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nameless7777 2016. 8. 4. 20:52
옴닉 사태.

기계들이 학습을 거듭해 자아를 각성, 인류를 상대로 선전포고한 그 전대미문의 사건은 전세계를 전쟁으로 몰아 넣었다. 이후 인간과 옴닉 사이에 화평 조약이 체결되었다는 사건 자체가 기적적인 일이라고 평가받았을 정도로, 전쟁은 길고 참혹했다. 전쟁은 언제나 똑같다. 근본적으로 형용이 불가능한 일이다.

그 미증유의 재난으로부터 30년. 세계 각국은 아직도 그 여파로부터 자유롭지 않았다. 한국은 그 대표적인 나라였고, 그 중에서도 부산은 특히 최전선에 해당했다.

인간과 옴닉 사이에 표면상으로나마 화평이 성립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정말 믿을 수 없는 일이지만, 부산에서는 옴닉의 크고 작은 공격이 끊이질 않았다. 놈들은 수가 많았고, 무모하고 집요했다. 심지어 특유의 성장형 인공지능을 통해 패배로부터 교훈을 얻고 성장하기까지 했다.

옴닉 정부의 주장에 따르면 이 옴닉들은 엄밀하게 말해 옴닉이 아니며, 30년전의 옴닉 사태 중 만들어진 자율 사고형 병기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피해자의 입장에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이야기다. 그 말의 사실 여부는 전혀 의미가 없었다. 한국의 시민들에게 그들은 여전히 옴닉일 뿐이다. 그리고 이들의 존재는 인간과 옴닉 사이에 완전한 화평 따위는 있을 수 없다는 어떤 상징처럼 보였다.

결국 한국이 당면하고 있는 현실적인 문제는 이 옴닉제 병기들의 생산 플랜트가 아직 죽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중 가장 거대한 플랜트가 부산 해운대 앞 어딘가에 있으며, 그 위치를 특정짓기 어렵다는 것. 그리고 여기서 생산된 병기들은 이미 옴닉의 통제를 벗어났으며, 미리 프로그램된 지령에 의해 끊임없이 부산을 습격하고, 사상자를 내고 있다는 것.

한국 정부는 물론 최선의 노력을 경주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불가해한 상황을 타개하지 못한 채 20년이나 휘둘리고 있는 중이었다. 가장 큰 문제는 더이상 정공법으로는 점점 진화해 나가는 옴닉을 막을 수 없게 되었다는 점이다. 그래서 정부는 항상 극적인 타결책을 도모할 수 밖에 없게 되었다. 그리고 정부가 제안하는 방식은 대개 기상천외한 자충수로 끝나곤 했던 것이 그 두 번째 문제였다. 정부가 나서 국가 레벨로 헛물을 켤 때 마다 막대한 세금이 낭비되었고, 한국군은 물론이고 UN 연합군의 소중한 병력이 희생당했다. 한국에 대한 UN의 신뢰평가는 최저 수준을 갱신했고, 국내 여론은 늘 들끓기만 했다.

그리고 그 한국 정부가 최근 마지막으로 시행한 극약처방은 문자 그대로 절찬리에 전세계로 상영되고 있었다.

"극약처방은 염병. 병크지 그게."

풍선껌을 씹으며 험한 군대 용어를 인터넷 용어와 접목시키는 그녀는 바로 그 병크의 중심지에 있었다. 이른바 태풍의 핵. 그 태풍 속에서 그녀는 홀로 완전히 태평하게 지내고 있었다.

송하나 하사. 20세.

그녀는 군 정책에 따라 거의 반강제로 입대한 프로 게이머였다.

그랬다.

한국 정부는 군용 중장갑 기동 부대에 사용되는 주력 고기동 병기의 조종사로 프로 게이머들을 기용했다. 한국 정부는 프로 게이머들의 뛰어난 반사 신경과 판단력이라면 능히 최첨단 병기를 수족과 같이 다뤄 옴닉의 파멸적인 잔병들과 겨룰 수 있을 거라 여긴 것이다.

나라가 미쳐 돌아가고 있었다.

.

날렵하고 매끈한 유선형의 비행 물체가 태평양 상공을 날고 있었다. 거대한 동체에 비하면 놀라울 만큼 낮은 고도에서 고속으로 이동하고 있는 이것은 오버워치 전용 전략 비행 요새로, 명칭을 나이트 워치라고 한다. 나이트 워치는 낮은 고도로 날면서 제트 기류를 타지 않고도 시간 당 3천 킬로미터 이상을 비행할 수 있다. 최첨단 스텔스 도료를 도포하여 군용 레이더에도 잡히지 않는 이 기체는 그야말로 신출귀몰. 오버워치가 전세계를 무대로 전장을 선택할 수 있게 해주는 원동력이었다.

나이트워치 한켠에 마련된 브리핑룸에서는 20년만에 다시 발족한 신생 오버워치의 일일 회의가 열리고 있었다. 국제법에 따라 UN의 재가를 얻지 못했기에 그 영향력은 영광스럽던 과거에는 아직 미치지 못했으나, 그 누구도 오버워치의 힘을 업신여길 수는 없었다. 최근 몇 건의 군사 작전을 통해 신생 오버워치는 그 힘을 스스로 증명해냈던 것이다.

이들의 다음 행선지는 한국이었다. 오버워치는 한국의 옴닉 사태를 중대하게 생각하고 한국 정부에 공투 의사를 타진했다. 그리고 UN의 지원도 거의 끊긴 상황에서 한국 정부가 취할 수 있는 선택지는 거의 없었다. 결국 협상은 타결. 한국 정부는 오버워치에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했다. 그들이 공약대로 옴닉의 전멸시켰을 때에 대한 대가도 정부는 흔쾌히 받아들였다.

화면에 표기되고 있는 자료 영상과 오버워치 요원들이 손에 들고 있는 리포트는 그 전폭적인 지원 중 하나였다.

그리고 이 자료들이야말로 이들의 두통을 유발하는 원흉이었다.

"프로 게이머? 하. 그런 병신같은 이야기가 사실이었다니."

오버워치 강습 사령관 잭 모리슨이 어처구니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목소리에 깊게 베어 있는 숨길 수 없는 피로감은 비단 60에 가까운 그의 나이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군대 경험도 없는 젊은이들을 고작 훈련 3개월 만에 실전에 투입했단 말인가. 도저히 믿을 수가 없군."

라인하르트 빌헬름의 목소리에는 불쾌함을 넘어 은근한 분노까지 서려 있었다. 그 역시 잭을 따라서 노쇠한 육체를 이끌고 최근 오버워치에 복귀한 참이었다. 라인하르트가 오버워치에 돌아온 이유는 그가 가진 약점을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지금 분개를 참지 못하는 이유와 같다. 그는 정의로웠다.

"빌헬름. 혈압 올라가요. 참아요."

주의를 주는 목소리의 주인은 앙겔라 치글러. 코드명은 메르시. 오버워치의 주치의이자 전장에 함께 서는 의무총괄담당자. 오버워치의 천사적 악마라 불리우는 그녀는 부상자를 다루는 데 있어서 피아식별을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자애롭고, 다쳐서 돌아온 환자를 협박한다는 점에서 자비가 없었다. 어쨌든 그녀의 손을 거치면 어지간한 부상은 대개 흔적도 남기지 않고 완치된다.

"그래도 귀엽게 생긴 아이네요. 표정도 좋고. 트라우마는 없어 보여요. 최전선에서 1년이나 살아 남았는데, 정말 기적같은 일이군요."

치글러의 말에 잭이 다시 자료화면을 주시했다. 옴닉을 상대하는 송하나 하사의 전투 영상이 이어지고 있었다. 이 영상은 딱히 군사 기밀은 아니었다. 그녀가 자신의 전투를 실시간으로 스트리밍해서 전세계에 중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정신력과 배포 만큼은 한 사람 몫을 하는 병사 수준이라고 인정해 줄 수 있지 않을까. 어째서 한국 정부가 이런 기행을 눈감아주는지 이해할 수는 없지만.

잭이 한숨을 쉬며 옆을 돌아봤다. 그 방향에는 움찔, 하고 몸을 떠는 자그마한 그림자가 있었다.

"레나. 슬슬 설명해봐. 왜 우리가 저 아이를 오버워치에서 스카웃해야 하는지 말이야."

그렇다.

부산의 옴닉 퇴치 지원은 송하나 하사를 오버워치에 영입하기 위한 통과점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이 프로젝트는 레나 옥스턴, 코드명 트레이서에 의해 입안된 것이다.

레나가 과장스럽게 웃으며 양손으로 브이자를 만들어 보였다.

"얏호- 해결사가 왔어요-"

그리고 잭의 상처가 흉측하게 일그러졌다.

"무슨 짓이야."

"...예전엔 잘 받아주셨는데. 대장님 역시 변했어요."

잭이 이빨을 딱 부딛혔다. 그 모습을 보며 레나가 오히려 활짝 웃었다. 20년전의 사건 이후로 훈훈한 외모와 쾌활한 성격을 모두 잃어버린 잭을 예전과 완전히 똑같이 대하는 전우는 레나 밖에 없었다. 그녀가 시간의 바깥에 존재하기 때문일까. 잭은 그런 그녀를 거북해 하면서도 밀어내지는 않았다. 아니, 밀어내지 못했다. 레나 옥스턴은 그런 점에 있어서도 해결사였다.

레나는 분위기를 바꾸고 잭의 질문에 대답했다.

"하나는 용기있는 아이에요. 나는 그 아이처럼 강한 사람은 오래간만에 봤어요."

"설명이 되지 않아, 트레이서. 이전 임무에서 스쳐 지나간 것은 알고 있지만, 넌 상세 사항은 무엇하나 이야기해 주지 않았지. 그래서는 승인할 수 없어."

트레이서는 여유를 잃지 않고 답했다.

"어차피 같은 전장에 서게 되면 확인하게 될 거에요. 그 때 직접 판단하시는 건 어때요?"

잭이 팔짱을 꼈다.

"굉장한 자신감이군. 하지만 늙은 개가 예언하나 하지. 내가 저 아이를 오버워치에 넣는 일은 없을 거다. 이번 원정은 부산의 옴닉 사태를 평정하는 것만으로 충분해."

강습 사령관의 선언이 너무 고압적이었을까. 트레이서는 미간을 좁혀 심각한 표정을 만들어 보였다.

"대장님."

이젠 대장이 아니라 강습 사령관이다. 하지만 잭은 굳이 정정하지 않았다.

그녀가 짐짓 표정을 굳히고 자세를 바르게 했다. 그 다음 뜬금 없이 이어진 말은 잭을 격침시켰다.

"무게 잡고 이야기를 하실 땐 말예요, 다음부턴 꼭 바이저랑 마스크를 쓰세요. 꼭이에요."

"뭐야?"

그리고 그녀는 자지러지게 웃었다. 폭우가 둑을 무너뜨린 것 같은 기세였다.

조금 불쾌해진 잭이 눈을 부라렸을 때 이미 트레이서는 그 곳에 없었다. 시간 가속기를 사용해 이 장소를 벗어난 것이다. 이럴 때의 그녀는 그 누구도 포착할 수 없다.

젊잖은 라인하르트는 괜히 헛기침하며 모르는 척 했지만 이곳에는 강습 사령관을 비웃을 수 있을 만큼 엄청난 전쟁 영웅이 한 명 더 있었다.

"하하하하하! 맞아. 잭은 생긴 게 강아지 새끼마냥 순해서. 맨 얼굴로는 영 박력이 없단 말야."

오버워치 부사령관, 아나 아마리였다. 그녀 역시 라인하르트와 마찬가지로 60세를 넘었으며, 평생을 전장에서 보냈고, 셀 수 없는 강적들을 상대해온 진짜배기 병사였다.

아나의 웃음에 라인하르트의 숨통도 트였다. 이내 걸걸한 폭소가 터져 나왔다. 아까부터 입가는 계속 실룩거리고 있었다. 오랜 친구의 체면을 봐서 참고 있었던 것이겠지.

"크하! 위대하신 강습 사령관님! 또 당했구만! 타하하하하하!"

잭 모리슨은 머쓱한 표정이 되었다. 그들 사이에 있으면 그는 마치 20년 전으로 되돌아 간 것 같았다. 그렇게 세상을 부정하며 온갖 음험한 생각에 사로잡혀 있던 노병은 불편하게나마 미소를 지을 수 있게 되었다. 모두들 정말이지 전혀 변하지 않았다. 변한 것은 나 뿐인가. 오버워치의 강습 사령관은 약간 쓸쓸한 기분이 되었다.

"하지만 그 말은 진짜야. ...난 저 아이를 차마 오버워치에 넣을 자신이 없어."

잭이 솔직하게 고백했다.

"실제로 봐야 겠지만 실력은 나쁘지 않아. 그리고 오버워치는 만성 인원부족이지. 인재는 아무리 많아도 모자라."

아나와 라인하르트도 진중한 얼굴이 되었다.

"지금은 폭주하고 있는 옴닉 뿐이겠지. 저 아이는 실시간으로 전투 장면을 송출할 정도니까, 그저 게임 감각으로 옴닉을 사냥하고 있을 뿐일 거야. 하지만 우리와 함께 하게 된다면 저 아이는 분명히 사람도 쏘게 될테지. 전쟁의 진실을 알게 되는 거야. 그걸 생각만 해도 구역질이 올라올 것 같군."

실은 모두 알고 있다. 잭 모리슨이 실제로 두려워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쯤은. 전성기 시대의 그를 알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알 것이다.

하지만 부정적인 생각은 늘 안 좋은 쪽으로만 나아가기 마련이다. 그리고 잭은 너무 오랫동안 그런 생각에 사로 잡혀 살아왔다. 아나가 잭의 생각을 정지시켰다.

"그래, 강습 사령관님. 당신이 말한 대로야. 우리 임무는 옴닉의 생산 플랜트를 파괴하는 거야. 다른 건 일단 잊어 버리자구."

라인하르트도 조심스럽게 말을 골랐다.

"어차피 선택은 그 아이가 하는 거야. 게다가 우린 그 아이를 아직 만나보지도 못했지. 레나 말대로 판단은 그 때 가서 해도 늦지 않네. 무엇보다."

라인하르트가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나는 트레이서를, 레나 옥스턴을 믿어. 허튼 소리를 할 친구는 아니야."

잭은 아무 말도 돌려보내지 않았다. 동료들도 그의 대답을 재촉하지는 않았다. 그대로 일일 브리핑은 해산. 모두 각자 위치로 이동했다. 잭은 혼자 브리핑룸에 남았다.

그는 의자를 뒤로 늘여뜨려 천장을 올려다 봤다. 한국에 도착할 때 까지는 조금 시간이 남아 있다. 잭은 잠깐 눈을 붙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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