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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6.08.09 DDFF. 병사와 용기사
posted by nameless7777 2016. 8. 9. 23:10
".......려."

용기사는 꿈을 꾸고 있었다.

그는 시련의 산에서 보일 리 없는 자신의 고향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언제나 자신을 생각해주던 단단하고 후덕한 기관장. 다정하고 우직한, 라이벌이자 친구인 성왕. 그리고-

언제까지나 하얗고 아름다운 그녀.

".......신 차려."

그녀의 장점을 꼽자면 용기사는 밤을 꼬박 샐 수도 있었다.

그녀는 단지 아름답기만 했던 것이 아니다. 그녀는 그 누구보다도 강했다. 그녀는 바론 왕국 최고의 명사수였고, 그 이상으로 뛰어난 백마도사였다. 무수한 적군을 쏘아 떨어뜨렸고, 그 보다 많은 아군을 치료하고 지켜냈다. 하지만 최전선에서 활동하는 백마도사는 가장 죽음과 근접해 있는 존재다. 필연적으로 그녀는 누구보다도 많은 가까운 죽음을 경험했다. 그러나 그녀는 그 모든 것을 극복하고, 초석으로 삼았다. 그리고 가장 무섭고 두려운 싸움에는 항상 그녀가 함께 했다.

".. 인, 정신 차려."

그 바보 같은 놈은 그녀의 진가를 모른다. 그녀의 강함을 이해하지 못하고, 이해하려 하지 않고- 그저 새장 속에 가둬 지키려 할 뿐이다. 내가 그녀를 가장 잘 알고 있다. 그래. 나야말로, 나야말로 그녀에게 어울린다.

"카인."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카인이 눈을 번쩍 떴다. 방금 꾼 꿈을 되새겨보려 노력했지만, 그럴 때가 아니라는 것을 용기사는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그는 태양의 역광 속에 그림자를 발견했다. 휘몰아치는 투기. 위협적. 그는 무의식 중에 창을 뻗으려다가 간신히 멈췄다. 상대는 적일지도 모른다. 목숨이 위험한 순간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카인은 더이상 스스로의 의지가 담기지 않은 창을 내찌르는 것을 금지하고 있었다.

상대가 역광 속에서 걸어왔다. 금발. 녹색 눈동자. 선이 가늘고 날카로운 인상. 압도적인 위압감에 비해 체구는 의외로 작다. 등에 걸치고 있는 것은, 그 왜소한 몸으로는 도저히 휘두를 수 없을 것 처럼 생각되는 거대한 검. 그 뒤에 있는 것은, 마치 산처럼 쌓여있는 이미테이션- 적들의 시체. 그 중에는 대단히 거대한 크리쳐도 있었다.

"날 알아보지 못하는군. 퇴행인가."

"퇴행."

"이 세계로 소환된 전사는 정신이 불안정하지. 지금 당신처럼 기억을 잃어버리는 일은 흔한 일이다."

"너는 누구지? 저 이미테이션들은 네가 다 해치운 건가?"

"클라우드다. 놈들이 스스로 내 검에 뛰어들어 죽어주지는 않더군."

클라우드가 손을 내밀었다. 그는 카인이 적의 정체를 잊어버리지 않은 것은 꽤 고무적이며, 체력이 회복되면 곧 기억도 돌아올 거라고 전망해 주었다.

"설 수 있겠나?"

"큭..."

카인은 상체를 일으키는 것 조차 힘겨워 했다. 당연한 일이다. 그의 육체는 죽기 직전까지 파손되어 있었다. 지금 정신을 차리고, 회복하기 시작했다는 것 자체가 이례적이다. 

"할 수 없군."

클라우드가 카인을 훌쩍 들어올려 등으로 옮겼다. 카인은 꼼짝없이 클라우드에게 업히게 되었다. 그리고 카인은 누군가에게 업혔던 기억이 없었다. 카인이 항의했다. 아니,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봐.

하지만 성대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그리고 급격하게 의식이 멀어지기 시작했다. 클라우드는 담담하게 현재 상황을 설명했다.

"기억나지 않겠지만 넌 나를 구하려다 다쳤다. 내가 돕는 것은 당연하지. 조금 쉬어두는게 좋아."

클라우드의 음성에는 어떤 거부할 수 없는 힘과 설득력이 있었다.

카인은 다시 잠에 빠졌다.

.

카인은 여섯 시간을 내리 골아 떨어졌다. 그가 일어났을 때 클라우드는 아직도 걷고 있었다. 보기와는 달리 엄청난 체력이었다. 카인은 이 강건한 병사의 이름을 기억해 냈다.

"클라우드. 클라우드 스트라이프."

클라우드는 카인이 몇 시간 전에는 알려주지 않았던 자신의 성을 부르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클라우드의 목소리가 조금 밝아졌다.

"기억해냈나. 꽤 회복된 것 같군."

"내려줘. 걸을 수 있다. 어깨는 조금 더 빌려야 겠지만."

"좋을 대로."

클라우드가 카인을 등에서 내려 주었다. 카인은 약간 휘청였지만 큰 문제는 없어보였다. 클라우드는 손에 아무렇게나 쥐고 있던 가죽 거치대를 다시 등에 걸고, 그대로 검을 고정했다. 거치대와 함께 쥐고 있던 카인의 창은 다시 주인의 손으로 돌아갔다. 카인은 그제야 클라우드의 복장도, 무기도 바뀌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클라우드의 어깨에 빌려 조심스럽게 이동하면서 카인이 물었다.

"내가 어떻게 된거지?"

"이 세계에서 둘이 함께 여행을 하기 시작한 후 일주일 째, 이미테이션의 매복에 걸렸다. 그것만이라면 다행이겠지만 이미테이션 중에 카오스의 복제가 섞여 있었지."

데스페라도 카오스의 이미테이션. 정신를 잃기 전에 봤던 그 거대한 크리쳐를 말하는 것 같았다. 카인의 기억이 조금씩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엄청난 녀석이었어. 넌 결정적인 순간에 날 감싸고 쓰러졌다."

그렇다면.

카인이 의구심을 감추지 못했다.

"우리가 어떻게 살아있지?"

클라우드는 심드렁하게 말했다.

"기억을 되찾았거든. 그 기억으로부터 얻어낸 힘으로 어떻게든 할 수 있었다."

카인이 클라우드의 설명을 따라잡지 못했다. 기억으로부터 얻어낸 힘이라니? 카인은 영문을 알 수 없었다. 클라우드가 간단하게 설명했다.

"이 세계는 정신이 육체를 지배한다. 나는 원래 세계의 기억을 되찾았다. 내가 기억해낼 수 있는, 내가 가장 강했던 시기를. 그리고 그 때의 힘을 쓸 수 있게 된거지."

"그것만으로 그렇게 강해진다는 건가?"

복제라고는 하지만, 저 데스페라도 카오스와 단기로 상대할 수 있을 정도로?

클라우드가 답했다.

단 한마디였다.

"골베자."

카인의 등에 소름이 돋아난다.

골베자.

꿈에서조차 잊을 수 없는 이름. 애써 숨겨왔던 비밀을 파해쳐내고, 이리저리 비틀고- 나를 조종하는데 사용한 이름이다. 그는 아직도 카인의 정신을 좀먹고 있었다.

"생각해봐. 그 녀석은 원래 세계에서도 그렇게 강했나?"

카인도 이상하다고는 생각하고 있었다.

물론 골베자는 강하다. 그러나 카인은 자신의 창을 걸고 단언할 수 있었다. 녀석의 강함은 이상하다.

"원래 놈은 극도로 단련되었지만, 결국에는 흑마도사일 뿐이었다. 접근하면 승산이 있었지. 힘으로는 그 부하에게도 못 미칠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완전히 달라. 애초에 그 체격은 사람인 것 같지도 않아. 게다가 그 완력에 염동력. 설사 그 데스페라도 카오스의 이미테이션이라 해도 지금의 골베자를 당해낼 수는 없을 터. 그래, 마치-"

스스로 정리하면서 카인은 문득 깨달았다. 그 골베자와 비슷할 만큼 강한 존재가 바로 옆에 있었던 것이다. 결국 카인은 반 강제로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골베자는 자신이 모르는 미래의 기억을 가지고 있고, 그 때의 강함을 그 몸에 익힌 것이다.

클라우드가 조용히 정리했다.

"이제 납득한 것 같군. 참고로 말하자면, 내 '지금' 이름은 클라우드 L. 스트라이프다."

클라우드가 굳이 강조하자 카인이 그 작은 차이를 잡아냈다.

"L?"

클라우드가 담담히 답했다.

"내 아내의 성이다."

카인은 입을 딱 벌렸다.

아내?

설마?

이 녀석이?

카인의 본능은 그 이상 가까이 가지 말라고 외치고 있었다. 하지만 카인의 정신은 수용 한계치를 넘어 너덜너덜하게 손상되어 있었고, 이미 이지적인 판단은 할 수 없게 되어 있었다.

그대로 그는 묻지 말아야 할 것을 묻고 말았다.

"상대는?"

"소꿉친구다."

결정타였다.

카인은 정신적으로 졸도했다.

힘이 쭉 빠진 그는 다시 클라우드의 등에 편하게 업혀 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용기사에게 남은 마지막 한조각의 긍지는 그를 황폐한 정신 속에서도 계속 자력으로 걷게 만들었다. 실로 초인적이었다.

.

날이 어두워졌고, 클라우드는 노숙을 제안했다. 카인은 말 없이 수긍했다. 잠깐동안 클라우드는 산더미같은 장작을 준비하고, 나무 열매를 따고, 산짐승을 잡아왔다. 여유롭게 준비하는 그를 보며 카인은 약간 자괴감을 느꼈다.

카인의 시선을 느낀 클라우드가 카인을 바라보았다.

"육체적으로 약해져서 쓸데없는 생각이 드는 거다. 지금은 회복하는 것만 생각해."

"여유가 넘치는군."

"아내의 지론을 말해줬을 뿐이야."

그리고 카인은 다시 침묵했다. 그 모습을 보며 클라우드가 작게 한숨을 쉬었다.

"나도 기억을 찾는다면 강해질 수 있을까. 그렇게 묻고 싶은 얼굴이군. 하지만 묻지 않아. 그게 가능하든 그렇지 않든, 자신이 어떻게든 해야할 일이니까. 그렇지?"

비로 그렇다.

마음을 완전히 읽혀버린 카인이 고개를 들었다. 클라우드가 그런 카인의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

"자존심의 덩어리같은 카인. 과연 골베자가 말했던 대로야."

카인의 눈이 경악으로 크게 떠졌다.

"그래. 나는 골베자와 함께 행동한 때도 있었다. 네 이야기는 그 때 들었지. 그는 네 이름을 언급하진 않았지만, 이젠 알 것 같군."

카인의 표정은 용기사의 투구에 가려 읽을 수 없었다. 차를 한 잔 마실 시간이 지나고, 용기사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어디까지 알고 있나."

클라우드가 담담하게 서술했다.

"친구를 두 번이나 배신하고, 그 연인을 탐했다."

카인이 얼굴을 조금 찌푸렸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클라우드에게 그 일은 골베자에게 세뇌당해서 저지른 일이라고 변명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것이 진실을 가리지는 못한다. 

골베자는 카인의 심층 심리를 꿰뚫고 교묘히 그를 조종했다. 카인의 배신에는 자신의 의지도 섞여 있었던 것이다.

그 뿐인가.

카인은 아직 그녀에 대한 마음을 털어낼 수 없다. 고향에서 얼마나 떨어져 있을지 모를 이곳에서도 그녀의 모습을 한치의 오차도 없이 그려낼 수 있으니까. 그녀의 눈 빛도, 입술도, 하물며 솜털 하나 하나까지. 세뇌가 완전히 풀린 이후 그녀를 취하고 싶다는 생각은 맹세코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그녀의 얼굴이 멋대로 떠오르는 것은, 카인이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므로 카인인 클라우드의 말에 불쾌함을 느끼지도, 분노하지도, 말을 되돌려주지도 않았다. 전부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내 죄이기 때문이다.

클라우드는 입을 다물어버린 카인을 조용히 응시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카인의 마음을 읽어냈다.

"카인. 죄는, 용서받을 수 있는 건가?"

카인이 차분하게 그 말을 받았다.

"죄는 사라지지 않아. 각자 그 그림자를 지고 걸어갈 뿐이다."

그 표정에 떠오른 것은 의지. 결의. 그리고 순수.

클라우드의 눈에는 이채.

"명답이다."

클라우드가 미소지었다.

"카인. 너는 알지 못하겠지만, 나는 너를 잘 알아."

골베자는, 동료를 구해내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몸부림치는 나를 격려하기 위해 네 이야기를 해줬으니까.

"너는 반드시 원래 세계의 기억을 되찾을 거다."

누구보다도 고결한, 그렇기에 죄를 외면하지 않고 살아간 용기사의 이야기를.

"조바심 내지 않아도, 너는 강해진다."

하지만 클라우드는 카인에게 아무런 이야기도 해줄 수 없다. 그 이야기를 듣고, 다시 걸어갈 힘에 보탤 수 있었다는 감사의 말조차. 그것이 다름아닌 용기사의 미래에 대한 이야기이기에. 그에게 말해줄 수 있는 부분은 지극히 한정적이다.

그렇지만 클라우드는, 그럼에도 카인의 가장 존경스러운 부분을 말해줄 수 있었다.

"너는 끝내 친구들을 지켜냈으니까."

클라우드가 웃었다. 카인은 그 얼굴에서, 한순간 뿐이지만, 자조적인 상처를 읽어냈다. 카인은 주먹을 꽉 쥐었다. 그도 나와 같다. 그 또한 나처럼 짊어지고 있는 것이 있는 것이다.

클라우드의 말에는 맥락도 근거도 없었다. 하지만 카인은 그의 눈에서 진실된 마음과 그 이상의 것을 읽을 수 있었다. 이 세계에 와서, 카인은 처음으로 그 존재를 인정받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둘은 그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

함께 다시금 길을 걸은지 3일 째.

돌연 클라우드가 멈춰섰다.

"여기까지다, 카인."

카인이 뒤를 돌아봤다. 그는 완전히 건강을 되찾은 상태였다.

"저 앞으로 3 킬로미터 정도. 너와 비슷한 기운을 가진 존재가 있는 것 같다."

카인의 얼굴이 조금이지만 밝아졌다.

"세실인가."

클라우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서두르면 따라잡을 수 있을 거다. 애석하지만 나는 그 쪽 방향이 아니라서."

카인이 조용히 말했다.

"티파를 찾으러 가는군."

클라우드가 깜짝 놀랐다.

"티파를 알고 있었나."

"티파가 네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던 것도 같군. 티파는 나에게 포션을 나눠줬었지. 너처럼."

그리고 카인은 크게 놀랐다.

클라우드가 경악한 얼굴로 카인을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티파가, 너에게 포션을 줬다고? 나처럼? 정말인가? 티파가, 설마 긴급 상황이라고는 해도 나 아닌 다른 녀석과- 아니, 그전에, 기억하고 있었나? 아니야, 있을 수 없어. 넌 분명히 정신을 잃고 있었을 텐데."

클라우드가 완전히 횡설수설하고 있었다. 저 표정에 떠오른 것은 분노인가, 체념인가, 그것도 아니면 수치심인가. 카인은 또 다시 클라우드의 맥락을 따라갈 수 없었다.

"? 티파가 나에게 포션을 끼얹어 준게, 뭐 문제라도 있는 건가?"

클라우드가 그 말에 표정 변화를 멈췄다.

"포션을 끼얹어 줬어?"

"아예 병으로 후려칠 기세였지. 너도 나에게 포션을 뿌려줬을 터. 깨어났을 때 포션향이 남아있어서 알아챌 수 있었다."

"어? 아아. 그랬지. 맞아."

클라우드는 그 때 카인의 목숨이 경각에 달려 있었고, 포션은 복용했을 때 가장 효과가 뛰어나며, 당시 카인은 스스로 포션을 삼킬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는 사실은 굳이 설명하지 않았다.

클라우드의 행동은 다소 이해하기 어려웠으나, 카인은 사소한 것은 신경쓰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가 손을 내밀었다.

"클라우드. 고마웠다."

침착함을 되찾은 클라우드가 그 손을 맞잡았다.

"다음 번에 만나면 꼭 한 번 겨뤄보고 싶군."

"기대하게. 강해져 있을테니."

그대로 클라우드는 왔던 길을 되짚어 떠났다. 카인은 클라우드가 세실을 찾아줬던 것 처럼 티파를 곧 발견할 수 있기를 기대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세실과는 하고 싶은 말이 아주 많았다. 이를 통해 서로의 기억을 찾고, 강해져서- 원래의 세계에 돌아가는데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그렇게 두 사람은 다음 만남을 기약하며 서로의 길을 재촉했다.

그러나 이 세계에서 그들이 다시 만나 자웅을 겨루는 일은 없었다. 그들은 이 세계와는 완전히 다른 장소에서 생각치 못한 형태로 목숨을 건 대결을 하게 되지만, 그것은 또 다른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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