 자신의 소대가 딱히 군율을 위반하거나 군기가 느슨하다는 생각은 해본 일이 없었다. 사실 훈련이 많으면 많았지 부족하지는 않다. 이렇게 갑작스럽게 소대가 더 적극적으로 바뀔 만한 계기가, 오늘 있었다는 이야기일까?

지금까지 없었던 신선한 자극이?

아.

설마.

설마 늬들...

"예 그렇습니다! 오버워치 강습 사령관 님께서 오늘 훈련에 참가하셨습니다!"

이.

이이이!

배신자 놈들이이이이이!

하나는 소대원들을 질책하는 대신 그대로 등을 돌려 뛰어갔다. 나이트 워치 방향이었다.

.

하나가 나이트 워치에 신속하게 침입. 복도에 걷고 있는 오버 워치 요원에게 강습 사령관의 위치를 질의. 곧바로 응접실에 향한다.

송하나 하사가 곧 목표 지점에 도달했다.

"들어가도 좋습니까!"

이미 들어와 버렸지만.

응접실에 모여 티타임을 가지고 있던 오버 워치의 요원들이 일제히 출입구를 돌아봤다. 거기에는 아직 옷을 갈아입지 않은 레나로 시작해서, 목표물인 잭 모리슨 강습 사령관에, 아나 아마리 부사령관, 라인하르트 빌헬름 돌격대장, 앙겔라 치글러 메디컬 치프, 이름을 기억할 수 없는 카우보이, 그리고 잘 모르는 고릴라가 있었다.

......

카우보이는 그렇다치고.

'고, 고릴라?'

하나는 비명을 지를 뻔 한 것을 간신히 참았다. 멋적게 웃으며 손을 흔드는 고릴라에게 다시 한 번 경악했지만, 하나는 초인적인 인내력으로 안면 근육을 단속했다.

지금은 목표물에 집중할 때다. 티타임 중 저 무시무시한 오버 워치 강습 사령관이 바이저를 비롯한 모든 장비를 해제하고 한가롭게 입가를 풀고 있는 지금이, 바로 공격 기회다.

초탄 장전, 발사.

허리를 세우고, 무릎을 붙인다. 오른쪽 팔을 사선으로 곧게 펴고, 오른쪽 발을 가볍게, 하지만 절도 있게 구르며 이와 동시에 팔을 굽혀 손 끝을 눈 썹 옆으로 옮긴다. 일반적인 경례와 각을 잡는 동작이 미묘하게 다른, 오버 워치 특유의 경례법이다.

어떠냐, 강습 사령관. 이것이야말로 9개월전 병동에서 레나 언니에게 직접 전수받은, 그리고 아나 아마리 부사령관님을 한 방에 격침시킨 거수 경례다.

"대한민국 육군 기갑 부대 제 13 메카 소대 소속 송하나 하사입니다. 오버워치 강습 사령관님께 면담을 요청합니다."

보라, 이 완벽한 자기소개를. 발성도 훌륭하고 혀도 깨물지 않았다.

실은 9개월 전에, 레나 언니에게 경례할 때도 속으로는 이것 비슷한 생각이나 하고 있었지. 저 둔탱이 언니는 전혀, 이만큼도 몰랐겠지만.

아니나 다를까 사방에서 수근수근 감탄사가 터져 나온다. 오, 저 늠름한 모습 좀 보라지. 경례 하는 것 봤어? 이런 세상에. 레나 보다 훨씬 낫군. 윈스턴? 이제 바나나 안 준다? 난 바나나 안먹는다고 했잖아. 하! 중간 부터는 흔한 잡담이 되어 버렸지만.

"오버워치 강습 사령관 잭 모리슨이다. 환영회 이후 처음이군."

하나는 주임원사의 지시로 어쩔 수 없이 수행했던 오버 워치 환영회를 떠올렸다.

그 부끄러운 안무.

소름돋는 가사.

극심한 오한.

하나는 주임원사와 국가에 대한 분노로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그러나 하나는 초인적인 극기로 포커페이스를 유지했다. 그 꼴을 본 레나는 웃음을 참다 못해 거의 숨이 넘아가기 직전이었다. 그 잠깐 사이 레나는 하나의 표정을 읽을 수 있게 된 것 같았다. 두고봐. 두고봐, 레나 언니.

다행히 잭은 환영회에 대해 더는 이야기하고 싶지 않은 모양이었다.

"일단 앉지. 왜 왔는지도 알 것 같으니. 내게 설명할 시간을 주시게."

잭 모리슨의 음성은 평온했지만, 상상 이상으로 묵직했다. 느낌이 이렇게, 공기에 무게가 생긴 것 같달까. 하나는 차렷 자세로 돌아오며, 무심코 침을 꼴깍 넘겼다.

어느 새 다가온 아나가 하나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존경하는 여전사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빈 자리에 인도 받은 하나는 그만 최초의 기세를 완전히 잃어버리고 말았다.

심정적으로는 연타석으로 홈런을 얻어맞은 만년 꼴지 야구팀의 에이스가 된 것 같았다.

"제시. 이 아이에게 밀크티를 부탁해도 될까."

"넵. 부사령관님."

아까의 카우보이가 아나 아마리 부사령관님의 지시를 받고 밀크티를 준비해 하나에게 대접했다. 입가에는 그윽한 미소. 하나는 곧 알았다. 이 사람은 부사령관님의 명령을 받는 것을 진심으로 기뻐하는 것 같았다.

하나는 밀크티를 한 모금 마셨지만 평정을 유지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대단한 면면들이 모여 있는 것이다. 제아무리 방약무인을 한계까지 찍은 하나라 하더라도 이 앞에서 미쳐 날뛸 만큼의 배짱은 없었다. 지금까지 처럼 일 대 일 상황이라면 대응 방식을 상대의 약점을 찌를 수 있는 페르소나로 바꿔 차근차근 대응할 수 있을 테지만, 이 상황에서 그 전법은 무리다.

그러나 부사령관 아나 아마리는 무척 사려깊은 사람이었다. 그녀는 하나의 고민을 한 눈에 알아챘다. 이 육식 토끼는 오늘 솔져 세븐티 식스를 잡아 먹으러 온 것이다.

"자아, 송하나 하사는 우리 강습 사령관님께 볼 일이 있는 모양이야. 우린 자리를 비켜 주자고."

"네, 부사령관님."

제시라고 불렸던 카우보이가 즉시 일어섰다. 레나는 뾰루퉁한 얼굴로 말했다.

"으. 전 그냥 저기 구석에 있으면 안돼요?"

"안 돼."

"그냥 공기라고 생각하면 되잖아요."

"너처럼 되바라진 공기가 어디있어."

"강습 사령관님이 우리 하나 해코지 하면 어떡하냐구요!"

아나 아마리가 표정을 구겼다. 이러다간 끝이 없다.

앙겔라는 희미하게 웃으며 아나 아마리 부사령관을 거들었다. 레나의 뒷 목을 잡고 응접실 바깥 쪽으로 질질 끌고 가기 시작한 것이다. 수술실에서 단련된 그녀의 체력은 무시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들었죠? 잭. 하나양이랑 싸움붙으면 그냥 맞아요. 치료는 해 드릴테니까."

"치프님! 메르시! 옷 늘어나요! 하나야아아아아아아아아!!!"

라인하르트는 레나가 절규하는 꼴을 보며 웃음을 참지 않으며 "쿠... 타하하하하!" 응접실을 나섰다.

아나 아마리는 겨우 마지막 오버워치에게 고개를 돌릴 수 있었다.

"자, 윈스턴. 우리도 가지."

"우호우호?"

"얘한테도 다 들켰거든? 이제와서 야생 고릴라 흉내내지마. 이거 원 아까부터 부끄러워 죽겠으니까."

"...네. 죄송합니다 부사령관님."

"사과하지마 이 바보 콤비놈들."

윈스턴은 순순히 응접실을 나서면서도, 레나와 도매금으로 넘어갔다는 사실에 복잡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참 표정이 풍부한 고릴라가 아닐 수 없다.

그렇게 부사령관님과 고릴라가 자리를 비켜 주는 것으로 겨우, 응접실에는 잭과 하나만 남게 되었다.

잭은 바이저를 꺼내 만지작 거렸다. 주도권을 잡고 싶다면 레나가 이걸 꼭 쓰고 있으라고 했었는데. 잭은 한숨을 쉬며 하나가 눈치채기 전에 다시 바이저를 품안에 갈무리했다.

아무튼 하나로써는 바라마지 않는 상황이었다.  아나 아마리 부사령관님, 존경합니다.

그렇게 하나는 겨우 안심하고 잭과 독대할 수 있게 되었다. 그녀는 잭 모리슨 강습 사령관이 아무런 통보도 없이 제 13 소대를 쥐고 흔든 일에 대해 항의해야 한다.

하지만 잭은 하나가 무엇 때문에 온 것인지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실은 아침에 자네의 부대를 방문했었다네. 자네의 허가를 받아 대 옴닉 합동 훈련을 해보려 했던 셈이네만."

잭이 계속 설명했다.

"그리고 자네가 레나와 함께 외출했다는 걸 알았지. 하는 수 없이 돌아오려는데, 자네 휘하의 김 하사가 오버위치의 훈련을 체험해 보고 싶다고 부탁하더군. 눈 빛이 워낙 진지해서 소속이 다른데도 불구하고 주제넘은 짓을 하고 말았네. 사과하고 싶군."

그렇게 됐던 건가. 재열이 이 눔 자식 오늘 죽었다 복창해라. 하나가 이를 갈았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하나는 잭 모리슨의 선선한 사과에 약간 감명을 받았다. 오버워치의 수장이 일개 하사관에게 양해를 구한 것이다. 적어도 한국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건 그렇고."

잭이 화제를 돌렸다.

"실은 방금까지 자네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말이지."

하나가 눈을 깜빡 거렸다. 내 이야기? 이렇게 핵심 멤버들이 전부 모여서 말이야?

"레나 옥스턴과 알게 된 경위를 설명해 주지 않겠나?"

아, 9개월 전의 그 사건을 말하는 걸까. 트레이서와 협력했던. 그거라면 강습 사령관이 파악하고 싶어하는 것도 당연하다.

잭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네. 그래서 레나에게 자네와의 관계를 묻고 있는 참이었는데, 뭘 착각한건지 자네 동의 없이는 한마디도 하지 않겠다고 이제껏 뻗대고 있거든. 원래는 입이 무거운 친구는 아닌데."

언니가 왜 그랬지? 숨길 일도 아닐텐데.

어쩐지 항의하러 왔다가 인사 청문회가 된 것 같은 상황이 조금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할 수 없는 일이다. 듣고 싶은 사과도 이미 받았으니까.

하나는 자신의 시점에서 9개월 전 테러리스트의 무장 봉기에 대해 담담하게 설명했다.

잭은 진지한 얼굴로 이를 경청했다.

.

"제시. 어때."

"설치했습니다, 부사령관님. 수신양호."

"좋아."

"뭔데뭔데??"

"맙소사! 지금 도청기를 설치하신 겁니까?"

"이런, 맥크리. 자네, 강습 사령관을 상대로."

"어르신. 나 부사령관님 명령만 듣는 거 알잖수."

"우와. 저, 저, 말투 바뀌는 것 좀 봐!!"

"어디어디. 좀 들어볼까요."

"어허! 앙겔라! 그건 아니잖아! 당연히 내가 먼저 들어야지."

"부사령관님, 이러려고 우릴 내보낸 거에요?"

"이게 뭐야!! 나 다시 들어갈래!!"

"제시."

"넵, 부사령관님."

"이, 이거놔 이 털보야!! 난 갈거야!! 하나야!! 하나야아아아!!!"

"재갈."

"네."

"나참. 이젠 나도 모르겠군. 아나. 여기 외장 스피커."

"역시 라인하르트야. 요즘 젊은 것들은 도무지 준비성이 부족해."

"동감일세."

.

하나의 설명은 세세하고 명료했다.

기분 탓일까. 잭의 얼굴에 약간 괴로움이 스친 것 같았다.

"그런가. 테러리스트와 교전. 귀대 명령을 무시하고 트레이서를 구출. 게다가 교전 중 부상을 입고 본부와 연락 두절, 심지어 중상을 입고 장기 입원이라. 지금의 계급은 명령 불복종에 의한 강등의 결과겠군."

하나가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무언을 통해 긍정했다. 군인에게 명령 불복종은 중죄. 그것은 오버워치에게도 마찬가지일 터. 자신에 대한 강습 사령관의 평가가 내려가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어째서 명령 불복종을 하면서까지 레나를 도우려 했는지, 물어봐도 괜찮겠나."

그리고 이는 실은 레나가 하나에게 묻고 싶었던 질문 중 하나이기도 했다.

대답은 정해져 있다.

하지만 너무도 나이브한 이야기다. 어른스럽지 못하고 부끄러운 이야기다. 그리고 하나는 그걸 떠올릴 때마다 자신이 아직 병사로써 완전하지 못하다는 사실을 직시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므로, 차마, 거기까지 이야기할 수는 없다.

하나는 신중하게 단어를 골랐다.

"저는 자신이 해야할 일을 합니다. 그러기위해 할 수 있는 일을 하구요."

그렇게, 할 수 있는 말만을 했다. 가장 중요한 말은 숨길 수 밖에 없다.

잭 모리슨이 턱을 쓰다듬으면서 하나의 말을 풀어냈다.

"레나를 돕는 것은 해야할 일이었다."

"그렇습니다."

"그리고 할 수 있는 일이라고 판단했다."

"그렇습니다."

그러나 스스로를 숨겨두는 방어적인 답변이 오버워치의 수장을 납득시킬 수 있을 리가 없다.

"오만하군."

잭은 하나의 약점을 정면으로 찔러 들어왔다.

"전장에 선 지 3개월밖에 안된 신참이 그런 것을 판단할 수 있을 거라고 여겼던 건가."

"하지만 해냈습니다."

"확실히 그랬지. 보호하려한 대상에게 보호받으면서 말이지. 거기까지 계산에 있었다는 답을 하려는 것은 아닐테지."

"그것은..."

낮게 깔리는 잭의 목소리는 무거웠다. 마치 응접실 공간의 기압이 높아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 압력에 폐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하나는 입술을 깨물었고, 잭은 하나의 심중을 눈치챘다. 아주 조금이지만.

"더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것 같네만."

"아니요."

그러나 하나가 고개를 숙이며 즉답했다.

"없습니다."

오버워치 앞에서 치기어린 발언을 할 수는 없다. 당장 비웃음이 나올 테니까. 하지만 한편으로 하나는 속 시원하게 답할 수 없는 자신에게 더 실망했다. 예전에 좀 더 이렇게, 물불 가리지 않던 자신이 그리울 때가 있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그렇게 어리광을 부릴 수는 없다. 자신은 이제 10대가 아니고, 전장에 나서는 군인이다.

그러나 하나는 표정이 풍부한 사람이었고, 잭은 그 속에 숨겨진 한마디가 있다는 것 정도는 눈치채고 있었다.

잭은 고개를 폭 숙이고 있는 하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리고 나서 조그맣게 한숨을 쉬고, 짧게 물었다.

"자네가 구했다던 그 노인의 상태는 어떤가."

그러자 하나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그녀가 흥분해서 소리쳤다.

"완전 건강해요! 총에 맞기 전보다요!"

하나는 자신의 말투가 바뀌었다는 사실도 깨닫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표정만으로 잭은 이 아이가 가진 용기의 근원을 보았다고 판단했다.

이 아이는 순수하다.

시민을 구하기 위해 테러리스트를 쏜 것도, 트레이서를 구하기 위해 달려온 것도, 이 때문에 강등당한 일까지- 이 아이는 전혀 후회하고 있지 않다.

잭은 표정을 풀었다. 듣고 싶은 이야기는 전부 들었다.

"잘 알았다. 몰아세우려는 것은 아니었네. 용서하게."

잭 모리슨의 대답은 마치 하나의 마음을 읽고 있는 것 같았다. 방금전 질문도, 하고 싶은 말을 참고 있는 하나가 조금은 본심을 낼 수 있도록 도와준 것 같은 느낌이었다. 하나는 왠지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하나는 먼 발치에서 바이저와 마스크를 쓰고 있는 잭을 봤던 일이 있다. 하나는 바이저 너머의 날카로운 시선을 느끼고 잭을 마지막 타겟으로 남겨둘 수 밖에 없었다. 이 역전의 용사는 아나 아마리 이상의 강적이다. 그렇게 판단했다.

하지만 그것은 편견이지 않았을까.

강습 사령관의 얼굴에 길게 난 상처는 분명 섬뜩하지만, 하나는 그 안에 새겨진 숨길 수 없는 상냥함을 읽어낼 수 있었다. 그런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자신의 직감은 매우 잘 맞는다.

잭은 이야기를 되돌렸다.

"그럼, 다시 정식으로 요청하고 싶군. 남은 일주일간 오버 워치와 합동 훈련을 하면 어떻겠나. 옴닉의 공격까지는 아직 시간이 있으니, 팀웍을 미리 다져두면 작전 수행에 많은 이점이 있을 걸세."

오버 워치의 제안이다. 그리고 이번에 그는 김재열 하사 나부랭이가 아닌, 제 13 메카 소대장에게 직접 요청하고 있는 것이다.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하나는 잭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돌이켜 생각할 필요도 없다.

다짜고짜 나이트 워치에 방문한 것은 사소한 실수에 불과했다.

잭의 제안을 받아들인 것이야말로 오늘 송하나 하사 최대의 실책이었던 것이다.

.

"으? 아아아아아!"

하나가 풀 오토로 탄창을 전부 비울 때까지 방아쇠를 당겼다. 자동으로 날아가는 탄창. 하나는 목표로부터 시선을 떼지 않고 탄창을 교환했다. 오늘 모의전투에서 4번 전사하고 나서 익힌 생존 기술이다.

"좋군. 아주 좋아."

하지만 잭 모리슨은 하나가 탄창을 교환하는 바로 그 순간 엄폐물에서 뛰쳐 나왔다.

오, 하나님, 제발. 절 도와주셔야 하잖아요.

장전이 끝나고 방아쇠에 손가락을 거는 찰나 잭의 보디 체크가 작렬했다.

"커헉"

하나가 부웅 공중으로 날아 올랐다.

물론 그렇다. 솔저 세븐티 식스는 하나를 상대로 절묘하게 힘을 조절하고 있었다.

방금 전도 그렇다.

잭은 보디 체크를 하는 대신 라이플 한 방으로 하나의 머리를 페인트 투성이로 -물론 이미 엄청나게 더럽혀져 있었지만- 만들어 줄 수 있었다. 그 뿐인가. 지금의 보디 체크에 잭이 전력을 실었다면, 하나는 틀림없이 내장 파열로 즉사했으리라.

그리고 하나는 이 사실을 참을 수 없었다.

감히.

감히 나를 얕봐?

가만 안둬.

"가만 안둬------!!!!!!"

하지만 육체는 정신을 대변하지 못한다. 하나의 뇌는 주마등처럼 떠오르는 아침에 일어난 일을 보고 있었다.

.

"송하나 하사는 오늘 훈련 중 메카 탑승을 금지하겠다."

어? 이건 또 무슨 소리야. 같이 훈련하자더니 기갑 부대의 소대장에게 메카를 타지 말라니. 이건 신종 괴롭힘이야? 무슨 의미가 있는 거야?

하나가 새초롬한 표정을 지으며 잭을 올려다 봤다.

"설명을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하나는 그가 무슨 설명을 해도 들이받을 자신이 있었다. 그래. 말만해. 내가 다 갚아 줄게. 응. 기대하라고.

잭 모리슨의 설명은 무척 간단했다.

"자네의 메카 조종술은 완벽하다. 이미 내가 손댈 수 있는 영역이 아니야."

아, 그러셔? 그럼 나랑 한 판 붙어 볼-

"레헥?"

하나는 자기 소개할 때도 깨물지 않았던 혀를 깨물었다. 저 멀리 풉 하고, 레나 언니가 웃는 모습이 보였다. 언니, 어제에 이어 두 번째야. 이따 나 좀 봐.

잭 모리슨의 상찬이 이어졌다.

"이 7일간 자네의 훈련은 빠짐없이 지켜봤지. 자네에 비하면 나는 메카에 대해 거의 초심자나 마찬가지라는 결론을 얻었다네. 매우 인상깊었다고 해야겠군."

와, 이 아저씬 무슨 칭찬을 이렇게 직설적으로 하는 거야! 부끄럽구로!

하나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다른 오버워치 요원들이 하나를 곁눈질하며 히죽히죽 웃고 있었다.

나왔다.

이것이야말로 잭의 전매특허.

'라이징 패스트볼'.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상대의 장점을 콕 집어 정면으로 칭찬한다. 그야말로 칭찬을 듣는 상대가 몸둘 바를 모를 정도로.

"제시의 사정 거리에 들어가면 난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어."

"윈스턴이 또 해냈군. 이 발명이 오버워치를 구원할 거야."

"앙겔라가 없다면 우리 부대는 3일도 버티지 못할 테지."

"레나가 저질러버렸어. 그녀가 우리 모두를 구했어."

"라인하르트 경, 나를 몇 번 살려주었는지 모르겠군. 항상 의지하고 있소."

"자리야. 자네의 근육에는 결점이 없어. 게다가 그 근력. 기적적이야."

가장 악질적인 대목은, 잭에게는 칭찬을 하고 있다는 자각이 없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는 잭의 모든 칭찬이 전부 진심이라는 사실에서 비롯된다. 이 꾸밈없는 태도가 칭찬의 파괴력을 몇 배나 증가시키는 것이다.

지금에 와서는 오버워치의 트리플 S 평가는 잭의 라이징 패스트볼에 달려 있다는 설이 있을 정도다. 그리고 이것은 사실이다.

즉,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요원들이 다 거쳐온 길이다. 하지만 하나는 이런 대놓고 하는 칭찬에는 면역이 없는지 몸을 이리저리 비틀고 있었다. 아, 이번 공은 진짜 완전 한가운데에 꽂혔네요. 윈스턴이 과장스럽게 스트라익 사인을 하자 레나가 입을 가리며 웃었다.

잭의 설명이 이어졌다.

"그리고 송하나 하사의 지휘 여부에 따라 부대의 생존력이 달라지지. 자네의 취약점은, 자네도 알다시피 메카를 버린 후 갈아탈때까지 가장 크게 드러난다네. 자네가 그 상황에 대한 대처 능력만 키워낸다면, 제 13 소대가 옴닉을 상대하는 것에 있어서 결정적인 불리함은 없다고 감히 단언할 수 있겠지."

이 또한 엄청난 칭찬이다. 송하나 하사는 계속되는 상찬에 그로기 상태에 빠졌다. 그리하여 결국 그녀는 잭 모리슨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말았던 것이다.

이 바보. 멍청이.

내가 미쳤지.

.

"허우!"

등에 내달리는 충격이 하나를 현실로 되돌려 보냈다. 방금 바람빠지는 소리를 낸 입에서 쓴 맛이 느껴진다.

하나는 땅에 쓸려 나가는 기세를 그대로 이용해서 빙글빙글 몸을 굴려 일어났다. 그리고 그 자세로 쓰러지듯 잭에게서 멀어지는 방향으로 내달린다. 이것은 잭에게 7번 죽으면서 저절로 습득한 도주 방법이다.

도주하면서 하나는 등 뒤로 재장전해둔 총을 풀 오토로 갈겼다. 잭을 뒤돌아 보는 우는 범하지 않는다. 이 골목은 좁아서 피할 공간이 없다. 이것만으로 견제는 가능할 터. 잭은 탄환을 피해 엄폐할 수 밖에 없었다.

"좋은 판단이다. 송하사."

하나는 아직 자신이 총을 발사할 수 있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이 총은 상대의 페인트 탄에 피탄되지 않았을 때에만 기능한다. 하지만 하나에게는 아직 자신이 잭에게 한 발도 맞지 않았다는 사실을 자축할 기운도 여유도 없었다.

하나는 전방에 보이는 빨간 우체통 앞으로 숨어들었다. 하나의 체구는 작지만 우체통은 그런 그녀에게도 썩 좋은 엄폐물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 과묵하고 빨간 친구는 하나에게 숨을 돌릴 수 있는 여유 정도는 제공해 줄 수 있었다.

하나가 심호흡하면서 생각했다.

반격한다.

반격한다.

반격한다.

하나의 머릿속에는 온통 그 생각 밖에 없었다.

.

"T2, E3!"

하나가 헤드셋을 벗어던지며 우렁차게 외쳤다. 그러나 잭은 그 모습을 보며 혀를 찼다. 헤드셋이 고장났군. 그러므로 하나의 허를 찌르는 지휘력은 더이상 기대할 수 없게 되었다. 피아 구별없이 전원이 그녀의 목소리를 듣게 될테니. 아쉽게 됐지만, 이것도 전쟁이다. 이번 생은 포기하고, 다음 생을 기약하자꾸나.

잭이 바람처럼 질주했다.

"윽! 이 아저씬 뭐 이리 빨라!"

완전히 여유를 잃어버린 하나에게서, 예의바른 군인의 모습은 한 조각도 기대할 수 없었다. 어제까지는 그렇게나 각이 잡혀 있었는데. 이런 상황까지 몰렸던 일이 없었던 것이겠지. 무심코 본색을 드러낼 정도로 당황했으리라.

"T2, E3! 이 자식들아 안들려!? 솔져! 십자 포화! 당장!"

""아이아이, 맴!!!!!!""

건물 위에서 모습을 드러낸 2기의 메카, 탱고2 김재열 하사와 에코3 최상철 일병이 잭을 향해 포위망을 좁히듯 발포했다. 이들 메카의 융합포는 산탄 계열이다. 전부 피하는 것은 지극히 어렵다. 분명히 유효타를 기대할 수 있다.

상대가 잭 모리슨이 아니라면.

잭이 아무렇지도 않게, 마치 탄환 사이를 유영하듯 움직여 피하고, 순식간에 건물의 사각으로 사라져 버린다.

"큭!"

"씨발 이게 말이 돼?!?!"

탱고2와 에코3로써는 잭이 총구의 방향을 확인하고 격발하는 타이밍을 읽어 탄막의 범위를 지극히 정확하게 예측해낸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리가 없었다.

하나가 몸을 낮춰 이동하며 큰소리로 외쳤다.

"F5는 할아버지를 막아! 전력을 다해 쓰러뜨려!"

하지만 이래서야 적에게 작전을 모두 알려주는 꼴이다. 포기하지 않는 모습은 가상하지만, 슬슬 지휘도 그녀답지 않게 조잡해지고 있다. 라인하르트를 메카 1기로 막을 수 있을리가 없다. 그라면 맨손으로조차 메카를 두동강 낼 수 있으니까.

"A4, B5! 너희들은 털보! 앞 뒤에서 동시 공격!"

맥크리도 귀가 있다면 방금 지시를 들었겠지. 그라면 등 뒤에 벽을 두고 엄폐해 정면으로 돌진할 수 밖에 없게 만들 것이다. 그는 메카의 조종사들을 직접 노리겠지. 탄환은 두 발이면 충분하다.

너무 궁지에 몰아버렸나. 이제 슬슬 휴식해야 하는 타이밍이군.

잭은 하나에게 가볍게 사격했다. 페인트 탄이 벽에 맞고 하나에게 조금 튄다. "끄악!" 하나는 머리를 감싸쥐며 계속 도주했다. 끈질기군.

"야 씨발 너희들 뭐해! 솔져가 총쏘잖아 지금! 멀리서 견제도 못해!?"

잭은 하나가 조금씩 불쌍해지기 시작했다. 잭이 슬금슬금 막다른 곳에 몰아 넣은 하나는 더 이상 도주할 곳이 없어졌다. 하나가 엄폐물로 삼고 있는 나무 상자는, 그야 뭐 페인트탄 한발 정도는 막을 수 있겠지. 심지어 상자 높이가 너무 낮아 하나는 그 안에 엎드리듯 쭈구려 앉아 있었다.

처량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만 됐다. 송하사. 충분히 열심히 했어."

"으으으... 젠장! 죽여!"

비장하고 초라하다.

잭은 피식, 하고.

웃으려다가-

등 뒤에 집결하고 있는 메카 소대를 눈치챘다.

5기.

...

5기라니.

뭐지? 날 견제하던 2기는 둘 째치고, 맥크리와 라인하르트를 상대하던 3기까지?

'상대를 몰아 넣은 것은 내가 아니라 하나 쪽이었나. 이거 걸작이군.'

잭의 상념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하나가 고개를 내밀어 다시 외쳤다.

"늬들 뭐해! 쏴! 죽여!"

그리고는 고개를 폭 숙여 나무 상자 아래로 쏙 들어가 숨는다.

그 모습이 너무도 어이가 없어서 잭은 폭소를 터뜨리고 싶은 기분에 사로 잡혔다.

하지만 상황이 조금 좋지 않았다.

순간적으로 스위치를 켜고, 잭 모리슨이 솔져 세븐티 식스가 된다. 그리고 그대로 자세를 낮춰 메카 소대에게 돌진. 5기의 메카가 발포한 것은 거의 동시였다.

아니.

콤마 2초.

내가 더 빠르다.

솔져가 마치 지면에 붙어 미끄러지는 것 같은 움직임으로 눈 깜빡할 사이에 메카 소대의 중심부까지 이동했다. 메카 소대가 경악하는 가운데, 솔져가 나직하게 감탄했다.

"솔직히 놀랐다."

솔져 세븐티 식스가 마치 멱살을 잡는 것처럼 메카 한 기의 머리를 움켜쥐고, 융합포를 반대로 꺾어 휘두르며 그대로 땅바닥에 메다 꽂았다. 메카에게 맨손으로 기술을 걸어 던져 버린 것이다. 그 믿을 수 없는 신위에 메카의 조종사들은 눈을 휘둥그레 뜬 채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그 순간 이런 기만 전술을 펼치다니."

솔져가 경악해 굳어있는 2기의 메카를 향해 지근 거리에서 총격. 콕핏에 탄환 세례를 받은 메카는 더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그렇군."

패닉에서 벗어난 병사가 부스터를 켜고 돌진. 솔져는 서두르지 않고 메카의 오른 쪽 측면으로 돌아들어가 다리 관절부에 로우 킥. 한쪽 무릎을 꿇고 죽 미끌어지는 메카의 등 뒤로 사격. 탄창 하나를 다 비워버린다. 그러면서도 시선은 아직 상처없이 서 있는 메카를 향해 고정하고 있다. 빈틈 따윈 한 조각도 없었다.

"적을 지칭하는 방식의 차이인가."

승산이 없음을 깨닫고 물러나는 병사를 앞에 두고 솔져는 마치 마술과 같은 솜씨로 순식간에 재장전. 이번에는 라이플을 견착하고 병사의 미간을 정조준 사격. 단 한 발로 메카는 침묵.

마지막으로 솔져는 처음에 내던져 버린 기체를 차분하게 확인사살함으로써, 혼자서 메카 5기를 전부 정리했다.

그리고 완전히 질려버린 얼굴로, 자신을 향해 총을 겨누고 있는 마지막 병사를 바라봤다.

"하... 이게 뭐야..."

하나는 분한 얼굴로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괴물... 아저씬... 사람도 아냐!"

"그게 패인이군. 맞아. 난 강화 인간이니까. 보통 사람처럼 생각했다면 지는 게 당연해."

그 정도가 아니다. 설령 메카를 타고 싸웠다 하더라도, 이길 수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꺾였다.

하나는 자신이 오늘 처음으로 완패를 경험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하나는 자신이 느끼는 패배감을 인정할 수 없었다.

"으아! 웃기지마! 다시해!"

오늘 이런 강도의 전투 훈련을 벌써 15회나 수행했다. 잭은 바이저 내장 통신기로 요원들의 의견을 접수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윽고 잭은 심드렁하게 선언했다.

"오늘은 접는다. 모두 짐싸자."

"아저씨! 한번 만 더!"

잭은 억지를 부리는 하나를 보며 이를 딱 하고 부딛혔다.

.

"야! 늬들 왜 그랬어! 포위하자마자 바로 쏴죽였어야지!"

"소"

"뭐! 소 뭐!"

"송하사님 맞을까봐 그랬지 말임다. 왜 하필 거기 쭈구려 계시지 말임다."

"윽... 우이씨... 저 아저씨 유인하는 게 쉬운 줄 알아! 그래도 쐈어야지! 나 엄폐하고 있었잖아!"

"풉... 상자떼기로 말임까."

"이 자식이 웃어?!"

"송하사님이야말로 왜 안쏘셨슴까?"

"...내 안에 괴물이 늬놈 새끼들 머리통 다 날려 버릴까봐 그랬다! 어쩔래!"

갸갸 소리지르는 하나를 보며 레나는 저대로 졸도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폭소함으로써 하나가 폭발하게 만들었다. "아 언니 웃지마! 웃지마!" 레나는 어제 당했던 치욕을 전부 돌려주리라 작정한 것 같았다. 참지 못하고 일어서려는 하나를 앙겔라는 겨우겨우 뜯어 말렸다.

"일어서면 안돼요 하나양. 진정해요. 치료 효과 떨어니니까."

그녀는 카두세우스 지팡이를 이용해 하나에게 치료용 나노 머신 입자를 주입시키고 있었다. 오늘 맨몸으로 무시무시한 훈련량을 소화시킬 수 있었던 것은 이 신통방통한 입자 덕분이었다. 하지만 흥분한 하나는 금새 그 고마운 입자에 대해 완전히 잊어버리고 말았다.

"아 이게 뭐라고 그래요! 내가 좀 많이 썼다구해서 그게 그렇게 아까워요?"

하나는 잔뜩 골이 나 있었지만 앙겔라는 대부분의 환자를 닥치게 만드는 마법을 알고 있었다. 그녀가 나직하게 말했다.

"물론이죠. 이거 1분당 사용료 이천달러예요."

1분마다 최상철 일병의 월급이 삭제된다. 효과는 발군. 그 시끄럽던 하나를 순순히 닥치게 하는 무시무시한 돈의 언령. 그렇게 하나가 기세를 잃어버린 것을 포착한 부하들이 히죽히죽 웃으며 이죽거리기 시작했다.

"아, 송하사님 그동안 내숭 떨었던 거 오늘 한 방에 다 날려먹네."

"송하사님 그 때 오버워치 부사령관님께 경례 올려붙이는 거 봤어? 으와. 나 그 때 완전 지려버렸잖냐."

"그게 전부가 아니지 말입니다. 지난 번에 라인하르트 경 구워삶을 때 제가 옆에 있었지 말입니다."

하나의 이마에 힘줄이 돋았다.

"우씨! 어젠 아저씨랑 붙어먹더니 오늘은 상관이 눈에 보이지도 않지! 늬들 죽어볼래!"

"붙어먹다니. 하하."

본인이 왔다. 오고 말았다. 하나가 도끼눈을 뜨고 잭을 노려봤다. 거의 원수를 바라보는 눈 빛이었다. 9개월전의 활쟁이 닌자놈도 만만치 않았지만 이렇게 밉살스럽지는 않았다.

하지만 하나의 부하 병사들은 딱히 그런 것도 아닌 모양이었다. 편히 쉬고 있던 병사들이 벌떡 일어서서 잭을 열렬히 환영했다.

"강습 사령관님!"

"강습 사령관님!"

"수고하셨습니다!"

이 자식들이 상관은 개무시하더니... 하나는 주먹을 꽉 쥐고 부들부들 떨었다. 레나는 아예 땅바닥에 주저 앉아서 웃음을 터뜨렸고 앙겔라는 그런 레나를 다독이며 쓴 웃음을 지었다.

잭이 담담하게 확인했다.

"코드 네임을 부른 상대에게는 지시대로. 그렇지 않은 상대에게는 그 반대로. 대전제는 솔저 세븐티 식스의 사살. 틀림없나?"

하나가 입을 다물었다. 이것이 정곡을 찔렸을 때의 하나의 반응이라는 것을, 잭은 어제의 대화 중 알게 되었다. 병사들의 눈에는 경외감이 한층 더 깊어진다. 그 전투 능력에 이 통찰력. 이 사람은, 정녕코 전쟁의 신이라도 된다는 말인가.

잭이 다시 하나의 반응을 떠봤다.

"이것은... 대 옴닉 기만 전술인가."

그 말에 레나가 웃다 말고 퍼뜩 일어나 앉았다. 대 옴닉 기만 전술. 그 단어가 의미하는 것은 한 가지 밖에 없다. 하나가 살짝 레나와 눈을 마주 친다. 아주 잠깐 동안.

"부산을 침공하는 옴닉도 어엿한 옴닉이에요. 사람과 똑같죠. 기만 전술이 통할 정도로요."

잭이 고개를 끄덕였다. 놈들은 사람과 똑같다. 하지만 잭은 하나가 그 사실을 알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게 느껴졌다. 하나는 자신이 옴닉을 쓰러뜨리는 장면을 생중계하고 있을 정도니, 제대로 진실을 파악하고 있으리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자신이 죽이고 있는 것이 사람이나 마찬가지라는 진실을.

"바로 그렇다. 언제 알아챘지?"

"그런 건 처음 전장에 나갔을 때부터 알았어요. 죽기 전에 두려움에 떠는 걸 봤으니까요. 그건 절대 프로그램이 아니었어요."

레나가 혼란스러운 눈으로 하나를 바라봤다. 그 때, 9개월전에 하나는 분명히 그렇게 말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하나는 이미 진지하게 잭을 응시하고 있었다. 레나는 하나와 잭의 대화를 주의깊게 듣기로 했다.

"맞아. 옴닉은 사람과 똑같이 학습 능력이 있고, 네트웍을 통해 경험을 공유할 수 있어. 그 이야기는 곧."

하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한 번 간파당한 기만 전술은 두 번 다시 쓰지 못한다는 이야기지요."

"그렇다면?"

"그렇게 폐기한 전술은 132가지예요."

잭의 눈이 이채롭게 빛났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어느새 아나도, 라인하르트도, 그 자리에 있는 모두가 하나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있었다.

"괜찮아요. 남아있는 전술도 아직 서른개 정도 있어요. 마지막 전투를 치를 정도는 돼요."

그냥 호기롭게 떠드는 것이 아니다.

전부 하나가 말한대로일테지.

이 아이.

송하나 하사는 이제 겨우 갓 20세가 넘었음에도 이미 역전의 용사인 것이다.

하나는 옴닉과 싸우는 의미- 즉 옴닉을 죽이는 것은 살인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을 제대로 알고 있으면서도, 그럼에도 전장에 선다.

그렇게 가열찬 전쟁을 1년이나 버텨내고, 부하들을 독려하며- 지금 이 수준에까지 올라와 있는 것이다.

오버워치 요원들은, 주로 잭은 그녀에게 가당치도 않은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레나가 잭에게 전하고 싶었던 것도, 틀림없이 이런 것이겠지.

"송하나 하사. 다시 한 번 요청하지."

잭이 손을 내밀었다.

"그 전술을 우리와 공유해주게. 다가올 전투에 대한 카드는 많을 수록 좋으니까."

"아저씨들이 따라올 수나 있겠어요? 자랑하는 건 아니지만, 제 기만 전술에 똑바로 따라오는 병사는 한국에서도 우리 애들 밖에 없다구요?"

하나의 말에 제 13 소대의 얼굴에 자부심이 서렸다. 그럴만도 하다. 기록에 따르면 그들이 송하나 하나와 함께 한 시간은 훈련과 크고 작은 실전을 합쳐 1000 시간을 훌쩍 넘었다.

하지만 잭은 눈썹을 꿈틀거렸다.

"흘려들을 수 없는 말이군."

잭이 손을 뻗은 자세 그대로 상체를 기울여 하나를 똑바로 마주보았다.

"우리들은 오버워치다."

하나가 웃으며 잭의 손을 잡았다.

"알았어요. 대신 부산을 침공하는 옴닉은, 이번에 확실하게 전부 없애는 거예요?"

"물론이다."

잭이 씨익 웃었다.

"우리가 한국에 온 이유 중 반은 그거니까."

하나는 고개를 갸우뚱 했지만, "반? 겨우 반?" 잭은 그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어째서인지 부사령관님과 레나 언니가 승리자의 미소를 짓고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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