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nameless7777 2018. 4. 4. 18:45
"슬슬 프롬프토 녀석이 돌아올 때가 되지 않았나."

"듣자니 지금 햄머해드에 머물고 있는 것 같더군."

"녀석, 시드니에게 가능성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벌써 12년째야. 주위에서 맴돌고 있는게."

"글쎄. 서로 마음은 있는 것 같다만."

"뭐? 서로? 프롬프토가 일방적으로 좋아하는 게 아니었어?"

"글라디오. 눈에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야."

"크하하하. 이거 한 방 먹었구만."

"...하하."

"그보다 슬슬 이야기가 나올 때인가."

"그래. 앞으로 2개월 이내에 마지막 토벌이 있을 거야. 남아있는 시해들도 이번이 끝이다. 자세한 것은 프롬프토의 이야기를 다시 들어봐야 알겠지만."

"길었군."

"그래."

"드디어 그 녀석에게... 면목을 세울 수 있겠어."

"2년이나 걸렸으니까. 슬슬 좀이 쑤셔서 꿈에 나타나지 않을까."

"가능성은 있어. 이번엔 왕도에 전부 모일테니. 뭣하면 왕좌 앞에서 기도라도 해볼까."

"인정할 수 밖에 없군. 매력적인 이야기야."

.

프롬프토는 고열을 동반한 두통에 시달리고 있었다.

슬슬 익숙해질 법도 한데, 신탁과 함께 찾아오는 고열은 늘 새롭고 고통스럽다. 이제 곧 뇌를 부수기라도 할 것 처럼 기승을 부리곤 한다. 하지만 신탁은 이미 받았다. 이제 고통이 잦아져야 할 타이밍일텐데.

아니, 그게 아니라면.

슬슬 타임 리미트인지도 모른다.

원형 중 하나라고는 하지만 근본은 클론. 이제 세포 분열에 한계가 왔다 해도 이상하지 않다.

가령, 지금 당장이라도.

그것을 뒷받침하는 것처럼, 프롬프토의 뇌리에 어떤 목소리가 떠올랐다.

지금은 사라졌어야 할, 들릴 이유가 없는 환청.

유쾌한 듯 음험하며 꺼림직하기 이루 말할 수 없는, 검은 찌꺼기 같은, 불길한, 실은 목소리조차 아닌, 현실에 존재하는 병원체에 불과하면서도 신조차 타락시킬 수 있는.

그저 끔찍한 어떤 것.

- 아, 프롬프토. 가엾은 프롬프토.

시해의 숙주.

- 자신에 대해서 어디까지 알고 있어?

그 놈이다.

- 바스티엘에게 실험체를 하나 내놓으라 했었지. 상황을 봐서 왕자님 척추라도 부러뜨리라고 지령을 내릴까 했었는데.

꺼져. 내 머릿속에서 나가.

- 정에 이끌려 절친이 되어버릴 줄이야. 우와, 놀랐어. 아저씨 정말 놀라버렸지 뭐야.

당장 나가!

- 그래서야 명령을 들어줄 리 없잖아. 결국 말야, 허리 아래가 거대한 뱀으로 된 무서운 시해를 즉석에서 만들어서 말야. 아, 끔찍했지 그건. 왕자를 앉은 뱅이로 만들 때 유모를 죽이고 말았지 뭐야. 어쩔 수 없었어. 힘조절이 잘 안됐거든.

그만 둬!

- 찌꺼기 주제에, 너 때문에 애꿎은 사람 하나 죽었잖아? 미안하지? 응? 그래, 사람이 미안해 할 줄도 알아야지. 아차, 실례. 사람이 아니었지.

아딘!

아딘 이즈니아!

프롬프토는 분노 속에서 몸부림쳤다. 마치 코스탈 타워 심층부에서 자바워크의 앞발에 짓눌렸을 때 처럼 손가락 하나 까닥일 수 없다. 하지만 그 때에는 친구들이 있었다. 지금과는 달리.

뭐야?

이거 대체 뭐야?

정신 차려!

아딘은 죽었어!

2년전에!

녹트와 함께!

- 불쌍하게도. 우리 찌꺼기군이 어차피 살아봐야... 응? 앞으로 10년이나 버티겠어? 그러고보니 왜 여기에 있는 거야. 그 누구더라, 그 여자, 이름이. 그래, 아무튼 죽기 전에 그 여자 옆에라도 있어야 하는 거 아냐? 내가... 대려와 줄까?

으아아아아아아!

- 어이쿠 이거. 아저씨 놀랐잖아. 무심코 찔러 버렸는 걸. 이거 어쩌나. 상처, 괜찮겠어?

겨우 생각났다.

이것은 7년 전의 기억이다.

프롬프토가 고대 인섬니아 유적을 찾아 에오스를 이잡듯 여행하던 시절. 고문서를 수집하고, 왕가의 기적에 대해 조사하고, 크리스탈의 권능에 대해 연구했다.

녹트를 살릴 수 있는 방법 따윈 없다.

그의 죽음은 확정되어 있다.

그리 결론에 도달했을 때, 울음을 터뜨리기 직전에, 그가 나타났다.

마치 이 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매력적인 미소를 머금고.

생각해보면 이상했다. 고고학자도 뭣도 아닌 프롬프토가 왕가의 흔적을 차례차례 찾아냈던 것이다.

마치 이끌리는 것 처럼.

어렴풋이 느끼고는 있었다. 다만 프롬프토는 그것이 친구의 인도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프롬프토 답다면 프롬프토 다운 생각이다.

어리석었다.

피를 토하며 프롬프토가 무릎을 꿇었다.

- 안돼지 안돼. 아저씨, 약속해 버렸단 말이지. 지금 죽으면 안돼.

건드리지마!

날 건드리지마!

- 하하. 괜찮아. 그냥 조금 돌연변이로 만드는 것 뿐이야. 회복력이 좋아지고, 늙지 않게 돼. 이런. 아저씨 누구에게 선물을 주는 거 5년 만이야.

안돼!

- 괜찮다니까. 아프지 않아. 너희들은 내가. 흠, 그렇지.

아딘이 비릿하게 미소지었다.

- 내가 우선 진정한 왕이 된 그 놈의 팔 다리를 떼어 낼거야. 그러고 나서 내장을 파헤치고, 겨우 숨만 붙여 놓은 다음에.

아딘의 눈에서, 입에서, 온갖 구멍에서 검은 피가 흘러 내렸다.

- 그 다음에 그 놈 눈 앞에서 너희들을 한데 뭉쳐 시해로 만들거야. 어때. 기대되지?

프롬프토.

어이, 프롬프토!

- 쉬이이. 좀 자고 나면 개운할 거야. 그래, 새로 태어난 것처럼.

프롬!

.

"프롬!"

프롬프토의 눈이 번쩍 떠졌다. 참았던 숨이 터져 나온다.

"커흐."

"프롬."

청량감이 서려있어야 할 목소리가 착 가라앉아 있다. 또 걱정하게 만들고 말았다. 프롬프토는 따스한 온기가 전해지는 손을 맞잡았다. 놈은 사라졌다. 나는 지금 현실로 돌아왔다. 거짓말처럼 두통이 가시는 것이 느껴진다.

"신디."

침침한 눈에 초점이 돌아오자 시야 가득하게 시드니의 얼굴이 들어왔다. 걱정스러운 시선이 부담스러우면서도 가슴이 간질간질하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긴장한 프롬프토는 손에서부터 그 영향이 나타난다. 프롬프토가 시드니와 맞잡은 손에 힘을 뺐다. 하지만 이를 보충하려는 것처럼 시드니의 손에 힘이 실렸다.

마치 프롬프토의 손을 놓지 않으려는 것 같았다.

"신디. 손에, 땀이..."

"바보. 왜 그런 걸 신경쓰는 거야."

"하하..."

"괜찮은 거야?"

"응. 신디가 손을 잡아줘서. 아픈 거 다 날아갔어."

"또 그런 식으로. 장난치지 말고."

"아닌데. 진짠데."

"그만. 슬슬 화가 나려고 하거든."

시드니가 프롬프토의 머리칼을 잡아 살짝 잡아 당겼다.

"아야."

"봐. 너 머리칼이."

"응?"

시드니의 손바닥에 올려져 있는 프롬프토의 머리칼은 새하얗게 탈색되어 있었다.

프롬프토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넌 잘 모르겠지만 자주 이래. 며칠 지나면 돌아와. 안심해."

프롬프토는 내심 놀랐지만 평정을 가장할 수 있었다. 몇 년이나 신탁을 받아와서 관록이 붙은 것일까.

그리고 신디는 프롬프토가 받은 신탁을 통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생명을 이어갈 수 있었는지 알고 있다. 그 기적을 몇 번이나 목도한 그녀는 프롬프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도 놀라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그래서일 것이다.

그녀는 프롬프토의 거짓말을 눈치채지 못했다.

하지만 그녀는 프롬프토를 잡고 있는 손에 힘을 풀지는 않았다. 다만 프롬프토는 그 사실이 그저 기쁘고 또 애달팠다.

그리고 프롬프토는 자신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직감했다.

"신디."

"응?"

"이제... 가봐야겠어."

"왜? 이렇게 갑자기?"

"예감이 좋지 않아. 빨리 친구들에게 알려줘야 해."

"어제까지는 괜찮았다가, 지금 안된다는 거야?"

"응."

"왜 그러는지, 말해줄 수는 없고?"

"...응."

"..."

"..."

"넌."

"..."

"넌 항상 그런 식이야."

"신디."

"중요한 건 무엇하나 말해주지 않아."

"...신디."

"휴우."

"저기... 미안해. 하지만..."

"언젠간 말해 줄거야?"

"...그건."

"됐어. 내가 바랄 걸 바래야지. 안그래?"

"미안. 미안해."

"언제."

"응?"

"언제 돌아올거야? 어차피 이번이 마지막이라며."

"...아, 맞아. 그래. 이번이 마지막이니까."

프롬프토가 시드니의 말을 되뇌였다. 마지막이다.

"어차피."

"...무슨 말 했어?"

"아냐, 아무 것도."

"그러시겠지. 차 태워줄 테니까, 샤워라도 하고 나와."

"신디."

"응?"

"매번 고마워. 그리고..."

"됐네요."

살짝 웃으며 시드니가 프롬프토의 손을 놓고 떠나갔다.

그 온기가 사라져 가는 것을 프롬프토는 멀뚱히 지켜봤다. 그리고 내려온 신탁을, 검신 바하무트의 음성을 되살린다.

'인섬니아로 향하라'

'다가올 그 때를 생명을 다해 대비하라'

'시해의 군세는...'

프롬프토는 머리를 감싸쥐고 흔들어 상념을 떨쳐냈다.

그렇다.

어차피.

손은 이미 차갑게 식어 있었다.

.

"신디. 어쩌지. 큰일났어."

시드니는 백미러를 통해 프롬프토를 흘깃 바라봤다. 표정이 매우 진지했다.

"뭐. 왜."

그리고 시드니의 대응은 적절했다.

"나 졸려."

프롬프토는 진지한 표정으로 헛소리하는 습관이 있었다.

"자장가라도 불러드릴까요, 킹스 글레이브."

"안돼. 내가 자면 안돼잖아. 신디와 함께 하는 시간이 줄어든다고."

시드니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말이나 못하면."

시드니가 운전하는 차량은 조용하고 편안했다.

간밤에 잠을 설친 탓인가, 프롬프토의 눈이 자꾸만 감겼다.

잠들기 싫어하는 꼬마아이 같다.

그 모습이 귀여워 시드니는 정말로 자장가를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이제 프롬프토의 정신이 절벽에 매달렸다.

안돼.

자면 안돼.

아까 꿈의 뒷이야기로 연결될 것 같다고.

그 개자식이 있다고.

무섭다고.

...

-아니.

아니야.

너무 두려워서 잊고 있었어.

그거 아니잖아?

그 다음 분명히, 분명히!

그 사실을 깨달은 순간 프롬프토는 골아 떨어졌다.

잠든 그의 입꼬리가 부르르 떨렸다.

.

- 커흑

아딘 아즈니아가 검은 피를 뿌리며 뒤로 죽 밀려났다.

프롬프토는 간신히 눈을 떴다.

믿을 수 없었다.

아딘의 머리가 반 쯤 으깨져 있었다. 입가의 미소 또한 사라져, 시해의 음험함만이 남아 있다.

- 어라, 이거 힘 쌘 돼지 새끼가 행차하셨네.

그 앞에 떠 있는 것은, 밝고 푸르게 빛나는- 왕의 병장. 거대한 둔기. 프롬프토에게는 그것에 스치기만 해도 죽을 자신이 있었다.

심지어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어디선가 거대한 날이 네개나 얽혀 있는 살벌한 십자 수리검이 나타났다. 그것은 곧 눈에 보이지도 않는 속도로 화전하며 날아들어 아딘의 오른 팔을 잘라 버렸다.

- 겁많고 수줍은 공주님께서도 오셨고.

그럼에도 아딘은 이제 완전히 침착함을 되찾았은 것 같았다. 그래서 그 등 뒤에 나타난 대검이 자신의 왼쪽 가슴을 뚫고 나왔을 때에도 그는 평정을 잃지 않았다.

- 그래, 동생아. 네가 오지 않을 리 없지. 하나도 변하지 않았구나. 찌르는 방식이 아주 훌륭해.

그리고 그 상처 속에서 아딘은 미소를 되찾았다. 그 눈에 비치는 것은 오히려 기쁨. 열락. 그리고 조용히 침잠해 있는, 끝을 알 수 없는 분노.

거듭된 출혈에 체력이 떨어진 프롬프토가 그 소름끼치는 심연에 삼켜지기 직전에, 눈 앞이 푸르게 밝아졌다.

이건-

프롬프토는 이 것이 무엇인지 만큼은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 하. 왕자께서 친구를 지키기 위해 아비를 보냈나. 이거이거. 역시 대단하시구만 그래, 응?

부왕의 검.

마지막의 마지막에 레이부스가 전해준, 레기스 폐하의 검이다.

프롬프토의 눈에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부왕의 검이 한바퀴, 프롬프토의 주위를 천천히 돌았다. 마치 그를 안심시키려는 것 처럼.

그리고 목소리를 전했다.

프롬프토는 몽롱한 가운데 그 목소리를 분명히 들었다.

검을 잡아, 프롬프토.

프롬프토는 눈물 속에서 그의 흔적을 찾아냈다.

너야?

정말 너야, 녹트?

손에 쥔 검은 따스했다. 곧 강대한 마력이 프롬프토 안으로 스며들었다. 상처는 순식간에 회복됐다. 어두컴컴한 시야도 금새 밝아졌다. 마력은 신기하다. 위대하고 신성스럽다.

분명 일반인은 쥘 수 조차 없고, 휘두를 때 마다 생명력이 소모된다던 검이었을 텐데.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명백하다.

정말이야.

녹트야. 녹트가 여기 있어.

- 흥.

그리고 아딘의 전신에서 검은 투기가 폭발했다.

아딘을 견재하던 세 왕의 무구들이 튕겨져 나왔다. 하지만 프롬프토는 이제 아딘이 예전만큼 두렵지 않았다. 녹트가 그와 함께 하고 있었다. 부왕의 검은 터질 것 처럼 빛을 발했고 아딘의 검은 투기는 프롬프토를 감히 건드리지조차 못했다.

- 과연 레기스. 뒈진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런지 팔팔하네. 정말 아쉬워.

어느 새 아딘은 육체를 전부 회복해두고 있었다.

뇌가 완전히 드러날 정도로 뭉게진 머리는 물론, 의복까지 말끔히.

마치 시간을 되돌린 것 처럼.

프롬프토는 긴장하며 부왕의 검을 두 손으로 쥐었다.

- 왜? 한 번 해보려고? 그만둬 그만둬. 친구가 지켜준 몸을 소중하게 여겨.

아딘이 느릿느릿하게 떨어뜨린 중절모를 집어 먼지를 털어냈다. 시해의 모습도 사라지고, 지금은 그저 사람좋은 아저씨의 얼굴로 프롬프토를 바라보고 있다.

구역질 날 것 같았다.

- 이거이거. 선물, 아저씨가 받고 말았네. 정말 미안해서 어쩌지. 이게 레기스 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지만 너무 욕심부릴 수도 없는 일이고.

개자식.

이 개자식.

그 말의 의미를 이 때의 프롬프토가 알 수 있을리 없었다. 악당은 넘어져도 맨손으로 일어나는 법이 없다. 그리고 아딘은 끝을 알 수 없는 악당이었다. 이 때 아딘이, 자신을 공격한 세 역대왕에게 씻을 수 없는 저주를 심어놓은 것도, 그들을 수족처럼 부리게 될 것이라는 사실도, 지금의 프롬프토는 알 수 없었다. 프롬프토는 그저 자신이 그에게 농락당했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치욕스러웠다.

- 유의미한 만남이었어, 프롬프토오. 감사의 의미로 이제 찌꺼기라는 말은 안할테니까.

프롬프토는 입을 꾹 닫고 참아냈다. 이 놈은 변덕쟁이다. 언제 돌변할 지 모르니까.

아딘은 그런 프롬프토를 보고 피식 웃으며 사라졌다. 프롬프토는 아딘이 자신을 죽이려면 이미 몇 번이나 죽일 수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무력감이 들어 견딜 수가 없다.

하지만 그런 것은 아무래도 좋다.

친구가, 아주 소중한 친구가 찾아온 것이다.

녹트, 녹트, 녹트!

그에 대답하듯 부왕의 검이 날아올라 하늘을 빙글빙글 돌았다.

수염, 그거 안어울려.

프롬프토는 사라져가는 부왕의 검을 보며 그런 말을 들었던 것 같았다.

그 때부터였다.

프롬프토는 신의 음성을 듣게 되었다.

.

시드니는 잠든 프롬프토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 보고 있었다.

경련하기 시작하는 프롬프토를 보고 시드니는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생각에 차를 갓길에 세웠다. 비오듯 땀을 흘리는 프롬프토의 얼굴을 조심스럽게 닦아 내며, 시드니는 그저 프롬프토가 홀로 툭 털고 일어나는 것을 기다렸다.

하지만 그는 쉽사리 깨어나지 않았다.

아침과 같았다. 프롬프토는 가위에 눌린 것 처럼 신음하고 있었다. 시드니는 프롬프토의 손을 잡고 그의 이름을 속삭였다. 프롬. 프롬. 시드니에게만 허락된 그의 애칭이었다.

하지만 프롬프토는 깨어니지 않았다.

그리고 곧 시드니는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한 방울, 프롬프토의 왼쪽 눈에서 눈물이 흘러 내렸던 것이다.

아아.

그렇구나.

그를 마음 속 깊이 웃게 하는 것은 글라디오와 이그니스다. 그러나 자신할 수 있다. 그를 얼빠진 얼굴로 바꿔놓을 수 있는 것은, 은은하게 미소짓게 하는 것은 오직 나 뿐이다.

하지만.

프롬프토를 울게 만드는 것은-

"짜증나네."

조금 험한 말이 튀어 나왔다.

그럴 수 밖에.

프롬프토는 만나고 있는 것이다.

바꿀 수 없는 존재를.

녹티스 루시스 체럼을.

"죽은 사람을... 이길 수도 없고."

시드니는 프롬프토를 깨우는 것을 포기했다. 급기야 절친의 이름을 웅얼거리기 시작한 프롬프토를, 시드니는 언제까지고 눈에 새겨 두었다.

그래야 할 것 같았다.

.

벌컥 문을 열고 들어온 글라디오는 하얗게 탈색된 프롬프토의 머리칼을 보았다. 그리고 그의 퀭한 눈과, 미묘하게 헐떡이는 호흡을 발견했다. 곧 그는 프롬프토의 모든 것이 3개월 전과는 현격히 다르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얼굴에서 웃음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옆에 침착하게 앉아있는 이그니스에게 인사를 건낼 여유도 없다.

저도 모르게 주먹에, 눈에, 배에 힘이 들어갔다.

정신을 차렸을 때에는 이미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너 뭐야. 어떻게 된거야, 프롬프토!"

우와, 창문 떨리는 것 좀 봐.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프롬프토가 이마를 짚었다.

"아, 정말. 글라디오. 실내에서 무슷 짓이야. 가뜩이나 머리가 울리니까 조용히 좀 말해줘."

"프롬프토!"

이그니스가 손을 들어 글라디오를 제지했다. 그래도 이럴 때 그를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이그니스가 유일하다.

글라디오는 폭풍같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프리트를 쓰러뜨리고, 차례차례 막아서는 3인의 역대왕들을 쓰러뜨리고, 마지막 순간, 루시스의 거짓된 왕을 치기 위해 마지막 문을 열 때-  그 악몽이 되살아나는 것 같았다.

그러나 글라디오의 험악한 얼굴이 프롬프토는 오히려 기뻤다. 친구들의 걱정이 사랑스러웠다. 하지만 지금은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

그는 차분한 목소리로 주의를 환기시켰다.

"그런 것보다 문제는 인섬니아야."

그런 것이라니.

글라디오의 손이 테이블 모퉁이를 으깨 부숴 버렸다. 그러나 프롬프토도 이그니스도 애써 이를 무시했다.

"신탁에 따르면, 시해의 마지막 군세가 전부 모인다는 것 같아. 집결 장소는 인섬니아. 아마도 왕좌. 여기까지는 지난 번 신탁과 같아. 하지만 숫자가."

'...지금까지 토벌한 것 보다 많다.'

자랑하는 것은 아니지만, 살아남은 사람들은 각지에 흩어져 있는 시해들을 지금까지 몇 만 필이나 해치웠다. 이렇게나 많은 시해들이 아직도 돌아다니고 있을 줄은 몰랐다. 하지만 이해가 안되는 일은 아니다. 밤은 언제나 그곳에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설마하니.

지금껏 쓰러뜨린 것보다 많은 시해들이 남아 있을 줄이야.

글라디오가 마른 세수를 하며 얼굴을 문질렀다.

"진짜냐고..."

이그니스는 조용히 결론지었다.

"틀림없겠지. 2년 동안 우리는 프롬프토의 신탁에 많은 도움을 받아왔으니까."

프롬프토가 고개를 끄덕였다.

"검신은 거짓말을 한 일이 없어. 이번에도 확실할 거야."

"글라디오. 모든 글레이브에게 소집 명령. 경계를 두배로 늘리고. 이틀 뒤 계엄령 선포. 비전투원은 일주일 안에 레스탈룸으로 피난시킨다."

루시스 재상 이그니스의 지령에 글라디오의 고개는 끄덕거리는 대신 프롬프토를 향했다. 표정은 여전히 험악하다.

"난 절대로 참가할 거야. 레스탈룸 따위엔 안가. 기어다니면서라도 싸울 테니까."

"프롬프토!"

"글라디오, 그만. 프롬프토... 그 몸으로 괜찮겠어?"

프롬프토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괜찮아 괜찮아. 어차피 내가 할 수 있는 게 뭐 있겠어? 적당히 도망다닐 테니까. 그런 거 잘 하잖아, 내가."

이그니스는 입을 다물었다. 이럴 때 프롬프토는 글라디오 이상으로 완강하다. 꺾을 수 없다.

글라디오는 표정을 더욱 엄격하게 굳혔다.

"프롬프토. 절대로. 절대로 내 앞에 나서지마."

"네에, 네. 알아 모시겠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세 사람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루시스 전체의 두뇌와 전투 경험이 풍부한 장군들을 총동원해 대응책을 모색해야할 때다.

가용 전투 인원. 배치. 트랩과 바리케이트 준비. 병참. 고려해야할 것은 넘칠 만큼 많았다.

상황은 좋지 않다.

절망적이라 해도 틀리지 않으리라.

그러나 프롬프토는 그저 이것이 끝이 아닐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아니, 그저 느낌이다. 흉일지 길일지조차 알 수 없다. 신탁에 대한 일이 아니기에 친구들에게는 말할 수 없었다. 굳이 쓸데없는 걱정거리를 늘려주고 싶지는 않았다.

어째서 일까. 프롬프토는 그 어떤 때보다 녹트를 가깝게 느끼고 있었다.

혹시 그런 걸까.

녹트가 저 어디에선가 우리를 지켜보고 있는 것일까.

그게 아니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