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nameless7777 2016. 8. 7. 20:45
라인하르트 빌헬름은 정신 세계도 그 육체 만큼이나 강철같은 사내였다. 그는 군대에 성별이나 나이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누군가는 무기를 들어야 한다면, 그 의지를 가진 자를 존중해야만 한다. 그래서 그는 강습 사령관만큼 하나를 반대하는 입장은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그녀의 의지. 만약 확인 결과 그녀의 의지가 준비되지 않은 것으로 판단된다면, 이야기는 그걸로 끝이다. 단지 그 뿐인 것이다.

그것과는 별개로 그는 긍지높은 오버워치의 원로 멤버로써, 송하나 하사에게 그에 합당한 모습을 보여줄 생각이었다. 첫 날은 정말 뭐가 뭔지 잘 모르는 상태에서 어영부영 지나가 버리고 말았지만, 오늘에야말로 반드시 그렇게 해야만 한다. 아니, 반드시 그렇게 하고 말 것이다.

하지만 어제 그것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라인하르트가 그 기억을 떠올려 보려는 때, 마침 송하나 하사가 각이 잔뜩 잡혀있는 정갈한 군복 차림의 젊은 병사와 함께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그러므로 지금 하나가 입고 있는 복장- 투박하면서도 요상하게 화려한 저것은 결코 정비복이나 군복이 아닐 것이다. 어제 입고 있던 것 만큼 화려하지는 않지만, 묘하게 멋을 부린 복장이다.

그녀가 라인하르트를 알아보고 통통 튀는 걸음으로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할아버지!"

할아버지라니. 나는 오버워치다. 그렇게 대답해줘야 했을 텐데, 그 살가운 모습에 라인하르트의 눈매는 이미 펀치 드렁커처럼 풀려있었다.

신장 8피트, 몸무게 600 파운드의 '초인 병사' 라인하르트가 발산하는 숨길 수 없는 위압감은 하나와 동행하던 병사가 홀로 받아내야 했다. 그는 거의 혼절할 것 같았지만 라인하르트는 이 가엾은 병사에게 아무런 유감도 느끼지 못했다.

하나가 눈을 빛내며 말했다.

"할아버지! 오른팔! 앞으로 나란히!"

"? 앞으로 나란히?"

"아이참. 팔을 앞으로 뻗어 보시라구요!"

라인하르트가 영문을 모른 채 팔을 앞으로 뻗었다.
 
그러자 송하나가 점프. 라인하르트가 뻗은 통나무같은 팔을 붙잡고 대롱대롱 매달렸다.

"우와! 대박! 이거봐 상철아 이것봐!!!"

최상철 일병은 존경하는 송하사가 타국의 전쟁 영웅에게 저지르고 있는 이 거대한 무례함에 정신이 거의 나가버릴 것 같았다. 라인하르트의 얼굴은 이미 불로 달군 베이클라이트 합금강처럼 시뻘겋게 타오르고 있었다. 기사도로 중무장한 그가 설마 손녀 뻘 밖에 되어 보이지 않는 송하나 하사에게 무력을 쓸 것 같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결론을 하나 뿐이다. 최일병에게 자신이 지옥행 급행열차를 탑승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 씨발 팔뚝 완전 코끼리 앞다리 같아! 할아버지 나랑 결혼해요!"

그리고 라인하르트의 폭발했다.

"타하하하하하하!"

라인하르트가 호쾌하게 웃으며 팔을 휭휭 좌우로 흔들었다. 사이즈가 두배 정도 차이가 있었지만, 그 모습은 영락없이 어린 손녀와 놀아주는 할아버지였다. 하지만 겁을 잔뜩 집어먹은 최일병의 눈에는 라인하르트가 하나를 거의 내동댕이 치는 것처럼 보였다.

"꺄하하하하하하!"

송하나 하사도 흥겨운 홍소를 내질렀다. 최상철 일병은 이제 탈영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

"박사님 저 왔어요!"

오버워치가 부산 중장갑 보병대의 일각에 체류하기 시작한지 3일째. 이미 하나는 오버워치 임시본부를 제 집 드나들 듯이 했다. 특히 그녀는 하루에도 몇 번 씩 의무실에 방문했다. 그리고 의무실 책임자인 앙겔라는 오늘에야말로 하나에게 제대로 주의를 주겠다고 마음 먹었다.

"하나양. 여기 놀러 오면 안된다고 몇 번을 말해야 알아 들어요?"

"사랑을 담아서, 디바!"

"말을 좀 듣는 척이라도 해봐요."

앙겔라는 눈을 치켜 떴다. 하지만 하나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앙겔라는 레나가 왜 하나를 마음에 들어하는지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하나는 그녀를 꼭 닮았다.

"후흥. 그래도 오늘은 놀러 온 게 아니랍니다!"

그렇게 말하며 하나는 상의를 접어 올렸다.

"제대로 다쳐서 치료받으러 온거니까요!"

왼쪽 옆구리가 완전히 쓸려 피투성이가 되어 있었다. 앙겔라가 숨을 들이켰다. 이 아이는 대체 뭘 자랑하고 있는 거람.

"하나양! 그걸 왜 지금 보여주는 거예요!"

"헤헤. 별거 아녜요. 팀원들과 훈련하다가 조금 실수했어요. 낙법하는 걸 잊어서."

앙겔라는 약간 놀랐지만 사실 대단한 상처인 것 같지는 않았다. 그녀는 한 숨을 내쉬고 주섬주섬 약병을 꺼내 들었다. 앙겔라 특허품, 무통 소독약. 리터당 십만 달러나 하는 약품이다. 그것을 아낌없이 환부에 펴바르고 말라붙은 혈액을 조심스럽게 거즈로 닦아낸다. 마지막으로 씻겨 나가지 않은 모래를 극세 핀셋으로 하나하나 집어내고 습포를 넉넉하게 잘라 상처를 감싸듯 붙여 응급 처치를 종료. 하나는 완전히 홀려버린 것 같은 눈망울로 앙겔라를 바라봤다.

"우와- 뭐죠 이거? 하나도 안아프고. 손 재주 완전 섬세하고. 박사님은 너무 이쁘고."

하나의 장난스러운 어투에 앙겔라의 얼굴이 조금 험해졌다.

"이런 상처를 입을 정도로 훈련하는 것은 말도 안돼요. 그게 다 미숙하다는 증거죠. 다음에 다쳐서 돌아오면 무통 소독약 같은 건 어림도 없어요. 에틸 알콜로 상처를 절여보면 다음 번엔 절대로 다치고 싶지 않아질 테니까, 한 번 만 더 다쳐서 돌아오세요. 알았어요?"

앙겔라의 엄한 질책에 되려 하나는 PX 특산 냉동 닭강정을 배가 터질 때까지 흡입한 것처럼 만족스런 얼굴을 해 보였다. 앙겔라의 위협은 하나에게는 전혀 통하지 않는 것 같았다. 애초에 평소의 악마적인 독기가 전혀 나오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앙겔라는 스스로 인지하고 있었다.

하나는 앙겔라의 으름장에 위축되는 대신 만면에 웃음을 짓고 상체를 앙겔라 쪽으로 기울였다.

"박사님은 제가 걱정돼요? 막 밤에 잠도 안오고 그래요?

여기까지다. 앙겔라는 오늘 더이상 심각한 얼굴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하나와 함께 있으면 그녀의 악마적 본성은 고개를 들지 못하는 것 같았다.

앙겔라는 그녀의 말에 굳이 대답하지 않고, 장난스럽게 질문을 되돌려 준다.

"라인하르트씨에게 청혼했다면서요? 기사도를 조각해 만든 것 같은 딱딱한 분인데, 괜찮겠어요?"

하나가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배시시 웃으며 손사레쳤다.

"에헤이. 아녜요. 할아버지와는 그냥 즐기는 사이예요. 제 진짜는 박사님이죠."

하나가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앙겔라의 코 앞까지 얼굴을 들이밀었다. 그런 그녀가 앙겔라는 전혀 부담스럽지 않았다. 오히려 그 당돌한 말에 입가에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이 아이의 정체는 대체 뭘까. 오늘 아침 하나의 이야기가 나오자 라인하르트의 얼굴이 멍청하게 풀어졌던 것도 이해가 간다.

앙겔라가 하나에게 받아칠 말을 고르는 사이에 의무실에 손님이 한 명 더 찾아왔다. 아니, 실은 언제부터 있었는지 전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마치 이 공간에 갑자기 생겨난 것 같았다. 이런 기척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각 종 기인이 서식하고 있는 오버워치 내에서도 한 명 밖에 없다.

"너무해! 자기, 나도 그냥 엔조이였어?"

아마도 오버워치에서 하나와 가장 먼저 접촉한 에이젼트. 레나 옥스턴, 더 트레이서. 도대체 어떤 방법을 쓴 건지, 그녀는 방금 대화를 전부 듣고 있었던 것 같다.

하나가 약간 뜨끔한 표정으로 뒤를 돌아봤다. 그리고 레나 옥스턴이 미소로 미묘한 표정을 숨기고 있는 것을 발견한다.

"짜잔! 해결사가 왔어요!"

레나는 하나가 채 반응하기도 전에 다가와 그대로 하나를 등뒤에서 껴안는다 싶더니, 그녀의 팔이 뱀같은 움직임으로 슬리핑 초크를 시전, 하나의 목을 사정없이 조여들어왔다.

거의 숨이 넘어가는 것 같아 하나가 항복의 표시로 정신없이 레나의 팔에 탁탁 건드렸으나 레나는 요지부동. 하나의 귓가에 조용히 속삭였다.

"얼레에? 내가 느껴지긴 하는 거야, 자기? 어떻게 3일이 지나도록 한 번을 안 찾아와? 순진한 어른이들한테 추파나 날리고. 자기 그래도 되는거야? 그렇게 안 봤는데 엄청 문란하네?"

레나는 솔직한 사람이다. 그녀는 하나가 자신을 뒷전으로 밀어뒀던 것이 진심으로 분한 것 같았다. 그러나 하나는 레나의 말에 미안한 마음을 품는 대신 손가락으로 트레이서의 옆구리를 공략했다. 트레이서의 품 안에서 겨우 빠져 나온 하나는 켁켁 거리면서도 여유를 잃지 않았다. 그녀가 레나로부터 자연스럽게 거리를 벌리면서 말했다.

"레나 언니는 이미 어장 관리중이니까요."

"그런 말 하는 순간 이미 관리의 의미가 없는 거 아냐?"

그리고 곧 사냥하는 트레이서와 도망치는 토끼에 의해 의무실은 난장판이 되었다. 물론 하나가 맨몸으로 레나에게서 완전히 도망치는 것은 불가능했다. 앙겔라는 그들이 뒤엉켜 쓰러지는 것 까지만 확인하고, 의무실을 나섰다. 나올 때 방을 정리해두라는 말을 남겨두는 것은 잊지 않았다.

.

잭 모리슨은 이 7일 동안 송하나 하사가 이끄는 MEKA 소대의 일상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들의 일과는 훈련용 메카의 정비로 시작해서 전투 훈련으로 끝났다. 잭은 군의 허가를 받고 택틱컬 바이저의 어플리케이션을 통해 모든 내용을 영상화하고, 이를 실시간으로 분석하고 있었다. 지금 훈련은 1대 다수 상황의 전투였고, 송하나 하사가 시범을 보이고 있었다.

그의 등 뒤로 인기척이 있었다.

"강습 사령관."

"부 사령관."

"또 그 아이의 전투 훈련을 보고 있어?"

"그래. 넌 처음이겠군."

"저 누더기 같은 기계로 훈련하는 건가. 마음이 짠해질 정도네."

"예산 문제로 정규 기체는 훈련 때 사용 허가가 나오지 않는 것 같더군. 오후에 전투 훈련에 대비하여 훈련기를 정비하는 것에 오전 일과를 전부 할애하고 있어."

잭은 아나의 얼굴을 돌아보지도 않고 설명을 이어갔다.

"이 비효율적인 일과를 송하나 하사의 자발적인 지시 하에 묵묵히 수행하고 있어. 성실하고 좋은 병사들이야. 명령체계도 확고하고. 송하나 하사에 대한 평가를 상향 수정해야 할지도 모르겠군."

잭은 하나를 오버워치에 넣는 것을 여전히 탐탁치 않게 여기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성실하게 송하나 하사를 평가한다. 이 고지식한 면 만큼은 지금도 변하지 않았다.

아나도 강습 사령관의 지시에 따라 자신이 수집한 정보를 공유했다.

"MEKA 부대의 전투 훈련 내용은 하나부터 열까지 송하나 하사의 작품이라더라군. 공격, 수비 패턴이나 경호 및 소대 이동, 거점 확보 및 저지 등, 전부. 기체의 특성을 제대로 살린 프로그램으로 명성이 자자해. 이제는 부산 뿐만 아니라 전국의 부대가 송하나 하사의 방식을 피드백 받아 차용하고 있는 것 같아."

"..."

"열의가 있어. 승부욕도 있고. 그냥 철없는 아이는 아닌 것 같아."

"라인하르트는 둘 째 날에 이미 함락됐고. 그 까칠한 치글러 박사도 이젠 완전히 마음을 열었다더군. 레나는 아예 그 아이와 붙어다니는 것 같고."

잭이 바이저와 마스크 너머로 한숨을 쉬는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았다.

녀석은 토끼다.

하지만 보통 토끼가 아니다.

"다음은 당신 차례겠군. 아나."

"다음은 당신 차례야. 난 이미 만나봤으니까."

잭이 그제서야 아나를 돌아봤다.

"라인하르트에게처럼 어리광 부리며 다가오면 머리 위에 호두라도 올려 놓고 저격 훈련을 하려고 했는데 말이지. 나한텐 그 방법이 안 통한다는 걸 이미 알고 있더라고. 영민한 아이야."

계산해서 한 일이 아니다. 잭은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하나는 감이 좋은 아이니까.

"어디서 알았는지 오버워치식 경례를 올려 붙이더라. 기특하기도 하지. 그래서 반대로 내가 저격 훈련을 시켜줬어."

아나 아마리의 개인 저격 교습이라니. 오버워치 대원들이라면 목에서 손이 나올 정도로 원하는 일일텐데. 잭은 쓴웃음을 지었다.

잭 모리슨은 다시 고개를 돌려 훈련장을 내려다 봤다. 메카에서 내린 하나가 자신의 메카를 미끼로 상대편의 뒤를 기습. 혼란에 빠진 상대의 정면에서는 원격 조종 상태의 메카가 풀 오토로 사격. 상대의 기체를 온통 페인트 투성이로 만들었다. 관전하던 스쿼드로부터 환성이 터져나온다.

"저격 훈련 결과 궁금하지 않아?"

"그런 건 훈련하는 것만 봐도 알아. 당신은 결코 저 아이에게 저격총을 들게 하지 않을테지. 괴물이 될테니까."

잭이 계속해서 냉정하게 송하나 하사의 전력을 분석했다.

"저 유연한 사고 방식과 전투 능력은 이미 트레이서와도 비견될 수 있을 것 같군. 한국 정부는 저 아이덕에 목숨을 건진 거나 마찬가지야. 저 머저리들이 자각하지 못하는 게 참 한심하군."

"너무 날세우지마. 그 놈들이 바보인 탓에 우리가 저 아이를 모실 수 있게 된 것도 있잖아. 흥. 그 좆만도 못한 주임원사놈. MEKA 부대가 궤도에 올랐으니, 까다로운 여성 하사 따위는 필요없어졌다고 지껄이더군. 누구 덕분인지도 모르고. 확 고자로 만들어 주려다 참았어. 어짜피 뱃살에 파묻혀 잘 보이지도 않을테니까."

잭은 아나의 말을 듣고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저 역전의 병사를 하루 아침에 함락시키다니. 육식 동물이 따로 없다. 하필이면 육식 토끼라니. 의외로 잘 어울리는 것도 같다.

하지만 잭은 침착하게 마음을 다잡았다.

"아직 아냐. 나는 아직 저 아이를 오버워치에 들이겠다고 결정하지 않았어."

"그래. 그래서 레나 말대로 바이저와 마스크를 계속 쓰고 다니시겠지."

아나가 쿡쿡 거리며 웃자 잭이 이빨을 딱 부딛혔다. 말이 궁할 때 무심코 나오는 그의 버릇이다.

잭이 껄끄러운 화제를 억지로 돌려세웠다.

"적 옴닉 부대의 습격 예상 시기는 산출됐나."

"한국군이 제공한 자료를 분석하자면, 아무리 빨라도 15일 뒤야. 정부 놈들 그렇게 숨이 넘어가더니."

한국 정부는 단단히 아나 아마리의 눈 밖에 난 모양이다. 그들은 오버워치 대원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감을 잃어버린 것 같다. 이제와서는 아무래도 좋은 이야기겠지만.

이번 옴닉의 발생 규모는 생각보다 클 것이라는 것 같다. 전투가 보름 후라고 하니 쓸데없는 대기 시간이 생길 것 같지만, 최소한 늦지 않은 것은 다행이다.

잭은 계속 전투 훈련을 참관했다. 그는 대규모 전투가 벌어지기 전에 다음 번에는 오버워치와 합동 훈련이라도 구상해 봐야겠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그는 저 육식 토끼에게 자신도 이미 절반 쯤 넘어갔다는 사실을 눈치채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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